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석태 칼럼] 법원은 ‘불법행위’ 판단…논란의 ‘비동의 녹음’

전화 통화 녹음을 둘러싼 분쟁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기자는 물론 언론을 공부하는 사람들조차 이런 음성을 둘러싼 법적 쟁점을 잘 모르고 있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법원의 판결은 이미 상당히 확고하게 비록 자기가 참여한 대화라도 상대방의 음성을 동의 없이 녹음할 경우 불법행위로 보고 있다. 통화 자동녹음 기능을 쓰는 사람도 있는데, 그럼 도대체 불법행위를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다는 말일까?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볼 문제다.

이 글은 언론중재위원회가 발행하는 계간지 「언론중재」 가을호의 'Journalism & Ethics' 코너에 실린 것이다. 발행처의 양해를 얻어 <단비뉴스> 독자를 위해 게재한다.

   
▲ 심석태 교수

이 글을 읽는 사람 중에 전화 통화를 녹음해보지 않은 분이 얼마나 될까? 또 녹음을 해 본 사람 중에 ‘지금부터 녹음할게요’라고 상대에게 알려준 경우는 얼마나 될까?

국내 스마트폰 시장점유율을 보면 국내 제조사들이 대체로 80%를 넘나든다. 안드로이드 운영 체제를 탑재한 제품이다. 그중에서도 한 제조사가 압도적이지만, 어쨌든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은 아이폰과 달리 통화 녹음 기능을 기본으로 갖추고 있다. 스마트폰 사용자 중에는 통화 녹음 기능 때문에 국산 스마트폰을 쓴다는 사람이 많다. 아이폰도 별도 앱을 사용하면 녹음이 가능하긴 하지만 이용자들끼리 무슨 앱을 써야 녹음이 잘 되는지 관심사가 될 정도다. 그만큼 스마트폰으로 통화 녹음을 많이 한다는 얘기이다.

기자들도 국산 스마트폰을 많이 쓰는 이유 중의 하나가 통화 녹음 기능 때문이라고 한다. 통화 녹음 기능을 상시 활성화해놓은 기자들도 많다. 그냥 통화를 하다가 녹음 버튼을 누르기 귀찮고, 자칫 잊어버릴 수도 있으니 아예 모든 통화를 녹음하는 것이다.

녹음은 무엇보다 기억을 돕는 훌륭한 보조 수단이다. 통화 내용을 일일이 메모하기는 힘들기 때문에 일단 음성 파일로라도 남겨놓는 거다. 통화가 끝난 뒤 다시 듣고 정리할 수도 있다. 요즘같이 언론보도를 놓고 분쟁이 많아지는 세상에서 이런 통화 녹음은 기자가 그냥 생각나는 대로 보도한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해 취재하고 기사를 썼다는 근거가 된다. 매체에 따라서는 녹음된 취재원의 음성을 그대로 보도에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 녹음할 때 상대의 동의를 받는다면 상관이 없을 텐데, 그런 동의 절차를 생략하고 녹음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게 쟁점이 된다. ⓒ 이정헌

녹음은 훌륭한 취재 보조 수단…분쟁 대비에도 도움

스마트폰이 이렇게 널리 보급되기 전, 미국의 한 유명한 탐사 전문 기자의 특강을 들었는데, 그는 자기의 취재 배낭을 열어서 내용물을 보여주었다. 취재 노트와 노트북 컴퓨터, 약간의 인스턴트 식품, 비옷, 해열제, 그리고 여행 중에 읽을 책도 있었다. 그런데 그가 마지막으로 보여준 건 소형 카메라와 녹음기였다.

그는 녹음의 장점 두 가지를 얘기했다. 우선 녹음을 해놓으면 기사를 정확하게 쓸 수 있게 되고, 나중에 취재원이 말을 뒤집을 때도 대처하기 쉽다는 것이다. 인터뷰를 한 뒤 기사를 썼는데도 취재원이 허위 보도라며 소송을 낸 적이 있었는데, 그에게 연락해서 인터뷰를 녹음했던 사실을 상기시켜주자 바로 소송을 취하했다는 사례가 인상적이었다.

