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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에 써도 되는 ‘기술’의 한계
2020년 07월 22일 (수) 16:38:38 심석태 교수 shimpro1@naver.com
언론의 취재 방식이 기사가 되는 세상이다. 이제는 어떤 방식으로 취재를 했는지도 대중의 관심 영역에 들어간 것 같다. 그럼 도대체 기자를 비롯한 언론인이 취재에 동원해도 되는 기술의 한계는 무엇일까?
아래 글은 필자가 언론중재위원회가 발행하는 「언론중재」 2020년 여름호의 “Journalism & Ethics” 코너에 “취재의 기술”이라는 제목으로 쓴 글이다. 단비 독자들을 위해 「언론중재」 편집팀의 동의를 받아 전재한다.

   
▲ 심석태 교수

새로운 출입처에 나가기만 하면 곧 사람들과 흉금을 터놓는 사이가 되고 깜짝 놀랄 기삿거리를 찾아와 같은 회사 동료들조차 혀를 내두르게 만드는 후배 기자가 있었다. 기삿거리라고 다 같은 게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 다 알려질 것을 조금 일찍 전하는 것과 당사자들이 드러내길 꺼리는 문제를 발굴해 내는 건 차원이 다르다.

그 후배의 취재 방식이 궁금해서 물어본 적이 있다. 취재를 잘하는 무슨 기술이라도 있냐고. 평소 술도 잘 못 마시는 그의 대답은 이랬다. “무슨 특별한 기술이 있어요. 그냥 인사 잘하고, 자주 연락하고 그러는 거죠.” 사실 무슨 대단한 취재의 기술이 있을 리야. 지금 돌이켜보면 상대방을 편하게 만드는 특유의 표정, 그리고 한 번 한 약속은 중요하게 여기고, 종종 선배 앞에서 자기 고집을 쉽게 꺾지 않는 우직함이 그 나름의 취재 기술이 아니었을까. 어쨌든 처음 만난 사람의 입을 며칠 만에 잠금 해제하는 건 대단한 기술임이 분명하다. 

‘취재 기술’ 핵심은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

공개하면 자기 목이 날아갈 수도 있는 문건을 떡하니 기사에 참고하라며 넘겨주게 만드는 그런 기술을 터득하지 못한 채 나는 현역을 떠났다. 현장에 더 오래 버티고 있었다고 해도 그런 기술을 터득하길 기대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누구나 그런 능력을 갖출 수는 없다. 하지만 열정이 있는 기자일수록, 자신도 결정적 취재를 해보고 싶은 욕구가 있다. 기자들의 본능이라고나 할까.

이 때문에 누군가 특종을 하면 도대체 어떻게 저런 취재를 했는지 화제가 되는 곳이 언론계다. 대개는 기사만 봐도 취재를 어떻게 했을지 대충은 그림이 그려진다. 하지만 어떻게 취재했는지 정말 감도 잡기 어려운 경우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모든 이의 취재 기술이 다 부러운 것은 아니다. 막강한 취재력을 뽐냈지만 뭔가 개운치 않은 느낌을 주는 경우도 있었고, 대체로 그런 경우는 언젠가 크고 작은 탈이 났다.

오랫동안 관계를 이어오던 사람이 어느 한순간 결정적인 취재원이 되는 극적인 경우도 있다. 몇해 전, 수사를 받던 한 기업인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전 마지막으로 알고 지내던 경향신문 기자와 장시간 통화를 했다. 그는 그 기자에게 여러 가지 사연을 털어놓고 보도를 부탁했다. 다른 언론사들이 그 기업인의 극단적 선택을 보도하고 있을 때 경향신문은 그와의 통화 내용을 집중적으로 보도했고, 정치권의 여러 거물들이 수사 대상이 됐다. 그 기업인이 극단적 선택을 앞둔 순간 어떤 특정 기자를 떠올렸다는 건, 그만큼 평소 그 기자를 신뢰했었다는 얘기일 것이다. 나도 오래전부터 잘 알고 지내던 기자인데, 이 사건 보도 이후 그에 대한 마음속 평가도 달라졌다. 그로서는 보도가 진행되는 동안 적지 않은 마음의 부담을 느꼈겠지만, 그 정도로 사람의 마음을 살 수 있다면 그의 취재 능력은 단순한 ‘기술’의 경지를 넘었을 것이라 짐작해본다.

   
▲ '취재 기술' 핵심은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이다. 취재원과의 평소 신뢰 관계가 핵심이다. ⓒ Pixabay

이 사건은 도중에 전혀 뜻밖의 취재 윤리 사건으로 번졌는데, 이 또한 취재원과 기자의 신뢰 문제를 돌아보게 하는 것이었다. 경향신문이 이 사건을 집중적으로 보도하던 도중에, JTBC가 갑자기 이 기자와 숨진 기업인 사이의 통화 녹음을 입수했다며 경향신문과 유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숨진 기업인의 육성을 방송한 것이다. 경향신문이 통화 녹음 파일을 검찰에 제출하기 전 전문가에게 포렌식 작업을 맡겼는데, 이 전문가가 친분이 있던 JTBC 기자에게 파일 복사본을 건넨 것이다.

