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발언대]

▲ 박지영 기자

미국의 ‘뉴딜’은 ‘잊힌 사람들’을 위한 개혁이었다. 루스벨트 대통령의 문제의식은 대공황이 야기한 핵심이 소득 불평등과 그에 따른 양극화라는 것이었다. 대공황 이후 노동자들이 실업 상태에 빠지고 사회 빈곤계층으로 전락하면서 중산층 몰락이 시작됐다. 이를 막기 위해 꺼내 든 것이 ‘뉴딜’이다. 루스벨트의 ‘뉴딜’ 정책을 국가가 시장경제에 개입해 경기를 부양시키는 측면으로만 이해하면 안 되는 이유다.

국가 주도 공공사업은 많은 일자리를 창출해 중산층의 몰락을 막고, 나아가 수혜 계층을 전체로 확대하는 방편이었다. 시장에서 소외된 노동자의 권리를 강화한 ‘와그너법’, 사회보험과 취약계층을 지원하는 ‘사회보장법’ 등의 노동·복지 정책들이 뉴딜의 백미로 꼽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루스벨트는 불평등과 양극화를 바로잡기 위한 수단으로 ‘큰 정부’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 지난 5월 10일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3주년 연설에서 국가 프로젝트로서 '한국형 뉴딜'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 청와대 홈페이지

‘제2 대공황’이란 말까지 나오는 작금의 코로나 경제 위기에서도 ‘큰 정부’의 필요성은 절실해 보인다. 코로나 사태 이후 경기 침체로 소득 불평등과 양극화가 더욱 극심해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최근 보험연구원은 ‘감염병 확산에 따른 소득 불평등 심화 가능성’ 보고서를 통해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계층 간 소득 격차는 더 커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불안정한 고용환경에 놓인 이들에게 감염병의 영향이 더욱 크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소득 불평등은 건강과 교육 불평등으로 이어져 궁극적으로 심각한 사회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진단도 덧붙였다. 유럽과 미국이 실업수당과 고용유지 지원금에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붓는 배경엔 과거 금융위기 이후 경험한 불평등과 양극화의 두려움이 서려 있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한국판 뉴딜’ 정책을 보면 경기 부양만 강조할 뿐, 코로나 사태 이후 심해질 불평등과 양극화에 관한 문제의식을 찾아볼 수 없다. 경기 부양의 수혜를 중산층과 취약계층 전반에 분배할 정책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비대면 디지털 AI 산업, 공공기관 SOC 기간산업, 그린뉴딜 등 미래 먹거리를 육성해 새로운 일거리를 창출한다는 내용이 ‘한국판 뉴딜’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물론 국가 주도 경기 부양책은 절실한 상황이다. 하지만 경기 부양책만으론 극심한 양극화와 불평등을 해결하기엔 역부족이다. 오히려 경기 부양만 있는 반쪽짜리 ‘뉴딜’ 정책은 불평등과 양극화를 심화할 뿐이다. 경제 위기 때마다 ‘뉴딜’ 정책을 꺼내든 역대 정부의 사례를 봐도 알 수 있다. 노무현 정부 때 ‘한국판 뉴딜’이라 불린 종합투자계획은 정부와 민간투자를 사회간접자본과 정보통신 부문에 쏟아 경기를 부양시킨다는 게 골자였다. 하지만 사회보장 정책의 부재로 단기간에 주택과 토목공사를 늘려 대기업 건설사의 이익만 늘려주고 말았다. 이명박 정부의 ‘녹색 뉴딜’도 마찬가지다. 노동·복지 중심의 재분배 정책 없는 ‘녹색 뉴딜’은 저임금·비정규직 일자리를 양산하는 데 그쳤다.

코로나 위기를 극복할 ‘한국판 뉴딜’은 ‘잊힌 사람들’을 위한 개혁이어야 한다. 시장에 돈만 푸는 게 아니라, 복지제도 전반을 확충하기 위한 재분배 정책을 보다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하는 것이다. 최근 논의되고 있는 전국민고용보험 제도는 비정규직과 특수고용 노동자, 자영업자 등 불안정한 노동환경에 처한 이들을 법적 테두리 안에 포함한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 이와 함께 기업들이 고용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하는 고용유지지원금, 실업급여 등 다양한 공적 부조를 보다 확대해야 할 것이다.

재난기본소득 또한 일회성 지급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코로나 사태 지속과 함께 보다 장기적으로 지급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 재분배 정책을 뒷받침할 조세제도 개혁 또한 미뤄선 안 된다. 증세 없는 복지제도 확대가 한낱 ‘정치적 구호’로 전락하는 걸 우리는 수도 없이 봐왔기 때문이다. 종합부동산세 같은 고소득자 중심의 부자 증세는 물론, 국민연금의 재정 건전성을 위한 증세 또한 활발히 논의해야 한다.


편집 : 신수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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