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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을 벗고, 보고 싶다
[청년기자의 시선2] ‘한국사회의 상징’ ➃ 청년의 안경
2021년 03월 06일 (토) 14:09:17 이성현 PD forever22mu@naver.com

누나의 삶을 대변하는 안경

거실은 아침을 준비하는 엄마와 출근하는 아빠로 분주하다.

“딸은? 아직도 안 일어났어?” 

아빠의 목소리가 딸의 방문을 뚫고 들어간다. 그녀는 조용히 이어폰을 귀에 꽂고, 음악의 볼륨을 높인다. 모두 출근해 거실이 고요해지자, 그녀는 잠갔던 방문을 슬며시 연다. 엄마가 정성스레 아침을 차려 놓았다. 몇 해 동안 취업 공부를 해온 그녀는 당연하게 생각되던 엄마의 마음이 이젠 괜히 부담스럽다. 다시 문제풀이에 집중한다. 1시간, 2시간, 3시간… 그녀는 하루 평균 12시간 의자에 앉아있다. 

질끈 묶은 머리에, 두꺼운 빨간 뿔테 안경을 쓴 그녀가 거울에 비친다. 내 하나뿐인 누나다. 누나의 두꺼운 안경알은 테 밖으로 삐져 나와있다. 시력이 0.05라 유행하는 알이 큰 안경이나, 반짝이고 얇은 금테안경은 쓰지 못한다. 두꺼운 안경알을 버틸 수 없기 때문이다. 어릴적 ‘왕눈이’라 불린, 크고 반짝이던 예쁜 눈은 알이 두꺼운 안경을 쓰면서 조그맣게 보인다. 안경은 누나의 눈과 얼굴만 변화시킨 게 아니었다. 시력이 나빠진 누나는 안경 없이는 가까운 물체도, 사람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다. 

   
▲ 누나는 초등학교 2학년부터 안경을 꼈다. 알이 두꺼운 안경은 오직 답에만 초점을 맞춘 이 땅의 교육현실을 상징한다. 청년의 안경알은 학교 공부로 한 겹, 대학입시로 한 겹, 취업으로 한 겹 겹치면서 점점 두꺼워졌다. ⓒ unsplash

누나는 IQ 148, 영재였다. 유치원 때부터 구구단을 외웠다. 모두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자신이 영어를 못 한 게 아쉬웠던 아버지는 ‘외교관이 얼마나 대단한지’ 누나에게 늘 이야기했다. 누나는 홀로 도시의 초등학교에 다녔고, 아빠와 함께 특목고, 서울대, 하버드를 탐방했다. 아버지가 더 좋은 교육을 시키려 학교를 옮기려 할 때는 전 학교 선생님들이 ‘특목고를 보내겠다’며 누나를 붙잡기도 했다. 내가 시골에서 산과 바다에서 뛰놀 때, 누나는 도시의 조그만 방에서 종일 공부했다. 그는 초등학교 2학년부터 안경을 쓰기 시작했다. 상급학교로 올라갈수록 안경 알은 한 겹 두 겹 두꺼워졌지만, 전교 1, 2등을 놓치지 않았다. 서울에서 홀로, 고독한 재수생활까지 견딘 누나는 결국 SKY대학에 들어갔다. 누나에게 안경은 누나가 살아온 짧은 인생의 결과물이었다. 

청년의 안경이 상징하는 것

청년에게 안경은 능력주의 만능의 한국 사회를 상징한다. 청년은 시험과 그 결과를 중시하는 능력주의 사회의 무한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했고, 살아남기 위해 세상이 요구하는 답을 외워야 했다. 유치원부터 선행학습을 시작했고, 좋은 성적을 위해 늦은 밤에도, 주말에도 학원에서 시간을 보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었지만, 세상은 학생들이 자기 정체성과 꿈을 자각할 여유를 허락하지 않았다. 오직 경쟁에서 살아남으려고 시험문제를 반복해 풀었다. 코앞에 놓인 문제집만 바라보느라 눈이 나빠졌다. 근시는 고무풍선처럼 안구가 부풀어 올라, 망막이 얇아져, 초점이 맞지 않는 증상이다. 아주 가까운 대상만 볼 수 있고, 조금만 대상이 떨어져 있어도 알아보지 못한다. 수능, 대학, 취업, 공시, 고시는 청년들의 안구를 부풀게 했다. 청년은 안경을 쓰지 않으면, 더는 초점을 맞출 수 없고 떨어져 있는 대상을 인식할수 없다.

