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발언대]

▲ 임세웅 기자

9.11 테러 당시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부장관은 ‘모른다는 것을 모른다’라는 말을 남겼다. 그는 “세상에는 우리가 모른다는 것조차 모르는 것이 있다”며, 확실히 보이는 것들에 시선을 빼앗겨 알카에다가 테러를 일으킬 가능성은 상상조차 못 했다고 말했다. 상상력의 부재가 9.11 테러를 불러왔다는 말이다. '학종(학생부종합전형)'과 '정시(정시모집)'만을 보면서 교육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려 드는 정부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다.

정부는 교육 불평등 해소책으로 ‘아는 것’, 곧 학종과 정시만 이야기한다. 지난해 만들어진 대입제도공론화위원회 발표는 물론이고 조국 전 장관 딸 문제로 불거진 교육 불공정에 관한 문 대통령 국회 연설을 보면 그렇다. 대입제도공론화위원회는 4개 안으로 토론했지만, 핵심은 학종과 정시 비율 조정이었다. 문 대통령의 말 역시 학종의 부작용이 크니 그렇다면 다시 정시로 가자는 말이다.

▲ 지난 10월 25일 문재인 대통령은 교육 관련 장관회의에서 서울 주요 대학의 정시 비율 상향 조정을 주문했다. ⓒ kbs

문제는 학종이나 정시 모두 교육 불공정을 해소할 수 없다는 것이다. 두 가지 모두 상위계층이 그렇지 못한 사람에 비해 유리하다. 정시의 경우, 사교육에 돈을 쏟아부을 수 있는 계층의 자녀는 좋은 수능 성적을 낸다. 자본 격차에 따른 교육 격차를 막기 위해 도입한 학종 역시 마찬가지다. 고학력 엘리트 자녀가 기회에 접근하기 쉽다. 이들은 경제적 여유도 있다. 이는 조국 전 장관 자녀가 고등학교 때 논문 제1저자로 등재한 사실에서도 드러났다. 실제로 정시만으로 학생을 뽑던 1999년부터 학종의 영향력이 강화된 2016년까지, ‘SKY’ 대학생 열에 일곱 이상이 소득 최상층인 9분위와 10분위다. 결국 자산과 소득 양극화를 해소하지 않고는 교육 불공정을 해소할 수 없다. 이것이 정부가 ‘모른다는 것조차 모르는 것’이다.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 학종과 정시에서 시선을 거두고 자산∙소득 양극화를 해소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국민의 재산을 국가 권력이 강제로 몰수해 재분배할 수 없다면, 재분배 성격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과세 구조를 바꾸는 것이 현실적인 방법이다. 고소득자 세율을 높여 세금을 많이 거두고, 이를 저소득자에게 분배함으로써 양극화를 줄이자는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작년 12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 국내총생산(GDP) 대비 세수 비율은 26.9%로 36개국 가운데 32위다. 개인소득 최고세율도 40%로 최하위권이다.

이미 우리 사회는 ‘정시’의 부작용도, ‘학종’의 부작용도 몇 년간에 걸쳐 체득했다. 정시와 학종 비율 조정만으로 교육 불평등을 해소할 수는 없다는 게 결론이다. 정부는 아직도 길을 모르는가, 아니면 알면서도 그 길을 가지 않겠다는 건가?


편집 : 오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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