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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링에 오른 언론인과 편파 중계에 대해
[심석태 칼럼] ‘독립성’은 이미 폐기됐거나 폐기해야 할 원칙일까?
2021년 01월 21일 (목) 20:54:58 심석태 교수 shimpro1@naver.com
   
▲ 심석태 교수

예비 언론인들을 상대로 언론윤리 관련 강의를 할 때면 빼놓지 않고 물어보는 질문이 있다. 언론과 시민운동, 정치의 공통점과 차이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거다. 역시 예비 언론인들은 눈치도 빨랐다. 의외로 질문자의 의도를 잘 알아채는 사람이 많았다. 공통점의 키워드는 공익성이다. 언론이나 시민운동, 정치는 방식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공공의 이익을 추구한다.

차이는 뭘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언론은 문제를 들춰내지만 직접 해법을 내지 않는다. ‘솔루션 저널리즘’이라고, 문제를 들춰내는 것으로 끝내지 않고 해법을 찾는 과정을 보도가 적극적으로 끌고 가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여기서도 언론은 문제 해결을 추구하는 것이지 직접 특정한 답으로 몰아가지는 않는다. 또 언론은 특정한 가치나 진영을 대표하는 활동을 하지 않는다. 자신이 다루는 분야나 지역 등에 애정과 관심을 갖는 것과 스스로 대변인이 되는 건 다른 일이다. 언론의 독립성이라는 윤리 원칙 때문이다. 언론인이 직접 링에 올라 선수로 뛰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정치나 시민단체가 직접 어딘가를 대표하거나 대변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그래서 직접 세상을 특정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싶은 에너지로 가득 찬 사람들에게 언론인은 썩 어울리는 직업이 아니다. 언론의 독립성,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공정성, 객관성 같은 가치는 자신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어떤 방향으로 세상을 이끌고 싶은 사람들에겐 여간 거추장스러운 게 아니다. 그래서 세상을 바꾸고 싶은 방향성이 분명하고, 또 그것을 직접 주도하고 싶은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에게는 언론 말고 다른 영역을 찾아보길 권한다. 대표적으로 시민운동이나 정치다. 시민운동과 정치는 어딘가를 직접 대표한다고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물론 이들도 사회 전체의 공익을 전제로 해야 한다는 점에서 순수한 이익단체와는 분명히 다르다. 

   
▲ 언론은 특정한 가치나 진영을 직접 대표하는 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정치나 시민운동과 차이가 있다. ⓒ Pixabay

언론과 정치, 시민단체의 공통점과 차이점

특강에서 만난 예비 언론인 가운데 몇 명에게 직접 언론인이 되려는 생각을 재고해보라고 권했는데 내 말을 듣고 진로를 바꾸었는지, 아니면 언론에 대한 생각을 바꾸었는지는 모르겠다. 하기야, 어느 한쪽을 대놓고 편드는 기자들이 천지인 세상에서 아직 우리 언론에 독립성 같은 원칙이 있기는 하느냐고 되묻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다. 특히 우리 시청자나 독자들처럼 언론의 독립성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비율이 세계적으로 높은 나라에서, 언론이 독립성을 추구해야 한다는 건 신화나 도그마에 불과한 거라고 주장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세상에 있는 그 많은 직업 가운데 현직에서 바로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할 수 없도록 규정된 것이 얼마나 되는지 생각해보자. 그냥 윤리적으로 그러면 안 된다고 비판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법으로 막아놓은 직업 말이다.

선거 때가 아니면 별로 화제가 되지도 않는 일이지만, 현직을 유지한 채 혹은 현직을 그만두더라도 아무 때나 공직 선거에 나설 수 없는, 몇 안 되는 직업 중의 하나가 언론인이다. 방송이나 신문은 물론 인터넷 언론도 해당된다. 물론 각종 기관지나 학술지, 기업체 홍보지 등은 정기간행물로 등록이 되어 있더라도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 이른바 ‘김영란법’으로 불리는 청탁금지법 적용 대상과는 다르다. 흔히 사회적으로 ‘기자’나 ‘언론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해당된다. 김영란법이 생기기 훨씬 이전부터 그랬다. 도대체 왜, 공무원도 아닌 언론인을 대상으로 이런 제한을 만들어놨을까?

