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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색깔 사회’를 꿈꾼다
[상상사전] ‘흑백’
2021년 04월 02일 (금) 11:23:09 김계범 기자 aiolos1001@naver.com
   
▲ 김계범 기자

어릴 때부터 나는 흰색을 좋아했다. ‘백의민족’이라 불리는 한국인이라서 그런 걸까? 옷장을 보면 흰옷으로 가득하다. 내가 가지고 있는 옷과 신발을 비롯해 물건을 살펴보면 흰색이 많다. 옛 중국 문헌에도 우리 민족은 흰옷을 즐겨 입는다는 기록이 나온다. 우리 민족의 흰옷 사랑은 그 뒤로도 계속 이어졌고, 일제강점기에는 항일의 상징이었다. 해방 이후 서구 문화의 영향으로 흰옷을 즐겨 입는 풍습은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한국인이 선호하는 색 가운데 하나다. 

흰색은 여백의 상태, 다시 말하면 무한한 가능성을 뜻한다. 흰색은 순수와 청결, 빛 등을 상징한다. 깔끔하고 세련된 느낌을 줘서 어떤 색과도 잘 어울린다. 흰색은 수많은 장점을 갖고 있는데 때 타기 쉽다는 단점도 있다. 흰색은 모든 빛을 반사한다. 다시 말해 배타적인 색이라 할 수 있다. 흰색의 깨끗함을 유지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흰색은 현실 세계에서는 가 닿을 수 없는 이상적인 색에 가깝다. 

   
▲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이주민을 향한 차별은 끊이지 않는다. ⓒ KBS

모든 빛을 반사하는 흰색처럼 ‘백의민족’은 오랫동안 배타성을 띠며 단일민족 정체성을 중요하게 생각해왔다. 베네딕트 앤더슨은 ‘민족은 상상의 공동체’라고 말했다. 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2019년을 기준으로 국내 체류 외국인 숫자는 250만을 넘는데도 여전히 단일민족 신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수많은 이주 노동자와 결혼이주여성 등이 우리 사회에서 이름 없는 존재로 차별받고 있다. 지난해 12월, 한 이주노동자가 또 세상을 떠났다. 결혼이주여성들이 겪는 가정 폭력 문제도 끊임없이 반복된다. 여전히 많은 이들이 국내 체류 외국인을 ‘우리’와 ‘그들’로 구분 짓고 타자화한다. 

몇 년 전,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색은 흰색이 아니라 검은색이었다. 모든 빛을 반사하는 흰색과 달리 검은색은 모든 빛을 흡수한다. 검은색은 빛을 집어삼켜 무섭기도 하지만 모든 빛을 흡수해 하나로 만드는 색이라고 할 수도 있다. 푸른 하늘에 저녁 어스름이 깔리면 어느새 밤이 찾아온다. 밤이 깊어갈수록 별은 더 밝게 빛난다. 어둠은 밝을 때는 미처 보지 못하던 작은 존재들까지 보게 하고, 작은 소리에도 귀 기울이게 한다. 검은색은 존재와 현실을 인식하게 하는 색이다. 

“속초 바다랑 강릉 바다랑 색깔 다른 거 알아? 속초 바다가 코랄블루라면 강릉 바다는 코발트블루.” 영화 ‘시라노 연애 조작단’의 한 대사다. 전체적인 영화 서사에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대사인데 나에게는 이 대사가 기억에 남았다. 당시 나는 ‘바다색이 다 거기서 거기 아닌가’라고 생각했다. 색깔에 무지한 내게는 꽤 신선한 대사였다. 비슷한 듯 보여도 강릉과 속초의 바다 색깔이 서로 다르듯 사람마다 지닌 색도 다르다. 우리 모두 저마다 색을 가지고 있다. 한 사람을 어느 한 가지 색만으로 설명할 수도 없다. 흑과 백, 좌파와 우파 등 사람을 어느 하나 색으로 규정짓고 낙인 찍는 데서 차별이 시작된다. 

   
▲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존중받으며 함께 살 수 있는 사회를 꿈꾼다. ⓒ Pixabay

지난 2월, 한 토론회에서 안철수 국민의당 서울시장후보가 “그런 것(퀴어 퍼레이드)들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도 존중받아야 한다”는 발언을 했다. 엄연한 혐오 발언이다. 지난해, 나는 원피스 체험 기사 취재를 위해 원피스를 입고 거리를 다닐 때 잠깐이지만 따가운 시선을 경험했다. 당시 사람들이 입고 다니는 옷이 내 눈에 들어왔는데 옷 색깔 대부분이 무채색이었다. 문득 한국은 ‘무채색의 나라’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제 우리 사회가 흰색, 검은색 말고도 다양한 색깔이 함께 공존하는 사회가 됐으면 한다. 성소수자, 이주노동자 등을 비롯한 모두가 존중받으며 살 수 있는 사회를 꿈꾼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이나경 기자

[김계범 기자]
단비뉴스 청년부, 지역농촌부 김계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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