더 인상적인 얘기는 다음 대목이었다. 누군가를 만날 때 녹음기를 탁자 위에 올려놓으면 그때부터 그 대화가 공식적인 것이 된다는 얘기였다. 현장에는 두 사람만 있지만, 녹음기의 존재가 제3의 인물이 대화를 듣고 있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낸다는 말이었다. 녹음을 하면 자신과 취재원 모두 그 대화를 공식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더 신중하고 책임 있게 행동하게 된다고 했다. 당연히 이런 녹음은 상대방의 동의를 받고 하는 건데, 취재원이 거부감을 갖지 않게 녹음기를 꺼내놓는 것이 중요한 ‘취재 기법’이라고 했었다.

덤으로 사진 얘기도 소개하면, 그는 취재원과 인터뷰를 마친 뒤 꼭 촬영을 한다고 했다. 자기가 찍은 사진을 기사에 쓸 수 있어서 좋고, 그날 인터뷰를 실제로 했다는 증거도 되고, 인터뷰 분위기를 기억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요즘이야 만능인 스마트폰이 있으니 카메라와 녹음기를 따로 가지고 다닐 필요도 없고, 조건이 참 좋아진 셈이다.

이 미국 탐사 기자가 얘기한 녹음의 중요성과 효과는 국내 기자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전화 취재가 많은 요즘, 기자들이 전화 통화를 녹음하는 것도 같은 이유로 보면 되겠다. 그런데 이 사례처럼 녹음할 때 상대의 동의를 받는다면 상관이 없을 텐데, 그런 동의 절차를 생략하고 녹음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게 쟁점이 된다. 이건 기자들 말고도, 전화기의 녹음 기능을 널리 사용하는 일반인들에게도 해당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런 통화 녹음의 문제를 법적 측면과 윤리적 측면으로 나누어 생각해보자. 좀 딱딱한 얘기지만 꼭 알아둘 필요가 있는 것이라 법적인 측면부터 살펴본다.

일상화된 통화 녹음, 법적·윤리적 문제는 어떻게 되나?

통신비밀보호법은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하거나 듣는 것’을 처벌한다. 몰래 녹음한 내용을 공개해도 똑같이 처벌한다. ‘삼성 X파일 사건’이 바로 다른 사람이 몰래 녹음한 음성을 보도했다가 처벌받은 사례다. 그런데 처벌 대상은 ‘타인 간의 대화’에 대한 도청이나 녹음으로 한정된다. 자기가 참여한 대화를 녹음하는 것은 처벌되지 않는다. 기자가 취재원과 통화를 녹음한 것도 여기에 해당한다.

통화 녹음 관련해서 좀 특이한 사례가 하나 있었다. 통화를 마친 취재원이 종료 버튼을 누르지 않아 전화가 연결된 상태에서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는 목소리가 고스란히 기자의 전화기에 녹음된 사안이었다. 대화 내용을 보도했다가 기자가 통비법 위반으로 기소됐는데, 대법원은 유죄 판결을 확정했다. 기자가 취재원과의 대화를 끝낸 시점 이후 전화기로 들려온 대화는 ‘타인 간의 대화’라는 것이다. 대화 내용이 공적 관심사였던 점을 고려하지 않았다, 앞으로는 통화가 끝나고 재빨리 종료 버튼을 안 누르면 큰일 나는 거냐 등등 말이 많았지만 어쨌든 통화가 끝난 뒤에 들려온 것이 ‘타인 간의 대화’인 건 분명해 보인다.

