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비평] JTBC 예능 ‘어서 말을 해’

요즘엔 ‘말’만 가지고 하는 프로그램이 드물다. 2000년대 <슈퍼TV-일요일은 즐거워>나 <상상플러스> 등 시대를 풍미했던 게임 토크쇼들이 생각나는 JTBC <어서 말을 해>는 지난 8월 13일부터 방송을 시작했다. 소통이 중요한 요즘, ‘말의 고수’들이라는 연예인들이 나와 퀴즈를 풀고 입담을 과시하는 과정에서 시청자들의 말 센스를 키워주는 퀴즈쇼를 표방한다. 전현무와 박나래가 오랜만에 같이 출연해 화제가 됐다.

▲ <어서 말을 해>는 오랜만에 등장한 게임 토크쇼 프로그램이다. ⓒ JTBC 홈페이지

<상상플러스>의 향수, 그러나...

첫 회에 전현무가 말한다. “너무 상플이잖아!” 정말로 첫 4회는 <상상플러스>가 생각난다. 책상을 하나씩 앞에 두고 둘러앉아서 게임을 하고, 여성 아나운서가 선생님처럼 단정하게 앉아 학생같이 까불거리는 출연자들을 통솔하며 말에 관한 퀴즈를 내는 포맷이다. 기획의도에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요즘 애들’이 쓰는 말 맞추기나 잊힌 우리말 뜻 추측하기, 상황별 메신저 상태 메시지를 초성으로 지어내기 등 <상상플러스>에서 세대간 언어문화 격차를 메우고자 도입했던 게임들이 보인다.

<상상플러스>에서 주제와 포맷을 빌려온 것이 나쁘지만은 않다. <90년생이 온다>가 화제를 일으킨 것에서 보듯, 세대간 소통은 아직도 유효한 사회 문제다. 재즈에도 스탠더드 넘버가 있어야 변주가 있다. 그 변주가 연주자만의 색깔이 있다면, 그 연주는 연주자의 것이다. 그런데 그 변주가 스탠더드 넘버를 뛰어넘기는커녕 더 후퇴한 게 문제다. 

먼저 공간이 너무 개방적이다. <상상플러스>는 폐쇄된 공간 안에 여닫이문을 달아 궁금증을 자극했는데, <어서 말을 해>는 탁 트인 공간이 주의를 산만하게 한다. 게다가 상벌이 애매하다. 퀴즈를 맞힐 때마다 고기 한 점씩 주고, 가장 점수가 높은 사람에게 한우 세트를 주며, 가장 점수가 낮은 사람에게 설거지를 시킨다. 퀴즈쇼는 경쟁 구도이고, 경쟁은 긴장을 높여 시청자를 집중시킨다. 상벌 도입은 더욱 긴장을 높이려는 건데, 전혀 긴장이 되지 않는다. 상이 큰 상도 아니고, 벌이 큰 벌도 아니다. ‘고기 먹네’, ‘설거지하네’, 그러다 끝이다. 시청자가 자신을 출연자에게 투사해 저 사람이 퀴즈를 맞히는지 못 맞히는지 마음 졸이면서 볼 거리가 없다.

갑자기 바뀐 포맷

▲ 탁 트인 공간 세트는 출연자의 토크를 산만하게 만들어 시청자의 몰입도를 떨어뜨린다. ⓒ <어서 말을 해> 화면 갈무리

거기다 포맷을 딱히 생산적이지 않은 방향으로 바꿔 산만함을 배가했다. 5회차에 사회자 강지영 아나운서를 전현무로 대체하고 개인전에서 팀전으로 바꾼다. 포맷을 급작스럽게 바꿨다는 걸 의식했는지, 제작진은 전현무를 통해 “이전까지는 파일럿이었다”고 장난스레 선언한다. 안 그래도 말에 관한 정보를 주는 퀴즈쇼인지, 입담을 겨루는 토크쇼인지 모호했던 프로그램 정체성은 갈 곳을 잃는다. 

6회에서부터는 무대를 바꾸는데, 대나무숲을 벌목하고 골목 상회를 지었다는 설정이다. 이 상회 평상에 팀별로 양옆으로 나눠 앉는다. 퀴즈를 맞힌 팀이 7-80년대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춘다. 최신 회차인 7회에서는 각 출연자가 맡은 캐릭터를 설명하는 상황극으로 시작하는데, 이 콩트가 십 분 이상 끈다. ‘말’을 중심으로 하겠다는 프로그램의 애초 정체성이 더 희미해졌다.

게임 구성과 출연자

퀴즈쇼를 표방하는 만큼, 게임은 이 프로그램의 핵심이다. 프로그램에서 분명하게 나타나지 않지만, 어림잡아 현대사회에서 시청자에게 말재간을 기를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는 게 이 프로그램의 목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게임 구성은 일관된 주제가 없고 단순히 말장난을 모아놓은 것처럼 보인다. 7회차에서는 급기야 ‘간장공장공장장’ 같은 발음 연습을 시키는데 프로그램 방향과 맞는 것 같지 않다. 발음 연습과 말재간 향상은 무슨 관계가 있는 걸까?

▲ 고정 출연자의 캐릭터가 확고하게 정착되지 않은 상태에서 캐릭터가 불안한 방송인이나 신인 아이돌을 게스트로 자주 출연시켜 캐릭터 간 상호작용을 어렵게 만든다. ⓒ <어서 말을 해> 화면 갈무리

또 신인 아이돌을 게스트로 자주 섭외한다. <라디오스타>처럼 고정 출연자의 캐릭터가 분명하고, 프로그램이 안정적으로 자리잡으면, 캐릭터가 모호하거나 이미지가 좋지 않은 게스트가 나와도 내러티브가 그 게스트에 휘말리지 않는다. 그래서 신생 프로그램은 새로운 캐릭터를 수용하기 힘들다. 고정 출연자들의 캐릭터와 상호작용이 없는 상황에서 신인을 게스트로 섭외하는 게 좋은 선택이 아닌 이유다. 더욱이 최근에 MC이자 가수인 붐(이민호)이 연속 출연하고 있다. 큰 부담이다. 거기다 캐릭터 내러티브가 성숙하지 않아 보이는 제작진은 붐을 불쌍한 캐릭터로 만드는 데도 실패했다. 

이 프로그램은 ‘말 센스 보여주기’를 표방한다. 단순한 말 센스에 집착할 때, 그 예능은 성공하기 힘들다. 말장난에 그치기 때문이다. 시청자들이 공감하고 즐거움을 느끼게 하려면 말장난 속에 해학과 풍자, 페이소스가 들어 있어야 한다. 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공통된 결핍 또는 욕망을 프로그램 저변에 깔고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이 프로그램이 더 나아지려면, 캐릭터와 서사구조에 관한 진지한 연구가 더 필요하다. 


   편집 : 박두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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