언론인 공직 출마를 법으로 제한하는 이유

30년 가까이 기자로 일해 본 경험에서 생각해보면, 언론의 독립성 중에서 결국 제일 핵심은 정치적 독립성이었다. 다른 분야들과는 달리, 정치는 우리 사회의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기 때문이다. 어떤 이슈든 정치적 소용돌이에 휘말리면 원래 무슨 얘기를 하고 있었는지는 사라지고 정치 공방만 남기 일쑤다. 우리 사회는 모든 이슈를 정치화시키는 특수한 능력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언론이 자칫 정치적 소용돌이에 휘말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자들도 이런 문제를 잘 알기에, 정치적 독립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먹고 사는 문제인 경제적 독립성도 물론 중요하지만 아직은 정치적 독립성이 더 결정적인 사회다.

언론인이 곧바로 정치권으로 직행하면, 일차적으로 언론인으로 근무할 때의 모든 활동이 결국은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다지기 위한 활동이 아니었는지 의심받게 된다. 소속 언론사가 해당 정치인을 밀어준다는 의심도 부산물처럼 따라다닌다. 무엇보다도 오랫동안 언론 활동을 통해 형성한 지명도나 신뢰도를 곧바로 정치적 자산으로 활용한다는 문제가 생긴다. 이런 의심은 정작 현직에 있는 언론인들의 부담이 된다. 

그래서 우리 선거 관련 법령은 언론인이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서는 일정 기간 전에 퇴직하도록 규정해 놓았다. 지역구 선거라면 90일 전까지가 사퇴 시한이다. 비례대표나 갑작스레 치러지는 보궐선거에 나설 경우는 후보등록 전까지다. 순수한 민간인 중에 이렇게 출마에 제한이 있는 경우는 사립학교 교원 정도가 더 있을 뿐이다.

이게 전부가 아니다. 언론사들 가운데는 퇴직을 하더라도 일정한 유예기간이 지나야 선거에 출마할 수 있다는 자체 윤리강령을 둔 경우가 많다. 3개월에서 6개월까지 기간을 정해놓았다. 선거 출마는 아니더라도, 언론인이 현직에서 바로 청와대 수석 같은 자리로 직행하는 것에 대해서도 항상 윤리적 비판이 제기된다. 시청자 독자로부터 의심의 눈초리를 감당해야 하는 후배들이 비판 성명을 내기도 한다. 아예 언론사 차원에서 유감을 표명하는 기사를 싣는 경우까지 있었다. 

언론이 뭐 대단하다고 이렇게 유난을 떠느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언론인은 정당 가입조차 법률로 금지되어 있었다.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법적으로는 정당 가입이 가능해졌지만 여전히 개별 언론사 차원에서 소속 언론인의 정치 활동을 금지한 곳이 많다. 그런 규정이 없더라도 각종 언론윤리 규범은 언론인의 정치 활동을 금지하고 있다. 

언론과 정치 사이에는 방화벽이 필요하다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뭘까? 간단하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언론이 선수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언론이, 언론인이 직접 링에 올라 선수로 뛰기 시작하면 언론 보도는 더 이상 객관성, 공정성을 담보하는 독립적 목소리가 아니라 특정 정파, 특정 집단, 특정 가치를 대변하는 목소리로 받아들여질 것이기 때문이다. 야구 중계로 치면 중계진이 특정 팀을 대놓고 응원하는 편파 중계가 되는 셈인데, 상대 팀 팬들이 그들의 편파 중계에 귀 기울일 이유가 없다. 오로지 자기편만 생각하는 중계이기 때문이다.

