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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중받지 못하는 노동이 불러낸 이름들
[단비현장] ‘전태일에서 노회찬까지, 노동존중 사회와 정치’ 포럼
2020년 11월 11일 (수) 23:02:04 이예슬 방재혁 기자 yeslowly@gmail.com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노동자들의 삶은 여전히 힘듭니다. 근로기준법은 지켜지지 않고, 노동기본권 사각지대도 여전히 존재합니다. 전태일이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쳤지만 우리는 너무도 쉽게 전태일을 잊었습니다. 그리고 노회찬은 6411번 버스의 노동자들을 불렀습니다. 전태일 50주기와 노회찬 추모 시기가 지나면 우리는 또 전태일과 노회찬을 잊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오늘 이 자리를 통해 전태일과 노회찬, 전태일이 아꼈던 ‘시다’들과 노회찬이 불렀던 6411번 버스 노동자들을 잊지 않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10일 오후 서울 전태일기념관에서 열린 ‘전태일에서 노회찬까지, 노동존중 사회와 정치’라는 주제의 전태일50주기 국제학술포럼에서 조돈문 노회찬재단 이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노회찬재단은 ‘6411프로젝트’를 통해 우리 사회 ‘투명 노동자’들이 처한 현실과 문제점, 그 대안을 종합적으로 제시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봉제, 청소, 돌봄, 원전 노동자들을 직접 만나 인터뷰하고 연구한 책임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이야기를 나눴다.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은 “다시 전태일을 기억하고, 불러내어 함께 이 시대를 고민하는 자리가 되기를 바란다”며 포럼의 시작을 알렸다.

‘노동존중 사회와 정치’를 주제로 발표한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노동존중은 민주공화제의 존립 기반”이라며 “노동 문제를 노동자와 사용자 집단만의 사적인 경제 문제로 취급하지만, 노동존중은 민주주의의 본질에 관한 문제”라고 말했다. 노동이란 근·현대 문명과 정치경제체제에서 ‘민(民)’을 대표하는 개념이다. 민주주의는 노동존중을 통해 정당성을 얻는 통치 체제라는 것이다. 김 교수는 “그런 의미에서 ‘인간해방’과 ‘노동해방’을 외친 전태일과 노동의 중요성을 강조한 노회찬과 진보정당은 민주주의자”라고 말했다.

   
▲ 김윤철 교수는 "민주주의가 '좋은' 체제인 이유는 노동존중에 있다"고 말했다. © 방재혁

김 교수는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특성으로 ‘마지노선 민주주의’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마지노선 민주주의란 민주주의가 노동존중이라는 본질로 나아가지 않고 형식적인 외양을 갖추는 것에 그쳐, 민주주의의 경계에 마지노선을 긋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민주화 이후에도 우리 정치는 지속적으로 노동과 평등 가치를 배제했다”며 “그 결과 무한경쟁과 승자독식 질서 속에서 슈퍼재벌이 지배하는 사회가 됐다”고 말했다. 이러한 사회에서 노동의 정치세력화를 꾀한 진보정당 운동은 노동존중 사회로 전환하기 위한 주체를 형성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김 교수는 “노동존중의 정신과 그것을 둘러보고 귀 기울여 들을 시간을 남겨줬다는 점에서 노회찬 ‘죽음 이후의 삶’과 전태일은 닮았다”고 말했다.

“노동공제, 잊혀졌던 노동운동의 오래된 미래”

이어 ‘봉제노동의 현실과 공제회를 통한 조직화 방안’을 발표한 김형탁 노회찬재단 사무총장은 현실의 봉제노동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의미를 이야기했다. 그는 “평생을 한 가지 노동만 하며 살아온 노동자의 삶이 사회적으로 어떻게 지지되고 보장받는가에 따라 우리 사회 공정과 정의의 수준을 파악하고, 우리가 해결해야 할 과제를 찾아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노동자 간의 연결과 연대를 강조했다. 봉제업을 통해 분산되고 고립되어 있는 노동이 어떤 처지에 놓여있는지 파악하고, 이들을 묶어낼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탐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 김형탁 노회찬재단 사무총장이 화려한 패션 뒤, 좁은 공간에서 실먼지를 들이키며 일하는 봉제노동자들의 보이지 않는 노동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 방재혁

