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인터뷰] ‘세월호 침묵행진’에서 국회까지, 용혜인 의원

“기본소득에는 여러 가지 성격들이 있죠. 예를 들면 소득재분배의 성격도 가지고 있고, 어떤 분들에게는 증세를 위한 수단의 성격도 가지고 있고, 탄소세와 연동된 탄소세 기본소득 같은 경우는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성격도 가지고 있을 수 있고. 그래서 저는 기본소득이 되게 매력적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제 21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둔 지난해 1월 ‘평균연령 27세의 정당’으로 탄생한 기본소득당의 용혜인(30) 의원이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또박또박 말했다. 그는 기본소득이 ‘굉장히 간단한 아이디어이면서도 새로운 사회를 설계하는 데 효과적’이라고 강조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구상만큼 주목받지는 못하고 있지만, ‘국가가 모든 국민에게 아무 조건 없이, 정기적으로 현금을 지급하는 제도’를 도입하자는 기본소득 논의의 최전선에 용 의원이 있다. 지난해 11월 5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514호 의원실에서 용 의원을 만나고, 21일 문자로 추가 인터뷰했다.

‘모두의 것을 모두에게’ 사회구성 원리 새롭게

▲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실에서 <단비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 강주영

지난해 4월 총선에서 비례연합정당인 더불어시민당의 후보로 당선된 후 5월 13일 기본소득당으로 복귀해 의정활동을 하고 있는 용 의원은 ‘모두에게 월 60만 원’이라는 기본소득의 꿈을 향해 전진 중이다. 그는 기본소득을 “단순히 사람들에게 돈을 나눠주는 정책이 아니라 사회를 구성하는 기본적인 원리를 다시 세우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기본소득당은 ‘토지, 천연자원, 생태자원뿐만 아니라 지식, 기술, 빅데이터, 사회적 인프라 역시 우리 사회의 공통자산’이라고 주장한다. 공통자산에서 나오는 수익인 공통부(common wealth)를 ‘원래 주인인 시민에게 돌려주는 것’이 용 의원이 말하는 사회구성의 기본적 원리를 다시 세우는 일이다.

기본소득당은 소득재분배를 위한 ‘시민세와 시민배당’,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세와 탄소배당’, 부동산 문제 해결을 위한 ‘토지보유세와 토지배당’, 데이터 이윤 독점을 막기 위한 ‘데이터세와 데이터배당’ 등을 논의하고 있다. 여기서 시민세는 임금·사업·양도소득 등에 신설하는 세금이고, 탄소세는 온실가스 배출량에 따른 과세와 핵발전위험세를 말한다. 또 토지보유세는 개인이 소유한 모든 땅에 비과세·감면혜택 없이 세금을 물리는 것이며, 데이터세는 검색엔진·소셜미디어 등 데이터 기반 산업에 과세하는 것이다.

국민 70%는 ‘내는 돈’보다 ‘받는 돈’ 많은 구조

기본소득당이 제안하는 ‘월 60만 원’은 2020년 정부가 고시한 기초생활수급자의 생계급여(중위소득 30% 이하인 수급자에게 주는 급여) 월 52만7158원보다 7만 원 정도 높은 수준이다. 용 의원은 “월 60만 원 기본소득 모델이 충분히 실현가능하다”고 말했다. 전 국민 5천만 명에게 월 60만 원씩을 지급하려면 연간 360조 원이 필요하다. 이 재원을 마련하려면 증세를 해야 하는데, 기본소득당의 구상에 따르면 국민의 30%는 기본소득으로 받는 돈보다 내는 세금이 더 많지만, 70%는 납세액보다 기본소득으로 받는 돈이 더 많다는 설명이다. 그 30%의 경계선은 연봉 1억 원이다. 그래서 이 제도를 도입하는 데는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는 정치력이 중요하다고 그는 덧붙였다.

용 의원은 “한국의 조세부담률(2019년 20.0%)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2019년 24.9%)보다 낮기도 하고, 증세는 피할 수 없는 이야기인 것 같다”며 정부가 재정지출 규모를 늘리면서 세금은 올리지 않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기본소득이 증세를 위한 전략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기본소득은 거둬들인 세금을 모든 국민에게 똑같이 나눠주기 때문에 선별적 복지에 비해 조세 저항이 적을 가능성이 크다. 국민 개개인이 받는 돈(기본소득)과 내는 돈(세금)을 명확하게 계산할 수 있고, 시장 소득의 역전 문제(선별적 복지의 결과 소득분위가 바뀌는 현상)가 발생하지 않는 장점도 있다.

