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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
[청년기자의 시선2] ‘야, 한국 사회!’ ④ 분리사회
2020년 12월 23일 (수) 21:12:55 이예진 PD dlyejin@daum.net

‘단절’의 공포를 이기려면

내가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단절 공포는 오빠가 처음 어린이집에 간 날이다. 매일 집에서 같이 놀던 오빠와 난생처음 떨어지는 날, 나를 두고 홀연히 떠나는 오빠의 뒷모습이 무서웠다. 오빠가 영영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악을 쓰며 울었다. 교실까지 따라 들어가서 울다가 선생님께 사탕을 받고 엄마 품에 안긴 채 집으로 왔다. 어린이집이 끝나면 오빠가 돌아왔다. 정해진 시간이 되면 오빠가 집에 돌아온다는 걸 학습한 뒤 더는 울지 않았다. 아이가 느낀 단절 공포는 다시 만난다는 약속이 지켜질 때 견딜 만한 분리가 된다. 

중학생이 되면서 다시 만난다는 전제만으로 단절 공포를 이길 수 없다는 걸 알았다. 친구들은 하교 후 휴대폰으로 문자를 주고받으며 서로 일상을 공유했다. 휴대폰이 없어 학교에 가야만 이야기할 수 있는 나와 달리, 친구들은 이동통신으로 실시간 대화를 했다. 만나지 않아도 연결되는 친구들 틈에서 나는 다시 단절 공포를 느꼈다. 컴퓨터로 네이트온 채팅을 켜서 친구들과 소통할 때 세상에 혼자 남은 듯한 두려움에서 벗어났다. 물리적으로 혼자 떨어져 있다는 사실보다 사회적 관계망에서 소외된다는 점이 공포의 핵심이었다. 물리적 만남, 온라인 소통 등을 통해 사회와 연결돼 있음을 확인하면서 단절의 공포를 해소한다.

코로나19가 드러낸 ‘분리사회’

올해 초 시작된 코로나19로 분리는 새로운 생활 규범이 됐다. ‘몸은 2M, 마음은 가까이’로 상징되는 거리두기다. 사람들은 코로나19 이전엔 없던 새로운 일상을 만들며 ‘분리’가 우선인 사회에 적응 중이다. 집에서 재택근무를 하고 온라인으로 수업을 듣는다. 방구석 콘서트를 즐기고 화면 안에 모여 술자리를 갖는다. 스포츠, 공연, 문화활동, 배달 경제 등이 모두 비대면으로 이루어진다. 온라인으로 언제든 연결될 수 있는 환경은 분리 생활을 꽤 안정적으로 이끄는 듯하다. 제대로 보면 코로나19가 만들어낸 분리사회는 두 얼굴을 지녔다. 오프라인에서 부와 안전망에 단단히 연결된 사람들에게는 분리사회가 ‘뉴노멀’이 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사회와 단절됨을 확인하는 ‘공포’다. 

   
▲ 방탄소년단이 지난 10월 10일 연 비대면 온라인 콘서트에는 전 세계 팬들이 실시간 화상 참여와 댓글 등으로 공연을 함께했다. 코로나19는 이전에 없던 비대면 문화를 만들었다. ⓒ KBS

코로나19는 우리 사회가 어떻게 조각나 있었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코로나19 이전부터 사회적, 경제적으로 단절된 사람들이 누구인지 알렸다. 코로나19 유행 초기인 2월 ‘마스크 대란’ 때는 마스크를 살 수 있는 자와 없는 자로 나뉘었다. 디지털 소외를 겪는 이들은 마스크를 구할 수조차 없었다. 5~13배나 오른 마스크 가격을 감당할 수 없는 이들도 있었다. 코로나19가 확산해 출근이 문제될 때는 재택근무를 할 수 있는 자와 없는 자가 드러났다. 배달 종사자는 이전보다 더 오래 거리에 내몰렸고, 돌봄 노동자는 감염 위험에 노출된 채 일해야 했다. 최근에는 코로나19 3차 대유행으로 영업을 할 수 있는 자와 없는 자가 나뉘었다. 매출 감소와 임대료 부담을 버틸 여력이 없는 소상공인은 생계를 잃었다. 코로나19는 그동안 가려져 있던 부와 노동의 불평등과 사회적 안전장치의 불균형을 세상에 그대로 노출했다. 연결 없는 분리의 공포를 전했다.