언론인의 선거 출마에 일정한 사퇴 시한을 법으로 정해 놓고, 여기에 언론계 자체적으로 더 엄격한 윤리 기준을 만들어 둔 것은 어떻게든 언론과 정치 사이에 방화벽을 만들어서 언론이 정치라는 블랙홀에 빨려들지 않게 하려는 몸부림이다. 언론인이 감독이나 심판 행세를 해도 안 되지만, 적어도 어느 한쪽을 위해 뛰는 선수는 아니라는 시청자와 독자의 믿음을 배신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다들 알다시피 이런 윤리적 비난에도 불구하고 갈 사람은 간다. 박근혜 대통령 시절, 그날의 뉴스 방향을 정하는 보도국 오전 편집회의에 참석했던 공영방송사 부장이 불과 몇 시간 뒤에 청와대 춘추관에서 기자들 앞에 서는 일이 있었다. 특정 정권 때만의 일이 아니다. 현 정부 들어서도 이런 일은 반복되고 있다. 공직 선거 후보로 나서는 것에 대한 법령상의 제한을 뺀 나머지 윤리 기준들은 강제력이 없다. 그러니 후배들이 비난 성명을 내더라도, 심지어 자신이 몸담았던 언론사가 자신을 비판하는 기사를 내보내도, 맘먹고 청와대나 정치권으로 옮겨가는 사람을 막지는 못한다. 

   
▲ 정권을 막론하고 언론인들의 정계 진출은 반복되고 있다. 지난해 2월 강민석 중앙일보 부국장이 청와대 대변인으로 직행하며 논란이 됐다. 박근혜 대통령 시절에는 오전 편집회의에 참석했던 민경욱 KBS 문화부장이 몇 시간 뒤 청와대 신임 대변인으로 기자들 앞에 서는 일이 있었다. ⓒ SBS

가는 사람을 막지 못한다고 비판 성명을 쓰는 일이 무의미한 것일까? 아니다. 떠나는 사람에게는 통과의례에 불과할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남아 있는 사람들이다. 이런 비판 성명이나 기사는 떠나는 이들을 향한 것만은 아니다. 남아 있는 이들이 시청자와 독자에게 “언론에는 이런 정치적 독립성이라는 윤리 기준이 있습니다”라고 얘기하는 것이다. 최소한의 유예 기간을 두고 정치권으로 옮겨가야 한다는 윤리 규범을 어기면서 떠나는 사람이 더는 예전 같은 자신들의 동료 언론인이 아니라는 것을 주지시키는 계기도 된다. 제일 강한 강제력을 갖는 형사 관련 법률도 항상 준수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형사 법규가 무의미한가? 그렇지 않다. 법 위반을 단죄하는 과정을 통해서 사회적으로 법의 존재는 재확인된다. 언론의 정치적 독립성이라는 윤리 기준도 마찬가지다. 

선거철이 지난 지가 언제인데, 이렇게 언론인의 정치 진출 문제를 장황하게 이야기한 이유를 설명할 차례가 되었다. 요즘 우리 언론, 그리고 일부 언론인의 SNS를 보고 있노라면 이런 모든 정치와의 독립성에 대한 얘기가 너무 허무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어쩌면 너무 멀리 와버린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우리 사회의 언론과 언론인이 정치라는 블랙홀에 너무 가깝게 다가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언론과 정치 사이의 경계가 완전히 허물어지기 직전처럼 보이기도 한다.

언론인이 선수가 되면 ‘편파 중계’를 하겠다는 것

처음 언론에 입문했던 1991년부터 생각해보면, 사회 전체적으로 정치적 각성 정도가 지금처럼 높았던 적은 없는 것 같고, 그만큼 정치라는 블랙홀의 흡인력도 강해졌다. 손혜원 전 의원 사건이나 조국 전 장관 사건 같은 경우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거의 모든 쟁점에서 적지 않은 언론인들이 SNS에서 주전 선수 수준의 활약을 펼친다. 언론인의 언어라기보다는 정치인이나 정치 팬덤의 언어를 구사한다. 정치적으로 반대쪽에 선 언론에 대한 혐오 표현이 난무하고, 저널리즘적 기초를 완전히 무시한 주장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놓는다. 불편한 기사는 사실 확인도 없이 ‘가짜뉴스’로 규정하고, 반박하기 어려운 보도에는 어떤 배경과 의도가 있다는 식의 ‘묻지마’ 음모론을 아무렇지도 않게 펼친다.

