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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학생 80% “고교는 사활 건 전장”
[지방대 위기와 혁신] ㉑ 사회자본 결핍이 부른 과잉경쟁
2021년 01월 01일 (금) 22:05:44 곽영신 임형준 박두호 이나경 기자 kwaaak@danbinews.com

충북 제천의 사립고 1학년 이예선(17) 양은 교실에서 성적 때문에 친구들끼리 서로 견제하는 상황을 종종 겪는다. 그는 “수업 시간에 깜빡 졸다가 필기하는 것을 놓쳤을 때 잘하는 친구에게 노트를 좀 보여 달라고 하면 빌려주기 싫어하거나 통째로 안 보여주고 딱 집어서 그 부분만 보여준다”며 “다들 인(in)서울 대학을 못 가면 어떻게 하나 하는 스트레스가 정말 커서 입시경쟁에 대한 압박을 많이 받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방대에 가면 성인이 되는 첫 출발점에서 낙오된다는 두려움이 있어 그럴 경우 재수를 해야겠다는 생각도 있다”며 “아직 입시가 많이 남았는데도 공부하느라 여가 활동을 할 시간도 없고 누가 어떤 형태로든 취미 생활을 하면 고등학생이 그런 걸 왜 하느냐는 시선도 있다”고 말했다. 

입시경쟁 속 불신과 불안 가득한 교실 

같은 학교 1학년 이윤지(17) 양도 공부를 생각하면 가장 크게 느껴지는 감정은 ‘불안’이라고 말했다. 그는 “작은 성적 차이로 대학 서열이 달라지니 시험을 볼 때마다 너무 불안감을 느낀다”며 “지방은 정보가 부족하거나 너무 느리고, 체험학습이나 경시대회같이 무언가 경험할 기회도 적은 것 같아 불안이 더 커진다”고 말했다. 

그는 또 “고등학교 올라와서 가장 많이 느낀 것은 미래가 불안한데 어떤 것도 날 책임져 주지 못하니 오직 공부로 승부를 봐야 한다는 점”이라며 “그런 가운데 성적 경쟁이 워낙 심하다 보니 자기 진짜 적성을 고민할 시간도 없고 고등학생은 그런 거 생각할 시간에 공부나 더 하라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 서울 강남구 대치동, 양천구 목동 등과 더불어 학원 밀집 지역으로 유명한 노원구 중계동 학원가의 모습. 입시경쟁을 상징하듯 건물마다 수학·영어 학원 등이 빽빽이 들어서 있다. Ⓒ 이나경

입시 때문에 부담과 불안감을 느끼는 것은 학부모도 마찬가지다. 충북에서 고등학교 3학년 딸의 학교 학부모회장을 맡고 있는 한수영(50·가명) 씨는 “우리나라가 복지제도와 사회안전망 같은 게 잘 설계돼 있어 누구나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라면 좋겠지만 이는 멀게만 느껴지는 얘기”라며 “아직도 한국은 개인이 노력해서 좋은 대학을 나와야 취업을 잘할 수 있는 학벌사회이므로 아이의 행복을 위해 사교육을 통해 투자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딸의 국어·영어·수학 과외로 월 100만 원 이상을 지출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경기도 하남시의 사립고 2학년 딸을 둔 김성희(가명) 씨는 “성적이 전교 중위권 수준인 딸이 미대를 지망하는데 최소한 수도권 대학은 갔으면 하는 바람에 매달 미술학원 50만 원, 영어 학원 32만 원을 들여 사교육을 시킨다”며 “주변에서 체육 수행평가를 위해 줄넘기 학원에 보내는 것까지 봤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사회에서는 부모의 돈으로 자녀 인생을 바꿀 수 있기 때문에 가난한 집에서 인재가 나는 ‘개천의 용’이 사라진 지 오래 됐다”며 “나는 강남 학부모만큼 능력은 없지만 아이에게 최소한의 기회를 주기 위해 형편에 맞춰서 지원해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사회의 과도한 학벌 경쟁 뒤에는 이처럼 구성원들 사이에 사람과 사회 시스템에 관한 믿음, 즉 ‘사회적 신뢰’가 부족하고, 이로 인한 불안과 ‘각자도생’ 분위기가 팽배한 현실이 자리하고 있다. 김희삼(51) 광주과학기술원 기초교육학부 교수는 지난달 11일 <단비뉴스> 전화인터뷰에서 “한국 사회에서는 신뢰가 많이 낮아 믿고 의지할 사람과 시스템이 없다보니 ‘우리 가족이 알아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불안이 커지고 모두가 더욱더 경쟁에 몰두하게 된다”며 “경쟁이 과열되면서 점수 1~2점 차이로 촘촘하게 대학 서열이 매겨지고, 경쟁 결과를 기준으로 서열이 낮은 사람에 대한 무시와 차별이 정당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회적 신뢰가 부족하니 구성원들 사이에서 협력과 연대보다 경쟁심리가 강해지고, 이는 ‘서열이 낮은’ 지방대에 관한 차별과 소외를 심화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입시경쟁과 학벌 차별을 완화하려면 우리 사회의 신뢰수준을 높이는 노력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의 ‘사회적 신뢰’ 세계 최하위 수준 