민사 쪽은 상황이 다르다. 사람들의 큰 주목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상대방 동의를 받지 않고 통화를 녹음한 것을 민사상 불법행위로 보는 판례가 쌓이고 있다. 인간 존엄성과 행복추구권을 규정한 헌법 제10조를 근거로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음성이 자기 의사에 반하여 함부로 녹음되거나 재생, 녹취, 방송 또는 복제·배포되지 않을 권리를 갖는다”며 몰래 통화를 녹음해서 사용한 것에 대해 손해배상책임을 묻는 것이다. 녹음 내용을 녹취록으로 만들어서 다른 사람과의 민사소송에 증거로 낸 경우는 물론 언론보도와 관련해서도 같은 판결이 나왔다.

지난 2017년 뉴스타파가 전 KBS 보도국장과 통화한 것을 녹음해서 보도에 사용했는데 2019년 대법원에서 음성권을 침해했다는 판결이 확정되었다. 나중에 보도본부장까지 지낸 전직 KBS 보도국장에게 재직 중에 일어났던 야당 대표실 도청 의혹에 소속 기자들이 연루되었는지 물어봤는데 그걸 취재인 줄 몰랐다는 주장을 법원이 받아들였고, 더 근본적으로는 기자의 ‘녹음 행위’ 자체도 불법행위로 판단했다. 서울중앙지법과 서울고법이 일관되게 음성권 침해를 인정했고, 대법원은 이른바 ‘심리불속행’ 상고 기각 결정을 했다. 아예 따져볼 법적 쟁점이 없다고 본 셈이다.

이런 일련의 판결을 보면, 기자들이 정확한 보도를 위해 메모 용도로 통화를 녹음하는 것도 일단 ‘불법행위’가 된다. 일반인들이 통화를 녹음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니 지금 한국 사회 구성원 상당수가 민사상 불법행위를 별 생각 없이 저지르고 있는 셈이다. 헌법에 보장된 인격권을 침해하면서 말이다.

언론 윤리적 측면도 생각해보자. 기본적으로 취재원을 속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언론윤리의 기본 원칙 중에 ‘속임수 취재’를 하지 말라는 대목이 있다. 누군가를 속이는 건 굳이 칸트를 불러오지 않더라도 ‘원칙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필요하다면 상대방에게 전화 통화를 녹음하겠다고 양해를 구하면 될 일이다. 정확한 보도를 위해 녹음을 좀 하겠다, 대신 음성을 사용해야 할 일이 있으면 다시 제대로 인터뷰를 하겠다고 하면 동의해주지 않을까?

기자와 취재원이 서로 통화를 할 사이라면 어느 정도 이미 안면을 튼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럼 어디까지가 사적 대화이고 어떤 것이 공적인 취재인지 서로 혼란스러울 수 있다. 정말 사적 대화라고 생각하고 무책임한 말을 할 수도 있다. 때문에 상대방을 부지불식간에 무장해제시켜서 뭔가 드러나지 않았던 사실을 털어놓게 만들고 싶겠지만, 그래도 이런 대화가 ‘취재’라는 공적 상황이라는 점을 인지하게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 기자와 취재원 모두 신중을 기해 대화하게 되고, 거기서 나온 얘기의 어떤 부분을 기사로 썼다고 ‘속았다’거나 ‘확인 없이 한 말’이라고 보도를 공격하지 못하게 만든다.

이렇게 일일이 동의를 받고 녹음을 하라고 하면 취재를 제대로 못 한다는 소리가 나올 수 있다. 언론이 권력 감시를 제대로 할 수 없다는 반박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작정하고 비밀을 숨기려는 사람은 기자와 통화를 하지도 않을 것이고, 통화에 앞서 녹음을 안 한다고 얘기해도 믿지 않을 것이다. 아예 도청하는 게 아니라면, 통화를 하면서 녹음 여부를 알리고 말고는 사실 아무런 변수가 되지 못한다는 말이다.

