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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30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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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 미래를 위한 헌사
[상상사전] '기록'
2020년 11월 17일 (화) 18:05:46 방재혁 기자 bjhb0514@naver.com
   
▲ 방재혁 기자

전날 술을 마셔 어지러운 아침인데 휴대폰이 끊임없이 울렸다. 동생이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할아버지 돌아가셨어. 병원으로 와.” 정신이 들면서 휴대폰을 멀뚱히 바라봤다. 메신저는 오늘이 할아버지 생신임을 알리고 있었다. 병원에 도착해 할아버지 사진을 마주했다. 이상하게 눈물이 나지 않았다. 할아버지를 묻어드리고 서울로 올라가는 길에 휴대폰에 할아버지 번호를 검색했다. 3주 전 통화 기록이 남아있었다. 공부하느라 바쁘다는 핑계로 연락을 자주 하지 않았다. 기억 속 할아버지 목소리가 희미해 통화버튼을 눌렀다. 할아버지 목소리 대신 안내음성이 흘러나왔다. 그때까지 나오지 않던 눈물이 흘렀다.

사람은 빈자리를 견디지 못한다. 실제 공간이나 마음속에 빈자리가 생기면 안절부절못하며 다시 채우려 든다. 가구가 망가지면 새 가구를 사고, 이별하면 새 만남을 찾는다. 그렇게 자리가 채워지면 사라진 것은 언제 있었냐는 듯 금방 잊는다. 바쁜 일상을 탓하며 빈자리를 외면하기도 한다. 할아버지에 관한 기억을 남겨두지 않아 마음속 큰 구멍이 생겼다. 바쁜 일상으로 돌아와 공부한다는 똑같은 핑계로 할아버지는 다시 잊혔다.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에 속도를 맞추면 과거는 빠르게 잊어버린다. 그렇게 많은 과거를 잊어간다. 과거를 외면하면 역사는 반복된다. 사라지기 전에 기억하고 빈자리가 돼도 잊지 않아야 한다. 많은 사람이 비극을 잊지 않으려 노력한 덕에 노란색 리본을 보면 세월호 사건이 떠오른다. 베를린 소녀상 철거도 막았다. 일제강점기 기억이 대를 걸쳐 흐려진 탓에 가난에 허덕이는 독립운동가 후손이 많이 생겼다. 사람들이 아픈 과거를 외면하고 자신들에게 불리한 과거를 가리려는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할아버지의 빈자리를 느끼고나서 나는 일기를 쓰고, 통화를 녹음하기 시작했다. 소중한 사람을 잃고 싶지 않고, 잃어도 그에 관한 기록을 남기고 싶다. 아무 기록도 남기지 않은 채 빈자리만 얻고 싶지는 않다. 과거는 기록 속에 숨 쉰다. 사라진 것들, 비어 있는 것들을 내버려두지 말고 무엇이 있었는지, 왜 사라졌는지 기록해야 한다. 과거는 분명 존재했지만, 빈자리로 놔두면 영영 빈 채로 사람들에게 잊힌다. 

   
▲ 기록을 남기지 않으면 빈자리가 되어 잊힌다. 개인적인 과거뿐 아니라 역사도 잊지 않으려면 기록해야 한다. ⓒ Pixabay

개인적인 과거뿐 아니라 역사도 잊지 않으려면 기록이 필요하다. 옛날에 사관이 있었다면 지금은 기자가 있다. 매일 수많은 기사가 쏟아지고 기사들은 기록으로 남아 역사가 된다. 올바른 기록은 과거를 선명하게 하고 미래로 가는 발판이 된다. 부실하거나 왜곡된 기록은 과거를 흐리게 하고 비극의 역사를 반복할 가능성을 키운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이봉수)

편집 : 이동민 기자

[방재혁 기자]
단비뉴스 환경부장, 기획탐사팀, 시사현안팀 방재혁입니다.
배는 항구에 있을때 가장 안전하지만, 그것이 배의 존재 이유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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