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인터뷰] <수능 대신 세계일주> 저자 박웅

고등학교 3학년생이 수능을 2주 앞두고 학교를 그만두었다. ‘세상에 대한 환멸과 미래에 대한 궁금증으로 가득 차 있던’ 그는 호주로 날아가 아홉 달간 청소를 하며 돈을 모았다. 그 돈으로 호주 체류일 포함 702일 동안 24개 나라를 돌아다녔다. 페이스북에 <수능 대신 세계일주> 페이지를 개설하고 낯선 곳에서 겪은 일들을 꾸준히 기록했다. 만 열여덟에 한국을 떠난 청년은 스물이 되어 돌아왔고, 이듬해인 2016년 페북 페이지와 같은 이름의 책을 냈다. 책은 입소문을 타며 2019년 3쇄를 찍었다. 

고등학생의 대학진학률이 70%를 넘는 한국에서 대입을 포기하고 세계여행을 떠난 청년의 삶은 그 후 어떻게 펼쳐졌을까. 이런 궁금증을 가진 이들이 많은 듯, 검색엔진 구글에 ‘수능 대신 세계일주’를 입력하면 ‘근황’이 연관검색어로 뜬다. 그래서 지난해 11월 30일 경기도 안양시의 한 스터디룸에서 주인공 박웅(26) 씨를 만나 근황을 묻고, 지난달 24일 전화로 추가 인터뷰했다. 

군 복무 후 영화감독 꿈꾸며 한예종 입학 

▲ 대입 수능시험 직전 학교를 그만두고 700여 일의 세계여행에 도전했던 박웅 씨. <수능 대신 세계일주>라는 책을 썼다. ⓒ 박웅 제공

“군대에서 한예종(한국예술종합학교) 입시 준비를 했어요. 운 좋게 병장 때 최종 합격해 전역하자마자 입학했죠.”

그는 책을 내고 1년쯤 지난 2017년 4월 군에 입대했다. 입대할 때부터 한예종에 들어가겠다는 목표를 세웠다고 한다. 고등학교를 끝까지 다니진 않았지만 법정 수업일수는 채운 상태여서 졸업장을 받았고, 군에서 대입 준비를 할 수 있었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 매주 영화주간지 <씨네21>을 모았고, <무비위크>가 폐간되던 날 도서관에서 공부 대신 영화 평론의 미래를 걱정했던 영화광이었다. 한동안 영화평론가를 꿈꾸다가 나홍진 감독의 <곡성>과 다미엔 차첼레 감독의 <라라랜드>를 보고 ‘감독이 되어 영화를 직접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하지만 대학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자신이 영화와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입학 후 1년 동안 10개 넘는 단편영화를 만들었는데, 직접 만드는 것은 감상하는 것과 달랐다. 그는 “학교에 입학한 후 ‘관객으로서 접하는 영화’와 ‘감독으로서 접하는 영화’ 사이의 괴리감 때문에 힘들었다”며 “이런 경험이 어떤 일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기 전 그것을 미리 체험해보는 것이 좋다는 교훈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언론사 인턴 체험하며 ‘기자의 길’ 확신 가져

그는 다른 가능성을 찾아 나섰다. ‘영화를 하지 않으면 무엇을 할 건가’라는 질문에 기자가 떠올랐다. 어릴 때부터 종이신문을 꾸준히 읽었고 사회 현안에 관심이 많았던 그에게 기자는 자연스러운 답이기도 했다. 기자가 자신에게 맞는 길인가를 알아보기 위해 언론사 인턴에 도전했다. 지난해 1월부터 약 두 달간 <조선일보> 인턴을 하며 기사를 썼다. 언론인의 일이 보람있게 느껴졌다. 그는 “아무리 일이 힘들고 선배한테 혼나도, 내가 이 일을 해내고 기사가 나가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생각을 하니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 지난해 2월 8일 <조선일보> 인턴 수료식 후 회사 부근 구세군역사박물관 앞에서 인턴 동기가 박웅 씨를 찍었다. Ⓒ 박웅 제공

그는 언론이 ‘국민의 보좌관’ 역할을 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우리 사회의 각 조직에서 참모들이 세련되게 가공한 정보를 제공해 수장의 판단을 돕는 것처럼, 나라의 주인인 국민에게는 언론이 보좌관이 되어 올바른 정보를 전달하고 더 나은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예비언론인으로서 특히 노동문제에 관심이 있다며, 2019년 11월 21일자 <경향신문> 1면을 언급했다.

“(오늘도 3명이 퇴근하지 못했다) 지면을 보고 너무 충격을 받았어요. 매일 그렇게 (노동자들이) 죽어가는데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상황. 2016년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고치다가 죽은 김 군처럼 제 또래 사람들이 그렇게 되는 걸 보고...”