실제로 녹음이 문제가 되는 건 몰래 녹음한 것을 녹취록으로 만들든, 음성을 그대로 방송하든, 그 녹음을 사용했을 때이다. 기자가 정확한 보도를 위해 녹음을 해서 기사 작성에만 사용했다면 비록 상대방이 ‘녹음 자체’를 음성권 침해라고 소송을 내더라도 법원이 취재원의 손을 들어주기 어려울 것이다. 뉴스타파 판결에서도 기자가 녹음 한 것부터 불법행위라고 인정하면서도 음성을 변조하지 않고 내보낸 것을 지적하며 위법성 조각 사유를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전에도 몰래 녹음을 한 뒤 음성 변조해서 방송한 사건에서는 공익성을 이유로 면책을 인정한 판결들이 있었다. 적어도 언론인의 경우, 정확한 보도를 위해 기록용으로 녹음을 했다면 동의를 받지 않았더라도 책임을 면할 가능성이 크다.

비밀 녹음에 대한 국내 언론사들의 윤리 규정은 ‘원칙적 금지’에 ‘부정과 비리 취재를 위해 불가피한 경우는 일정한 절차를 거쳐 허용’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실제 기자들의 일상적인 녹음 관행과 맞지 않은, 그야말로 원칙적인 규정들이다. 아예 ‘법을 지킨다’는 원칙적인 선언을 해놓은 곳도 있는데, 어쩌면 그쪽이 더 현실적일 수도 있겠다. 이 말이 민사 판례도 포함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 일련의 판결을 보면, 기자들이 정확한 보도를 위해 메모 용도로 통화를 녹음하는 것도 일단 ‘불법행위’가 된다. ⓒ PIXABAY

대화 녹음에 대한 법적 규제, 나라마다 큰 차이

외국은 어떨까. 뉴욕타임스와 BBC를 보자. 전화 녹음만이 아닌 모든 녹음을 한꺼번에 규정하고 있는데, 뉴욕타임스는 모든 대화 참가자의 동의를 받지 않은 녹음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다만 비밀 녹음이 합법적인 곳에서는 책임자들이 예외를 인정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미국 연방법은 우리 통비법과 마찬가지로 타인 간의 대화가 아니면 동의 없이 녹음해도 불법이 아니다. 하지만 캘리포니아를 비롯한 일부 주에서는 모든 대화 참가자의 동의를 받지 않은 녹음을 범죄로 본다. 뉴욕타임스의 윤리 기준에는 이런 입법적 혼란이 녹아있는 느낌이다.

BBC는 정확성을 위한 기록의 한 방법으로 녹음을 제시하면서 방송 목적이 아닌 녹음은 아예 별도로 취급한다. 이렇게 기록을 위해 ‘동의 없이’ 녹음을 할 경우에는 프라이버시 침해를 주의하고, 그런 녹음을 나중에 함부로 방송에 사용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영국 법제는 대화의 당사자가 개인적 용도로 녹음하는 것은 다른 참가자의 동의를 요구하지 않는다. BBC 윤리 기준은 이런 영국 법제를 반영하고 있는 셈이다.

프랑스나 독일처럼 동의 없이 대화를 녹음하는 것을 범죄로 규정한 나라에서는 이런 문제가 달리 논의될 여지가 없다. 다만 우리처럼 형사법에서 금지하지 않은 ‘자기 대화 녹음’이 민사적으로 불법행위가 되는 경우는 다소 혼란스러워 보이는 측면이 있다. 일반인들이 개인적인 용도로, 기자들이 정확한 보도를 위한 기록용으로 녹음하는 행위도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게 맞는 것인지, 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어쨌든, 평생 기자로 일했던 고위 전직 언론인이 현직에 있던 때 벌어진 공적 관심사와 관련한 취재 전화를 사적 대화로 알았다며 음성권 침해 소송을 낸 것은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다. 반면, ‘불문곡직’ 모든 통화를 녹음했다가 적당한 부분을 잘라서 음성변조해서 사용하면 문제없다고 생각하는 것도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단순히 멘트 확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취재의 맥락’을 분명히 한 상태에서 문답이 오가는 것이 책임 있는 취재라는 걸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편집 : 이정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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