한국 사회의 사회적 신뢰는 실제로 어느 수준일까? 영국 민간기관인 레가툼연구소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2020 레가툼 번영지수’에 따르면 한국은 종합점수로 167개국 중 28위라는 양호한 성적을 거뒀지만, ‘사회자본(Social Capital)’ 부분은 139위로 최하위권에 머물렀다. 레가툼연구소가 2007년부터 매년 발표하는 번영지수는 사회의 안전, 개인의 자유, 거버넌스(지배구조), 사회자본, 투자환경, 기업여건, 시장 접근도와 기간시설, 경제의 질, 생활환경, 보건, 교육, 자연환경 등 12개 세부 항목을 평가한다. 여기서 한국은 교육 2위, 보건 3위 등 다른 항목에서는 대부분 높은 성적을 거뒀지만 유독 사회자본 부분에서 밑바닥 점수를 받았다.

   
▲ '2020 레가툼 번영지수’에서 한국은 ‘사회자본(Social Capital)’ 항목이 조사 167개국 중 139위로 나타났다. © 레가툼연구소

사회자본은 개인 및 사회적 관계, 제도에 관한 신뢰, 사회적 규범, 시민 참여 정도를 측정하는 항목이다. 설문조사에서 사회자본에 관한 질문은 ‘만약 당신에게 문제가 생겼다면 당신을 도와줄 믿을 만한 친구나 친척이 있는가’ ‘어제 하루 사람들이 당신을 존중하며 대했나’ ‘지난 한 달간 공무원에게 자신의 의견을 개진한 적이 있나’ 등으로 사람과 사회에 관한 신뢰, 사회안전망 등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사회자본 분야에서 상위권은 덴마크(1위), 노르웨이(2위), 핀란드(3위) 등 사회적 신뢰가 높고 복지제도가 잘 갖춰진 북유럽 국가였고, 하위권은 아프가니스탄(167위), 시리아(166위), 남수단(165위)처럼 내전과 기아 등으로 사회적 불안이 큰 곳이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수준으로는 루마니아(134위), 일본(140위), 크로아티아(142위) 등이 있고, 독일은 15위, 미국은 17위, 중국은 42위였다.  

협력 대신 무한경쟁, ‘각자도생’의 사회로 

국내 조사에서도 비슷한 저신뢰 문제가 드러난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전국 성인남녀 51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9 한국인의 의식‧가치관 조사’에서 ‘우리 사회가 어느 정도 신뢰할 수 있는 사회라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10명 중 3명(33.6%) 정도만 ‘신뢰할 수 있다’고 답했다. ‘보통’은 42.8%, ‘신뢰할 수 없다’는 23.7%였다. 

또 한국행정연구원이 전국 성인남녀 8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9 사회통합실태조사’에서 주요 기관별 신뢰도를 조사한 결과, 4점 만점에 국회(1.9점), 검찰(2.1점), 법원(2.2점), 경찰(2.2점), 신문사(2.3점) 등 공적 기관들이 낮은 신뢰도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뢰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의료(2.6점), 교육(2.5점), 금융기관(2.5점) 등도 모두 2점대를 넘지 못했다. 

