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케치북] '존재'와 '인식' 사이

▲ 강주영 기자

늦은 오후, 아마도 내가 왔다며 밥을 차려줬던 것 같다. 할머니는 손녀가 왔다고 애써 불편한 몸을 의자에 쑤셔 넣고 앉았다. 식탁에 앉았지만, 함께 밥을 먹지는 않았다. 어정쩡한 자세로 앉아 할머니가 쳐다보는 식탁에서 밥을 먹었다. 할머니가 간신히 버티고 앉아 있다는 걸 인식하는 건 영 나를 불편하게 했다. 애써 마음에도 없는 말을 찾기 시작했다. 할머니 집에 가면 매번 그런 식이었다. 끽해야 일 년에 한두 번 보는 게 전부였지만,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었다. 

게다가 할머니한테서는 늘 뭔가 퀴퀴한 냄새가 났다. 당신이 존재하는 곳에서 은은히 퍼지는 그 찌릿한 냄새. 그게 할머니가 되면 나는 냄새라고 생각했다. 멀뚱히 나를 쳐다보는 할머니를 나도 같이 쳐다보며 그녀의 얼굴이 바람 빠진 동그랑땡 같다고 생각했다. 그러곤 내 동그란 얼굴의 유전자가 할머니에게서 왔나 보다 생각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빵떡’이란 별명을 듣고 자란 게 내심 억울했다. 할머니 유전자가 엄마에게로, 엄마 유전자가 다시 나에게 왔다고 생각하니 그동안 마음에 안 들었던 엄마에 관한 불만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이야기는 엄마 흉을 보는 것으로 흘러갔다. 한을 풀지 못한 딸내미가 유일하게 분풀이할 수 있는 은밀한 장소, 할머니는 나에게 그런 존재였다. 

나는 엄마를 늘 장군이라 불렀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독불장군’. 엄마의 말은 곧 우리 집 법이었다.  별것도 아닌 일에 화를 내는 다혈질에다 웬만해선 시시비비를 따지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게 싫었다. 커갈수록 따지려 드는 내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이런 성격은 사회생활을 하는 데 도움을 주지 못했다. 어릴 적부터 봐오던 엄마에게서 배운 것이 틀림없다고 장담하며 엄마는 왜 다른 엄마들처럼 온순하지 못 한가 억울해 하곤 했다. 

엄마의 투박한 말투도 늘 내 신경을 거슬렀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드라마의 엄마처럼 꼬옥 안아주며 간식을 챙겨 주기는커녕 하나부터 열까지 나를 문제적 인간으로 만들어버렸다. 친구와 싸우고 들어와도 엄마는 늘 친구 편을 들곤 했다. 질풍노도의 시기에는 엄마가 친엄마가 아닐지 모른다고 생각하며 문을 닫고 들어갔지만, 이내 그 생각은 거둬들였다.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은 너무할 정도로 엄마의 붕어빵이었기 때문이다.  그럴 때면 나는 더욱 패배감에 젖어 들었다. 이건 뭐, 반박 불가.

할머니는 엄마를 흉보는 나를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할머니는 늘 그런 식이었다. 반박하지 않는 존재. 있는 듯 없는 듯한 벽 같은 존재였다. 자궁암 투병으로 부서질 대로 부서져 그녀는 늘 팔자를 이야기했다. 넋두리를 하다가도 그게 운명이라며 곧 받아들였다. 그런 그녀가 내 말을 마저 듣다 말고 엄마를 대변하기 시작했다. 엄마가 중·고교 시절 얼마나 똑 부러졌는지, 엄마의 학창 시절 성적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얼마나 정의로운 의리 대장이었는지. 할아버지에 대항해 정의를 부르짖는 정의의 사도가 할머니 이야기 속에서 펼쳐졌다. 그 속에 엄마는 내가 말한 것과 비슷한 캐릭터를 가졌지만, 왠지 악당 대신 긍정의 아이콘으로 빛나고 있었다. 

아무리 귀한 손자라도 당신 몸 아파 낳은 딸을 흉보는 일은 참을 수 없었나 보다. 여전히 나는 그녀의 이야기가 전부 사실이라고 믿지 않는다. 하지만 그때, 우리 엄마에게도 엄마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바로, 거기, 그 자리에,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는데도 나는 그걸 몰랐다. 내가 인식하는 건 내가 알고 있는 엄마라는 존재뿐이었다. 내게 미약하고 무기력한 존재였던 그녀는 사실 늘 엄마를 응원해주는 거대한 슈퍼히어로였다.

▲ 누구에게나 태어날 때 엄마가 있다. ⓒ pixabay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김춘수의 꽃처럼 엄마는 할머니에게 꽃같은 존재였을 거다. 꽃이었고 보석이었고 천재였을 거다. 내가 엄마에게 그러한 것처럼. 할머니가 떠난 지금 ‘나의 엄마’의 엄마를 생각한다. 그 자리에 있을 땐 모르고 빈자리가 되어서야 그 존재가 얼마나 거대했는지 생각한다. 엄마에게 그 빈자리가 얼마나 시린지도 조금 안다. 엄마는 요즘 도서관에서 돌아온 내 식탁 앞에 앉는다. 밥을 먹는 나를 두곤 멀뚱히 보다가 핸드폰을 만진다. 그 모습이 나를 보던 할머니와 닮았다. 할머니보다는 덜 바람 빠진 빵떡 얼굴을 하곤 자꾸만 ‘국 좀 더 줄까’ 한다. 그 앞에 빵떡 얼굴을 한 내가 “반찬이 맛있다”고 해도 “맛없게 됐다”며 투박하게 받아친다. 그럼 난 ‘맛있다’는 말을 다시 듣고 싶은가 보다 하고 한 번 더 강조해 ‘진짜 맛있어’라고 대꾸한다. 할머니의 귀한 꽃을 대하는 나만의 인식법이다.


편집 : 강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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