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비평] tvN ‘요즘 책방: 책 읽어드립니다’

길을 걷다가 서점이 나오면 지나치기보다 한 번쯤 들어가 보고 싶어진다. 삽상한 가을 바람에 왠지 공원 앞 벤치에 책을 들고 나가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계절이다. ‘독서의 계절, 가을’은 일제 문화통치 때 독서 캠페인 구호라는 얘기도 있다. 그게 사실이라면 일제의 불순한 의도가 엿보이긴 하지만, 평소 책 안 읽는 사람들이 자신을 뒤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것은 좋다.

하루하루가 바쁘고 치열한 현대인에게 독서는 너무 멀다. 인문학책은 먼지를 뽀얗게 덮어쓰고 있고, 자기계발서조차 거실 테이블 붙박이가 돼버린 지 오래다. 이런 이들을 위한 독서 프로그램이 나왔다. 지난 9월 24일 첫 방송을 시작한 tvN의 독서 교양 프로그램 <요즘 책방: 책 읽어드립니다>이다.

‘스테디셀러 책 쉽게 풀어주는 독서 프로그램’

▲ 9월 24일, 가을을 겨냥한 독서 프로그램 <요즘 책방>이 ‘책 읽어드립니다’라는 부제를 달고 첫 방송을 시작했다. ⓒ tvN

우당탕퉁탕 요란한 예능이 넘치는 텔레비전에서 사악사악 책 낱장 넘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스타강사 설민석이 특유의 재치 있고 흡입력 있는 어조로, 이름은 들어 봤지만 손은 안 가는 두꺼운 책을 알기 쉽게 강의해준다. 강의를 듣고 나서 출연진은 새로 알게 된 지식과 서로의 감상을 공유한다. 책에 관한 이해를 도와주는 책방 손님도 등장한다. 1회 물리학자 김상욱과 정신건강의학 전문의 윤대현, 2회 소설가 장강명, 3회 인지심리학 교수와 미술 이론 교수 양정무가 그들이다. 출연진 가운데 제작진한테 유일하게 선정된 책을 읽지 말라는 ‘지령’을 받은 전현무는 책을 읽지 않은 시청자를 대변해 시청자의 공감을 끌어낸다.

이 프로그램이 시청자를 유혹하는 지점은 명확하다. <사피엔스> <징비록> 등 ‘좋은 책’이긴 한데 정작 읽지는 않는 책을 선정해 대신 읽어준다는 점이다. 책 이름만으로도 한 번쯤 눈길이 가게 된다. 인문학에 관한 욕구는 있지만, 시간도 여유도 없는 이들의 상황을 잘 파악했다. 하지만 시청자의 욕구를 잘 파악했다고 좋은 프로그램이 될 수 있을까? 팟캐스트 방송 <이동진의 빨간 책방>뿐 아니라, 팟캐스트와 유튜브에서 책을 소개하는 콘텐츠는 많다. 방영시간 한 시간 남짓한 <요즘 책방>보다 훨씬 짧고 간략하다. <요즘 책방>에 물리학자, 정신건강의학자 등 ‘전문가’들이 등장하는 이유는 이런 콘텐츠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서다.

책, 2·3차 콘텐츠의 ‘오리지널 텍스트’

▲ 2019년 10월에 개봉하는 <82년생 김지영>(왼쪽)과 원작소설 <82년생 김지영>(오른쪽). ⓒ 롯데엔터테인먼트·민음사

많은 사람이 책의 중요성을 안다. 지식과 사고의 보고라는 점뿐만이 아니다. 원 소스 멀티 유즈(One-Source-Multi-Use)의 원천(Source)이 책이다. <82년생 김지영> <남한산성> 등의 영화부터 <조선혼담공작소 꽃파당>과 <달리는 조사관> 같은 드라마까지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콘텐츠는 차고 넘친다. 그에 견주어 출판업계의 상황은 밝지 않다. 사양산업이 된 지 오래다. 한국의 독서율은 74.4%로 OECD 평균 76.5%에 미치지 못한다. 2018년 기준으로 콘텐츠 산업 9개 분야 중 8개 분야가 5년 연속 성장하는 동안, 출판만 유일하게 내리막길을 걸었다.

요즘 사람들은 책을 읽지 않는다. 그래서 독서 동기유발을 위한 프로그램이 많이 나온다. <요즘 책방>뿐만 아니라 9월 26일과 10월 9일 시작한 EBS <발견의 기쁨, 동네 책방>과 JTBC <멜로디 책방>까지 여러 프로그램이 대중에게 책을 소개해주며 책과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해주고 있다. EBS의 <동네 책방>은 ‘다양한 분야의 작가들과 함께 동네 책방을 찾아가는 책방 여행 프로그램’을 표방한다. JTBC <멜로디 책방>은 짧은 애니메이션으로 책을 소개하고 그 책 중 한 권을 선정해 책의 OST를 만드는 프로그램이다.

