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발언대]

▲ 조한주 기자

달리는 말에 채찍질을 하면 더 빨리 달리겠지만, 엉덩이의 상처는 계속 덧날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성장만을 위한 성장’이 얼마나 큰 부작용을 갖고 있었는지 보여줬다. 소위 선진국이라던 국가들이 부와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채찍질을 했는지, 그 상처가 얼마나 덧나고 썩었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국민의 안전을 위해 외국인 노동자를 과밀 수용했던 싱가포르는 뒤늦은 전염병대유행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고, 대공황 이후 경제양극화가 가장 심해졌다는 미국은 국민의 40% 가량이 수입이 없어 노숙자로 전락할 위기에 처해있다.

최근 몇 십 년 동안 한국을 포함한 세계는 자본을 위해 살았다. 자본주의가 공산주의에 승리하고 난 이후 자본은 새로운 신이 되어 사람들의 의식을 지배했다. 자본 자체가 문제라는 게 아니라, 그 신격화가 문제다. 마치 광신도처럼, 자본을 더 늘리기 위해 ‘사람’을 저버렸다. 정확하게는 자본을 기준으로 사람들을 나누었고, 낮은 계급의 사람들은 숫자로만 여겼다. 생산비를 줄이기 위해 파키스탄 어린이들에게 가혹한 노동을 시켰던 ‘아디다스’ 사례는 하나의 상징일 뿐이다. 오로지 성장과 자본 창출을 위해 인간의 도리를 저버린 사례들은 오늘날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고 있다.

▲ 초국가기업 등은 지구를 생산지와 소비지 둘로 나눴다. © Unsplash

교통과 정보 기술이 발전하면서 등장한 초국가 기업은 지구를 생산지와 소비지 둘로 나눴다. 기수인 선진국은 비교적 좋은 환경에서 경제식민지주의의 이점을 누리며 채찍을 더 세게 휘둘렀다. 각종 기업의 공장이 몰려있는 동남아시아 등의 후진국과 개발도상국은 환경파괴와 자본침탈의 위험을 감수했다.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휩쓴 지금, 기피 시설이라고 할 수 있는 생산 시설을 타국으로 넘겨버린 대다수의 선진국은 그 대가를 치르고 있다.

문제 해결의 시작은 문제가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전염병이 유행하면서 그동안 지구촌이 지니고 있었던 문제가 무엇인지 드러났다. 산업혁명 시기에나 통했을 법한 성장우선주의와 경제식민지주의의 유효기한은 이미 끝났다. ‘지구촌’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국가 간 수직적 관계보다 수평적 관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제는 제국주의 시대와 달리 다른 국가가 잘 되는 것이 곧 자국의 평화로 이어진다는 걸 알아야 한다. 지쳐서 쓰러지기 일보 직전인 말을 쉬게 하고 상처를 돌보는 것, 코로나19 이후의 전 세계에 보내는 소망이다.


편집: 김계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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