한국 사회에서 ‘대인 신뢰’ 사회자본이 갈수록 후퇴해왔다는 분석도 있다. 김희삼 교수가 ‘저신뢰 각자도생 사회의 치유를 위한 교육의 방향(2018)’ 보고서에서 세계가치관조사 자료를 활용해 분석한 결과, ‘대부분의 사람은 믿을 수 있다’고 동의한 국민 비율이 한국은 1981~1984년 38%에서 2010~2014년 27%로 크게 떨어졌다. 같은 기간 일본(41%→39%)과 미국(43%→35%)은 한국보다 하락폭이 작았고 독일(31%→45%)과 스웨덴(57%→62%)은 신뢰도가 더 높아졌다. 세계가치관조사는 1981년부터 80여개 국가 사회과학자들이 각국의 사회‧문화‧정치‧윤리적 가치를 조사하기 위해 진행 중인 학술 프로젝트다. 

   
▲ 한국의 대인 신뢰도는 1980년대 38%에서 2010년대 27%로 내려갔다. 같은 기간 독일과 스웨덴 등은 대인 신뢰도가 높아지는 모습을 보였다. © 김희삼

보고서는 이와 관련, “한국의 사회자본 수준을 살펴보면 국가 수준의 경제자본(가구소득)이나 인적자본(학력)에 비해 어두운 것이 현실”이라며 “한국은 국제적 기준에서 사회적 신뢰가 중진국 수준인 가운데 협력과 동업 대신 무한경쟁 속에 각자 제 살길을 찾는 식의 ‘각자도생’이 팽배해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공부’와 ‘교육’이 중요한 사회적 불안요소

한국 사회의 낮은 사회자본 수준은 곧 ‘사회적 불안’으로 이어지는데, 한국인들이 대표적으로 불안을 느끼는 문제 중 하나는 교육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한국의 사회적 불안과 사회보장의 과제(2019)’ 보고서에서 온라인 뉴스와 블로그‧카페 게시글 빅데이터 789만 건을 수집해 연관어 분석을 한 결과 사회적 불안과 관련한 단어로 개인 차원에서는 ‘건강’ ‘가족’ ‘주택‧부동산’과 함께 ‘공부’와 ‘교육’이 가장 빈번한 것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으로 2007년 블로그‧카페에서 ‘불안’ 연관어는 ‘공부’가 3위를 차지했고, ‘불안+사회’ 연관어는 ‘교육’이 3위, ‘공부’가 8위를 차지했다. ‘불안+스트레스’ 연관어도 ‘공부’가 6위를 차지했다. 2015년에는 블로그‧카페에서 ‘불안+사회’ 연관어로 교육이 2위를 차지했고, 2018년에는 ‘불안’ 연관어로 ‘공부’가 10위, ‘불안+사회’ 연관어로 ‘교육’이 11위를 차지했다.  

   
   
▲ 블로그·까페 게시글 빅데이터를 분석해 불안과 관련한 연관어 분석을 한 결과 한국 사회에서 ‘공부’와 ‘교육’은 꾸준히 주요 불안 요소로 나타났다. ©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이에 관해 보고서는 “사회보장이 취약한 상황에서 가족과 같은 전통적 연대가 약화되면서 개인의 소진은 더 심해지고 고립을 초래하며 이로써 불안 경험이 확산된다”며 “이는 개인 수준의 스펙 쌓기에 몰두하는 소진적 대응과 자기 착취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개인이 불안을 회피하는 방식이 곧 ‘자기계발’이라는 것이다.  