당시 <경향신문> 1면은 2018년 1월부터 2019년 9월까지 산업재해로 숨진 사람들의 이름으로 빼곡히 채워졌다. 그중에는 ‘김용균법’으로 불린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의 계기가 된 태안화력발전소 하청노동자 김용균 씨의 이름도 포함돼 있었다. 박 씨는 “산업현장에서 사람들이 계속 죽는데 바뀌기가 쉽지 않은 이유를 에이(A)부터 제트(Z)까지 심층적으로 파헤쳐보고 싶다”고 말했다.

▲ 박웅 씨가 <조선일보> 인턴 활동 당시 쓴 기사. Ⓒ 조선일보 홈페이지

8년 전과 생각 바뀌었지만 ‘할 수 있는 일에 최선’ 

박웅 씨는 <수능 대신 세계일주>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담백하게 썼다. 고등학교 3년에 관해서는 ‘대단하지는 않았지만 흔들리지 않으려 노력한 3년’이라고, 여행에 관해서는 ‘독기에 가득 차 돈에 목숨을 걸고 살던 호주에서의 내 스무 살에 대한 보상’이라는 식으로. 그는  “학력 사회에 경종을 울리고 입시에 신음하는 청소년들에게 하나의 방향을 제시하고자 하는 의도는 조금도 없었다”고 고백했다. 이어 “나는 내가 의도치 않은 일을 했다는 사실을 알았다”며 “내가 잘해야겠구나, 내가 현실에서 내디딜 땅을 얻지 못하고 쓰러진다면 그건 나로 대변되는 어떤 가치가 실패했음을 의미하니 그러지 말아야겠구나”라고 다짐했다. 

▲ 2년여의 세계일주를 마치고 돌아온 박웅 씨가 2015년 12월 15일 인천공항에서 찍은 사진. 모르는 이에게 부탁해서 찍었다. Ⓒ 박웅 제공

입시와 취업, 결혼으로 이어지는 천편일률적 삶을 거부하며 여행을 떠났던 그가 결국 대학에 들어가고 취직을 고민하고 있는 현실을 자신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그는 “책을 냈던 2016년과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책을 썼을 때만 해도 남다르게 살고 평범한 길을 가지 않는 게 무조건 멋있는 건 줄 알았지만, 남들만큼 사는 것도 정말 노력해야 하고, 평범하게 사는 게 어렵다는 걸 깨달았다는 것이다. 그는 “생각이 변화한 뚜렷한 계기는 없었고 천천히 시간이 지나며 바뀌었다”고 덧붙였다. 

“저는 지금도 어려요. 세상을 다 산 게 아니죠. 하지만 책을 썼을 때보다는 조금 나이를 먹었잖아요. 저는 말을 바꾸는 게 성숙의 증거일 수 있다고 보거든요. 예를 들어서 어떤 사람이 19살 때 갖고 있던 생각을 29살 때 똑같이 하고 있다면, 좋게 보면 일관된 거일 수 있지만 10년이란 세월 동안 그 사람이 겪은 일이나 지식 같은 것도 있을 텐데 (변하지 않았다면) 그것도 문제라고 보거든요. 사람은 나이를 먹으면 몰랐던 걸 알게 되고 의견도 바꾸면서 자기 입장을 계속 고쳐나가게 되잖아요.” 

삶에 관한 생각은 바뀌었을지라도, 남의 시선을 의식하기보다 자신의 속도에 맞추어 살아간다는 태도는 변함없는 듯했다. 그는 “‘난 남들과 다르게 살아야지. 똑같이 살 순 없어’라는 도그마에 갇혀 어떻게든 다르게 살아보려고 몸부림치는 게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매일 최선을 다하며 살다 보니 남들과 비슷해지고 있다면 그대로 괜찮은 거고 기존의 경로와 다르면 그것대로 또 괜찮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곧 한예종 3학년이 되는 박 씨는 최근 운동과 공부에 매진하며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원래 책 읽고 신문읽는 것을 좋아한다”며 “따로 준비할 것 없이 제가 원래 하고 있던 것에 조금만 덧붙이면 돼서 기자 준비 과정이 좋다”고 했다. 좁아진 채용시장에 불안이 없진 않지만 “코로나19와 같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은 받아들이고 제 능력 안에 있는 것들에서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한다”고 덧붙였다. 

“인생의 기본값을 행복으로 두면 힘들어지거든요. 인생에서 꼭 나한테 좋은 일만 생기고 행복하기만 하라는 법이 없잖아요. 그래서 실패나 좌절이 있어도 저는 그게 인생의 기본값이라고 생각하고 실패나 좌절이 저에게 닥쳐도 부당하다고 생각하기보다 받아들이고 더 열심히 해서 극복하려고 해요.”


편집 : 유희태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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