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인터뷰] MBC 엠드로메다 스튜디오 최별 PD

유튜브 채널 중 유독 목가적인 풍경이 눈에 띄는 <오느른(onulun)>. 들깨향이 나는 듯한 논두렁, 갓 절인 배추에 양념을 펴 바르는 동네 주민들, 그 옆에서 김치를 얻어먹는 젊은 여성이 눈에 들어온다. 문화방송(MBC)의 뉴미디어 제작부서인 디지털 크리에이티브센터 엠드로메다 스튜디오팀 소속 최별(33) 프로듀서(PD)다. 그는 지난해 4월 전북 김제시 부량면 옥정리에 내려가 ‘115년 된 폐가’를 4500만 원에 샀다. 신도시도, 재개발도 아무 상관없는 시골동네, 낡은 집. 그는 거기서 뚝딱뚝딱 집을 고쳐 귀촌생활을 시작했고, 그 과정을 유튜브에 올려 약 28만 명의 구독자를 모았다. 지상파 소속 PD이면서 유튜버로 ‘대박’을 낸 그를 지난해 11월 19일 그의 시골집에서 만나고, 14일 전화로 추가 인터뷰했다. 

‘4500만 원 충동구매’가 낳은 유튜브 ‘실버 버튼’

▲ 전북 김제시 부랑면 옥정리 동네 길가에서 쉬고 있는 최별 PD. 아래는 최 PD가 115년 된 폐가를 직접 고치고 꾸며서 살고 있는 집. ⓒ MBC, <단비뉴스> 김병준

지난해 엠드로메다 스튜디오팀에 배치된 최 PD가 시골 폐가를 산 것은 일종의 ‘충동구매’였다고 한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주년을 기념해 크로스미디어 프로그램(웹과 모바일 등 다양한 플랫폼으로 제작유통되는 프로그램)인 <기억록>을 성동일, 배두나, 김연아 등 쟁쟁한 스타들을 동원해 제작했지만 기대에 못 미친 결과를 낸 후였다. 게다가 2개월간 야심차게 준비한 프로젝트가 코로나19로 인해 ‘엎어지는’ 일까지 겪었다. 그전까지 노력해서 실패한 적이 없었던 그는 팀을 해체한 후 상당한 충격에 빠졌다고 한다. 유튜브에서 본 폐가를 충동적으로 구매하고, 그걸 고쳐서 사는 과정을 유튜브로 만들겠다고 회사에 기획안을 내고, 회사의 시큰둥한 반응 속에 시골 마을로 내려갔다.

그는 폐가를 고치고 가꾸는 일이 일종의 ‘치유하는 과정’이었다고 말했다. ‘노력의 배신’을 겪은 후, 그동안 직장과 일에 빠져 돌아볼 겨를이 없었던 자신을 발견하게 된 시간이었다. 논두렁 한가운데서 자신에게만 집중하는 시간을 가졌다. 인테리어(실내장식) 취미를 적극 활용해 옛집을 고쳤고, 뒷마당에서 생전 처음 밭을 맸다. 이런 과정을 그대로 영상에 담았다. 촬영은 MBC 촬영감독이 맡고 편집은 최 PD가 직접 했다. 늘 ‘일 잘하는 사람’이었던 자신이 밭일엔 ‘젬병’인 것도 발견했고, 자신이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을 구분하게 됐다.

채널을 연 지 약 6개월만인 지난해 12월 16일 구독자수가 10만 명을 넘어 유튜브에서 주는 ‘실버 버튼’을 받았다. 지금은 구독자가 27만 9000명을 넘어섰다. 구독자가 늘면서 광고수익도 늘었지만 콘텐츠 제작비를 감안하면 적자다. 그러나 <오느른>은 수익 창출을 넘어 공영방송 MBC가 가진 공익성에 가치를 두고 ‘자극적이지 않아도 소통할 수 있는 콘텐츠’를 지향한다고 최 PD는 말했다.

지상파와 달랐던 유튜브 성공 공식

“방송은 친절한 커뮤니케이션을 지향하죠. 모든 사람들이, 전 연령대가 볼 수 있도록 친절하게 설명해야 해요. 근데 유튜브는 나랑 취향이 맞는 사람들을 모으는 작업이었어요.”

