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영 칼럼]

▲ 김지영 교수

'정치는 생물'이라는 비유가 있다.

살아 움직인다는, 그리고 언제라도 변할 수 있다는 뜻으로 쓰곤 한다. 오늘날에 더 적절한 대상을 찾아 응용한다면 '미디어야말로 생물'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디지털 미디어만큼 활발하게 살아 움직이고 빨리 변화하는 문명적 요소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하루가 다르게 폭을 넓혀 정착해온 디지털 미디어는 짧은 기간에 인류문명의 주류로 자리를 잡았다.

"이 세계의 흐름은 경제와 미디어가 주도하고 있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미디어 생태계'라는 말도 이젠 매우 자연스러운 단어로 굳어졌다.

하지만 그 변화의 속도나 폭만큼이나 미디어 생태계에서는 큰 부작용 또한 더불어 발생한다. 가짜뉴스(허위조작정보)가 대표적이다. 가짜뉴스는 지난 2016년 트럼프와 힐러리가 경쟁한 미국 대선이 확산의 큰 계기가 됐다고 하지만, 이제 와서 보면 당시 가짜뉴스는 낭만적이라고까지 할 만한 수준이다. 그 뒤로 가짜뉴스는 세계평화와 민주주의를 해치는 흉기로 변했다. 심층 가짜뉴스(deep fake news) 동영상도 나란히 등장했다.

▲ 가짜뉴스(허위조작정보)의 부작용은 세계 평화와 민주주의를 해치는 수준으로 커졌다. ⓒ Pixabay

이런 부작용에 대한 사람들의 대응은 충분히 신속하고 효율적이지는 못하다. 그럼에도 미디어 생태계의 균형을 최소한 유지할 정도로 함께 변화하면서 맞서고 있다. 최근 미국의 사례는 상징적이다.

아짓 파이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 의장은 지난 10월 "페이스북과 유튜브, 트위터 등 소셜 미디어 기업이 자사 서비스를 통해 전달한 거짓 주장이나 가짜 뉴스 등에 대해 법적 책임을 지도록 법을 바꾸겠다"고 밝혔다. 미국은 지금까지 인터넷에 게재된 내용 때문에 명예훼손이나 경제적 손실 등이 발생한 경우, 내용을 올린 이에게 책임을 지우고, 이를 서비스한 기업에는 면책 특권을 부여했다.

이는 미국의 디지털 미디어 생태계에서는 큰 변화의 바람이다. 수정헌법의 '표현의 자유'에 매우 집착하는 미국은 유럽과 달리 그동안 디지털 미디어에 대한 타율적 규제, 즉 법적 규제에 대해서는 '말도 꺼내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일반적으로 가짜뉴스에 대한 대응책을 압축하자면 3가지다. 법적규제와 팩트체킹 시스템 구축, 그리고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미국은 그동안 법적 규제보다 팩트체킹 시스템 구축과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과 같은 자율규제에 초점을 두었던 것이다.

디지털 미디어에 대한 법적규제는 독일이 대표적이다. 독일은 세계 최초로 2018년부터 '소셜 네트워크의 법 시행개선을 위한 법률'을 시행해오고 있다. 이 법은 명백하게 불법인, 특히 차별과 혐오를 조장하는 게시물을 방치하는 소셜 미디어 사업자에 대해 최대 5천만 유로(약 640억원)의 벌금을 부과하고 있다. 독일이 많은 반대를 물리치고 이 법을 제정해 시행하는 데에는 2차대전 당시 히틀러 정권이 인종 차별정책을 자행한 데 대한 역사적인 반성의 의미가 있다.

독일의 법 제정 직후 EU(유럽연합)가 일반개인정보보호법(GDDR)을 시행해 데이터 보호에 나섰다. 영국과 프랑스 의회는 가짜뉴스 관련법 제정을 추진했으나 막바지에 부결됐다. 독일처럼 강력한 규제를 담은 관련법은 싱가폴과 호주가 제정해 시행 중이다. 관련법 제정에 실패한 프랑스를 비롯해 핀란드 등 유럽의 일부 국가는 미디어리터러시 교육을 정규학교 교과목에 반영하고 의회에서 관련 예산을 대폭 늘렸다.

우리나라도 지난 20대 국회 때 관련법 제정을 논의했으나 반대에 부딪쳐 논의는 수그러들었고 제출된 관련법안 20개도 지금은 폐기됐다. 정부는 지난 8월 미디어리터러시 교육을 중심으로 한 '디지털 미디어 소통역량강화 종합계획'을 발표했다. 당시 발표내용을 보면 문제인식과 과제내용은 매우 타당했다. 하지만 과연 언제 실행할 수 있을지는 짐작하기가 어려웠다.

미디어 생태계는 그 흐름이 변해 가짜뉴스에 대한 타율규제 움직임이 커지고 있으며 미디어리터러시는 보편적 공교육으로 대두됐다. 우리 정부와 의회도 이같은 변화 흐름에 맞춰 관련법 제정과 미디어 교육 시행을 강력하게 추진해야 한다. 그것이 오늘날의 미디어 생태계 흐름 속에서는 '언론을 규제하지 않고 지원하는 정부 정책'의 참모습이다.


이 칼럼은 '신문윤리' 회보 11월호에 게재됐습니다.

편집 : 김은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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