   
▲ 시험을 보는 고3 수험생들이 대부분 안경을 쓰고 있다. ⓒ <연합뉴스>

대한안경사협회가 발표한 2019년 전국 안경 사용 실태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 55.4%(콘택트 렌즈 포함)가 안경을 착용한다. 1987년의 24%보다 두 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늘어난 실내 생활과 높아진 교육열을 원인으로 꼽았다. 학년이 높아질수록 안경 착용률이 증가했다. 초등학생은 21.6%인데, 중등학생은 53.8%, 고등학생은 67.0%로 높아졌다. 과학전문지 <네이처>는 한국을 ‘세계 최악의 근시 국가’로 표현했다. 한국이 청소년 근시 인구가 가장 높은 국가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서양은 평균 50%, 동아시아는 평균 90%지만, 한국은 96%에 육박한다. 과학자들은 실내에서 오랜 학업을 하는 교육시스템이 원인이라고 보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청년의 자리는

누나는 대학에 들어가자 안경을 벗어 던졌다. 그녀는 더 이상 시험에 매달리지도 않았다. 배우고 싶던 수업을 듣고, 여행을 다니고 소설과 신문을 읽었다. 머리 좋은 게 아깝다며 고시를 권하긴 했지만, 더는 시험지에 정해진 답을 쓰지 않겠다는 듯이 살았다. 부모에게 손도 빌리지 않았다. 과외로 돈을 모아,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의 곳곳을 걸어 다니며 경험을 쌓았다.

내가 기억하는 누나는 생각이 깊고 현실을 직시한 뒤 빠르고 정확하게 결정을 내리는 현명한 사람이었다. 공부만 잘하는 모범생이 되기보다는 어울려 함께하는 것을 좋아해 친구가 많았고 친구들이 반장으로 세워주었을 때 최선을 다했다. 글짓기를 잘해, 상을 많이 받았으며, 고등학교 ‘문학의 밤’ 시경연대회에서 ‘괘안타’라는 시를 지어, 부산 사투리를 살려 낭송했을 때, 누나의 눈은 반짝이는 빛을 머금었다. 

   
▲ 글쓰기에 소질이 있었던 누나는, 고등학교 ‘문학의 밤’ 시경연대회에서, 시 ‘괘안타’를 지어 낭송했다. ⓒ 이성현

안경을 벗은 뒤 누나의 눈은 그때로 돌아갔다. 누나는 그렇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학교 도서관에서 취업 준비를 했지만, 우리 사회는 정해진 답을 요구했다. 누나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만든 스펙으로 취업문이 열릴 줄 알았다. 그러나 한국사회가 원하는 점수, 스펙, 경험은 누나가 안경을 벗고 살려던 삶의 방식과 달랐다. 

한국 사회에서 청년의 자리는 더욱 좁아졌다. 청년들은 안구가 부풀어 모두 안경을 쓸 때까지 무한경쟁에 내몰렸다. 심한 근시로 멀리 바라보고 세상을 판단할 여력조차 상실하는 사이, 청년의 삶은 더욱 어려워졌다. 2019년 OECD 교육 지표에 따르면, 한국 청년층은 열에 일곱(69.6%)이 대학을 졸업해, 그 비율이 46개국 가운데 가장 높다. 반면, 대졸자 취업률은 76.7%로, OECD 평균 84.2%보다 7.5%포인트 낮다. 같은 해 인구보건복지협회 조사에 따르면,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격언이 통용되는지에 관해, 20대 청년 74%가 ‘노력해도 성공하지 못한다’고 대답했다. ‘꼭 결혼하겠다’고 답한 비율은 18.7%, ‘꼭 출산하겠다’는 12.3%에 그쳤다. 청년들은 친구, 취업, 사랑, 결혼, 출산… 하나 둘 포기해간다. 생활비를 아끼려고 함께 밥을 먹으러 가는 친구를 피하게 되고, 사회성도, 자존감도 떨어진다. 결국 세상에서 외톨이가 된다. 

   
▲ 청년 취업자수가 지난해보다 31만4천 명이 줄었다. 설상가상으로 단기 아르바이트자리도 대폭 사라졌다. ⓒ KBS

‘K 양극화’ 앞에 선 청년

코로나19의 경제침체는 청년을 더욱 절벽으로 내몰았다. 코로나 세대는 IMF 외환위기 이후 최저 취업률을 연신 기록했다. 대학 졸업생의 절반 이상이 취업하지 못할 거라는 전망이 나왔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20년 10월 청년 취업자는 지난해 같은 달과 비교해 25만 명이 감소했다. 전 연령층에서 가장 심각한 수치다. 작년 8월 20대 이하 실업급여 수급자 증가율도 100%에 이른다. 취업도 가장 어렵고, 실직도 가장 많은 게 청년의 현실이다. 