   
▲ 배달 대행사의 무리한 배차로 배달 중 빗길에 넘어져 사고가 난 배달노동자. 산재 적용이 안 돼 치료비와 오토바이 수리비 등 200만 원이 넘는 비용을 모두 자신이 부담해야 했다. 배달 노동자와 같은 '특수고용 노동자'는 노동 불평등이 만들어낸 ‘분리사회’의 대표적 현상 중 하나다. ⓒ KBS

고착돼 가는 ‘분리사회’

문제는 연결이 전제되지 않은 분리사회의 정착이다. 방역을 위한 거리두기는 사회적 약자를 위한 실질적인 정책과 제도가 따르지 못하면서 오히려 불평등 현상을 심화했다. 노동과 생업이 불안정할수록, 사회와 구성원의 연결고리는 가늘고 단절 공포는 커진다. 코로나19로 가장 먼저 타격을 받은 건 비정규직 노동자다. 통계청의 '2020년 8월 경제활동인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 결과'에 따르면 8월 기준 비정규직은 1년 전 8월보다 5만5천 명 감소했다. 비정규직 일자리 자체가 사라진 것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임금 차이는 152만3천 원으로 2004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가장 큰 격차다. 비정규직은 사회안전망에서 가장 먼저 분리된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불안정한 노동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시급한 과제다. 하지만 유례없는 취업난을 극복하고 정규직 일자리를 구하려는 청년에게 비정규직은 경쟁에서 실패한 개인의 문제로 치부된다. 올해 있었던 인천국제공항공사 사태가 그 예다. 비정규직으로 일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은 세상과 연결되지 않는다. 제도나 법제는커녕,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과도 연결될 수 없는 것이 비정규직이 사는 세상이다. 이들은 생계를 넘어 생존의 공포를 지니며 오늘을 산다.

   
▲ 현대자동차 전주공장은 1급 방진 마스크를 정규직 노동자에게만 제공하고, 비정규직 노동자에게는 성능이 떨어지는 제품을 지급하다 이 사실이 인터넷상에 퍼지며 논란이 되자, 비정규직 노동자에게도 다시 지급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과 불평등은 분리사회의 맨 얼굴이다. ⓒ KBS 뉴스

‘연결’ 없이 ‘분리사회’ 극복 없다

코로나19 이전에도 ‘각자도생’은 우리 사회가 풀지 못한 숙제였다. 각자 알아서 살아남는 생존방식은 갑을 관계를 형성하고 불평등과 양극화를 심화했다. 갑은 살아남을 선택지가 쌓여갔지만 을은 선택지에서 멀어졌다. 갑의 보호막은 두터워지고 을 사이엔 마지막 남은 보호막을 둘러싼 치열한 경쟁이 벌어진다. 

을들의 전쟁은 분리사회가 초래한 최악의 상황이다. 을의 내전엔 승리자가 없다. 을끼리 싸우는 시간에도 갑은 이익을 본다. 편의점 주인과 알바생이 대표적 사례다. 편의점이 우후죽순처럼 생겨 매출이 준 편의점 사장은 알바생에게 최저시급도 못 주는 형편이 된다. 가맹점이 늘어난 본사는 돈을 번다. 최저시급을 안 주는 편의점 사장은 불법이고 편의점 출점 거리 제한을 지키지 않은 본사는 불법이 아니다. 자율규약을 어겼을 뿐이다. 최저임금 지급을 둘러싼 싸움은 사장과 알바생 사이에서 일어난다. 사장도 알바생도 정부나 회사가 보호하지 않는다. 사업 운영을 못한 사장과 고용주를 잘못 만난 알바생의 안타까운 사연일 뿐이다. 어디 편의점뿐인가, 을들이 피눈물 나는 싸움을 벌이는 곳이.

‘분리사회’가 굳어지면서 단절의 공포는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핵으로 떠오르고 있다. 분리사회에서 연결이란 천박한 자본 논리를 넘어서 부와 노동의 불평등을 해소하고, 사회적 돌봄 장치를 제대로 작동시키는 사회적 시스템이다. 연결 없는 분리사회는 단절 공포를 더욱 심화할 뿐이다. 지금 한국 사회는 ‘분리사회’다. 사람들은 멀리 떨어져 ‘각자도생’의 총을 서로에게 겨누며 생존 전쟁을 벌이는 중이다. 이 전쟁이 언제 끝나리라는 희망도, 다른 대안도 없이 각자 살길을 고수한다. 기약 없는 분리, 희망 없는 분리에 사람들은 악을 쓰며 운다. 우리 사회 곳곳에 단절 공포가 도사리고 있다.


[청년기자의 시선1]이 하나의 현상과 주제에 관한 다양한 시선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시선2]는 현상들의 관계에 주목해 현상의 본질을 더 천착하고, 충돌하는 현상 사이의 대립과 갈등을 넘어 새로운 비전을 모색한다. 이번 주제는 '야, 한국 사회!‘ 2020년이 저물어간다. 촛불로 탄생한 개혁 정부 임기가 1년 남짓한 지금, 우리는 어디에, 어떤 얼굴로 서 있는가? 진척이 없는 개혁과제의 달성, 코로나19가 낳은 공동체 붕괴와 경제위기 극복, 뉴노멀로 상징되는 미래사회 준비 등 현안이 산적한 한국사회의 당면과제를 짚는다. (편집자)

편집 : 강주영 기자 

[이예진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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