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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의 두 얼굴 1 - ‘노동’ ‘밥’
[청년기자들의 시선] ⑤
2019년 11월 27일 (수) 21:55:05 박동주 최유진 기자 shane9110@naver.com
한국사회는 정치적 이념, 소득과 계층, 세대에 따라 상반된 두 얼굴의 모습으로 대립하고 있다. 자신만의 주장을 앞세운 채 서로 대화하지 않으며 심지어 상대 진영을 극단적으로 공격하는 양상을 띠기도 한다. ‘틀림’이 아니라 ‘다름’으로, ‘내 탓이오’ 운동으로 함께 살아갈 공동체운동은 불가능한 것인가? [청년기자들의 시선] 세 번째 주제는 ‘한국사회의 두 얼굴’이다. ‘노동, 밥, 1%, 플라스틱’ 네 키워드로 한국사회의 상반된 양면을 들여다본다. (편집자)

<키워드 하나, 노동>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발명 전, 유럽에서 성경 66권 한 질을 사려면 집 10채 값을 내야 했다. 인쇄술 발명 후, 서적의 대량생산이 가능해져 일부 계층만 누리던 지식이 서민에게 보급되면서 종교개혁과 르네상스가 일어났다. 인쇄 기술 하나가 중세 유럽을 암흑에서 깨어나게 만든 것이다.

디지털 혁명이 만들어낸 플랫폼 경제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발명은 디지털 혁명을 불러왔다. 디지털 기술은 디지털 플랫폼 경제 구축으로 이어졌다. 플랫폼 기업들은 핵심 생산시설을 소유하지 않고 중개로 상품을 판다. 플랫폼 덕분에 숙박, 차량, 상품 등을 공유하는 공유경제가 가능해졌다. 스마트폰 앱을 활용해 택시를 타고 음식을 손쉽게 주문할 수 있다. 새로운 일자리도 생겼다. 면허가 없어도 택시 영업을 할 수 있고, 오토바이 하나만 있으면 배달 영업을 할 수 있다. 노동자가 남는 시간을 활용해 추가 소득을 올릴 수도 있다. 내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방식으로 골라서 일을 할 수 있다. 디지털 플랫폼은 우리 삶의 일부가 되었다.

   
▲ 지금까지 산업발전 방식에서는 상상할 수 없던 거대 디지털 플랫폼 기업들이 탄생했다. 과연 디지털혁명은 노동자의 삶을 보장할 것인가? © wikipedia

한국사회가 디지털혁명을 피해갈 수는 없다. 인터넷에 고객을 빼앗긴 전통시장과 시청자와 광고를 잃은 레거시 미디어는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타다’ 차량 서비스 등 새로운 사업들은 기존 사업체들과 갈등과 분쟁을 일으키고 있다. 기술혁신이 불러일으킨 새로운 미래 이면에는 간과된 ‘사람’, 노동자가 있다.

새로 생긴 일자리는 일반적인 고용 관계가 아니다. 지금까지는 노동자와 자영업자를 ‘고용 여부’를 기준으로 나눴다. 디지털 플랫폼 경제에서는 자영업자인데도 종속적인 사람들이 있고, 고용되어 있으면서도 자율적인 사람들이 있다. 고용 여부와 종속성 여부가 무 자르듯 나눌 수 없게 된 것이다. 이 틈을 파고들어 플랫폼 기업은 노동자를 자영업자로 보고 보수를 지급하고 처우를 결정하면서도 고용하지 않고 있다. 우버에 운전노동자 안전과 보험을 책임지라고 하자 대답은 간결했다. “우리는 고용주가 아니다. 운전자는 일종의 개인사업자이기에 궁극적인 사고 책임도 개인이 진다. 우리는 플랫폼을 제공할 뿐이다.” 노동자의 노동력을 이용하되, 책임은 지지 않겠다는 뜻이다.

갈 곳 잃은 플랫폼 노동자

디지털 플랫폼 노동자가 사회안전망 밖으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노동관계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면 보장된 노동자 권리가 사라진다. 한국의 경우 1년 이상 근무하면 받을 수 있는 퇴직금을 받을 수 없다. 해고됐을 때나 노동조건에 불이익을 받았을 때도 보호받기 힘들다. 건강보험과 국민연금은 당연하고 일터에서 필요한 산업재해보험도 가입이 불가능하다. 최저임금을 받을 수 없고 노동시간의 한도가 사라지며 연장·야간 근로에도 할증 임금이 지급되지 않는다.

   
▲ 디지털혁명이 가속화하면서 플랫폼 노동자의 노동 권리와 삶이 위협받고 있다. © 라이더유니온 페이스북

플랫폼 산업이 지속 가능하게 발전하려면 그 속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어떻게 보호해야 할지 본격적으로 고민해야 할 때다. 플랫폼 기업들이 디지털 기술로 우리 생활을 편리하게 만든 건 맞다. 혁신을 부정할 수는 없다. 문제는 그 편리함 속에 가려진 노동자들의 삶이다. 비정규직, 임시계약직, 프리랜서 등의 이름으로 노동 소외 현상이 가속화하면서, 노동자들 삶이 위협받고 있다. 플랫폼 노동자를 보호하는 일은 누가 져야 하는가? 국가인가, 거대 플랫폼 기업인가? 플랫폼 노동자를 다시 사회안전망에 끌어들일 정책이 시급하다.