우리나라 패션의류사업은 인력의존도가 높다. 매출액 10억 원을 만드는 데 필요한 인력이 2016년 기준 5.4명으로, 제조업 전체 평균 2.4명에 비해 약 2배 많은 수치이다. 이에 따라 인건비 지출이 큰 비율을 차지하지만, 임금 수준은 다른 산업에 비해 매우 낮다. 2015년 기준 전사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월평균 임금이 183만원으로, 제조업 평균 363만원의 절반에 불과하다. 이외에도 2017년 기준 전체 봉제사의 약 82%가 50대 이상을 차지해, 연령대가 높고 생산성과 수익률은 낮다.

이러한 현실에서 봉제노동자들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공제회를 품은 노동조합이 구상됐다. 2017년 전태일재단과 화학섬유식품노조를 포함한 여러 단체가 봉제공동사업단을 구성하고 공제회를 통한 노조 조직화를 시작했다. 김 사무총장은 “회원들이 미리 일정 금액을 적립해 사고나 질병 등으로 발생하는 경제적 부담을 나누는 공제는 봉제노동자들 외에도 비정규, 특수고용, 플랫폼 노동 등 불안정 노동자들에게도 적용할 수 있는 사업방식”이라고 말했다.

6411번 첫차를 타는 사람들

세 번째 발제는 ‘6411 버스 첫 승객 분석을 통한 청소노동자의 노동에 대한 연구’를 주제로 신희주 가톨릭대 사회학과 교수가 맡았다. 신 교수는 먼저 ‘6411번 버스라고 있습니다’로 시작되는 노회찬의 2012년 진보정의당 대표 수락연설을 소개했다.

“이분들이 그 어려운 속에서 우리 같은 사람을 찾을 때 우리는 어디에 있었습니까? …(중략)… 정치한다고 목소리 높여 외치지만 이분들이 필요로 할 때, 이분들이 손에 닿는 거리에 우리는 없었습니다. 존재했지만 보이지 않는 정당, 투명정당, 그것이 이제까지 대한민국 진보정당의 모습이었습니다. 저는 이제 이분들이 냄새 맡을 수 있고, 손에 잡을 수 있는 곳으로, 이 당을 여러분과 함께 가져가고자 합니다. 여러분 준비되었습니까?”

신 교수는 “6411번 버스는 노회찬의 진보정신과 그가 구상한 진보정당의 비전을 가장 함축적으로 담은 상징”이라며 ‘6411 프로젝트’를 설명했다. 6411번 새벽 첫차를 타는 청소노동자에 주목해 이들의 노동 전반과 노인 빈곤 문제를 지적했다. 서울 6411번 버스는 구로동에서 출발해 강남까지 가는 시내버스로, 노회찬 의원이 언급한 이후 우리 사회에서 열악한 상황에 놓인 노동자들의 상징이 됐다.

6411번 새벽 첫차를 타는 승객들은 대부분 60대 이상의 여성 청소노동자들로, 주로 구로구와 영등포구에 거주하면서 강남구와 서초구로 출근한다. 가장 붐비는 시간대는 오전 4시 30분에서 4시 50분 사이다. 신 교수는 “6411번 새벽 첫차를 타는 여성 청소 노동자들은 보통 2시간 이상의 장시간 출퇴근을 하며, 강남에 있는 직장에서 하루 평균 9.96시간을 머물면서 저녁 9시 뉴스를 보지 못하고 잠드는 생활을 반복한다”고 말했다.

