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현장] 2019 그린컨퍼런스 ‘기후변화의 증인들’

“항공운송도 해운도 어마어마한 온실가스를 배출합니다. 근본적인 경제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교역을 줄이고 경제를 지역화(localizing)해야 합니다.”

7일 오후 6시 서울 수하동 페럼타워 3층 페럼홀에서 녹색연합 주관으로 열린 ‘기후변화의 증인들’ 컨퍼런스에 연사로 나선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73) 로컬퓨처스 대표는 ‘지역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세계화로 인한 생태와 문화 파괴를 다룬 책 <오래된 미래>의 저자이자 환경운동가인 그는 지역화가 ‘지역 내에서 자급자족해 제품 생산과 소비의 거리를 줄이고 지역공동체 차원의 작은 시장을 활성화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식량 등 대규모 수출입이 온실가스 배출 가속화

▲ 7일 녹색연합 주관 그린컨퍼런스에서 기조연설 중인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로컬퓨처스 대표. 그는 저서 <오래된 미래>에서 세계화로 생태와 문화가 파괴된 인도 라다크의 참상을 소개하고 지역화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 윤종훈

호지 대표는 “미국만 해도 수천억 톤(t)의 쇠고기를 수출하고, 낙농제품도 어마어마한 양으로 수출입하고 있다”며 “각국이 상품을 수출입하지 않고 내수용으로 자급자족하는 것이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데 효과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재생에너지 전기생산 등 배출가스를 줄이는 방안이 여러 가지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경제를 지역화해 운송 등에 쓰이는 화석연료를 줄이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역설했다. 생태환경운동가들은 곡물, 육류, 과일 등을 장거리 수출입하는 과정에서 방부제 등 화학약품을 쓰는 것이 소비자의 건강을 위협한다는 점도 지적하고 있다. 

재난구호전문가인 김동훈(아태재단한국협회)씨는 기후위기가 곳곳에서 주민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기후변화는 더 이상 환경문제가 아니라 인간 안전과 직결된 문제”라며 올해 일본 치바 지역에 한 달 간 정전사태를 낳은 15호 태풍 파사이와 나가노 시내 전체를 물에 잠기게 한 19호 태풍 하기비스를 예로 들었다. 그는 지난 4월 발생한 강원도 산불도 기후변화로 예년보다 눈이 덜 내려 건조한 상태였기에 빨리 번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글로벌 리스크 2019>에도 ‘위기를 만드는 요소 톱3’가 모두 기후변화에 관한 내용이었다고 그는 덧붙였다.

김씨는 기후위기가 현실화하면서 재난대응이 중요해지고 있다며 대피나 방재 등 대응 훈련을 상설화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그는 또 “평상시 소방차나 구급차를 많이 준비해 둘 수 없기 때문에 큰 재난이 나면 아무리 시스템이 잘 정비된 국가라 하더라도 국민을 다 구조하기 어렵다”며 “이웃끼리 얼굴을 익히고 친해짐으로써 재난이 났을 때 서로 도울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수온 상승으로 바다 속 풀도 물고기도 사라져

이날 무대에는 ‘기후변화의 증언자’로 여러 직업을 대표하는 사람들이 나섰다. 제주도에서 50년 이상 물질(잠수)을 한 해녀 김혜숙(61)씨는 수온 상승으로 제주 바다의 해조류들이 거의 사라졌다고 말했다. 그는 “옛날에는 바다에 가면 여러 가지 풀이 물속에 빡빡하게 나 있어서 고동을 하나 잡든가 오분자기(떡조개), 전복을 하나 잡으려면 그 풀을 헤치고 숨은 것을 잡았다”며 “지금은 아주 훤해서 소라가 그냥 바닥에 나뒹굴고 있고 금방 다 잡아버려서 겨울에는 잡을 게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 기후변화로 물의 온도가 높아지면서 갯녹음 현상이 발생, 제주 바다 속이 불모지가 되고 있다고 말하는 해녀 김혜숙씨. ⓒ 윤종훈

그는 또 “전에는 봄이 되면 새싹이 돋아나고 모자반, 고지기 등 풀 종류가 바다에 셀 수 없이 많아 그 안에 물고기들이 알을 낳고 갔다”며 “지금은 알을 낳을 곳이 없어 물고기가 아예 안 오고 몇 미터(m)씩 작업을 나가 봐도 피라미 같은 것들만 조금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수온 상승 속도가 가장 빠른 편인데, 물의 온도가 올라가면 ‘갯녹음’ 현상이 심해진다고 김씨는 설명했다. 갯녹음이란 연안에 서식하는 해조류가 사라져 바다 속이 불모지가 되는 현상이다.

그는 수온상승의 직접적 원인 중 하나로 제주도에 있는 한림 등 3개 화력발전소와 8개 하수처리장을 꼽았다. 화력발전소 근처에서 물질을 한 적이 있다고 밝힌 김씨는 “발전소에서 나오는 뜨거운 물이 물길을 만들었는데, 그 물길 주변에 있던 풀이나 바다생물들은 다 사라졌다”고 말했다.