(박동주 기자)

<키워드 둘, 밥>

식판에 세 가지 반찬이 조금씩 빠르게 놓였다. 주걱에 밥이 얼마나 뜨이는지 받는 이는 유심히 보지만, 주는 이는 분주하게 퍼줘야 한다. 국도 대중없어 양과 질이 제각각이다. 어떤 그릇은 고기가 한 점도 안 들어간 맹탕이다. 노숙인들은 소중하게 식판을 받아 든다. 옆에 앉은 이와 말 한마디 섞지 않고, 눈앞에 놓인 밥을 먹는 데 집중한다. 자원봉사자들은 바쁘게 요리하고 배식한다. 노숙인들의 식사는 순식간에 끝난다.

   
▲ 서울역 13번 출구 앞에 있는 ‘따스한 채움터’는 노숙인을 위한 무료급식소로, 지원 단체에 따라 매일 2~3끼를 배식한다. ⓒ 국제라이온스협회

노숙인들의 밥 한 끼

“저기 자리 났습니다, 들어오세요!” 서울역 13번 출구 앞, 무료 급식소 ‘따스한 채움터’는 최대 다수를 위한 밥상을 차려낸다. 11월 3주차 기준으로 일주일간 16회 급식을 운영했다. 총 이용자수가 4865명이니 한 번 급식할 때 304명이 밥을 먹은 셈이다. 8~10시, 12~14시, 17~19시에 각각 아침, 점심, 저녁을 준다. ‘따스한 채움터’는 요일별, 시간대별로 각각 다른 단체가 기부∙후원 차원에서 급식을 한다. 종교단체, 사회복지단체, 기업체 등이다. 삼시 세 끼를 제공하지 못하는 날도 있다. 하루 두 끼 이상을 제공하기 위해 단기간 지정기부급식을 운영하거나 ‘따스한 채움터’ 스스로 대체 급식을 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주 3일은 아침 배식을 못 하고 있다.

26일 저녁에는 따스한 채움터 봉사자 여섯이 2시간 동안 노숙인 357명에게 배식했다. 식자재도, 자원봉사자도 한정돼 있다. 돈 들이지 않고 때우는 한 끼 식사에서 질을 따지면 사치일까? 생존을 위한 최소 조건을 충족할 뿐이다. 한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대기하던 다른 이가 들어와 채운다. 이곳의 매 끼니는 전투적으로 달려들어야 먹을 수 있는 밥상이다. 가장 풍족한 시대에 밥이 여전히 전쟁이어야 할까? 먹거리는 인간이 존재하기 위한 기본 전제가 되어야 하는데.

   
▲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에서는 셰프가 예약 고객을 위한 코스요리를 낸다. ⓒ pixabay

“죄송하지만, 만석이라 다음에 모시겠습니다.” 분명 한 팀마다 옆에 한 자리씩 비어있다. 촘촘하게 당겨 앉으면 네 사람을 더 받을 수 있다. 셰프는 연이어 두 팀을 돌려보냈다. 고객에게 여유로운 식사 공간과 수준 높은 요리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서울 중구에 있는 캐주얼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이다. 대표 메뉴는 셰프 이름을 내건 까르보나라로, 다양한 이탈리아 요리를 낸다. 메뉴 하나는 평균 3만원대로 2가지 웰컴 푸드와 쁘띠 디저트, 고급 홍차가 포함된다. 이곳에서 한정된 자원은 미슐랭2스타 셰프의 노동력뿐이다. 사업주의 수지와 고객의 요구만 맞으면 고급 식자재도 얼마든지 공수할 수 있다.

테이블 수가 적은 것도 고객에게 특별함을 선사하려는 의도다. ‘한정 고객’에 속한 영광을 누리게 해준다. 문밖에 줄 서 있는 이도 없으니, 눈치 볼 일도 없이 여유 있게 식사할 수 있다. 오롯이 나만을 위한 음식이 만들어지고, 만족스럽지 못하면 당당하게 불만을 이야기한다. 큰 비용을 지불하고 예약하는 수고를 치른 이들이 누릴 수 있는 대접이다. 한 쪽에서는 끼니를 걱정하지만, 여기서는 미식하는 ‘즐거움’에 한계가 없다.

밥이 없어 자살하는 나라

심각한 ‘양극화’가 밥상까지 영역을 넓혔다. 무료 급식소와 파인다이닝, 공짜 밥과 비싼 밥, 그 중간쯤은 어떤 밥상일까? 자본주의 사회라도 밥상에 차이는 있어도, 차별은 없어야 한다. 한국인의 밥상에는 ‘자본’만이 아니라, ‘갑질’까지 같이 오른다. 대한항공 사모님은 과일과 야채 손질을 제대로 못했다는 이유로 가사도우미를 필리핀으로 내쫓았다. 돈을 내면 밥상머리에서 조리사를 야단치고 나만의 식단을 얻어낼 수도 있다. 한 대사 부인은 대사관 관저요리사에게 근무시간 외 점심과 저녁까지 만들어 달라고 강압했다. 휴가 중이던 요리사에게 만두 500개를 만들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지금도 누군가는 살기 위해 꾸역꾸역 음식을 삼키고 있다. 사회복지정책을 결정하는 고위 관료들이, 눈물 젖은 밥을 알 턱이 없고, 애써 알려 하지도 않는다. 서울시가 노숙인을 위해 운영하는 무료급식소는 단 한 곳이다. 경기도내 무료급식소는 229개나 되지만 노숙인을 위해 매일 세 끼를 제공할 수 있는 곳은 없다. 끼니 걱정은 노숙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해 6월 기준 결식아동은 28만여명에 이르렀다. 밥이 없어 자살하는 이가 속출한다. 밥은 생존의 기본조건이다. 밥상의 ‘양극화’는 안 된다.

(최유진 기자)


편집 : 유연지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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