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인터뷰] 한국고아사랑협회 이성남 회장

“우리나라에는 여전히 뿌리 깊은 가족주의와 혈연관계가 존재합니다. 사람들이 비교하고 이분법적으로 생각하는 것도 여전합니다. 그래서 저 같은 사람들이 더 당당하게 세상에 외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성남(43) 한국고아사랑협회장은 보육원에서 ‘돌연변이’라고 불린 아이였다. 가출한 친구를 찾아 보육원에 다시 데려온 아이, 놀림당한 보육원 친구를 대신해 가해자를 응징한 아이, 학원·과외 없이 노력만으로 고등학교 때 전교 1등을 한 아이가 그였다. ‘(보육원) 동생들에게 자랑이 되자’가 좌우명이라는 그는 지난 8월 <나는 행복한 고아입니다>라는 수필집을 내고 본격적으로 세상을 향해 발언하고 있다. 지난달 16일 경북 김천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나고 지난 24일 문자로 추가 인터뷰했다. 

‘동생들에게 자랑이 되자’를 좌우명으로  

▲ 경북 김천의 한 카페에서 자신이 쓴 책 <나는 행복한 고아입니다>를 옆에 놓고 인터뷰하는 이성남 한국고아사랑협회장. ⓒ 유재인

“....아이에게 남겨진 것이 이름밖에 없다는 사실을 아쉬워하며 보육원 원장님은 입소 카드를 쓰고 아이가 살 집을 배정했다. 낯선 환경, 처음 보는 사람들 사이에 위축되어 제대로 말도 못 하는 아이는 방구석에 앉아 울먹이다가 함께 온 동생과 손을 꼭 잡고 잠이 들었다.” 

그는 책에서 자신의 보육원 첫날을 이렇게 묘사했다. 1981년 다섯 살짜리 아이는 한 살 터울의 남동생과 함께 김천의 한 사립보육원 앞에 버려졌다. 책 제목에 ‘행복한 고아’라고 썼지만, 고아로서 그의 인생은 순탄할 수가 없었다. 특히 초등학교 때 입은 상처는 여전히 아픈 기억으로 남아있다. 하루는 학교에서 싸움을 잘하기로 유명한 아이와 맞붙어 이겼는데, 학교운영위원장이었던 그 아이 아빠에게 끌려가 그 집에서 한참 ‘엎드려뻗쳐’를 해야 했다. 그날 차가웠던 땅바닥과 분했던 마음을 아직도 잊지 못하겠다고 그는 말했다. 

평범한 아이들에게는 행복한 날이었을 졸업식과 입학식도 그에겐 슬픈 날이었다. 중학교를 졸업하던 날, 함께 사진을 찍을 가족도, 사진 찍어줄 사람도 없었던 그는 혼자 울면서 한 시간을 걸어 보육원으로 돌아왔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날을 생각하면 여전히 마음이 아프다고 한다.

그래도 그는 보육원 안팎에서 행복을 찾았다. 함께 살던 1백여 명의 동생, 친구, 형, 누나들을 형제, 자매라 여기고 즐겁게 어울렸던 시간이 그의 성장기를 풍요롭게 해주었다. 스스로 ‘자기애가 강하다’고 표현한 그는 보육원에 사는 현실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공부 등 해야 할 일에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 보육원장, 후원자, 학교 선생님 등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난 것도 그의 인생에 큰 양분이 되었다. 

그는 특히 학교가 재미있었다고 했다. 보육원을 벗어나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보육원장 등의 도움으로 대학에서 체육교육을 전공한 뒤, 월드컵이 열린 2002년 경북의 체육교사로 첫 발령을 받았다. 현재 김천의 한 중학교에서 체육을 가르치고 있다. 야구를 응용한 새로운 스포츠 종목 ‘투투볼’을 만드는 등 재미있는 체육 수업을 개발한 노력을 인정받아 2017년 교육부장관이 주는 ‘학교체육대상’의 학교체육교육 내실화부문상을 받기도 했다. 

‘투투볼’ 개발하고 교육부장관상 받은 체육교사

▲ 2017년 교육부의 학교체육대상 학교체육교육 내실화 부문상을 받은 이성남 회장이 가족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 이성남

그는 안정적인 직장에 자리를 잡고 결혼해 세 딸도 얻었지만, 부모를 향한 그리움은 사라지지 않더라고 말했다. 책을 쓴 것도 보호대상 아동의 희망이 되기 위해, 고아로 자란 자신의 상처를 돌아보기 위해서지만, 동시에 부모를 찾기 위한 일이기도 하다고 고백했다.

“부모님을 찾아야겠다고 계속 생각했습니다. 경찰서에 가서 신원조회를 해보려고도 했지만 개인정보라서 알려줄 수 없다더군요. 나 스스로 나를 알리는 것이 부모님을 찾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부모님은 나를 버렸지만 나는 부모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저는 계속 부모님을 찾을 것입니다.”

그는 세상에 고아라는 사실을 밝히는 것이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마흔이 넘을 때까지 고아인 것을 구태여 말하지 않고 지냈다고 한다. 이른바 ‘고밍아웃(고아임을 밝히는 것)’을 하면 동정 혹은 차별하는 시선을 견뎌야 하는 등 감내해야 할 것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는 시대 흐름에 따라 보호 종료 청소년임을 밝히는 아이들이 많아지는 것은 응원하지만, 그 아이들의 미래에 관해서는 우려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 뿌리 깊은 가족주의와 혈연주의가 존재하기 때문에, ‘고밍아웃’을 한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제도적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보건복지부의 보호종료 아동 자립 지원책 중 하나로 주거 지원이 있다. 만 18세가 되어 보육원 등을 나가 독립해야 하는 청년에게 한국토지주택공사(LH) 임대주택의 임대료를 지원하는 정책이다. 복지부는 지난해 240호였던 보호종료 아동 대상 임대주택 물량을 올해 360호로 늘렸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는 매년 발생하는 보호 종료 아동 2700여 명에 비해 턱없이 적다. 임대주택에 들어가지 못한 아이들은 기숙사나 자립 쉼터, 좁은 월세방을 전전하게 된다. 

