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인터뷰] 향기내는사람들 이민복 공동대표

히즈빈스는 장애인 직업인을 양성하는 사회적기업 ㈜향기내는사람들의 커피 브랜드다. 히즈빈스의 전체 직원 100명 중 60여 명은 장애인이다. 이들은 모두 전문교육을 받은 바리스타로, 서울·포항 등 전국 16개 매장에서 일한다. 히즈빈스의 장애인 사원은 대부분 정신장애, 발달장애 등 정신적 장애를 지닌 이들이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 <2020년 장애인경제활동실태조사>에 따르면 정신장애인 고용률은 15개 장애유형 중 9.9%로 최하위이고, 취업하더라도 대부분이 비정규직이다. 반면 히즈빈스 장애인 사원은 대다수가 정규직이다. 3개월 이상 직업유지율이 90%이고 올해 입사 10년 차인 사원도 있다. 장애인 장기고용을 지향하는 ㈜향기내는사람들의 이민복(45) 공동대표를 지난해 12월 7일 서울 성동구 히즈빈스 성수점에서 만나고, 지난달 26일 이메일로 추가 인터뷰했다.

직원 100명 중 60여 명이 장애인 

▲ 서울 성동구 히즈빈스 성수점에서 <단비뉴스>와 인터뷰하는 이민복 대표. ⓒ 이예진

이 대표는 지난해 1월 향기내는사람들에 이사로 합류한 뒤 7월에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그는 이 회사에 오기 전 ㈜쉬플리코리아라는 컨설팅회사에서 10년간 일했고, 2016년부터 2018년까지는 대표를 맡았다. 그가 사회적기업을 다음 행선지로 정한 것은 갑작스러운 선택이 아니었다. 스무 살 무렵부터 꿈꾸던 일을 드디어 실현하는 출발점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서울로 대학시험을 보러 갔다가 구걸하는 사람을 난생처음 보게 됐어요. 다른 사람들은 그냥 지나치는데 영하 10도의 날씨에 밖에서 구걸하는 사람을 보는 게 마음이 너무 안 좋은 거예요. 그 광경을 보고 나서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현실적으로 돕는 사람이 되겠다고 결심했죠.”

이 대표가 경영학을 전공하던 청년 시절에는 사회적기업이라는 개념이 생소했다. 그는 막연히 ‘후원에 의존하지 않고 자생할 수 있는 비정부기구(NGO)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쉬플리코리아에 창립 멤버로 입사할 때는 딱 10년만 일하고 꿈에 도전하기로 다짐했다고 한다. 쉬플리 구성원들과 자신의 꿈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관련 서적과 강의를 통해 사회적기업을 알게 됐고, 쉬플리코리아 내에 사회적기업을 대상으로 컨설팅하는 팀을 조직해 운영했다. 

2018년 10월, 사회적기업 대표 20명을 대상으로 비즈니스 관련 특강을 하던 날, 그는 임정택 대표와 처음 만났다. 임 대표는 2008년 장애인 고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향기내는사람들을 창업하고 히즈빈스 운영을 시작했다. 특강 후 이 대표가 히즈빈스의 컨설팅을 맡으면서 사업상 인연을 맺었고, 이어 이사로 입사했다. 그가 공동대표를 맡게 된 것은 임정택 대표가 건강상의 이유로 휴식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NGO의 심장과 기업의 치열함으로 

이 대표는 사회적기업일수록 전문성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회적기업은 사실 두 마리 토끼를 쫓아야 하는 상황이에요. NGO의 심장을 갖고 뛰지만 기업의 치열함도 가져야 합니다. 취약계층에게 서비스나 일자리를 제공하는 사회적 목적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기업으로서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회적 기업은 기업이랑 경쟁하는 곳이지 NGO랑 경쟁하는 곳이 아니거든요. 히즈빈스는 스타벅스랑 경쟁하는 거예요.”

▲ 히즈빈스 성수점에서 한 바리스타가 익숙한 손놀림으로 커피를 내리고 있다. ⓒ 이예진

이 대표가 강조하는 전문성은 커피의 맛과 품질을 높이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장애인 바리스타가 오래 일하면서 전문가로 성장하도록 하는 게 궁극적인 목표”라고 말했다. 히즈빈스에서 일하는 장애인 사원 중에는 매장에서 음료를 만드는 바리스타뿐 아니라 커피 원두를 볶는 로스터로 일하는 직원도 있다. 히즈빈스는 이들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체계적인 사원 관리 시스템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고 이 대표는 밝혔다. 

특히 ‘다각적 지지 시스템’은 히즈빈스가 2018년 특허 출원한 장애인 고용 위탁 관리 시스템이다. 장애인 사원 1명을 7명의 담당자가 관리하는 제도다. 이 대표는 “일반 회사에 채용된 장애인의 직업 유지 기간이 짧은 이유는 인사담당자의 업무가 장애인 채용에서 그치고 관리까지 나아가지 못하기 때문”이라며 “직업 유지 기간이 짧으면 장애인이 전문성을 쌓을 시간이 없다”고 말했다. 

