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기자들의 시선] ②

'청년기자들의 시선'은 <단비뉴스>를 만드는 청년기자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다. 진영논리와 이익추구에 가려져 잊힌, 주목해야 할, 다시 발견해 내야 할 세상의 가치와 의미는 무엇인가? 우리는 청년기자들의 따뜻한 시선으로 이를 찾아내 인간, 평화, 민주라는 가치로 세상을 바라보려 한다. 연재는 매주 한 주제 아래 청년기자들의 다양한 시각을 키워드로 정리해 담아낸다. 첫 시선은 ‘2019년 대한민국과 나’로, 지금 한국사회를 ‘분노, 진정성, 잊혀짐, DMZ’ 네 키워드로 바라보았다. (편집자)

<키워드 셋, 진정성>

기자를 꿈 꾼 내 20대의 화두는 ‘진정성’이었다. ‘진정성’을 상실한 우리 사회에 진저리를 내면 낼수록, 좋은 기자가 갖추어야 할 ‘진정성’은 무엇일까 고민했다. 영화 <내부자들>은 ‘진정성’의 한 단초를 준다. 정치깡패 안상구(이병헌)는 정의를 내세우며 권력형 부패를 폭로하겠다 협박한다. 언론인 이강희(백윤식)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말한다. “깡패 말을 누가 믿어.” 그의 단언대로 안상구의 폭로는 세상의 주목을 받지 못한다. 아무도 깡패 입에서 나온 ‘정의’에 ‘진정성’이 있다 믿지 않았다. ‘진정성’은 어떤 사람이 공적(公的)인 주장을 할 때, 그 주장이 그의 평소 신념과 삶의 태도에 일치하는지를 따지는 단어다.

▲ 영화 <내부자들>은 진정성 없는 전문가 집단들이 권력을 다투며 오늘 한국 사회의 진정성은 어떠한가 묻는다. ⓒ pixabay

진정성의 늪에 빠진 정치와 공직사회

2019년 대한민국, 정치와 공직사회에 ‘진정성’은 과연 존재하는가. 조국 전 민정수석을 나타내는 표어는 ‘조로남불(조국이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었다. 평소 대학교수가 정치인으로 변신하는 모습을 비판해온 그가 법무부장관 임명을 앞두고 한 말은 “임명직 진출은 지식인의 앙가주망”이었다. 조국 전 장관의 자녀 부정입학 의혹을 질타한 자유한국당 나경원 의원은 자신도 자녀의 부정입학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비판받는 사람과 비판하는 사람 모두 진정성을 의심받았다.

진정성에 대한 강박과 회의도 동시에 느껴진다. 2017년 5월 출범한 문재인 정부의 장관 인선 과정에서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장관 후보자의 쪼개기 증여가 탈세 의혹으로 확대됐다. 기자들은 홍 후보자가 야권 시절 유사한 방식의 증여를 질타한 ‘과거’를 지적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기자) 여러분은 쓰신 기사대로 살아 가고 있는가"라고 항변했다. 언론의 ‘진정성’ 문제 제기에 권력은 기자들에게 당신들은 ‘진정성’이 있는가 되물은 것이다.

우리 사회는 ‘무엇이 되려면 이미 그것이 된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고 말한다. 메시지는 메신저의 삶이 뒷받침돼야 진정한 타당성을 가진다. 이 땅에서 진정성은 언행일치는 물론이고 일관성도 요구된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변하지 않는 과도한 순수성을 요구하는 것이다. 엄격한 사회문화 탓이 아니다. 정치와 언론이 최소한의 진정성조차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타협과 조화 없이 갈등만 일삼는 극단적 정치문화, 객관적 보도와 사실 확인보다 정파적 보도에 매몰된 언론이 진정성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을 낳았다.

▲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의 탈세의혹 논란은 권력과 언론이 진정성에 얼마나 둔감하고 무책임한지를 드러낸다. ⓒ pixabay

국민들이 경고하고 있다

좋은 기자가 되기 위한 ‘진정성’은 무엇일까? ‘신뢰’에 답이 있다. 기자가 사람들에게서 두터운 신뢰를 얻기 위해선, 성실하게 취재하며 부지런히 소통하고 세상과 공유하는, 노력 밖에 방법이 없다. ‘노력에서 지혜와 순수성이 나온다’고 했다. 진정성은 자기 자리에서 스스로 부끄럽지 않게 꾸준히 한 노력에서 나오는 일관된 태도와 믿음직한 모습이다. 국민들이 정치와 공직사회에 경고하고 있다, 나부터 진정성을 갖추지 않으면 지금 한국사회의 위태로운 ‘진정성’이 마침내 당신들의 폐부를 찌르고 말 것이라고.