   
▲ 신희주 교수 연구팀이 6411번 버스 새벽 첫차를 타고 출근하는 청소노동자들을 설문조사해 하루 평균 일과를 재구성했다. 청소노동자는 오전 3시 20분에 기상해 4시 24분에 출근한다. 직장에서 9.96시간 머문 뒤 퇴근해 오후 8시 37분 취침한다. © 신희주

그는 이어서 서울시 청소노동자 구인광고를 통해 살펴본 청소원 신규 일자리의 변화를 설명했다 2017년부터 2020년까지 서울 일자리 포털에 등록된 구인광고에 따르면 전체 청소노동자 일자리 공고는 급감했고, 평균 월급 인상률 역시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그에 반해 시간제 고용의 비율은 증가하면서 최저임금 미만의 일자리 비율도 함께 늘어났다. 새로운 정규직 일자리는 줄고, 비정규직 일자리는 늘어나는 추세다. 전체 신규 일자리의 95.2%가 비정규직이고, 비정규직의 평균 임금은 정규직 임금의 70%이다. 신희주 교수는 “구인광고는 사용자들이 내는 것이므로 비정규직은 노동자의 선택이 아니라 사용자의 요구에 따른 것”이라며 “청소 노동의 노동 조건 개선을 위한 적극적인 일자리 정책 마련뿐 아니라 지속적으로 악화되고 있는 고용 조건 개선이 시급하다”고 말했다.2017년 산업안전보건공단이 실시한 ‘근로환경조사’에 따르면 전체 청소노동자의 월평균 수입은 정규직일 경우 143만원, 비정규직은 117만원이다. 청소노동자의 평균 연령은 61.1세로 전체 임금노동자 평균연령인 45세보다 훨씬 높으며, 여성이 전체 청소노동자의 84%를 차지한다. 다른 직업에 비해 고령화해 있을 뿐 아니라 여성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것이다.

   
   
▲ 직업별 시간당 임금. 단순노무자의 시간당 임금은 관리자 임금의 1/4에 불과하다. 단순 노무직 내에서도 분야별로 임금 차이가 있다. © 신희주

‘갑질’당해도 문제제기 어려운 현실

네 번째로 ‘한국 돌봄도농자들의 일과 삶의 불안정성에 대한 연구’를 박고은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정책연구위원이 발표했다. 공식 통계에서 정확한 규모가 파악되지는 않지만, 고용노동부는 2017년 비공식 부문 돌봄노동자 수를 25만명 정도로 추정했다. 이들은 간병, 육아, 가사 등 업무를 수행하지만 기본적인 근로기준법과 최저임금법을 적용받지 못하고, 사회보장에서도 완전히 배제되는 비공식 부문에 종사하고 있다.

박 연구위원은 “제도화한 노동시장에 종사하는 사회서비스 부문 노동자들의 처우는 나아졌는가”라고 물으며 발표를 시작했다. 그는 “사회서비스가 수급자의 권리 보장을 중심으로 확대돼 왔지만 서비스를 제공하는 인력의 노동권과 사회권이 배제되는 문제는 여전히 소극적으로 다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돌봄노동자들은 방문 돌봄, 시설 돌봄 등 유형에 따라 노동시간이 지켜지지 않거나 계약직 비율이 높아 불안정성이 큰 것과 같은 문제가 있다. 대체로 임금은 낮지만 노동강도는 높고, 휴게시간도 부족하다. 이용자와의 불균형한 권력 관계 탓에 서비스 이용자로부터 존중받지 못하고 ‘갑질’을 빈번하게 경험하기도 한다.

박 연구위원은 “올해 코로나19 확산으로 돌봄의 위기와 돌봄노동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환기했다”며 “재난 상황에서도 사회 기능 유지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을 하는 필수 노동자인데도 사회로부터 기본적인 존중과 인정도 받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정부가 사회안전망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 돌봄노동자들의 일과 삶에 관해 발표하는 박고은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정책연구위원. © 아름다운청년전태일50주기범국민행사위원회

마지막으로 강언주 부산에너지정의행동 활동가가 ‘노동자의 정치의제화 전략-핵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를 중심으로’라는 주제로 발표했다. 강 활동가는 “핵발전소는 방사능 때문에 일반인 출입이 제한돼 노동자가 시민들 눈에 보이지 않고, 잘 알려져 있지 않다”며 “(시민들은) 언론에 보도되거나 국정감사에서 언급된 사안에 공감하고 해결의지를 보이지만, 국정감사가 끝나고 언론 보도도 없으면 이내 문제제기가 시들해진다”고 말했다.

