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현장] 청소년기후행동 ‘9.27 결석시위’

“전 세계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들이 비상사태를 선언하면서 기후위기를 인정하고 즉각적인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정치권은 기후변화를 주요 이슈로 다루려는 노력 자체가 없어요. 그런데도 유엔(UN) 기후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한국이 파리협정을 잘 이행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정부에서 그런 입장을 내놓는다는 것 자체가 문제 파악을 못 하고 있다는 것이어서 빵점 드리겠습니다.”

27일 오전 10시 서울 광화문 세종로공원에서 청소년기후행동 주관으로 ‘기후위기를 위한 결석 시위’가 열렸다. 청소년과 성인 500여명이 참여한 이날 집회에서 김유진(17·서울외국인학교)양은 ‘대한민국 청소년이 평가한 기후위기대응 성적표’를 발표하고 문제 파악력, 의지와 적극성, 신뢰성 및 구체성 면에서 정부에 모두 영(0)점을 줬다. 김양은 이어 대한민국 정부에 ‘무책임 끝판왕상’을 수여하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전 세계 주요 도시에서 일제히 ‘기후를 위한 학교 파업’

▲ 27일 ‘기후를 위한 결석시위’를 주도한 김유진양(왼쪽)이 “우리나라 정부의 기후위기 대응점수는 빵점”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 윤종훈

이날 집회는 지난해 8월 스웨덴 스톡홀름 의회 건물 앞에서 청소년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16)가 시작한 ‘기후를 위한 등교거부(School Strike for Climate)’가 한국에도 본격 상륙했음을 보여준다. 영국 <가디언> 등 외신에 따르면 지난 23일 미국 뉴욕에서 유엔 기후행동 정상회의가 열린 것을 계기로 27일 캐나다, 뉴질랜드, 스위스 등 세계 각국 주요 도시에서 각각 수백명에서 수십만명이 참가한 등교거부 시위가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졌다.

이날 광화문 집회에 나온 청소년들은 ‘기후악당 국가의 국민이 되기 싫다’ ‘지구를 지켜주세요, 내 미래를 망치지 말아주세요’ 등 다양한 구호가 적힌 손팻말을 들었다. ‘기후악당’은 지난 2016년 영국의 환경감시단체 기후행동추적(CAT)이 한국, 사우디아라비아 등 4개국에게 “1인당 온실가스배출량 증가 속도가 빠르고 기후변화 대응이 미흡하다”며 붙여 준 오명이다.

 
각양각색의 구호가 적힌 손팻말을 직접 만들어 들고 나온 참가자들. ⓒ 이나경

자유발언대에 오른 한다솔(16·기린고1)군은 자신이 살고 있는 강원도 인제의 빙어축제가 온난화 영향으로 얼음이 얼지 않아 취소되는 것을 보며 이상기온의 심각성을 깨달았다고 밝혔다. 한군은 <단비뉴스> 인터뷰에서 “앞으로 12년 뒤면 기후위기가 더 심각해지는데, 정부와 기업들은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는다”며 “내일 모레가 중간고사지만 책상 앞에서 공부하는 것보다 (시위에 나온 것이) 뜻 깊다”고 말했다. 서울 마포구에서 온 금무위(12)양 등 4명은 무대에 올라 기후위기를 주제로 한 노래 공연을 펼쳤다.

현장에서 ‘길 위의 조조(아침)세미나’를 진행한 조천호 전 국립기상과학원장은 “윗세대는 에너지를 사용하면서 이산화탄소를 마음껏 배출하고 이익을 누려왔는데, 지금의 어린 세대와 다음 세대는 아무런 이익도 없이 점점 거세지는 기후위기의 피해를 감당해야 하는 국면에 부닥쳤다”며 “정의롭지 못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윗세대 마구잡이 탄소배출, 다음 세대 기후재앙

▲ 27일 오전 서울 광화문 세종로공원에서 ‘기후를 위한 결석시위’에 참여한 청소년들이 조천호 전 국립기상과학원장의 강연을 듣고 있다. ⓒ 이나경

오전 11시부터는 ‘기후대응 가을운동회’가 열렸다. 청소년들은 지구 모양의 공을 함께 튀겨 올리는 합동 제기차기, ‘석탄 그만’ 등 문구가 들어 있는 박 터트리기 등 갖가지 게임에 참여했다. 이들은 발 딛고 설 곳이 점점 줄어가는 게임을 통해 해수면 상승으로 살 곳을 잃은 섬나라 주민들의 심정을 헤아려보기도 했다.

 
여러 가지 게임을 통해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헤아리고 기후행동의 과제를 짚어보고 있는 청소년 참가자들. ⓒ 이나경

세종로공원에서 행사를 끝낸 시위대는 ‘정부의 기후위기 대응 점수 빵점’이라는 현수막을 들고 청와대로 행진했다. 이들은 ‘온실가스 배출제로’ ‘응답하라 대한민국’ ‘우리 모두 당사자다’ 등의 구호를 크게 외쳤다. 길 가던 시민들이 걸음을 멈추고 호기심 어린 눈길을 보내기도 했다.

이들은 청와대 앞에서 기후위기대응 성적표와 ‘무책임 끝판왕’ 상장, 청소년들의 요구가 담긴 서한 등을 시민사회수석비서관실 송재봉 행정관에게 전달했다. 이들의 요구는 정부가 2020년까지 국내외 신규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을 백지화할 것, 2050년까지 재생에너지로 100% 전환할 것, 2050년까지 탄소 제로를 달성할 것 등 5개항이었다.

 
‘기후를 위한 결석시위’ 참가자들이 정부의 기후변화 대응 점수를 매긴 성적표와 ‘무책임 끝판왕’ 상장, 현수막 등을 들고 청와대로 행진하고 있다. ⓒ 이나경

“청소년들이 느끼는 절박감, 두려움 전하고 싶다”

이날 집회를 함께 기획한 김도현(16·용인외대부고)양은 <단비뉴스> 인터뷰에서 “청소년들이 느끼는 절박함,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기성세대와 정부에 보다 효과적으로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학교에 현장체험학습 신청서를 내고 나왔다는 그는 “기후위기는 앞으로 점점 더 우리 삶에 위협이 될 것”이라며 “모두가 일상 속에서 채식을 실천하고 전기 사용을 줄이는 등 여러 가지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양은 또 “아직까지 학생들의 사회운동에 대한 편견이 크고 학교의 직접적인 반대에 부딪치는 친구들도 많다”며 “그렇지만 대학 가고 나서, 어른이 된 후에 나선다면 우리 미래가 존재하지 않을 거란 걸 알기 때문에 지금 싸우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 시위를 기획한 김도현양은 “지금 나서지 않으면 미래가 없을 것이기 때문에 나왔다”고 말했다. ⓒ 윤종훈

청소년기후행동은 기후변화에 위기감을 느낀 중고생 40여명이 지난해 8월 정부의 안일한 대응을 문제 삼겠다며 ‘청소년 기후소송단’을 구성하면서 발족했다. 이들은 지난 3월과 5월 청와대와 서울교육청 앞까지 행진하는 등 국내 처음으로 기후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세계 각국환경단체들의 기후행동에 발맞춰 앞으로도 등교거부 시위 등을 이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편집 : 김지연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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