우후죽순 독서 프로그램들, 살아남으려면

▲ 여행과 노래를 통해 책이라는 소재를 풀어낸 두 프로그램. EBS <동네 책방>(위)과 JTBC <멜로디 책방>(아래). ⓒ EBS·JTBC

이런 프로그램의 공통점은 ‘가벼움’이다. 두껍고 무거운 책 이미지를 탈피해 시청자들에게 ‘가볍게’ 전달하려 노력한다. <요즘 책방>은 스타강사 설민석의 강의로, <동네 책방>은 여행 컨셉으로, <멜로디 책방>은 애니메이션으로 책을 풀어낸다. 그 덕분일까? 책 소비가 늘어났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온다. 10월 18일 <파이낸셜뉴스>에 따르면 <요즘 책방> 방송 이후, 방송에서 소개된 책들의 판매량이 급증했다. 1회에서 방송된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는 방송 후 일주일간 판매량이 직전 같은 기간보다 5배 가까이 늘었다.

“저희 프로그램에 호의적인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책에 관한 프로그램은 많이 있었는데 사실 짧은 시간인데도 꼼꼼하게 다 챙겨주잖아요. 동시에 여기 계신 분들이 이 책을 새로운 시각으로 얘기해주고 하니까 ‘이전의 책 프로그램과는 좀 다른 책 프로다’ 이런 말씀을 많이 하시는 거 같아요.”

김상욱 교수가 4회에서 자평했듯이, <요즘 책방>은 기존의 프로그램과 다르다. 한 주에 단 한 권을 다루고 내용을 강연으로 설명해준다. 부제처럼 ‘책을 읽어’주는 데서 그치지 않고 여러 출연자가 나와서 책에 관한 감상과 생각을 교류한다. 아쉬운 점도 있다. 가볍게 시작해서 가볍게 끝난다. 토크에 비중을 두었지만, 그 자체가 무겁지는 않다. 좋은 책을 소개하는데 왜 그 책이 ‘요즘’ 좋은 책인지 다가오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조각조각 다뤄질 뿐이다. 예컨대 3회에서 설민석은 강연을 마무리하며 민주주의라는 층위에서 <군주론>의 함의를 제시한다. 이후 현재 지도자들에 관한 토론이 계속되다가 르네상스 역사, 당대의 민중 심리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든다. 넓지만 얄팍한 대화다. 다른 회차도 마찬가지다. <사피엔스> <징비록> <군주론> <멋진 신세계>까지 ‘요즘’ 읽어야 할 책들을 잘 골랐지만, 각 책에 관한 본격적인 분석이나 시대적 의미 등 깊이에서 아쉬움을 느낀다.

시사교양 프로그램의 저널리즘 정신

<요즘 책방>뿐 아니라 <동네 책방> <멜로디 책방>까지 대부분 독서 프로그램이 깊이 대신 ‘너비’를 택한 이유도 짐작이 간다. 무엇보다 영상을 기본으로 하는 텔레비전과 텍스트 기반인 책은 상생이 어렵다. 흰 바탕에 줄글이 나오는 책을 어떻게 영상으로 담아낼 것인지부터 어렵다. 다수의 시사교양도 오락화해 ‘쇼양’이 많아진 와중에 책을 소재로 한 시사교양이 고리타분하다는 딱지를 걱정하는 것도, 그래서 연성화하는 것도 당연해 보인다.

▲ 2011년 1월 방송된 EBS의 <하버드 특강-정의>. 첫 방송은 평일 자정이라는 시간에도 평일 동시간대 시청률의 2배에 이르는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 EBS

하지만 당연히, 당연하지 않다. 오히려 독서 프로그램은 더 경성화해야 한다. 2010년을 강타했던 <정의란 무엇인가> 붐에서 EBS는 <하버드 특강- 정의>라는 이름으로 하버드 강의 영상을 그대로 방송했다. 대학 강의 영상인데도 자정이라는 방송 시간에 시청자가 몰렸다. 2013년 출판업계를 들썩인 <21세기 자본> 또한 결코 쉬운 책은 아니다. 이 책들이 독자에게 선택받은 이유는 쉬워서가 아니라 사람들의 욕구를 ‘제대로’ 읽어냈기 때문이다. 뉴스가 현재의 문제 사안을 따라가는 것처럼 시사교양 프로그램도 시대정신을 따라가야 한다.

‘요즘’ 시청자를 믿어줘야 할 때

정의가 결핍된 현실에서 시청자의 의문점을 풀어준 <정의란 무엇인가>와 빈부격차가 심각한 현실에서 사람들이 욕망하는 평등과 분배를 읽어낸 <21세기 자본>처럼 독서 프로그램에서 다뤄야 하는 건 책이 아니다. 다뤄야 하는 건 사람들의 결핍과 욕구와 욕망이고, 독서 프로그램은 그 해답을 지식의 원천인 책에서 제시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요즘 책방>은 아쉬운 점이 많다. 성장과 발전의 한계를 맞이한 요즘, 인류 자체를 돌아보게 하는 <사피엔스>나 AI 등 발전하는 과학기술에 대한 불안을 고찰하게 하는 <멋진 신세계> 같은 책들은 시대의 고민을 반영하는 훌륭한 선택이다. 하지만 그 책을 전문가 대신 스타 강사를 데려다 설명하게 하고, 시청자의 생각을 대변하는 역할로 전현무를 캐스팅한 이유가 무엇일까? ‘우리 시청자들은 책을 안 읽는데 어떻게 하나’ 같은 고민을 한 건 아닐까? 그런 걱정은 접어두고 시대를 읽는 더 날카로운 통찰과 깊이 있는 토론을 ‘요즘’ 프로그램에서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편집 : 임세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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