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발언대]

▲ 방재혁 기자

전태일 열사가 근로기준법 책과 함께 광장에서 분신한 지 어느덧 50년이 됐다. 그때 전태일은 열악한 노동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근로기준법을 독학하면서 사람들을 모으고 함께 싸워 나갔다. 그런 절박한 투쟁에도 노동 현장은 변하지 않았다. 경찰과 고용주들은 일관되게 그의 투쟁을 방해했다. 그가 분신하고 나서야 근로기준법은 정비될 조짐을 보였고 여기저기 노조들이 생기는 등 서서히 변화가 일어났다. 그로부터 50년, 이제 그를 기리는 행사는 무척 거창하고 각종 매체는 그를 영웅으로서 대대적으로 다룬다. 그가 몸에 불을 붙이면서 토한 외침,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는 말이 어느 정도 이뤄진 것 같은 느낌도 준다. 하지만 당시 그가 함께 외쳤던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는 요구는 지금 과연 실현됐다고 할 수 있을까. 전혀 그렇다고 답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오늘도 많은 2020년의 전태일들이 쓰러져가고 있다. 택배 노동자들은 택배회사들이 매출경쟁을 위해 밀어붙이는 택배비 절감, 당일배송, 새벽배송에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잇따라 목숨을 잃었다. 이렇듯 매일같이 8명의 노동자들이 살아서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16년 구의역에서 쓰러진 스크린도어 하청 노동자 김군, 지난 2018년 쓰러진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의 죽음이 국민들에게 준 슬픔은 지금도 생생하게 가슴에 남아있다. 국민들의 슬픔이 분노의 불길로 번져나가고 노동자들이 떨쳐 일어나 외치자 정치권에서도 대응하기 시작했다. 비로소 전태일 3법,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등의 입법 추진 움직임에 시동이 걸린 것이다.

최근 열린 전태일 50주기 국제학술포럼은 지금도 인권이 무시되고 있는 봉제공과 원자력발전소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전태일이 분신한 50년 전과 다름없이 비참한 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서울에만 9만명이 있다는 것이다. 이날 발표자들은 “원자력발전소 노동자들이 피폭 위험, 원청과 용역계약 등 여러 문제를 해결하고자 목소리를 내고 있긴 하다”면서 “하지만 기업의 활발한 대국회 개입과 대언론 활동에 묻히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노동자들의 힘든 노동 현실도 결국 이들이 전태일, 김용균, 김군, 택배노동자들처럼 잇따라 쓰러져야만 변화의 조짐이 나타날 것인가. 

▲ 지난 25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충북본부가 청주시 청원구 율량동 더불어민주당 충북도당 당사 앞에서 '전태일 3법' 도입을 촉구하는 총파업 집회를 열고 있다. © <연합뉴스>

수직적인 ‘갑을’관계와 열악한 환경, 가혹한 수준의 노동력 제공, 정당하지 못한 임금 등. 아직도 많은 노동자들이 그같은 조건에 얽매인 채 땀을 흘리고 있다. 그들은 물론 전태일처럼 자신들의 처지를 봐달라고 외친다. 그들 중 일부는 메시지 전달을 위해 극단적 방법을 동원하기도 한다. 그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더 이상 정치권과 언론에만 기대하는 건 부질없는 일임을 우리들은 알고 있다. 뒤늦게 시동이 걸린 전태일 3법,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입법 추진 움직임조차 뒤뚱거리는 걸 보면서 더욱 강하게 드는 생각이다. 우리 모두는 또 다른 전태일들이 쓰러지기 전에 그들의 외침에 귀를 기울이자. 그리고 미디어로 전파하자.


편집 : 이예진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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