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인터뷰] KBS 뉴스9 김동호 수어통역사

“농인(소리를 못 듣는 사람)은 알 수 있는 정보가 제한적입니다. 비장애인과 사용하는 언어가 달라 생기는 한계죠. 정보의 폭을 넓혀야 농인들이 할 수 있는 선택의 폭도 넓어집니다. 저는 그 폭을 넓혀주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8~9월부터 지상파 3사(KBS‧MBC‧SBS) 메인뉴스에 수어통역이 도입된 것을 계기로 한국방송(KBS) 뉴스나인(9시뉴스)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동호(41) 수어통역사의 말이다. 지상파 방송사들이 국가인권위원회 권고에 따라 메인뉴스에서 수어통역을 제공하고, 코로나19 생방송 브리핑 등에도 수어통역을 하면서 사회적으로 수어에 관한 관심이 커졌다. 의대생들이 정부를 비판하는 취지의 ‘덕분이라며 챌린지’를 하면서 수어를 왜곡했다는 논란이 빚어지기도 했다. 수어의 세계를 알아보기 위해 지난해 10월 29일 서울 여의도 KBS 신관 1층 커피전문점에서 김동호 통역사를 만나고 지난달 27일 전화로 추가 인터뷰했다. 

손이 바쁜 것 같지만 사실은 머리가 더 바쁜 일

▲ 서울 여의도에 있는 KBS 뉴스9 스튜디오에서 수어통역을 하고 있는 김동호 통역사. © 김신영

“통역하는데 에너지가 많이 소모됩니다. 뉴스가 끝난 뒤엔 뿌듯하기보다 ‘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죠.”

다른 통역사 1명과 격일로 KBS 뉴스9 수어통역을 맡고 있는 그는 뉴스 시작 10분 전부터 손을 가볍게 털고 심호흡을 반복하며 준비를 한다고 말했다. 뉴스가 시작되면 시청자가 보는 화면 오른쪽 아래 가장자리에서 그는 바쁘게 손을 움직이고 다채로운 표정을 짓는다. 1시간여 수어로 뉴스를 전달하는 동안 등줄기에 땀이 흐를 정도로 최선을 다하지만, 늘 흡족하진 않다.

아쉬움이 남는 이유는 같은 우리말 문장도 수어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코로나19가 확산하고 있다’를 전달할 때 양손 손등이 위를 향하게 하고 헤엄치는 듯한 동작으로 표현할 수 있지만, 한 손을 비스듬히 기울여 아래에서 위로 향하게 하는 동작도 할 수 있다. 김 통역사는 “방송사마다 수어통역사가 다르고 그들이 약간씩 다른 표현을 쓰기 때문에, 농인들에게도 뉴스를 골라 보는 재미가 생겼다”며 웃었다.

김 통역사는 정부가 코로나19 관련 브리핑을 수어로 통역해주고, 지상파 메인뉴스가 수어통역을 도입한 것을 계기로 “같은 국민이라는 것을 느끼지 못했던 농인들이 국민 대접을 받는다고 느끼게 됐다”고 전했다. 그는 나아가 청와대 출입기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춘추관 브리핑에도 수어 통역사가 배치되면 좋겠다고 밝혔다. 대통령이 농인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상징적 의미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초등학생 때 다니던 교회에서 농인 목사가 수어를 쓰는 모습을 보고 신기하게 느껴 수어를 배우기로 결심했다는 김 통역사는 충남 천안의 나사렛대학교에서 인간재활학을 전공했고, 17년 전 수어통역사 자격증을 땄다. 통역사의 길이 쉽지는 않았다. 10여 년 전에는 학교에서 신학 강의를 수어통역하는 일이 너무 어려워 피한 일도 있다. 잘하고 싶은 마음이 큰데 수어표현이 너무 힘들었던 탓이다. 당시 그가 자문을 구했던 선배 통역사는 “수어통역은 손이 바쁜 일이 아니라 머리가 바쁜 일”이라고 조언했다. 수어로 표현할 동작을 미리 머릿속에 구상해야 잘 전달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이후 그는 매일 동작을 구상하는 연습을 한다. 

