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목적과 수단’

▲ 조한주 기자

<해리 포터> 시리즈에서 해리 포터는 11살부터 숱한 위험을 헤치고 악역 ‘볼드모트’를 죽이며 진정한 영웅으로 올라선다. 첫 위험은 3층 복도 끝 방이었다. 해리 일행은 다리같이 생긴 움직이는 계단에 잘못 올라타 3층 복도 끝 방에 들어섰고, 머리 셋 달린 개가 밟고 있는 문을 본다. 환상적인 마법학교 생활에서 처음 느낀 신변의 위험이었고, 모험의 시작이었다. 해리는 이야기 주인공이었기에 움직이는 다리가 제멋대로 움직여 다다른 위험한 장소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 만약 움직이는 계단에 잘못 올라탄 게 엑스트라였다면 어땠을까? 교장 덤블도어는 학기 초 이렇게 경고한다. 

“금년에는 우측 3층 복도가 ‘출입금지’ 되어 있다는 걸 말씀드립니다. 아주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고 싶지 않다면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다리는 원래 단절된 곳을 잇는 건축물이어서 소통의 상징으로 여겨지곤 한다. 그러나 다리는 항상 위험성을 지닌다. 양 옆이 낭떠러지고 ‘아차’ 하면 떨어진다. 폭력적이기도 해서 선택을 강요한다. 다리에 올라선 이들은 선택해야 한다, 다리를 건널지 말지. 이미 다리에 올라섰는데 돌아갈 수 없다면 건너편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걸 알아도 피할 수 없다. 처음 설계할 때부터 건너편을 신중하게 골라야 하는 이유다. 목적지는 생각하지 않고 다리를 화려하게 만드는 것만 생각한다면 다리는 그 역할을 잃는다.

▲ 설민석 씨가 2020년 12월 22일 자신의 유튜브를 통해 사과하고 있다. 설 씨는 "제 이름을 건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모든 잘못은 저한테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SBS

얼마 전 불거진 강사 설민석의 왜곡된 역사 강의는 목적지를 잃은 다리다. 그는 방송에서 ‘조선 태조는 여진족 출신’, ‘알렉산드리아도서관은 알렉산드로스가 세웠다’는 등 그릇된 역사를 강의했다. 말솜씨나 태도 등 그의 소통은 나무랄 데가 없지만, 내용이 문제였다. 곽민수 한국이집트학연구소장은 페이스북에 ‘‘역사적 사실’과 풍문을 함께 이야기하는 것은 역사 이야기를 할 때 관심을 끌기에 좋은 전략이지만, 하고자 하는 것이 ‘역사 이야기’라면 그 두 가지를 분명하게 구분해서 이것은 사실이고, 이것은 풍문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언급해줘야 한다’는 내용을 올렸다.

역사 교육의 목적은 올바르게 역사를 알리는 것이다. 교수법은 목적지인 ‘올바른 역사’에 잘 도달하기 위한 다리일 뿐이다. 현대인이 과거사나 과거 인물의 이야기에 닿을 수 있도록 하는 다리가 곧 역사 교육인데, 그 목적지를 잘못 설정하면 이미 다리에 올라탄 현대인은 왜곡된 역사의 길로 들어선다. 만들어진 이야기의 주인공인 해리는 위험을 피할 수 있을지 몰라도, 대다수 일반인은 피할 수 없다. 다리는 수단에 그쳐야지 목적이 되면 안 된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박두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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