포렌식 전문가가, 자신의 직업적 명성이 위험에 처할 수도 있는 모험을 하게 만든 것은 평소 갖고 있던 그 기자와 소속사에 대한 신뢰였을 것이다. 기자로서는 그 취재원과의 신뢰라는 자산을 이 사건 하나에 모두 헐어 쓴 셈인데, 과연 그럴 만한 일이었는지 지금도 의문이다. 더구나 모든 잠재적 취재원들에게 ‘기자와의 인간관계를 섣불리 믿지 말라’는 경고를 날린 셈이니 언론계 전체의 손실이 적지 않다.

취재원이 보내준 신뢰, 함부로 짓밟지 말아야

어떤 세계나 무대의 앞과 뒤는 다르다. 화려한 무대의 전면과 다르게 무대 뒤에서는 지루하고, 거칠고, 짜증 나는 일들이 수시로 벌어진다. 멋진 공연이 그저 만들어질 리가 없지 않은가. 언론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언론이 뉴스와 지면을 통해 보여주는 것은 꽃단장해서 무대에 올린 취재의 결과물뿐이다. 그런 결과물을 얻기 위해 어떤 취재의 기술이 동원됐는지는, 무대 뒤에서 벌어지는 준비 과정과 마찬가지로 거의 조명되지 않는다.

취재 과정이 조명되는 긍정적인 경우는 딱 한 가지, 특종을 해서 상을 받은 뒤 취재기를 쓸 때 뿐이다. 그런데 취재기에 등장하는 취재 경위와 취재 기술은 100% 사실일까?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나도 몇 차례 외부에서 특종상을 받고 취재기를 썼지만 항상 취재 경위를 솔직하게 밝히지 못했다. 취재원 보호와 관련이 되기 때문이다. 종종 아주 극적이어서 기사보다 더 재미있는 취재기를 읽은 적도 있지만 그렇게 믿음이 가지는 않았다. 큰 사건일수록 취재 경위를 더 밝히기 어렵기 마련이다. 어쨌든 이런 취재기도 공연으로 친다면 커튼콜과 같은 것이어서 여전히 공연 일부로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이번에 취재의 기술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게 만든 건 한 채널A 기자의 취재를 둘러싼 논란 때문이었다. 정작 채널A는 그 취재를 통해 기사를 쓰지도 못했는데 오히려 자신들의 취재행위가 사회적으로 큰 논란거리가 되어버렸다. 도대체 채널A 기자가 동원한 취재 기술은 어떤 문제가 있었던 것일까?

실제로 기자나 PD들은 교도소 등에 수감된 사람을 상대로 종종 취재를 시도한다. 아무나 접근할 수 없는 곳에 있는 취재원과 접촉해 숨겨진 진실을 들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에 부풀기도 한다. 그래서 수감자의 가족이나 변호인을 설득해 도움을 받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이번 채널A의 경우처럼 직접 취재 협조를 요청하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기도 한다. 취재라는 것이 결국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야 하는 것이라 기분이 좋도록 띄워주기도 하고, 비록 잘못을 저질러 수감돼 있지만 그래도 정의를 바로 세워서 사회에 도움이 되어야 하지 않겠냐는 비장한 글을 보내기도 한다.

검찰 수사와 별도로 채널A는 자체 진상조사를 했다. 보고서가 공개됐는데 모든 의문을 풀지는 못했다는 평가가 많다. 하지만 보고서는 해당 기자의 취재 방식에 대해 분명하게 몇 가지 취재윤리 위반을 인정했다. 수감 중인 이철 VIK 전 대표에게 보낸 편지에서 ‘과도한 수사가 이뤄질 것’이라고 한 것이나 ‘가족 수사’를 언급한 것, 검찰 고위 관계자와의 친분을 강조하며 통화 녹음파일을 들려줄 수 있다고 제안한 것, 특정 정치인에 대한 반감을 드러낸 것 등등이다. 물론 정밀하게 따지면 보고서에서 인정하지 않은 부분들에서도 취재윤리 위반 소지가 더 나올 수 있다. 이 부분은 검찰 수사를 통해 사실관계들이 더 드러난 뒤 판단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특히 일부에서 제기하고 있는 ‘대검이 기자와 공모해 이철 전 대표를 회유, 협박했다’는 부분은 이 보고서만으로는 최종 판단이 어렵다.

하지만 이미 인터넷에 공개돼 있는 편지글에 더해 진상조사 보고서에서 관련 기자들 사이의 통화 내용이 공개되면서 대체적인 취재 과정은 드러난 것으로 보인다. 이철 전 대표에게 몇 차례에 걸쳐서 보낸 편지글에는 영업을 위한 홍보용 브로셔를 보는 것처럼 민망한 취재 능력 자랑에서부터 취재윤리 위반으로 자체 판단이 내려진 ‘가족 수사’ 언급까지 위험 수위를 넘나드는 대목이 한두 곳이 아니다. 그저 민망할 따름인 부분과, 윤리적·법적 문제가 우려되는 부분이 뒤섞여 있다. 이철 전 대표의 대리인과 나눈 대화들은 정말 아찔하다. 기자는 도대체 왜 이렇게 무리했을까?