(이정헌 기자)

<키워드 넷, DMZ>

나는 비무장지대(DMZ) 내에 있는 GP(감시초소)에서 장교로 군 복무를 했다. 내가 근무한 GP는 북한 GP와 겨우 2km 떨어져 있었다. 육안으로 빨간 인공기가 보이고 쌍안경으로는 창을 열고 화력장비를 꺼내는 북한 군인 모습까지 보였다. ‘비무장지대’라는 말은 사실과 다르다. ‘비무장지대’라는 단어가 무색하게 GP에는 적의 공격을 막아내고 비상시 대응공격까지 가능한 화력장비가 배치돼 있다. 선배 전우들의 손때 묻은 화력장비는 언제든 사용할 수 있게 잘 손질돼 있다. 우리는 전투에 대비해 쉼 없이 총기를 점검하고 훈련을 반복했다. 긴장이 가득한 최전선에서 2017년 3월부터 2019년 6월 30일까지 2년 남짓 근무하는 동안 나는 DMZ의 두 얼굴을 동시에 보았다. 하나는 전쟁이었고 다른 하나는 평화였다. DMZ는 일촉즉발의 전쟁터였으며, 대화와 평화가 구축되는 현장이었다.

▲ DMZ는 늘 긴장이 감도는 최전선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전쟁과 평화’ 두 얼굴을 함께 보았다. ⓒ flickr

DMZ 네 장면

2017년 10월, 소위로 처음 GP에 투입됐다. 한 달 뒤인 11월 29일 새벽에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했다. 훈련상황이 아닌 실제상황이 벌어지면서 경계 형태가 격상됐다. 경계 형태가 격상하면, GP내 전 병력은 실탄을 장전하고 각자 경계구역에 투입된다. 근무중인 야간조는 바로 투입되고, 취침중인 병력들도 모두 일어나 ‘투입’을 외치며 전투복과 탄복을 입고, 자기 소총을 챙겨 실탄을 받으러 뛰어갔다. 병사들은 잠에서 깬 지 3분도 안 돼서 각자 경계구역에 자리 잡았다. 군 생활 중 실제 경계 형태 격상은 이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찬바람 불던 초겨울 새벽, 실탄이 장전된 내 총구는 북한 GP를 향했고, 등에는 식은 땀줄기가 흘렀다. ‘이러다가 정말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구나.’

2018년 4월 27일 평양에서 남북 정상회담이 개최됐다. 회담의 합의에 따라 북한의 대남확성기가 제거됐다. 확성기는 남북간 소리 전쟁의 도구다. 대북·대남확성기를 이용해 남북은 서로의 체제를 부정하는 선전방송을 했다. 남측 GP에서는 밤마다 괴상한 북한 혁명가나 군가와 북한 여자 동무가 부르짖는 김정은 찬양 연설을 들었다. 우리 GP는 여성 앵커가 진행하는 라디오방송과 여자 아이돌 노래를 반복해서 흘려 보냈다. 처음 GP에 왔을 때, 코 앞에 북한이 있는 전선이란 걸 실감시켜 준 건 대남확성기였다. 남북정상회담 다음 달 대남확성기가 철거됐다. 시끄럽던 GP의 밤은 고요해졌다. 경고 방송용으로 남아있는 확성기에 먼지가 쌓였다. 먼지가 쌓이면 평화가 왔다. ‘평화는 조용한 것이구나.’

2018년 9월 평양공동선언은 DMZ를 더 크게 변화시켰다. 바로 GP 철수였다. 남북 GP 거리가 1km 미만인 곳 중에서 22곳을 선정해 GP를 시범적으로 철수했다. GP는 실탄, 수류탄 그리고 북한 GP를 조준하고 있는 공용화기(2인 이상 조작) 등 즉각 전투가 가능한 경계초소다. 전투태세를 완벽히 갖추고 있던 GP 철거는 전쟁의 자리에 평화를 대체해, 전운이 가득한 한반도에 평화를 심을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남북이 함께 철수한 GP는 빈 공간으로 남아 있거나 철조망을 녹여 만든 평화의 종이 설치됐다. ‘우리가 노력하면 전쟁을 막을 수도 있구나’

전역하던 날인 2019년 6월 30일에는 미국 대통령이 판문점을 깜짝 방문했다. 판문점에서 남북미 정상이 만났다. 트럼프는 김정은을 따라 군사 분계선을 넘었다. 미국 대통령 최초였다. 미 대통령이 냉전의 상징인 경계선을 넘어 적진에 걸어간 것이다. 전 세계가 남북미 정상의 판문점 만남을 주목했다. 세 정상은 새로운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선언했다. 가슴이 뛰었다. 상상했다. ‘이러다 통일도 하겠는데?’

▲ 다시 전쟁과 위기를 얘기한다. 평화의 길은 멀고 험하지만 우리가 반드시 가야 할 길이다. ⓒ 청와대

평화, 멀지만 가야 할 길

서로 총구를 겨누던 접경지역 DMZ가 악수와 포옹의 자리가 됐다. 전쟁의 위협은 한 걸음 물러서고 평화가 한 걸음 더 다가왔다. 평화를 얘기하던 그때부터 불과 몇 달 뒤, 내가 떠난 DMZ에 다시 긴장이 흐른다. 냉전주의자와 보수주의자들은 안보 위기와 전쟁을 다시 들먹인다. 내가 두 눈으로 확인했다. 최전선이 평화의 상징으로 바뀌는 현장을. 내가 목격한 DMZ의 네 장면은 지울 수도, 돌아갈 수도 없는 역사다. DMZ가 눈을 부릅뜨고 증언한다. 이 땅에서 전쟁은 안 된다. 평화의 길은 더디지만, 우리가 가야만 할 길이다.

(박두호 기자)


편집 : 김지연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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