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기자의 시선2] ‘4.15총선, 이것만은 바꾸자’ ④ 싸움의 상대

“나는 피 터져라 공부해서 공무원 됐는데 계약으로 들어온 사람들이 드러누워서 정규직 취급해달라, 임금 올려달라. 한 개 해주면 또 달라. 진짜 가관이다.”

카톡방이 아침부터 시끄럽다. 누군가 올린 국민청원 글이 취준생 친구들의 쌓인 분노를 건드렸다. 클릭해보니 ‘공무직을 공무원으로 채용하라는 교육부 장관의 입법예고에 반대하며, 공무직 정부위원회 출범을 철회할 것을 요구합니다’라는 제목이 보인다. 청원 하루 만에 10만 명 가까이 동의했다. 노량진에서 수많은 청년이 공무원이 되려고 공부하고 있는데, 유은혜 장관이 코로나 사태를 빌미로 정치적 이익을 위해 시험 없이 들어온 교육공무직원(무기계약직)을 교사로 채용하려 한다는 내용이었다. 청원 내용은 사실이 아님이 밝혀져 곧 삭제됐다. 하지만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익명의 누리꾼들은 집단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를 향해 ‘쓰레기’ ‘할 일도 없이 돈 벌어 감’ 등 무차별 공격을 계속했다.

우리 안의 차별과 혐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취준생이나 공무원들에게 공무직의 정규직 전환 요구는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다. 공무원 말고도 다양한 사업장에서 정규직 전환 정책을 펴는 정부가 미울 것이다. 갈등은 정규직 전환 현장만이 아니다. 우리나라 노동자도 먹고 살기 어려운데 난민을 받아야 하냐고 따진다. 서울과 지방의 대학을 차별하고, 지방 안에서조차 서열을 매긴다. ‘여성 할당제’는 ‘역차별’이라며 폐지를 주장한다. 과정과 결과만이 문제가 아니다. 신체조건과 소득 차이도 차별의 원인이 된다. 장애인 학부모는 무릎까지 꿇으며 주민들에게 학교 설립 허가를 빌어야 한다. 월세나 전세 입주자 자녀들도 초등학생 사이에서 따돌림이 일어나고, 임대주택단지 학교는 폐교 위기에 놓여있다. SNS에는 값비싼 차나 음식, 해외여행 사진이 ‘인싸’의 ‘필수 템’이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 걸까?

▲ 학교 내 비정규직 노동조합이 휴업수당 등 과도한 임금을 요구하고 정규직 전환 주장을 하는데 정치적 이익을 위해 이를 허용한 교육부의 입법예고를 반대한다는 청와대 국민청원은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다. ⓒ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문제는 현상들을 심각한 혐오와 차별로 인식하지 못하는 한국 사회다. ‘신자유주의’ 경제 기조가 ‘성장’ 담론 뒤에 숨어서 여전히 마법처럼 표를 유혹하기 때문이다. 대기업 규제를 풀고 세계화를 이끌면 일자리도 늘어나고 청년실업도 줄어든다는 헛된 가설은 유권자를 자극한다. 성장을 가로막는 규제는 ‘악’이며, 먹고 살기 힘든데 복지 얘기하는 정치인은 ‘빨갱이’나 ‘사회주의자’로 낙인 찍힌다. 

사회복지지출 비중이 꼴찌이고 소득격차는 갈수록 커지지만 여전히 ‘경제 성장’ 프레임이 먹힌다. 자유시장경제 논리 안에서는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더 치열한 경쟁은 불가피하고, 능력에 대한 보상의 차이는 분명해야 한다. 다른 신체 조건이나 환경 요인은 중요하지 않다. 모든 건 시험과 스펙이 대답한다. 신자유주의 마법에 걸린 유권자는 사람과 공동체의 의미와 가치를 따지지 않는다. ‘성장’을 부정하면 자신이 ‘루저’임을 드러내게 된다. 북한식 사회주의만 막고, 나 하나만 경쟁에서 살아 남으면 그만이다.