그가 여러 시행착오를 거친 뒤 유튜브에서 선택한 것은 자신의 이야기를 담는 형식인 브이로그(Vlog)였다. 브이로그는 평범해 보이지만 내가 좋아하는 음식, 음악, 취미 등 일상을 공유하는 콘텐츠다. 최 PD가 유튜브에서 시도한 것은 ‘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이었다. <오느른>은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을까’하는 모두의 ‘비슷한 고민’을 공유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느른>의 영상은 매주 금요일에 10분 내외 분량으로 올라간다. 기본 에피소드 외에 영상 배경음악을 모아 놓은 ‘오느른 음악감상하는 날’, 배추 농사와 김장날의 특별한 에피소드 등을 담은 ‘오느른의 특별한 하루’, 구독자와 소통하는 방송 ‘날 것의 시골살이 라이브’ 등 다채롭게 구성했다.

▲ 직접 농사를 짓고 수확하는 과정은 최별 PD가 스스로를 발견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 MBC

오늘을 사는 성인에게 필요한 ‘어른스러움’을 찾아서

채널명 <오느른>은 ‘오늘을 사는 어른들’의 줄임말이다. 오늘 하루하루 열심히 사는 것, 계획없이 흘러가는 대로 사는 오늘,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로 사는 오늘이란 뜻도 갖고 있다.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어른은 최 PD 자신이기도 하다.

그는 친구가 된 동네 어른들을 통해 ‘어른스러움이란 무엇인가’의 답을 어느 정도 찾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최 PD의 눈에 부량면 어른들은 늘 일이 많은데도 이상하게 여유로웠다. 그들을 보며 어디선가 읽은 ‘농촌이 진정한 자기주도적 삶의 결정체’라는 말을 떠올렸다. 계절마다 해야 할 것이 있고 실시간으로 기후에 대응해야 하기 때문에 도시보다 더 바쁜데도, 이상하게 여유을 갖고 산다. 정해진 업무에 따라 수동적으로 사는 도시인과 달리 농촌의 어른들은 날씨 등 변화하는 상황에 나름의 선택과 결정을 내리며 능동적으로 살고 있다는 게 최 PD의 관찰이다.

▲ 최별 PD가 직접 고치고 장식한 집의 서재에 앉아 있다. 얼굴을 드러내고 싶지 않다는 요청에 따라 모자 쓴 모습을 찍었다. ⓒ 김병준

약점 안 드러내려 애쓰는 서울, 다 보여주는 시골

최 PD는 이곳에서 도시의 삶과 다르게 ‘내실이 탄탄한 삶’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도시 어른으로 살던 그는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지 않으려 애쓰던 서울’과 다르게 자신이 가진 것, 없는 것을 다 드러내는 부량면 어른들의 소탈함을 발견했다.

“여기선 마당 넘어서 집집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뻔히 보여요. 그런데 집들이 다 깔끔한 거죠. 먼지 한 톨 없어요. 근데 나갈 때는 너무 평범한 농부인 거예요. 서울은 그렇지 않잖아요. 회사에선 화려하게 꾸미고 다니는데 집은 난장판인 경우가 많고. 그게 되게 큰 의미로 다가왔어요. 그냥 ‘있는 그대로’구나, 도와줄 때도 크게 대가를 바라지 않아요. 그렇다고 그냥 사람 사는 동네이지 무한히 인자한 것도 아니에요.”

옥정리는 작년 흉작이었다. 수해는 없었지만 그래도 모든 집의 농사가 망했다. 그럼에도 의연한 주민들의 태도에서 그는 ‘어른스러움’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게으른 사람도 부지런한 사람도, 자연재해가 닥치면 노력과 상관없이 모두 예상치 못한 실패를 맛보는 것이다. 매년 공들인 것과 달리 ‘날씨로 흉년도 오고 풍년도 온다'는 걸 지역어른들은 알았다. 자연과 함께 살며 배운 이치였다.

“올해는 흉년이네. 어쩔 수 없지 뭐. 논도 태풍에 쓰러지는 벼들이 있잖아요. 그게 특별히 농사법 문제가 아니라 이쪽 모는 멀쩡한데 저쪽 모는 쓰러져 있고, 복불복(운수)이라고 하더라고요. 자연의 섭리를 몇 십 년 계속 반복해서 사시니까. 내가 노력한 것에 대한 엄청난 억울함도 없고 내가 잘한 것에 대해서 보상에 대한 엄청난 기쁨도 없는 거죠.”