김문길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달 29일 <단비뉴스> 이메일인터뷰에서 “교육이 흔히 계층 이동의 사다리라고 여겨져 왔는데, 최근 부모의 배경이 자녀 교육 성취에 미치는 영향이 커지면서 그 기능이 약해지고 있다”며 “이 때문에 사회 구성원들이 ‘나는 사다리를 오를 수 없게 되지 않을까’ ‘영원히 뒤처지지 않을까’하는 조바심을 갖게 되고, 이로 인해 교육에 대한 투자가 더욱 과열되는 경향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이미 상층에 있는 사람들의 경우에도 더 아래로 내려가지 않기 위해 매우 치열하게 노력하고 있다”며 “한국 사회의 이 같은 분투는 소득불평등 확대에 따라 더 심화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 한국 사회에서 ‘공부’와 ‘교육’에 대한 불안은 개인의 고립과 치열한 자기계발로 이어진다. © Pixabay

한국 ‘사회적 보호역량’ 36개국 중 32위  

사회자본 부족과 사회적 불안은 교육경쟁이 과열되는 데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사회의 질과 국민통합(2015)’ 연구보고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각종 지표와 세계가치관조사 결과 등을 활용해 ‘사회의 질’이 ‘경쟁’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 여기서 사회의 질은 사회적 보호를 제공하는 역량(복지제도)과 개인의 능력을 증진하는 역량(교육‧일자리 제공), 그리고 사회적 신뢰 등 구성원들이 서로 결속하고 참여하는 정도를 측정하는 시민적 역량으로 구성된다. 

분석 결과 한국은 비교대상 OECD 회원국에 중국‧태국을 더한 36개국 중 사회의 질이 25위로 중하위권이었고, 특히 ‘사회적 보호역량’ 수준은 32위로 최하위권에 머물렀다. 사회적 보호역량을 세부적으로 보면 사회급여나 재정지원을 말하는 ‘공적 사회지출’이 32위, 노동자의 단결권을 보여주는 ‘노조 조직률’은 33위, 연금 지급 수준을 말하는 ‘공적연금대체율’은 28위 등으로 저조했다. 이에 더해 시민 역량 세부지표 중 하나인 대인 신뢰도(34위), 제도 신뢰도(22위) 역시 낮았다. 

   
▲ 복지안전망의 수준을 보여주는 사회적 보호 역량에서 한국은 36개국 중 32위로 매우 낮은 수준이다. ©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정리하면 한국은 사회적 보호역량은 낮은 반면, 개인능력 증진역량은 높은 전형적인 ‘과잉경쟁형’ 체제라고 할 수 있다. 반면 덴마크, 핀란드,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들은 사회적 보호역량과 개인능력 증진역량이 모두 우수해 ‘균형발전’을 이룬 나라로 꼽혔다. 

이재열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도 OECD 국가의 사회의 질을 분석한 논문 ‘사회의 질, 경쟁, 그리고 행복(2015)’에서 “한국에서 경쟁의 양상은 ‘과감한 창의성경쟁’ 대신 ‘소극적 위험회피 경쟁’을, ‘사회적으로 최적화된 실력경쟁’ 대신 ‘과도한 간판따기경쟁’을, ‘조화로운 공생발전’ 대신 ‘약육강식의 승자독식경쟁’을 한다는 점에서 행복감을 떨어뜨리는 주된 이유가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사회의 질이 높은 국가와 낮은 국가의 특징을 이렇게 분석했다. 

“뛰어난 복지역량을 갖추고 풍부한 교육 기회와 일자리를 제공하는 덴마크에서는 실패한 이들에게도 재도전의 기회가 많다. 그래서 청년들은 과감하게 창의적인 일에 도전한다. 반면에 복지역량이 취약한 한국의 젊은이들은 과잉 경쟁을 하지만, 위험을 회피하기 급급하다. 실패가 용인되지 않다 보니 혁신적인 기업가정신이 위축되는 것이다. (...) 또 사회적 응집성이 높고 시민정치 참여도 높은 덴마크나 스웨덴에서는 공동의 문제에 대한 시민적 해결 의지가 높고, 문제를 풀어나갈 제도권 정치도 잘 작동한다. (...) 반면에 한국은 공정하고 타당성 있는 규칙과 심판에 대한 신뢰가 낮다 보니, 논란의 여지가 없는 수치화된 객관적 평가에 매달리는 과도한 간판경쟁의 폐단이 나타난다.” 