강 활동가는 “핵발전소 노동자의 35%가 하청 비정규 노동자”라며 “1년 6개월마다 시행하는 계획예방정비 시기에는 정규직보다 2.6배 많은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가 투입된다”고 덧붙였다. 강 활동가는 이런 핵발전소 비정규 노동자들에 관해 “핵발전소 노동자는 항상 피폭 위험을 감수하고 일하지만, 사고가 발생해도 원청과 용역계약, 입찰 등의 문제가 있어 하청업체에서 적극적인 문제제기를 할 수 없는 게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강 활동가는 “핵발전소 노동이 여러 문제를 안고 있지만 국회 개입과정에서 여러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고 말했다. 강 활동가는 “기업이 노동자보다 힘이 있어 국회 개입, 대언론 활동을 잘한다”며 “노동자들이 아무리 안전에 관한 문제제기를 해도 그보다 더 준비해온 기업의 입장이 국회에 잘 반영되는 게 현실”이라며 아쉬움을 표했다. 강 활동가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국회 관계자와 노동자들이 국정감사 때만 만날 것이 아니라 원외 국정감사, 위원회 구성 등 일상적인 소통과 연대가 지속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 강언주 부산에너지정의행동 활동가는 핵발전소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어려움을 출입제한 때문에 보지 못하는 상황을 안타까워했다. © 방재혁

노동이 존중받는 데 필요한 정치권의 고민과 노력

2부 순서로 ‘전태일 50년, 노동의 미래’라는 주제로 5명의 발제자와 3명의 토론자가 참여하는 종합토론이 진행됐다. 토론자로 참여한 이은주 정의당 국회의원은 “전태일과 노회찬은 한국 진보의 두 거인”이라며 진보정치에 관한 의견을 제시했다. 이 의원은 “한국 정치의 이념적인 협소함 때문에 사회민주주의 등 보편적인 표현들이 진보정치권에서도 외면받았다”며 “적폐와 개혁, 선과 악 등 정치계를 구분하는 양극화한 진영논리가 민주정치의 다원성을 억누르고 진보정치의 뚜렷한 분별과 정립을 가로막았다”고 말했다.

이용빈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은 “촛불을 들고 공정과 정의를 외쳤지만, 노동하는 삶의 시선에서 세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이어 “기형적으로 양산된 비정규직 노동시장의 이중구조와 플랫폼 노동처럼 자영업자 신분이지만 사업주에 매여 일하는 왜곡된 노동현장이 더욱 늘어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의원은 “이런 상황을 바로 잡는 첫 걸음이 노조를 보호하는 것”이라면서 “노조가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제도적, 사회문화적 환경을 만들어야 노사 책임경영을 비롯해서 원·하청 관계 개선, 적정임금, 적정노동시간 등 삶의 질까지 함께 풀어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의원은 “노동의 가치와 존엄성보다 더 큰 경제 성장은 없기에 노동이 중심이 되고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수정 정의당 서울시의회 의원은 “노동자들이 극단적 선택을 하거나 시위를 하는 모습을 보면 전태일 열사가 50년 전에 한 말과 지금 현실이 얼마나 달라졌나 고민하게 된다”고 말했다. 권 의원은 “코로나 사태 이후 개념 자체가 달라진 노동이 많아지고 있다”며 “진보정당이 연대하려는 지향에 있어 새로운 노동과 분절된 현상에 관해 고민하지 않으면 진보정당으로서 기반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발언했다.

   
▲ 더불어민주당 이용빈 의원(오른쪽에서 3번째), 정의당 이은주 의원(오른쪽에서 2번째) 등 ‘전태일 50년, 노동의 미래’를 주제로 실시한 종합토론 참여자들. © 방재혁

조돈문 이사장은 마무리 발언에서 “전태일 50주기를 기념한 오늘 행사가 전태일과 노회찬이 이루지 못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그것을 우리의 과제로 삼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편집 : 김태형 기자

[이예슬 기자]
단비뉴스 기획탐사팀 이예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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