코로나19와 긴급재난지원금은 기본소득 논의를 앞당겼다. 용 의원은 “4차 산업혁명, 기술의 발달 등이 가져올 미래 사회 모습을 코로나19로 인해서 먼저 경험했다”고 설명했다. ‘일을 하지 못하고 소득이 끊겼을 때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부닥쳤다는 것이다. 정부가 전 국민에게 지급한 긴급재난지원금은 기본소득에 관한 상상력을 자극했다. 용 의원은 “긴급재난지원금을 경험하면서 ‘이것이 충분히 가능한 일이고 심지어 효과가 있구나’라는 것을 많은 국민들이 체감하게 됐다”고 말했다. 과거에는 모든 국민에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현금을 준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었는데, 재난 상황에서 갑자기 현실이 된 것이다.

▲ 용혜인 의원은 지난해 9월 2차 긴급재난지원금 선별 지급을 반대하며 4차 추가경정예산안에 유일하게 반대표를 던졌다. ⓒ 용혜인 의원 페이스북

코로나19 계기 국회 법안 발의 본격화

국회도 기본소득 논의를 시작했다. 용 의원이 연구책임의원으로 있는 ‘국회기본소득 연구포럼’은 우리나라 국회에서 처음 결성된 기본소득 연구단체다. 지난해 7월 30일 열린 창립총회에는 연구포럼 대표의원인 소병훈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구성의원뿐 아니라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원희룡 제주도지사도 참여했다. 기본소득당은 원외 정당과도 활발한 교류를 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6일 열린 ‘기본소득 도입방안 토론회 4당4색’은 기본소득당, 녹색당, 미래당, 여성의당이 참여한 연석회의였다.

현재 국회에 발의된 기본소득 관련 법안은 모두 4개다. 성일종 국민의힘 의원은 ‘기본소득 도입연구를 위한 법률안’을,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과 소병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각각 ‘기본소득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조 의원의 기본소득법안은 2022년 월 최소 30만 원을 시작으로 2029년 월 최소 50만 원의 기본소득을 현금 또는 지역화폐로 지급하는 내용이다. 소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월 지급액을 특정하지 않고, 국무총리 소속 국가기본소득위원회를 설치하는 내용 등을 담았다. 

용 의원은 “실질적으로 기본소득 도입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내 것 찬반, 네 것 찬반’ 이런 방식이 아니라 합의할 수 있는 공통분모를 찾아가는 공론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용 의원은 이런 취지에서 지난해 12월 22일 ‘기본소득공론화위원회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는데, 이 법률안은 지난 16일 정무위원회에 상정됐다. 국무총리 소속 기본소득공론화위원회를 설치해서 1년 동안 권역별로 시민이 참여해 기본소득 도입에 관한 숙의 과정을 거치자는 내용이다.

▲ 지난해 10월 6일 용혜인 의원실과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등이 공동주최한 ‘기본소득 도입방안 토론회 4당4색’에서 참가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신지혜 기본소득당 상임대표 티스토리

‘유사품’에 딱지 붙여 파는 정치인 안타까워

“기본소득이라는 아이디어가 떠오르면서 많은 정치인들이 기본소득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사실은 기본소득이 아닌 ‘유사품’, 저희는 ‘자매품’과 ‘유사품’이라고 구분을 하는데, ‘자매품’이 아닌 ‘유사품’에 기본소득이라는 딱지만 붙여서 상품처럼 판매하고 있는 정치인들의 모습이 참 안타까운데요.”

용 의원은 ‘기본소득’ 용어를 남발하는 정치권이 진지한 기본소득 논의를 가로막는다고 말했다. 선별적 복지 정책에도 기본소득이라는 표현을 써서 기본소득 논의의 논점을 흐린다는 뜻이다. 지난해 6월 김종인 당시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기본소득 의제를 꺼냈는데, 9월 국민의힘 경제혁신위원회는 중위소득 50% 이하 가구를 대상으로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정책을 내놓았다. 용 의원은 “정책 발표를 보고 실망했다”며 국민의힘의 기본소득을 ‘유사품’으로 평가했다. 

용 의원은 2022년 3월 9일로 예정된 제20대 대통령 선거가 기본소득 논의의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대선 출마 가능성이 있는 인물들에게 기본소득은 현재 뜨거운 쟁점 중 하나다. 대권주자 선호도에서 선두를 달리는 이재명 지사는 1인당 연간 50만 원의 소액부터 단계적으로 기본소득을 도입하자는 제안으로 논의를 선도하고 있다. 그는 지난 7일 페이스북에 “지역화폐로 지급하는 기본소득이 소득지원과 매출증가 효과에 이어 생산·유통·고용의 선순환이라는 경제효과를 동시에 누릴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더불어민주당의 대선후보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이낙연 당대표는 ‘국민생활기준2030’이라는 신복지제도로 이 지사의 기본소득에 맞섰다. 그는 지난 2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소득, 주거, 교육, 의료, 돌봄, 환경 등 삶의 모든 영역에서 국민생활의 최저기준을 보장하고, 적정기준을 지향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는데, 아동·청년·노인에게 상당액의 수당을 지급하는 방안이 들어 있어 ‘부분 기본소득제’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야권에서는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필요한 이에게 선별적으로 지급하는 ‘한국형 기본소득 도입’을 언급했다.