농민은 농사 망치고 현장 노동자는 폭염에 목숨 잃어

경남 함양군 서하면에서 사과 농사를 짓는 마용운씨는 기후변화로 해가 갈수록 농장 일이 힘들어지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올해는 추석 직전 내내 비가 내리고 태풍까지 와 사과농사를 망쳤고, 지난해 4월엔 사과밭에 눈이 내리는 바람에 냉해를 입은 꽃이 다 죽어 타격을 입었다고 한다.

마씨는 또 “2016년엔 여름폭염과 가을장마를 번갈아가며 겪은 사과나무가 스트레스를 받아 열매를 다 떨어뜨렸다”며 “사과는 천성적으로 시원한 곳을 좋아하는 작물이기 때문에 앞으로가 점점 걱정된다”고 말했다. 그는 병에 걸린 사과 사진을 보여주며 (이상기후로) 가을에 비가 많이 와서 곰팡이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탓이라고 설명했다.

▲ 경남 함양군에서 농장을 하는 마용운씨가 보여준 곰팡이병에 걸린 사과 사진. ⓒ 윤종훈

최명선(51)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노동안전보건실장은 ‘폭염에서 노동자는 어떻게 일할까’ 주제 발표에서 무더위에 무방비로 일을 하다 많은 사람들이 쓰러져 죽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건설현장에서 폭염에 노출된 노동자들이 고층에서 추락하거나 온열질환으로 숨지는 경우도 많다고 전했다.

최 실장은 “콘크리트를 붓거나 용접 작업 등을 하는 과정에서 열이 발생하기 때문에 건설현장은 평균 기온보다 5~7도(℃) 높아진다”며 “하지만 ‘온열질환’ ‘폭염에 의한 사망’이 아닌 ‘추락 사망’이라고 집계가 잡힐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건설노동자 뿐 아니라 방송촬영노동자, 우편물·택배노동자, 청소노동자, 급식노동자 등도 폭염에 대책 없이 방치되고 있다”며 “노동자들의 안전과 건강을 위해 연대해 달라“고 호소했다.

‘2050년 침수 위기’ 덴마크 도시의 대응

주한 덴마크 대사관의 야콥 라스무센 에너지담당 참사관은 ‘유럽 사람들은 왜 민감할까’ 주제 발표에서 해안가 저지대가 많은 덴마크의 기후변화 대응을 소개했다. 그는 수도 코펜하겐에서 240킬로미터(km)가량 떨어진 바일레라는 해안도시의 경우 강수량 증가 등으로 1년에 2~3번 정도 시를 관통하는 하천이 범람하는 피해를 입는다고 설명했다. 라스무센 참사관은 “홍수가 발생하면 내가 대피해야 하고 집을 팔아야 하는 등 경제적 비용을 치러야 하기 때문에 (당국이) 기업들과 협업해 하천 물의 양을 조절하려고 노력하고 시민들 또한 일기예보 정보를 파악해 홍수가 일어날 때를 대비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오는 2050년 쯤에는 해수면 상승 등으로 바일레시의 주요 건물들이 물에 잠길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날 컨퍼런스에 참석한 청중 200여명은 ‘기후위기 진실을 직시하라’ 등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함께 외쳤다. 이들은 강연이 시작되기 전 지구온난화로 빨개진 지구를 형상화한 작대기를 들고 ‘기후변화 증인석’에서 기념사진을 찍기도 했다. ⓒ 윤종훈

이날 강연과 증언을 지켜 본 환경단체 기후솔루션 소속 김지은(34) 변호사는 <단비뉴스> 인터뷰에서 “도시에 거주하는 시민들, 사무실에서 일하는 분들은 더울 때 에어컨을 켜거나 덥다고 느끼고 마는 상황이지만 제주 해녀나 사과농장을 하시는 분들은 직접 자연과 맞닥뜨려 어려움을 겪는 것을 알게 됐다”며 “생각보다 기후변화가 우리 삶에 빠르게 침투하고 있다는 것을 체감했다”고 말했다.

한편 세계 153개국 과학자 1만1258명은 지난 5일 영국 과학전문지 <바이오사이언스(BioScience)>에 실린 공동성명을 통해 ‘기후위기가 훨씬 빠른 속도로 현실화하고 있다’며 ‘즉각적 행동을 취하지 않으면 인류가 막대한 고통을 치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반면 미국 트럼프 정부는 지난 4일 국제연합(UN)에 파리기후변화협정 탈퇴를 공식 통보했다. 

현재 유럽을 기반으로 하는 기후위기 대응 운동체인 ‘멸종 저항(Extinction Rebellion)’은 영국 런던, 프랑스 파리 등 주요 도시에서 기후대책을 요구하며 도로와 다리 등을 점거하는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또 지난해 8월 스웨덴의 10대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시작한 ‘기후를 위한 등교 거부’도 유럽과 미주, 아시아 등 세계 곳곳으로 퍼져 나가고 있다.


편집 : 양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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