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발언대]

▲ 윤재영 PD

어릴 때 엄마를 따라간 목욕탕에서 열탕은 한 번 만에 들어간 적이 없다. 발 한쪽을 담가봤다가 뜨거움에 화들짝 놀라기도 했다. 동네 목욕탕은 10년 전부터 지금까지 목욕 요금으로 줄곧 4천원을 받았다. 주변에 새 목욕탕이 생기고 사람들은 그리로 빠져나갔다. 신설 목욕탕 요금이 8천원이나 됐지만, 찜질방 말고도 여러 편의시설을 갖춰 놓았기 때문이다. 오래된 동네 목욕탕의 경쟁력이란 싼 요금밖에 없다. 허름한 목욕탕 탈의실에는 웃풍이 들어와서 선선하다 못해 춥다. 그런데도 이 목욕탕에 노곤하게 피로를 푸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다. 하나같이 얼굴에 주름이 많고 손이 거친 사람들이다.

목욕탕은 밀폐된 공간이라 비말에 취약하다. 실제 코로나 감염이 목욕탕에서 여러 차례 일어났다. 코로나 감염 위험에도 목욕탕에 가는 이유는 누군가에게 목욕이 사치가 아니라 생존과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욕조 없는 집, 온수가 나오지 않는 집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얘기다. 대중목욕탕이 불편하고 위험해도 가야 하는 서민이 있고, 2.5단계에도 목욕탕을 운영해야 하는 영세업자가 있다. 

오늘날 옷차림이나 식생활의 빈부 격차는 어느 정도 해소됐다. 반면 주거시설, 특히 화장실만큼은 가난한 자와 부자를 가르는 척도가 된다. 영화 <기생충>에서는 집 화장실을 계급의 공간으로 나타냈다. 기정은 박 사장네 가족이 집을 떠났을 때 박 사장 집에서 오붓하게 목욕을 즐긴다. 정작 기정과 기우의 집 화장실은 반지하에서 계단을 올라가 겨우 변기에 앉을 수 있는 낡고 허름한 공간이다. 문광이 사는 지하실 화장실은 화장실 문도 따로 없이 변기와 침대가 한 공간에 있다. 영화 속 현실을 묘사하는 방식은 그야말로 ‘현실’적이다. 현실 속에서도 ‘화장실 냄새’ 곧 가난의 냄새를 없애기란 쉽지 않다.

▲ 영화 <기생충>에는 세 가족이 등장한다. 기택(송강호)네 가족, 박 사장(이선균)네 가족, 박 사장의 가정부인 문광(이정은)네 가족이다. 이들 가족의 계급이 잘 드러나는 공간이 바로 화장실이다. ⓒ 영화 <기생충>

코로나 방역대책으로 사람들은 각자 집으로 내몰린다. 코로나 시대에 주거는 생존과 직결된다. 에너지시민연대가 조사한 2020년 겨울철 에너지빈곤층 실태에 따르면 조사 가구의 63%가 1980년대 이전에 지어져 30년 이상 된 주택에 거주한다. 열악한 주거환경에 놓인 이들은 집 자체가 재난이 된다. 추위가 원인이 돼 발생하는 환자인 한랭 질환자는 길가에서 694명(30.7%)이 발생했다. 집에서도 374명(16.5%)이나 발생한 것으로 집계돼 실내도 안전지대는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공용으로 위생시설을 쓸 수밖에 없는 곳은 많다. 부산 감천문화마을 주민들은 산비탈 좁은 골목길 집마다 화장실이 없어 공용화장실을 쓴다. 서울 구룡마을에는 4~5가구가 공용화장실을 쓴다. 서울시가 연구용역한 ‘서울시 고시원 보고서: 거처 상태 및 거주 가구실태조사’에 따르면 고시원 10곳 중 4~5곳은 공용 화장실을 쓴다. 공용 욕실을 사용하는 비율도 10곳 중 4곳이다. 공용 시설이 코로나에는 잠재적 위험이지만, 거주자들은 생활을 위해 공유를 멈출 수 없다.

코로나 사태로 어렴풋이 보이던 각 계급의 윤곽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다. 코로나 이후로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극심해졌다. 코로나로 절박한 것은 바로 주거대책이다. 영국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부터 7월까지 거리, 야간 대피소 등지 주거취약계층 1만5천명에게 호텔과 다양한 형태의 긴급 숙소를 제공했다. 한국 정부는 뭘 하는가? 평등하게 지원해주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사각지대가 생기지 않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가장 취약한 집단의 생존이 보장돼야 모두 안전할 수 있다는 게 코로나가 한국사회에 던지는 교훈이다.


편집 : 양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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