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신속배송'

▲ 최유진 기자

'턱!' 택배가 왔다. 박스를 놓고 가는 소리다. 문을 열어보니 물건만 있고 사람은 없다. 그 정체를 본 적이 없어서 이런 상상도 했다. '정말 사람이 맞을까?' 내 손에 생명 없는 물건이 오기까지, 대체 어떤 이의 산 노동(living labor)이 투입됐을까? 마르크스는 자본을 두고 '죽은 노동'이며, 마치 뱀파이어처럼 '산 노동'의 피를 빨면서 산다고 말했다.

택배 노동자가 지탱하는 '신속배송'은 비대면 소비 시대의 지출과 소유 욕구에 더욱 빨리 불을 당긴다. 빨리 쓰고, 빨리 사게 한다. 수익을 낳는 최적의 체계다. 이커머스 기업은 '새벽배송' 시스템까지 만들어내 자면서도 돈을 번다. IT업계도 판매업자에게 온라인 쇼핑 플랫폼을 제공하면서 유통 생태계를 확장한다. 문제는 자본이 노동을 키우는 동시에 죽인다는 거다.

이솝 우화 '황금알을 낳는 거위'는 수익을 극대화하려다 저지른 인간의 어리석음을 조롱한다. 거위가 황금알을 계속 낳자, 농부는 일하기가 싫어졌다. 많은 알을 바라고서 거위 배를 갈랐더니 피만 흘러나왔다. 변형된 결말도 있다. 거위에게 모이를 많이 주고 알도 여러 개 낳도록 바랐다. 거위가 살이 쪄서 알을 하나도 낳지 못하게 됐다나?

애초에 황금알이 존재하는 게 비정상이다. 그걸 더 갖겠다고 저지르는 살생도, 몰상식한 사육도 비판과 조롱거리로 전락하는 이유다. 그러니까 '우화'다. 거위는 일용할 만큼 알을 낳을 뿐이다. 택배 노동자도 필요한 물건을 전하는 데 그쳐야 한다. 그 이상 기능과 가치를 기대하고 자본의 욕망을 투입해서는 안 된다. 한계를 인정해야 한다. 기계가 아닌 사람이 하는 일이니까.

▲ 지난달 26일 오전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 택배지부 관계자들이 고용노동부 국정감사가 열리고 있는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고용노동부 앞에서 총파업 기자회견 및 결의대회를 열고 과로사 대책과 법제도 개선을 촉구하고 있다. © <연합뉴스>

택배 노동자가 또 목숨을 끊었다. 개인사업자이기에 일을 시작할 때 권리금과 차량 할부금 부담이 컸다고 한다. 반면 월수입은 적어 생활고에 시달렸다. 업무 과중도 심각하다. 최근 택배 노동자들의 과로사가 잇따르고 있다.

외국에 체류하는 한국인들은 느려 터진 상품 배송에 질려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에 향수를 느낀다고 한다. 그러나 내가 빨리 물건을 갖는 것이 남의 과로, 때로는 죽음의 대가라면 그런 소비문화는 사라져야 마땅하다. '택배 없는 날'은 그런 이벤트를 마련해야 겨우 택배 노동자들이 쉴 수 있는 우리 노동 현실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이런 죄책감이 드는 상황에서 비대면 소비를 대세라고 운운하는 시대가 슬프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이봉수)

편집 : 김은초 기자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