공간 입체적으로 활용하고 ‘직관적으로’ 전달 

김 통역사는 자신의 장점을 ‘직관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라고 꼽았다.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전달하려 노력한다는 것이다. 문장을 어떻게 새롭게 구성할지, 어떻게 전달력을 높일지 항상 고민한다. 그는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일도 통역사의 몫이라고 말했다. 예를 들면 공간을 4등분 해서, 오른쪽 위를 가장 힘 있는 공간, 왼쪽 아래를 힘이 없는 공간으로 표현한다. 폭행으로 피해가 발생한 사건을 전달할 때, 가해자는 오른편 위쪽에, 피해자는 왼편 아래쪽에 두어 표현한다. 시청자 눈에는 수어통역사가 2차원의 동작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3차원 공간을 활용해 뜻을 전달한다고 그는 덧붙였다. 

▲ 김동호 수어통역사가 뉴스를 전달할 때 공간을 활용하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 김신영

뉴스를 수어로 통역하는 현장에도 어려움이 있다. 여러 문장을 물 흐르듯 통역하려면 소리에 집중해야 하는데, 스튜디오 안에는 프로듀서(PD)가 앵커에게 안내 사항을 전달하거나 조연출(AD)이 원고 변경사항을 알리는 등 소음이 발생한다. 다른 소리에 방해받지 않고 정확한 뉴스를 전달하려면 신경을 곤두세우고 긴장해야 한다.

그는 방송계에서 수어통역을 ‘불순물’처럼 보는 시선도 맘에 걸린다고 말했다. 인권위가 수어 통역을 권고했을 때, 문화방송(MBC)과 KBS는 각각 ‘TV화면 제약’ ‘비장애인 시청권 제약’을 근거로 반발했다. KBS 보도기획부·미디어기술연구소는 검토의견서에서 "뉴스9은 청각장애인들의 방송 접근권과 비장애인들의 시청권을 조화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TV화면의 제약성으로 인해 수어방송을 실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MBC는 인권위 결정문에 관해 “수어 통역이 비장애인 시청자의 시청권 제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돈 안 되는’ 수어통역, 자격증 따도 다른 일자리 찾아

그는 수어통역을 하는 화면 크기가 줄어 안타깝다는 말도 덧붙였다. 청인(들을 수 있는 사람)이 보기에는 별 차이가 없어 보여도 농인은 민감하게 받아들인다며, 화면 크기를 키워달라는 농인들의 요구가 많다고 전했다. 실제로 17인치 노트북컴퓨터를 기준으로 지난해 5월 KBS 뉴스특보에 담긴 수어통역 영상은 가로 5.1센티미터(cm) 세로 5.8cm였고, 지난해 11월 20일 KBS 9시 뉴스 수어통역 영상은 가로 4.9cm, 세로 5.0cm였다. 미세하지만 크기가 줄었다.

▲ 지난해 11월 15일 KBS 뉴스9에서 수어통역을 하고있는 김동호 통역사. 오른쪽 하단의 수어통역 화면은 지난해 상반기에 비해 크기가 줄었다. © KBS

농인에게는 일상 곳곳에 수어통역사가 배치되는 것이 중요한데, 관련 예산이 적고 전반적인 복지제도가 부족한 것도 그가 느끼는 안타까움의 하나다. 특수학교에서 농인을 지도하는 교사를 꾸준히 교육하는 것이 필요하고, 대학에서 수어통역사가 농인을 지원해주는 일도 필요하다. 그는 “대학교 내에 수어통역사가 있더라도, 처우가 낮은 실정”이라고 덧붙였다.

수어통역사 일로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것도 문제다. 그는 “정기적으로 하는 일이 없는 수어통역사는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다”고 말했다. 생활이 어려워 수어통역사 일을 그만두고, 다른 일자리를 찾아 나서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한다. 국내에서 수어통역사 자격증을 취득한 사람은 지난해 말 기준 1800명 정도지만,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수어통역을 하는 사람이 줄다보니 정작 필요한 곳에서는 인력난을 겪는다고 그는 덧붙였다.