   
▲ 채널A는 5월 22일 '뉴스A' 클로징 멘트를 통해 최근 불거진 검언유착 의혹과 관련해 기자의 부적절한 취재행위가 확인됐다면서 시청자들에게 사과했다. ⓒ 채널A
언론의 취재 행위와 홍보대행사의 서비스는 분명히 다르다. 언론이 취재원의 말만 고분고분 받아적기를 바라는 시청자, 독자는 없을 것이다. 항상 공손하게 예의를 갖추는 데만 열중하고 눈치만 보다가는 제대로 사건의 이면을 취재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어떤 기술을 동원해서라도 취재만 하면 그만인 시대는 끝난 지 오래되었다. 만약 아직도 수십 년 전 선배들의 무용담이 통할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빨리 정신을 차려야 한다. 이제는 정상적인 취재를 해서 고위 공직자나 유력 인사의 비리를 밝혀내도 ‘취재 의도’에 문제가 없었는지를 따지는 세상이 되었다. 하물며 취재에 동원한 기술에 윤리적 문제가 있다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취재 기술 잘못 쓰면 기자가 취재 대상 돼

상당수의 기자는 취재원과의 모든 통화를 녹음한다. 취재원과의 오프라인 대화를 녹음하는 경우도 많다. 방송기자들은 몰래 촬영도 심심찮게 한다. 그런데 간과하는 게 있다. 기자, PD들만 그렇게 녹음하고 촬영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더구나 전 세계적으로, 보도 내용에 앞서 취재 과정을 갖고 문제를 제기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미 그렇게 되었다. 이제는 취재 과정조차 거의 투명하게 기록되고 공개된다는 걸 전제로 움직여야 한다. 꼭 이번 채널A 사건에서와 같은 무모한 취재 기술이 아니라 하더라도, 과거에 별문제 없이 넘어갔던 취재 기술도 광장에서 사람들 앞에 공개되어 집중 조명을 받아도 괜찮은지 다시 평가해봐야 한다. 취재 기술을 잘못 썼다가는 취재를 마치기도 전에 자기가 목덜미를 잡힌 채 무대 위로 끌려 올라갈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법적으로 허용되는 취재 방식이 어디까지인지를 생각해보게 하는 사례 하나를 소개한다. 몇 년 전 일인데, 한 신문기자가 인터뷰를 거부하는 취재원에게 “인터뷰에 응하지 않으면 지금까지 취재한 것을 다 써버리겠다”고 했다가 협박죄로 고소당했다. 1심에서 무죄 판결이 나왔는데 2심에서는 유죄가 선고됐다. 하지만 대법원이 무죄를 선고하면서 “기자가 취재한 것을 쓰겠다는 것을 협박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밝혔다. 기자가 취재한 것을 보도하는 바람에 보도 대상이 피해를 보는 일이 생긴다면 그것은 자신의 잘못에서 비롯되는 것이지 보도한 기자의 책임은 아니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하지만 처벌을 면한다고 해서 취재원에게 ‘취재한 것을 다 써버리겠다’고 거칠게 압박하는 것을 좋은 취재 기술이라고 권장하기는 어렵다. 이제는 취재 과정 자체가 그대로 생중계되기도 하는 상황이다. 지금은 인터폴 적색수배가 된 윤지오 씨에게 한 공영방송 앵커가 질문을 잘못했다가 혼이 난 적이 있다. 윤 씨는 그 뒤, 자신에게 한 기자가 전화를 걸어 몇 가지 불편한 질문을 하자 무례한 질문을 한다고 그 기자를 거칠게 몰아세우면서 전 과정을 유튜브로 생중계했다. 그 기자는 자신의 통화가 생중계된다는 사실을 알 리가 없었는데 약간 어이없어 하면서도 시종 침착한 어조로 질문을 이어갔다. 이 과정은 서민 교수의 책 <윤지오 사기극과 그 공범들>에 자세히 나와 있다. 서민 교수에 따르면 그 취재 과정 생중계의 승자는 전화를 건 기자였다. 끝까지 예의를 지키며 흔들림 없이 질문을 던졌기 때문이다. 그 기자가 ‘취재한 것을 다 써버리겠다’고 압박을 하거나, 혹은 ‘가족’ 문제나 수사 가능성을 언급했더라면 어떤 상황을 맞았을지 생각해보라.

복잡하고 미묘해 보이던 일들도 시간이 흐른 뒤 되돌아보면 본질적으로는 비교적 단순하다. 채널A의 그 기자도 이렇게 자신의 취재 과정이 공개될 줄 알았다면 편지에 그런 민망하고 거친 내용을 줄줄이 담았을까? 세상에 비밀이 없다는 것이 취재원 쪽에만 적용되는 말이 아니다. 이젠 취재 과정도 언제든 드러날 수 있고, 심지어 중계되기도 하고 다른 언론의 취재 대상이 되기도 한다. 세간의 관심을 온당하게 견뎌낼 수 있는 취재 기술을 더 갈고 다듬을 수밖에 없다.


편집 : 윤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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