개별 언론인이 자신의 정치적 신념에 압도된 나머지 스스로 언론인의 역할과 의무, 한계에 대한 전통적 윤리 기준을 마음대로 고쳐버린다면, 그 부담은 결국 언론계 전체에 돌아간다. SNS에서 선수로 뛰는 언론인에게 관중은 열광하며 갈채를 보낸다. 그러지 않는 언론인들에게는 대열에 동참하라는 무언의 압박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중립적 위치에 있거나 한발 떨어져서 보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선수로 뛰는 언론인은 그저 정파적 언론인일 뿐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경기에 나선 선수의 구성이나 경기하는 방식만 조금씩 달라질 뿐이다.

   
▲ 언론인이 직접 링에 올라 선수가 되면 언론 보도는 더 이상 객관성, 공정성을 담보하는 독립적 목소리로 받아들여질 수 없다. 결국 부담은 언론계 전체에 돌아간다. ⓒ Pixabay

몇몇 언론이 지나치게 정치적 프레임에서 기사를 쓰는 것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물론 요즘 들어 그 정도가 좀 심해졌다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서로 반대쪽 언론 탓을 하지만 그것으로 자신의 행위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지금 언론이냐 아니냐에 대한 본질적인 정체성에 대한 문제를 얘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 언론이 특정 사안을 어떤 정치적 프레임에서 보도를 하면 어떤 언론은 반대의 정치적 프레임으로 방어에 나선다. 역시 선수가 되는 길이다. 언론의 영역을 뛰어넘어 스스로 국정 운영의 일부를 담당하는 것이다. 요즘 검찰 관련 보도나 SNS 글을 보면 이런 일이 특히 광범위하게 일어난다. 좀 어이가 없는 일은 프레임의 방향조차 왔다갔다 한다는 것이다. 윤석열 검찰총장을 두고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상황은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일관성 없는 기준은 원칙이 아니다

이런 문제가 지금의 한국 언론에는 구체적인 취재 방식을 둘러싼 윤리적 문제보다 훨씬 중요한 상황이 됐다. 남의 사무실에 몰래 들어가서 자료를 훔치거나, 취재원에게 예의를 지키지 않고 품위 없이 행동하거나, 사실 확인이 부족한 상태에서 성급하게 기사를 써서 오보를 내거나, 출입처 지원으로 공짜 취재를 하는 등등의 문제들도 중요하다. 하지만 이런 것들 하나하나가 언론의 ‘본질 자체’를 뒤흔들 정도는 아니다. ‘나는 언론인인가, 선수인가?’ 정말 심각하게 자문해볼 시점이다.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보도를 가짜뉴스로 몰아붙이거나 기자를 공격하는 일이 수시로 벌어진다. 정말 잘못이 있는 기사를 비판사는 것이라면 언론 발전에도 도움이 되는 일이다. 하지만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론윤리를 지키지 않았다고 공격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언론윤리를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언론윤리가 이렇게 고무줄 잣대가 되는 것은 참 당혹스러운 일이다.

이 글은 언론의 독립성에 대한 것이다. 언론이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버려야 한다는 말까지 나오는 것을 보면 좀 심각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 글은 필자가 언론중재위원회가 발행하는 계간지 「언론중재」 2020년 겨울호 "Journalism & Ethics" 코너에 "직접 링에 오른 언론인과 편파 중계에 대해"라는 제목으로 쓴 글인데, <단비> 독자들을 위해 「언론중재」 편집팀의 동의를 받아 전재한다.

편집 : 김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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