세계 곳곳에서도 기본소득 논의가 뜨거워지고 있다. 지난 2017년 핀란드는 실업수당을 받은 사람 2000명을 무작위 선정해 24개월 간 매달 560유로(약 75만 원)를 지급하는 기본소득 실험을 했다. 지난해 5월 핀란드 사회보험청이 발표한 최종보고서에 따르면 실험집단과 통제집단 사이 고용률 변동 차이는 거의 없었으나, 기본소득 수급자의 삶의 질 관련 지표가 향상된 것으로 나타났다. 캐나다 온타리오주는 2017년 저소득층 4000명을 대상으로 월 약 115만 원을 지급하는 실험을 시작했으나 주지사가 바뀌며 1년 만에 중단됐다. 스위스는 지난 2016년 전 국민에게 매달 약 300만 원을 지급하는 기본소득 도입을 국민투표에 부쳤지만 77%가 반대해 무산됐다.

‘희망버스’ 거쳐 ‘기본소득·페니미즘’ 기수로

“저는 좀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던 것 같고. 그 이유는 저희 집이 어려운 때, 집 있고 차 있다는 이유만으로 국가로부터 복지 제도의 혜택들을 전혀 보지 못했거든요. 그리고 학교에서 장학금 같은 것도 받지 못하고.”

용 의원은 자신이 겪었던 경제적 어려움이 기본소득이라는 아이디어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인 배경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용 의원이 경희대 정치학과에 입학했던 2009년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였고, 아버지 회사가 폐업하는 등 집안 사정이 어려웠다. 학자금 대출은 이자율이 7%나 됐다. 용 의원은 2011년 한진중공업 파업노동자를 응원하기 위한 희망버스를 탔고, 2014년 세월호 참사 직후엔 ‘가만히 있으라’고 쓴 손팻말을 들고 침묵 행진을 주도했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를 읽으며 ‘합리적 보수’를 자처하던 고등학생 용혜인을 생각하면 놀라운 일이라고 스스로 평했다.

▲ 2014년 10월 ‘가만히 있으라’ 침묵 행진을 이끌던 용혜인 의원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일반교통방해 혐의로 기소됐다. 지난해 11월 13일 파기환송심에서 벌금 100만 원을 선고받으며 6년간의 재판을 마쳤다. 사진은 세월호 참사 직후 거리에서 발언하는 용혜인 의원. ⓒ 용혜인 의원 페이스북

기본소득과 페미니즘. 용 의원은 두 의제가 “한국 사회에서 가장 사회를 시끄럽게 만들 수 있는 의제이자 대한민국이 바뀌어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두 의제는 새로운 정치적 세대를 만드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이른바 ‘386세대’가 민주화운동이라는 역사적 경험을 공유하며 형성된 것처럼 기본소득과 페미니즘을 중심으로 새로운 정치 세대가 구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격변과 혼란의 시기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정치인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용 의원은 “사람들을 모으고 세상을 바꾸는 충격을 던지는 일이 의미 있고 재밌는 일이기 때문에 정치인으로 살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 16일 용 의원은 페이스북에 ‘오만과 편견’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렸다. 그는 ‘기본소득을 모두에게 균등하게 지급하자는 것은 정의롭지도 현실적이지도 않다’고 비판한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주장에 관해 "선별적, 보충적 기존 복지제도가 공정하고 기본소득은 공정하지 않다는 생각은 편견“이라고 반박했다. 또 ”증세와 복지지출 확대를 이야기하지 않으면서 기본소득을 현실적이지 않다고 비판하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용 의원은 지난해 12월 기자회견을 통해 “2021년에 기본소득 공론화를 실시하고 2022년 대통령 선거 당선자가 공론화 결과를 토대로 온 국민 기본소득제 도입을 추진하자”고 제안했다. 연초 신년사에서 “올해를 기본소득 공론화의 원년으로 만들겠다”고 다짐한 그가 정치인으로서 의미 있는 결실을 거둘 수 있을지, 국회 정무위에 올라간 ‘기본소득공론화위원회 법안’의 거취가 주목된다.


편집 : 이예진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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