<오느른>에 등장하는 농촌 어른들에게는 적당한 기쁨과 힘듦이 반복되는, 삶의 건강함이 보였다. 최 PD 자신이 실패를 겪었을 때의 그 좌절과 달랐다. 그는 여기서 ‘어른스러움이 무엇인가’를 배우는 중이라고 말했다. 동네 주민들이 보여주는 삶의 태도에서 위안을 느끼며 그전에는 몰랐던 자연의 섭리도 발견했다.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다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삶의 태도를 배운다. 자연의 법칙 속에 자신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 최별 PD가 서재에서 인터뷰하는 동안, 담장 너머로 옥정리 주민이 지나가고 있다. ⓒ 김병준

다큐 PD는 ‘공유하는 고민에 질문을 던지는 사람’

MBC에 경력직 PD로 입사한 그는 한국외대에서 정치외교학을 공부한 후 ‘언론고시’라 불리는 준비기간을 잠시 거치다 빨리 PD생활을 경험하고 싶어 다큐멘터리 연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이것이 인연이 돼 프로덕션에 입사했고, 일찍 PD로서 ‘입봉(첫 연출)’을 한 덕에 실력을 쌓아 2016년에 MBC에 합류할 수 있었다.

다큐멘터리는 나의 질문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질문이나 화두에 내가 관심 없는 주제로 과연 다큐멘터리를 만들 수 있을까요?”

최 PD는 자신이 가진 질문에서 다큐멘터리가 시작된다고 말했다. 그가 유튜브에 연재하는 브이로그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는 “해외 다큐멘터리만 보더라도 주관에 입각한 다큐멘터리가 많다”며 객관적으로 표현하려 하더라도 자신의 질문, 관심사에서 다큐멘터리를 시작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취향이 얼마나 동시대성을 띠고 있는가’이다. 최 PD에게만 ‘옛날 집’ ‘귀촌에 관한 욕구’가 있었다면 콘텐츠로 만들지 않았을 것이란 이야기다. 그는 ‘연출자 자신과 사람들이 같은 고민을 하는지’가 중요한 지점이라고 말했다. 시대가 변해도 다큐가 꾸준히 해야 할 것은 ‘우리가 공유하는 고민에 질문을 던지는 역할’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최 PD는 20대에 독립한 뒤 수많은 집을 전전했다고 한다. 햇빛 안 드는 고시원 지하방에서 시작해 바퀴벌레 그득하던 망원동 집까지, ‘오래된 집’에서 온갖 경험을 했다. 직장인이 된 후엔 최신식 주상복합단지에서 안락하게 살았지만 다시 115년이나 된 집으로 돌아왔다. 최신식 삶을 포기한 것은 알 수 없는 불편함 때문이었다. 언제든 편하게 드나들 수 있어야 할 집을 엘리베이터를 거치지 않으면 갈 수 없는 게 이상했다. 화재경보가 울릴 땐 고층에서 계단으로 한참 내려와야 하는 일도 영 번거로웠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가를 다시 생각했고, 그 지점에서 오래된 집을 발견했다. 어릴 적 엄마, 아빠와 함께 가족사진을 찍던 그 주택 대문과 비슷한 모양을 한 집이었다.

▲ 최별 PD가 직접 디자인하고 꾸민 실내 공간. ⓒ 김병준

PD로서 그가 많이 떠올리는 질문은 ‘현대인들이 놓치는 것들’이다. 자신에 관한 고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우리사회의 롤 모델이 누군지에 관한 질문을 던지고 싶다고 했다. 빠르게 흐르는 시간 속에 모두가 아등바등 살아내는 사이 정작 중요한 질문에 관해선 답을 찾을 겨를이 없다. 그는 <오느른>을 통해 사람들이 생각할 지점을 마련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급속도로 변화하는 세상에서 일상에 바쁜 사람들이 고민하지 못하고 지나치는 작은 부분들을 대신 고민해주는 게 앞으로 제가 지향하는 다큐멘터리의 방향입니다.”


편집 : 김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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