▲ 지난 3일 국회에서 열린 ‘모든 아동이 가정에서 자랄 권리’ 컨퍼런스에서 이성남 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 유튜브 ‘나행고’ 채널

“시설 보호 아동, 가정에서 자랄 수 있게”

이 회장은 임대주택 등 주거지원을 포함, 경제적 부분에서 국가의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보호종료 아동은 보육원 퇴소 후 정부에서 500만 원의 자립 정착금을 받고, 3년간 매달 30만 원 씩 자립지원금을 받는다. 대학에 갈 경우 학기당 260만 원의 국가장학금을 받을 수 있다. 이 회장은 그러나 보호종료 아동 중 상당수가 경제 개념을 제대로 배우지 못해 자립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말했다.

“경제 관련해서 교육을 하긴 해요. 보육원에서 고1, 2 정도부터 하는데, 그게 됩니까. 가정에서 돈에 대한 개념을 배우는 것과 너무 달라요. 지원받은 돈에 대한 개념 없이 그냥 ‘써도 되는구나’라고 생각합니다. 관리하는 사람이 없으니까 그냥 쓰는 거죠. 보건복지부의 아동 자립단 같은 곳에서 자립 직전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경제교육, 심리교육 등 자립 지원 프로그램을 하긴 하지만 너무 불충분합니다.”

그는 보호종료 아동에게 지급되는 국가 지원금을 바우처(상품 교환권)로 제공해 생필품 구매나 보험료, 학원비 등 꼭 필요한 곳에만 쓰게 하거나, 후견인을 지정해 아이들이 가정을 꾸릴 때까지 관리를 해주는 등의 대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무엇보다 아이들이 가정 안에서 이런 것을 배우는 게 이상적이라며, ‘탈 시설’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9년 기준 국내에는 4047명의 보호대상 아동이 있다. 이 중 아동양육시설, 그룹홈, 일시보호시설 등에 있는 인원이 2733명으로 전체의 68%에 이른다. 이 회장은 “시설을 없애고 모든 아이들이 가정의 안정감과 소중함을 경험할 수 있도록 입양을 촉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버려진 아이들, 학대당한 아이들을 친인척이 키우게 하거나 입양을 보내야 해요. 그렇게 아이들이 보육원이 아닌 가정에서 자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아이들은 모두 사랑 속에서 자라야 하지만, 보육원은 사랑이 아니라 관리를 하는 곳입니다. 그래서 보육원에 사는 아이들을 줄여나가야 합니다. 보육시설이 전국에 243개입니다. 좁은 땅에 비해 너무 많은 거죠.”

복잡하고 까다로운 입양절차 개선해야

그가 회장을 맡고 있는 한국고아사랑협회는 지난 3일 국회에서 ‘모든 아동이 가정에서 자랄 권리’ 라는 주제의 컨퍼런스를 열기도 했다. 이날 컨퍼런스는 보호대상 아동의 가정보호를 위한 법률적 제언과 퇴소 아동의 어려움 해소 방안 등을 다뤘다.

이 회장에 따르면 1996년 ‘입양특례법’이 ‘입양촉진 및 절차에 관한 특례법’으로 개정되면서 한국의 입양 절차는 복잡해지고 까다로워졌다. 그는 자신이 머물던 시설에서 과거에는 일 년에 200~300명의 아이들을 입양 보냈지만, 지금은 절차가 까다롭고 기간이 오래 걸려 입양 사업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입양가족연대 오창화 대표와 협업해 아이들을 가정으로 보낼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 체육교사인 이성남 회장이 지난 2015년 개발한 투투볼 경기 모습. 야구를 응용해서 아이들이 협동과 배려를 키울 수 있도록 구성해, 학교 체육시간 등에 활용되고 있다. ⓒ 대한투투볼협회

그는 고아에 관한 사회 인식을 바꾸는 일에도 관심이 많다. “부모에게 배운 게 없으니 저 모양이지, 고아들은 어떻게든 티가 나요.” 올 초 한국방송(KBS) 드라마 ‘사랑은 뷰티풀, 인생은 원더풀’ 에 나온 대사다. 이 회장은 “드라마뿐만 아니라 영화 등 다양한 매체에서 부모 없이 자란 아이들에 대한 편견을 심어주는 표현이 너무나 많다”고 분개했다. 그는 단체가 더 커지면 ‘고아’라는 말 대신 다른 표현을 개발할 생각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고아는 ‘외로운 아이’를 뜻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부모로부터 버려진, 또는 죄를 지어, 잘못이 있어 버려진 아이로 인식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책을 쓰고 자신을 내보이면서 ‘고아 대표’로 당당하게 살고자 한다는 그는 “고아에 대한 인식을 바꾸려면 고아 출신으로 잘 된 사람이 더 많이 사회에 진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부지런히 움직인다. 고아로 자란 자신의 경험과 성찰을 담아 또 책을 만들고 있다. 이번에는 그림 작가와 협업해 만화로 제작한다. 더 많은 사람에게 읽히기를 희망해서다. 그는 자신을 포함, 부모 없이 자란 고아들에게 결함이 있겠지만, 사회가 결함이 있다는 이유로 차별할 게 아니라 관심을 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편집 : 이정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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