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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정의 공정'에 숨겨진 '결과의 불공정'
[상상사전] '정시확대'
2019년 12월 18일 (수) 09:28:51 박동주 기자 shane9110@naver.com
   
▲ 박동주 기자

눈에 보이는 사례가 주는 힘은 통계보다 강하다. 조국 교수 딸의 논문 저자 논란을 보면 그렇다. 수능은 단순하고 자명하며 객관적이다. 교사나 대학의 자의적 판단이 개입할 여지가 없고 모두가 같은 시험문제를 풀기 때문이다. 그 정반대 쪽에 수시가 있다. 고교 교사와 대학 입학사정관의 판단이 당락에 영향을 끼치기에 주관적이다. ‘불공정한 무언가’가 개입하리라 의심하기 쉽다. 조 교수 딸 논문 사건은 사람들 의심을 ‘정시확대’라는 확신으로 바꿨다.

정시 전형 과정이 공정하다 해서 결과가 정의로운 건 아니다. 정시가 과정의 공정성을 확보하는 대신 결과의 정의에서 치명적인 문제를 만든다는 통계는 많이 나와 있다. 서울대 정시모집 입학생 중 강남3구와 양천구 출신 학생이 4분의 1가량 차지한다. 고소득층 자녀는 저소득층 자녀보다 수능에서 높은 등급을 5배 가까이 많이 받는다. 몇 안 되는 고등급을 고소득층 자녀들이 과점하는 것이다.

   
▲ 과정이 공정하다고 해서 정의로운 결과로 이어지진 않는다. ⓒ pixabay

과정의 공정에만 매몰되면 균등한 기회라는 민주주의 가치를 못 보기 십상이다. 집안이 부유한 학생은 태어날 때부터 엄청난 재산을 상속받는다. 사교육 혜택을 무리 없이 받고 부모 도움으로 더 좋은 취업 기회를 얻는다. 그에 반해 저소득층 자녀는 사교육 혜택을 못 받아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얻지 못하고 인기 대학에 입학하기도 어렵다. 좋은 인턴 경력도 취업 기회도 얻지 못한 채 다른 출발선에서 사회에 진출한다. 학자금은 물론 주택자금과 결혼비용도 스스로 마련해야 하는 저소득층 자녀는 훨씬 더 불리한 인생 기회를 갖는 셈이다. 이 모든 속사정은 정시로 대표되는 ‘공정’이란 한 단어로 균등한 기회라는 가치를 감춘다.

불균등한 기회는 정의롭지 못한 결과를 만들고, 사회적 부와 지위는 상위층에만 몰린다. 공정한 과정을 통해 성공한 이들에게는 과욕을 부려도 제약할 수단이 없다. 말 그대로 모두가 같이 겪는 ‘공정한 테스트’를 거쳐 성공했기 때문이다. 온갖 지원을 받고 수능을 통해 명문대에 진학한 학생과 그 가족에게 아무런 비판도 할 수 없다. 결국 계층간 양극화가 심해지고 저소득층 자녀는 다시 저소득층이 되는 상황이 고착된다. 최순실 딸 정유라 말마따나 돈도 실력인 사회가 돼, 부모를 원망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 도래했다.

주류 경제학에서는 개인 능력에 따른 시장의 차등적 분배를 당연하게 간주한다. 열심히 시험 준비를 해서 명문대에 들어간 학생에게는 좋은 일자리와 높은 수입이 보장되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자유시장의 힘만으로는 기회의 평등과 결과의 정의가 충분히 보장되기 힘든 이유다. 정시라는 제도로 성공한 학생이 축적한 부가 재분배되지 않고 다음 세대에 고스란히 상속되어 신분세습이 일어난다면 불평등은 더욱 커질 것이다. 재벌 2세, 3세가 명문대 졸업 후 해외 석박사를 마치고 아버지 회사에서 경영수업을 하고 승계를 받으면 공정한 경쟁이라 할 수 있을까? 공정한 과정에만 매달린 부자의 세습을 정당화할 뿐이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정재원 기자

[박동주 기자]
단비뉴스 청년부, 시사현안팀 박동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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