학비나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한 빚도 늘었다. 학자금 대출 연체자 수는 해마다 늘었는데, 작년은 코로나 사태로 더 급증했다. 작년 대출 증가율 1위, 대출 연체율 1위도 모두 20대였다. 한국은행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작년 3분기 청년층의 가계 대출 증가율은 전년 동기 대비 8.5% 늘었다. 몇 백만원에서 1, 2천만원 이하이던 학자금 대출이었지만, 제2·3금융권에 손을 내밀어 빚의 수렁에 빠진 청년들도 늘고 있다. 작년 저축은행의 전체 마이너스 통장 대출은 19년보다 평균적으로 줄었는데, 20대에서만 20% 이상 증가했다. 코로나 사태가 길어지면서, 청년은 비자발적 실직자가 되어 미래의 꿈조차 꾸기 힘든 삶을 살아간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작년 상반기 20대가 자해로 병원을 진료받은 건수는 213건으로 2019년보다 80%, 30대는 161건으로 87% 증가했다. 

국가가 사준 안경

지난 6월 행정안전부는 카드사의 신용·체크카드 긴급재난지원금 사용 현황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업종별로 5월 첫째 주 대비 넷째 주매출액 증가율을 보면 안경이 66.2%로 가장 높았다. 안경 구입을 위한 긴급재난 지원금 사용액은 총 968억 원으로 나타났다. 안경을 산 사람들은 ‘긴급재난지원금 받아 오랜만에 안과에 갔다’, ‘몇 년 동안 시력에 맞지도 않는 안경 써왔다고 한다’, ‘국가가 사준 안경’, ‘국가가 앞을 보이게 해줬다’고 말했다. 

이 말이 오늘 이 땅을 살아가는 청년의 현실이다. 정부나 지자체가 시행하는 청년구직수당이나, 실업급여 등 각종 지원책은 긴 취업난에 코로나까지 닥친 이 땅의 청년들을 다시 일으켜 세우기엔 역부족이다. 정해진 답을 쓰고, 정해진 길을 가는 청년만이 정답이다 가르쳐오고, 인정해온 한국사회, 청년의 자존감부터 세워라. 청년의 아픔과 고통, 이들의 좌절이 무엇인지 청년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읽어내라. 일회성 지원과 단순한 정책으로는 안 된다. 코로나는 역으로 사회를 재편하고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 기회다. 취업과 지원, 컨설팅 등 청년정책은 새로운 시스템 속에서 재정립돼야 한다.  

청년이 자기 눈으로 세상을 보려면

누나는 빨간 뿔테안경을 다시 썼다. 아빠는 더는 딸에게 자기 꿈을 강요하지 않았고, 딸도 아빠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며 자기 갈 길을 응원만 하기로 했다. 자존심 대신 자존감이 높아졌다. 세상은 만만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두렵기만 한 곳도 아니다. 다시 정해진 답을 외우는 공부를 하고 있지만, 이제 자신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누나는 내가 아는 가장 똑똑한 사람이다. 공부에 소질이 없던, 고등학교 3학년인 나를 가르쳐 공부에 눈을 뜨게 했다. 어려운 책이나 문제가 있으면 그에게 늘 물었고, 그의 지혜로운 대답은 내 머리를 깨쳐주었다. 대학교 땐, 그가 모은 돈으로 외국에 데리고 다니면서 견문을 넓혀 주었고, 지금도 복잡한 사회문제에 관해 물으면, 새로운 시각을 보여준다. 

사람은 눈으로 세상을 본다. 물체에 반사된 빛이 시신경을 타고 뇌세포에 닿을 때, 비로소 대상을 인식한다. 개인의 뇌세포엔 지금까지 자신이 배우고 경험한 자기만의 이미지가 담겨있다. 본다는 건 자기 뇌로 상황을 해석하는 일이다. 사람마다 자기 가치관에 따라 세상을 본다. 누구는 별을 보고 시를 쓰고, 누구는 사과를 보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다. 모든 청년은 시인, 소설가, 기자, 감독이 되어 자기 눈으로 발견한 세계를 살아야 한다. 자기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여행하는 누나를, 모든 청년을 응원하라. 코로나 시대, ‘잃어버린 세대’로 전락한 청년들이 제 눈에 맞는 안경을 써서 대상을 제대로 바라보고, 자신의 존재 이유를 발견하고, 자신의 삶을 살아가게 하라. 


[청년기자의 시선1]이 하나의 현상과 주제에 관한 다양한 시선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시선2]는 현상들의 관계에 주목해 현상의 본질을 더 천착하고, 충돌하는 현상 사이의 대립과 갈등을 넘어 새로운 비전을 모색한다. 이번 주제는 ‘한국사회의 상징’이다. 코로나는 이른바 ‘K자 양극화’로 불리며 부와 노동의 불평등을 심화했다. 공공 안전망이 부재한 각자도생 사회, 더 깊어진 불안과 갈등으로 신음하는 한국사회의 민낯을 오늘을 상징하는 대상과 현상으로 읽어낸다. (편집자)

편집 : 박두호 기자 

[이성현 PD]
단비뉴스 전략기획팀장, 미디어콘텐츠부, 디지털뉴스부 이성현입니다.
선한 싸움으로 진실을 취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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