특별히 한국 중산층의 불안이 교육경쟁으로 나타나는 과정을 분석한 연구도 있다. 김형준 박사가 2017년 박사학위(서강대 사회학) 논문 <과잉교육경쟁의 역설>에서 386세대 여성 8명을 심층 인터뷰한 결과, 한국 중산층은 1998년 외환위기 이후 고용불안과 계층탈락의 압력 속에서 ‘보다 나은 삶’을 추구하는 경로로 ‘아파트 투자’ ‘정치적 선택(2002년 대선 노무현 대통령 당선)’ ‘자녀 교육’ 등 세 가지를 추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자녀 교육이라는 선택지가 가장 중요한데, 그 이유는 다른 두 가지가 큰 부담(아파트 대출금) 또는 실패(정치를 통한 분배 실패와 양극화 심화)로 귀결되면서 ‘대학입시가 완료되는 시점까지 결과가 열려 있는 자녀 교육이 그들에게 남은 유일한 선택지가 되었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신뢰부족, 과열 교육경쟁, 차별의 악순환  

부족한 사회자본과 이에 따른 과열경쟁은 교육 현장을 승자가 되기 위한 ‘전쟁터’로 만들고 다른 사람과 협력하는 것을 막는다. 김희삼 교수가 ‘사회자본에 대한 교육의 역할과 정책방향(2017)’ 보고서에서 한국‧중국‧일본‧미국 대학생 각 1000명, 총 4000명을 대상으로 교육과 사회자본에 관련된 인식을 조사한 결과는 충격적이다. 

먼저 각 나라에서 ‘고등학교의 이미지’를 묻는 질문에 한국 대학생 중 무려 81%가 ‘사활을 건 전장’에 가장 가깝다고 답했다. 중국과 미국에서는 40% 정도, 일본은 14%만 고등학교를 전장이라고 본 것과 비교된다. 또 ‘함께 하는 광장’이라고 생각한 비율은 초중등교육에서 협동과 단체행동을 중시하는 일본이 76%로 가장 높았고, 중국은 47%, 미국은 34%였지만, 한국은 13%에 그쳤다. 한국 대학생 대다수가 고등학교를 ‘전쟁터’로 인식한다는 것은 치열한 상대평가 경쟁의 경험이 반영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 한국 대학생의 80%는 고등학교를 ‘사활을 건 전장’ 이미지로 기억하고 있었다. 반면 일본이나 중국 대학생 상당수는 고교를 ‘함께 하는 광장’으로 여겼다. © 김희삼

다음으로 ‘30명의 수강생이 5인 1조로 팀이 되어 공부할 때 만약 기말고사 성적을 개인 점수로 부여한다면, 그 과목을 잘하는 학생이 다른 학생들이 모르는 것을 물어봤을 때 어떻게 행동할 것으로 예상하는가’ 하는 질문에 ‘누가 물어보더라도 잘 가르쳐주지 않을 것’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한국(18.1%)에서 가장 높았다. 반면 ‘모두에게 잘 가르쳐 줄 것’의 비율은 한국(44.7%)이 가장 낮았다. 한국 교육과정에서 이타적 협력 수준이 매우 낮다는 사실이 드러난 셈이다. 

   
▲ 한국 대학생은 개인별로 성적 경쟁을 할 때, ‘모르는 것을 누가 물어보더라도 잘 가르쳐주지 않을 것이다’라고 답한 비율이 중국, 일본, 미국 대학생보다 2~4배 높았다. © 김희삼

