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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수치, 개인의 수치
[단비발언대]
2019년 11월 09일 (토) 11:28:41 박서정 기자 outsidebox94@gmail.com
   
▲ 박서정 기자

예일을 비롯한 미국 여러 대학에는 참전 군인들이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를 낭송하고 토론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내용 중에서 아킬레우스나 헥토르 같은 영웅의 활약도 많이 다루지만, 필록테테스가 홀로 섬에 10년간 버려지는 대목을 빠뜨리지 않는다. 다른 왕들처럼 그도 7척 배를 이끌고 트로이 원정에 나섰지만, 도중에 들른 섬에서 물뱀에 다리를 물린다. 통증을 참지 못해 비명을 계속 지르고 상처에서 악취까지 나자, 그리스 연합군은 그를 근처 섬에 버리고 간다. 그는 활로 작은 동물을 사냥하며 연명한다. 잘못을 저지른 게 아니라 실수로 수치스러운 처지에 놓인 것이다.

참전 베테랑들은 이 인물을 통해 전쟁의 단면을 드러낸다. 그들은 국가가 자신을 필록테테스처럼 처리하지 않기를 바란다. 프로그램 영상을 보면, 퇴역 군인이 눈을 크게 뜨고 필록테테스의 독백을 한 단어씩 끊어 읊는다. 일상에서 느낄 수 없는 기괴하고 불편한 질척임을 느낄 수 있다. 훈장, 주택, 연금 같은 보상도 전쟁에서 체험한 그 기괴함을 이들에게서 지워주지 못한다.

   
▲ 기욤 기용-레띠에르 (Guillaume Guillon-Lethière)의 <렘노스섬의 필록테테스>. 필록테테스가 부상 고통에 떨며 사냥한 새를 나무에서 끌어내리려 하고 있다. ⓒ Google

2015년, 하재헌 중사는 북한 목함지뢰에 두 다리를 잃었다. 그는 이 사건을 천안함 사건과 동일 선상에 놓았다. 자신이 지뢰를 밟은 ‘희생’으로 국가 안보에 공헌했다고 국가가 인정해주기를 바란 것이다. 그는 ‘피해자’가 아니라 ‘영웅’으로 기억되기를 원했다. 군인인 그가 피해자라는 꼬리표를 원치 않는 건 당연하다.

처음에 국가는 이 사안을 ‘전상’(戰傷)으로 처리했다. 그런데 국가보훈처가 이를 ‘공상‘(公傷)으로 변경했다. 법률과 관련 규정에 따른 결과지만, 그 의미는 국가에 공헌했거나 국가를 위해 희생한 게 아니라, 필록테테스처럼 사고를 당한 것이라 본 것이다. 다행히 대통령이 ‘사실상’ 재검토를 지시하면서, 그는 수치를 씻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국가 배상∙보상은 국가의 수치를 인정하는 조처다. 국가가 국민, 그것도 우선순위로 보호해야 할 미성년자들의 죽음을 시스템 관리 미흡으로 막지 못했다는 것을 인정했다. 박근혜 정부는 실패를 인정하지 않았다. 인정하면 ‘국가정체성’이 훼손되리라 판단했을 것이다. 세월호를 외면하는 바람에 정부는 더 큰 위기를 맞았다. 세월호를 기억하는 ‘시민정체성’이 이를 잊으려는 ‘국가정체성’과 대결하는 구도가 세워져 버렸다.

‘시민정체성’은 보편적 가치를 우선하며 개인이 전체에 끼치는 힘을 중시한다. ‘국가정체성’은 경제성장이나 문화전파 같은 특별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우리’로 단합할 것을 요구한다. 국가가 기대했던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잘못도 인정하지 않는 데다, 재발 방지 대책도 세우지 않자 국민은 국가정체성을 밀어내고 시민정체성을 더 강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근혜 탄핵의 배경이다.

시민정체성 시각에서 하 중사는 국가 시스템 실패의 피해자라고 할 수 있다. 본인은 그런 시각을 거부했다. 사과를 받기보다 본인이 국가를 위해 희생했다고 인정하기를 요구했다. 그는 철저히 국가정체성에 기반해 호소했다. 세월호 순직 교사 4명은 2017년, 법원 판결을 통해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았다. 학생들은 ‘희생자’일 뿐이다. 당시 새정치민주연합이 발의한 ‘세월호특별법’에 이들을 ‘의사자’로 지정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지만, 거센 반발로 폐기됐다. 국가는 하 중사의 희생과 세월호 참사 둘 다에 책임이 있다. 국가가 스스로 제시한 국가정체성을 지키는 건 당연하고, 민주주의 국가로서 시민정체성을 보호해야 하기 때문이다. 배상과 보상보다 중요한 것은 합당한 예우다. 


편집 : 양동훈 기자

[박서정 기자]
단비뉴스 전략기획팀, 기획탐사팀, 미디어콘텐츠부 박서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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