의대협 ‘덕분이라며 챌린지’에 농인들 분노  

“그동안 수어가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다가 코로나19로 수어의 필요성이 부각되는 와중에, 다른 의미로 왜곡되는 일이 발생한 겁니다. 처음부터 인정받았던 언어가 아니기 때문에 농인들이 더 화를 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해 8월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의대협)는 의료인에게 감사를 표하는 ‘덕분에 챌린지’를 비튼 ‘덕분이라며 챌린지’를 해 논란을 불렀다. ‘존경한다’는 의미의 수어를 쓴 ‘덕분에 챌린지’를 뒤집어 왼손으로 엄지손가락을 거꾸로 들고 그 위에 오른손을 올려 정부에 항의하는 뜻을 표현한 이 행동에 관해 한국농아인협회는 ‘수어를 변형해 자의적으로 쓴 것은 수어에 대한 모독’이라며 의대협의 사과를 요구했다.

▲ 지난해 8월 25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덕분이라며 챌린지’에 항의하는 시민단체 장애의벽을허무는사람들. 이들은 수어 비하와 왜곡 금지를 촉구하는 차별진정서를 인권위에 제출했다. © 연합뉴스

김 통역사는 왼쪽 손바닥이 위를 향하게 한 후 오른손 엄지를 치켜세워 왼쪽 손바닥 중앙에 올린 ‘덕분에 챌린지’ 동작도 정확하게 ‘존경’을 뜻하는 동작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엄지를 치켜세운 오른손을 왼손 손가락 끝에 붙이는 것이 본래 존경을 뜻하는 수어 동작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덕분에’를 뜻하는 수어보다 ‘존경’을 뜻하는 수어 동작이 ‘더 괜찮아 보여서’ 동작을 정한 것 같다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농인 중에도 ‘덕분에’라는 뜻이 아닌데 왜 ‘덕분에 챌린지’에 저 동작을 쓰냐며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분노를 표출한 사람이 있었다고 전했다. 

▲ 정확하게 ‘존경’을 뜻하는 수어 동작을 보여주는 김동호 통역사. © 김신영

농인·수어에 관한 편견 해소 위해 교육 필요

김 통역사는 ‘수어는 세계 만국 공통어 아닌가’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지 않나’ 등의 질문을 자주 받는다며 “수어는 세계 공통어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나라마다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사용하는 수어도 다르다. 가령 ‘허그(포옹)’를 표현할 때도 미국, 영국, 한국 모두 다른 동작을 쓴다. 그는 수어에 관한 이해를 넓히기 위해 초‧중‧고에서 공식적으로 농인에게 수어가 필요한 이유와 문화를 알려주는 교육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나아가 기초적인 수어도 가르쳐 농인과 비장애인이 간단한 대화 정도는 할 수 있기를 희망했다. 보건복지부의 2019년 장애인 등록 현황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청각장애인 수는 37만7000여 명으로 전체 장애 유형에서 14.4%를 차지한다.

김 통역사는 지난 2017년 인명구조요원 자격증을 땄다. 평소 수영을 좋아하는데, 나중에 농인들에게 관련 활동을 교육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자격증을 취득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주말에는 수어통역사를 대상으로 재난방송과 관련한 교육 등을 하기도 한다. 그의 생활 대부분은 농인과 관련한 활동으로 채워진다고 한다. 

▲ 김동호 통역사가 지난해 10월 20일 강원도 시청자미디어센터에서 수어통역사를 대상으로 재난방송 교육을 하고 있다. © 김신영

김 통역사는 인터뷰를 마치며 “(비장애인은) 농인이 나와 다르다는 것부터 인정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비장애인 중에 ‘농인은 자막을 보면 되지 않느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농인의 모국어가 수어라는 사실을 무시하고 농인을 존중하지 않는 태도라는 것이다. 그는 “농인이 생활 속에서 겪는 어려움과 농인의 언어·문화를 이해하려는 자세를 (비장애인들이) 가져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편집 : 김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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