사회안전망 확충하고 협력과 연대 가르쳐야  

전문가들은 입시경쟁과 학벌차별의 폐단을 줄이기 위해 사회적 신뢰를 비롯한 사회자본을 높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구혜란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지난달 24일 <단비뉴스> 이메일인터뷰에서 “한국은 복지제도에 구멍이 많고, 사회의 전반적인 의사결정 과정이 불투명하고, 서로가 서로를, 그리고 제도를 신뢰하지 못하며, 다양한 차별이 존재해도 이를 개선하고자 하는 시민적 참여도 높지 않아 사회의 질이 낮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성공하지 못한 사람도 실패자 또는 패배자로 낙인찍는 게 아니라 사회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복지제도를 통해 지원하고 다시 도전할 수 있도록 해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공을 위해 모든 것을 거는’ 과잉 경쟁을 막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문길 연구위원은 사회적 신뢰를 높이고 불안을 완화, 극복하기 위해 “궁극적으로 계층 사다리를 오르지 않더라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야 하고 또 한편으로는 사다리의 간격을 줄여 불평등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방법 중 하나가 복지제도와 같은 사회안전망”이라며 “이런 환경이 잘 갖춰지면 계층 상승과 유지를 위한 치열한 분투가 좀 누그러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김 위원은 “특히 교육에 있어서는 부모의 배경에 따른 교육투자 격차 때문에 생기는 기회의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며 “좋은 배경의 부모를 가지지 못한 아동, 청소년, 청년들에게 사회문화적 기회와 자금을 더 많이 지원하고, 대학입시 등에서 사회경제적 약자에게 더 혜택을 주는 ‘적극적 우대조치’ 같은 제도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복지를 통해 사회적 신뢰가 높아진 사례도 있다. 서울시가 지난 2018년도 청년수당 프로그램 참여자 3151명을 추적조사한 결과 ‘사회적 관심과 지원을 받고 있다’는 응답이 17.8%포인트(p), ‘어려울 때 의지할 사람이 있다’는 답이 7.4%p 증가했다. 청년수당 참여 후 이웃에 대한 신뢰와 사회에 대한 관심도 커진 것으로 나타났다. 또 청년수당 참여 이후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기회가 있다’는 응답이 6.3%p,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잘 해나갈 수 있다’는 답이 6.7%p 증가해 안정감과 자신감 또한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 서울시에서 ‘청년수당’ 프로그램에 참여한 청년들은 대인 신뢰도와 사회 신뢰도가 높아졌고, 안정감과 자신감 역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 서울시 청년청

김희삼 교수는 “북유럽처럼 고복지국가일수록 사회자본이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복지수준과 사회자본은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양성 피드백’ 관계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유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고복지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국민 대다수의 동의와 복지정책의 주체인 정부에 대한 신뢰가 필요하기에, 사회자본이 높아야 복지제도가 발전할 수 있는 측면도 있다”며 “이처럼 사회자본은 복지수준뿐 아니라 문화적 요인에 의해서도 큰 영향을 받으므로 학교 교육과정에서 경쟁보다는 협력과 연대를 도모하는 학습 및 평가 방식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김희삼 광주과학기술원 기초교육학부 교수가 강의실에서 수업을 하고 있는 모습. Ⓒ 광주과학기술원

“(우리나라) 교육은 사회자본을 높이는 기능이 낮고, 오히려 갉아먹는 요소도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우리 교육 현장의 분위기가 지나치게 경쟁적이고, 교육방식 또한 일방향 주입식 학습에 그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학생 중심의 수평적, 참여적, 협력적 수업을 도입했을 때 협동심과 연대의식, 공공심이 심어지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교육을 통해 사회적 자본을 갖추게 하려면 학생들 간의 상호작용이 활발한 수평적인 수업을 시행하고, 평가제도 역시 이런 수업 방식에 부합하는 절대평가를 적절히 확대해 나가야 합니다. 이런 노력으로 사회자본이 함양되어 사회적 포용 수준이 높아지면 학벌에 따른 차별과 차별적 인식이 포괄적으로 완화될 수 있을 것입니다."


영국의 옥스퍼드, 케임브리지와 미국의 하버드 등 선진국 명문대학은 대부분 수도가 아닌 지방의 작은 도시에 있다. 반면 한국에서는 지방에 있는 대학을 교육의 품질과 상관없이 ‘지잡대’ 등으로 싸잡아 부르며 멸시하고 차별하는 풍토가 심하다. 지방대생들이 편입 등을 통해 서울로 ‘탈출’하는 행렬도 끊이지 않는다. 저출산 추세로 학생 수가 점점 줄면서 지방대 중 상당수는 문을 닫을 수밖에 없을 것이란 위기감도 커지고 있다. 세명대 저널리즘연구소와 <단비뉴스>는 심층기획 ‘지방대 위기와 혁신’을 통해 서울 중심의 불균형 발전과 왜곡된 학력 경쟁 등이 낳은 지방대 소외의 실상을 조명하고 대안을 모색한다. (편집자)

편집 : 정진명 기자

[이나경 기자]
단비뉴스 디지털뉴스부, 청년부, 환경부 이나경입니다.
따뜻한 세상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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