여전히 활개치는 신자유주의 망령

정치는 한정적인 자원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배분할지 고민하는 행위이다. ‘신자유주의’ 틀에 갇히면 주변을 둘러보기 어렵다. 상위 1%가 전체 소득의 절반을 가져가는 양극화는 계속된다. 부는 대물림 되고 재난을 피할 비상구는 좁아진다. 이번 코로나 사태는 양극화한 사회에서 위기 상황일수록 가장 취약한 계층이 타격을 받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 녹즙 배달 아르바이트를 한 뒤 7시 30분에 출근한 서울 구로구 콜센터 직원은 닭장같이 비좁은 사무실에서 집단 감염 위험을 무릅쓰고 밀려드는 전화를 받아야 했다. 최저임금에 훨씬 못 미치는 시급 4200원을 받으며 일한 청도대남병원 77세 간병인은 ‘특수고용노동자’라는 이유로 노동법 적용을 받지 못하고 일하다 코로나에 감염돼 사망했다. 노인을 돌보던 요양보호사, 장애인을 보조하던 활동지원사 등 돌봄 노동자들은 마스크나 손 소독제조차 지급받지 못하고 노동 현장으로 떠밀렸고, 온라인 쇼핑몰 ‘쿠팡’의 비정규직 배달노동자는 과도한 업무량에 새벽까지 근무하다 숨졌다.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하며 원하지 않는 해고통보나 권고사직, 무급휴직, 연차강요, 비정규직 차별도 곳곳에서 일어났다. 대한항공 하청업체인 이케이맨파워는 직원 52명에게 해고통보를 했고 현대차 울산공장은 정규직에게 1급 방진 마스크를 나눠주고 비정규직에게는 일반 마스크를 제공했다. 미국은 이미 불안정한 일자리를 중심으로 1700만명 이상 실직 상태에 놓였고 우리나라 구인구직 사이트 알바천국의 외식업체 신규채용 공고는 40% 가까이 줄었다. 교육현장의 불평등도 심각하다. 청각장애인은 자막 없는 PPT 화면을 몇 시간이나 쳐다보고 있어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고 저소득층 가구는 당장 디지털 기기가 없어 교육부 지원만 기다려야 했다.

▲ 대전 노동 권익센터가 비정규직과 특수고용직 등 취약계층 노동자 3백여명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 가운데 절반이 넘는 172명이 가구소득이 줄었다고 답했다. 충남에서도 코로나19 관련 노동상담이 급증했는데 무급휴직, 권고사직, 해고 순으로 많았다. 청년들이 대기업, 공기업 등 안정적인 일자리를 갖기 위해 노량진에 몰리는 이유다. ‘을’들 사이의 갈등이 계속되지만 두 거대정당은 이들의 고통을 외면한 채 위성정당을 만드는 등 총선 준비에만 바쁘다. ⓒ 임지윤

양극화를 둘러싼 문제는 해결될 조짐조차 없는데, 극한 상황으로 몰린 ‘을’끼리 싸움이 격화하고 있다. 그 속에 청년이 있다. 바늘구멍 같은 취업문을 통과하려는 노량진 청년들 사이에 무한경쟁은 멈추지 않는다. 당장 불안정한 일자리에서 일을 해야 하는 이들은 우리 사회의 대표적 ‘루저’다. 청년들의 싸움이 ‘밥줄’을 지키려는 ‘을끼리 싸움’으로 전락해, 일은 내팽개치고 시위와 파업을 일삼는다는 뉴스거리가 돼선 안 된다. ‘헬조선’에서는 아무리 노력해도 부동산 투기를 잡을 수 없으며, 정규직 청년에게도 ‘내집 마련’은 ‘하늘의 별 따기’ 임을 잊지 말자.

청년이여, 투표로 심판하자

선량한 우리 청년을 ‘차별주의자’로 몰고 가는 정치인을 심판하자. 가장 낮은 곳을 바라보며 양극화를 해소하고 토론을 가능케 하는 정치인에게 표를 던지자. 4.15 총선은 연애, 결혼, 출산, 내집 마련, 인간관계, 꿈, 희망을 포기하고 ‘취업’만 바라보는 청년에게 희망을 주는 선거가 되어야 한다. 양극화 해소가 그 시발점이다. 기업 규제 완화보다 비정규직 노동자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정치인에게 표를 던지고, 부동산 규제 완화보다 공공임대주택을 확보하자는 정당에 표를 던지자. 더 이상 정치를 혐오하고 술로 자신을 위로할 게 아니라 양극화 해결만큼은 이번 총선에서 우리가 투표로 해결하자.

외모, 학벌, 자격증 등 우리가 각종 스펙을 쌓아야만 하고 청년들이 서로를 경계하며 ‘혼밥’으로 돈과 시간을 아끼면서도 SNS에 비싼 레스토랑 음식을 올리는 이유는 ‘신자유주의’에 있다. ‘경제 성장’ 프레임은 이번 총선에서도 우리를 위안하려 든다. 차별과 혐오, 그것을 이용하는 정당과 정치인에게 맞서자. 위성정당으로 권력만 탐하는 이들에게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청년이 세상을 바꾸겠다는 희망을 잃으면 미래는 없다. 청년이여, 일어서라.


지난 가을학기에 연재한 [청년기자들의 시선]이 하나의 현상과 주제에 관한 다양한 시선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이번 봄학기 [청년기자의 시선2]는 현상들 사이(Between) 관계에 주목해 현상의 본질을 더 천착하고, 충돌하는 현상 사이 대립과 갈등 너머(Beyond)에 있을 법한 새로운 비전을 모색한다. [시선2]의 첫 주제는 ‘4.15총선, 이것만은 바꾸자’이다. 망가질 대로 망가진 총선 현장은 코로나 재난까지 겹쳐, 그 어떤 비전도 정책도 상실한 채 우리 앞에 덩그러니 놓여있다. 내일이 보이지 않지만, 우리 삶을 지배하는 결정적 변수가 될 4.15총선을 통해 마지막까지 고민하고 실천해야 할 과제와 행동을 제안한다. (편집자)

편집 : 이예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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