히즈빈스는 매장 매니저, 본사 담당자, 사회복지사, 대학생 자원봉사자, 사회복지학 교수나 정신과 의사, 장애인 사회복지기관 동료, 장애인 선배가 한 명의 장애인 직원에게 배정돼 개인적 어려움이나 직무 문제를 함께 풀어갈 수 있는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예를 들어 매장 매니저는 장애인 사원이 업무 시간에 환청을 듣거나, 감정 기복이 심해서 의욕이 없거나, 약 복용을 하지 않는 등의 사건을 업무 일지에 기록하며 장애인 사원의 상태를 살핀다. 청각장애인 바리스타의 경우 손님, 동료와 소통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주문을 잘못 받거나 실수한 경험이 쌓이면서 자신감을 잃은 신입 청각장애인 바리스타에게 다른 매장에서 9년째 일하고 있는 청각장애인 바리스타 선배가 조언과 위로를 해주는 자리를 마련하기도 한다. 업무 교육 과정에는 가상현실(VR) 기술을 도입해 반복 학습한다. 실제 카페와 같은 가상현실을 구축해서 주문받기, 음료 제조 등을 연습할 수 있어 업무 적응 기간이 단축된다. 

이 대표는 컨설팅회사에서 일한 경험이 사회적기업을 운영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그는 대표이사를 맡으면서 가장 먼저 소통문화를 정비했다. 대표적으로 본사 직원부터 매장 직원까지 서로를 영어 이름으로 부르도록 했다. 그는 “대표님이라고 부르는 순간 벽이 생기고 조심스러워진다”며 “신입사원도 대표랑 허물없이 업무에 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히즈빈스 직원들은 이 대표를 ‘앤디’라고 부른다. 그는 “업무의 중요도가 직급에 비례하는 것이라는 인식을 바꾸기 위한 시도”라며 “영어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한 후로 업무 효율이 높아지고 분위기도 좋아졌다”고 말했다. 

사람을 일으킨 한 마디, “당신이 만든 커피가 맛있다” 

이 대표는 히즈빈스가 커피를 파는 장소를 넘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 소통하는 창구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히즈빈스 포항 한동대점에서 일했던 신만철 바리스타의 일화를 소개했다. 어느 날 비장애인 손님이 커피를 주문하면서 신 바리스타가 내려주기를 부탁했다. 신 바리스타가 내린 커피가 맛있다는 이유였다. 주문을 받은 신 바리스타는 그날을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날’로 기억한다고 주변에 말했다. 그 후 그는 자존감이 회복되고 약 복용량도 줄기 시작했다. 그는 8년 정도 히즈빈스에서 일하다가 지금은 사회복지사로 일하며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돕고 있다.

“비장애인이 일상에서 정신장애인, 발달장애인을 만날 기회가 거의 없거든요. 서로 마주할 기회가 없으니 장애인에 관한 인식도 막연해지죠. 히즈빈스는 커피를 매개로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소통하는 공간이에요.”

▲ 단비뉴스 이예진 PD에게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소통하는 공간’의 중요성을 설명하는 이민복 대표. ⓒ 문주영

이 대표는 “히즈빈스에서의 경험이 장애인에 관한 인식이 긍정적으로 바뀌고 장애인의 일할 권리를 함께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그는 “장애인에게 직업은 삶의 선택지가 넓어지는 큰 의미”라며 “히즈빈스에서 일하면서 경제적 자립, 결혼, 이직 등 일하기 전에는 생각하지 않았던 미래를 계획하는 장애인 사원을 보면서 장애인의 일할 권리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깨달았다”고 말했다. 

히즈빈스는 장애인의무고용 대상 기업에 해법을 제공한다. 히즈빈스를 사내 카페로 설립하도록 돕고 위탁 운영을 맡아 장애인 고용, 직업 교육 등을 책임진다. 장애인 고용의무제도는 국가·지방자치단체와 50명 이상 공공기관, 민간기업 사업주에게 장애인을 일정 비율 이상 고용하도록 의무를 부과하는 것인데, 이를 못 채우는 기업은 고용부담금을 내야 한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의 기업체장애인고용실태조사에 따르면 2018년 고용의무기업체 중 89.5%가 최근 3년간 장애인 근로자를 고용한 경험이 없다. 

반면 히즈빈스를 사내 카페로 운영하면 고용부담금을 감면받고 카페 매출도 이익으로 가져갈 수 있다. 장애인 사원은 해당 기업에 직접 고용된다. 현재 히즈빈스의 16개 매장 중 절반이 고용의무제를 해결하는 가맹점이다. 애터미, 와디즈, 롯데건설, 포항세명기독병원, 안양샘병원, 부천예손병원 등이 히즈빈스 가맹점을 운영하고 있다. 

히즈빈스는 올해 6월 말 필리핀 마닐라에서 퀘존시티 띠목점을 개점할 계획이다. 코이카(KOICA·한국국제협력단), 밀알복지재단과 함께 하는 사업으로, 작년 4월부터 영업할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 대유행으로 개점을 연기했다. 현재 화상회의를 통해 필리핀 장애인에게 직업 교육을 하고 있다. 이민복 대표는 “(국내외에서) 전문성을 기반으로 장애인 일자리의 성공 모델을 계속 만들어가면서 장애인과 함께 일하는 세상을 넓혀가겠다”고 다짐했다. 


편집 : 김계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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