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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당이 당명도 보전하지 못한다면
[상상사전] ‘이름’
2021년 01월 17일 (일) 15:17:12 김현주 기자 juicetrong21@gmail.com
   
▲ 김현주 기자

이름은 운명을 상징한다. 이름은 어떤 대상을 지칭하는 기호이지만 이름 자체가 그 대상은 아니다. ‘복순이’라는 이름을 가진 시골집 개가 있다고 치자. 복순이라는 이름은 기호이고 그 이름이 가리키는 대상은 개다. 아마 개의 주인은 ‘복을 불러오라’는 뜻으로 이름을 지어 줬을 것이다. 사람 이름도 비슷한 역할을 한다. 사람들은 드라마나 영화 속 주인공 이름이 그의 운명을 상징한다고 생각해 이름을 해석해 비평의 수단으로 삼기도 한다. 새로 태어난 아기 이름을 지을 때 고민하는 것은 아이의 삶이 이름 뜻처럼 잘 풀리기를 바라는 소망의 표시이고,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개명하는 것은 운명의 상징인 이름으로 상황을 바꿔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어느 날, 엄마 친구 딸이 이름을 바꿨다는 소식을 들었다. 하도 되는 일이 없으니 작명소에 가서 이름을 받아왔다고 한다. 그 이름은 ‘현주’, 내 이름이었다.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 친구 말고도 이름을 바꿔서 본인이 처한 어려움을 타개하려는 시도는 흔히 볼 수 있다. 2005년 대법원이 까다로운 개명 절차를 완화한 뒤, 개명 신청 건수가 꾸준히 증가했다. 2015년 개명 신청을 한 사람은 15만7425명이었다. ‘작명소 이름 사랑’이 대법원 자료를 바탕으로 2006년부터 2016년 6월까지 개명 사례를 분석한 결과, 가장 큰 개명 이유는 ‘취업, 결혼 등 현실에 대한 불만족(사주에 맞지 않아서)’이었다. 지난 2016년 국정농단으로 한국을 떠들썩하게 한 ‘최순실’의 호적상 이름은 ‘최서원’이었다. 그는 최필녀에서 최순실로, 다시 최서원으로 개명했는데 그 이유가 사주나 궁합을 고려한 게 아니냐는 추측이 있었다. 

운명을 바꾸려는 시도는 신을 상대로 한 도전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오이디푸스는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게 될 것이라는 신탁을 듣고 운명을 피하고자 부모를 떠났다. 하지만 그가 떠난 폴리보스 왕과 그의 아내 메로페는 사실 오이디푸스의 양부모였고 그는 그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신탁의 예언처럼 자기 친부인 테베의 왕 라이오스를 죽이고 친모인 이오카스테와 결혼한다. 운명을 바꾸기 위해 자신의 삶을 버릴 각오까지 한 오이디푸스도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했는데 이름만 바꾼다고 운명이 쉽게 바뀔 리 없다.

   
▲ 사람에게 이름이 있다면 정당에게는 당명이 있다. 정당들은 과거의 잘못을 끊어내거나 곤란한 상황을 벗어나려고 이름을 바꾸고는 한다. 하지만 이름을 바꾸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알맹이'다. ⓒ KBS

인간에게 이름이 있다면, 정당에도 당명이 있다. 정당들은 곤란한 상황을 벗어나려고 당명을 바꾸곤 한다. 자유한국당은 지난 2월, 미래통합당으로 바뀌었다가 8월에는 국민의힘으로 또 바뀌었다. 극우보수 이미지를 벗고 국민통합을 이루고, 국민의 뜻을 받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하지만 정당 지지도가 당명을 바꿨다고 달라지는 것 같지는 않다. 그 정당의 ‘속’까지 바뀌었다고 느끼지는 않을 테니까. 유럽의 보수정당은 백 년이 넘게 같은 이름을 쓰는 데가 많은데, 우리 보수당은 90년대부터 따져봐도 민자당-신한국당-한나라당-새누리당-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국민의힘으로 7번 개명했다. 보수는 ‘보전하여 지킨다’는 뜻인데 이름조차 지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름은 기호일 뿐이다. 이름이라도 바꿔보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운명을 바꾸고 싶은 간절함의 표시일 수 있다. 하지만 정당도 사람도 중요한 것은 이름이 아니다. 이름이 가리키는 ‘알맹이’가 중요하다. 껍데기를 가리키는 것에서 벗어나야 운명에서 벗어날 수 있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이나경 기자

[김현주 기자]
단비뉴스 지역농촌부, 전략기획팀 김현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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