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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드닝’ 예능 프로, 왜 이리 무모한가
[미디어비평] JTBC ‘꽃밭에서’
2019년 09월 27일 (금) 20:50:53 김지연 PD huse7@hanmail.net

텔레비전이 신록으로 물들고 있다. 지상파와 케이블 모두 예능∙교양 장르 가리지 않고 자연을 배경 삼는 프로그램을 늘렸다. 9월 22일 기준 tvN <삼시세끼 산촌 편>, SBS <리틀 포레스트>, MBN <자연스럽게>, JTBC <캠핑클럽>, MBC <신기루 식당> 등이 휴식, 힐링, 여유를 키워드로 내걸고 방송되고 있다. 8월 28일 첫 방송을 시작한 JTBC <가드닝 프로젝트 꽃밭에서> 또한 정원 가드닝을 소재로 한 힐링 프로그램을 자처한다.

   
▲ 8월 28일, JTBC에서 가드닝을 소재로 한 예능 프로그램 <꽃밭에서>를 시작했다. ⓒ JTBC

최초의 가드닝 예능 프로그램

국내 최초로 가드닝을 소재로 삼은 이 프로그램은 신현준, 윤박, 이승윤, 정혁이 ‘초록라이프’를 꿈꾸는 예비정원사로 등장한다. 1회는 구립 구산동도서관 마을에서, 2회는 양평의 모 캠핑장에서 정원을 꾸몄고, 3∙4회는 은평구 한 초등학교 정원 가꾸기에 도전했다. 4회까지 이어지는 동안, 이 프로그램은 ‘작은 위로가 되어 줄’ 정원을 만들겠다는 기획의도와 다르게 흘러갔다.

그런 조짐은 1회부터 드러났다. 처음으로 가드닝에 도전하는 출연자들은 몇 마디 말로 조감도를 대신했고, 작업은 꽃도 자재도 모두 시공업체가 준비해 놓은 틀 안에서 진행했다. 여유와 힐링은 바쁜 삽질 속에서 사라졌다. 작업에 초점이 가다 보니 갈수록 출연자들 대화는 사라지고 ‘삽질’만 남았다. 작업 진행 상황을 보여주며 출연자들의 소감과 보람을 담아내야 할 1회 중반부에서 갑자기 화면은 두 번째 정원으로 넘어간다. 다시 처음부터 한 정원을 꾸미는 과정에서 초반부와 내용은 겹치고 감정선은 끊어진다. 한 회에서 한 정원을 꾸미는 모습을 절반, 그리고 다른 정원 꾸미는 모습을 절반 보여주는 구성이 프로그램의 ‘정신없음’에 한몫 했다. 사생대회와 김치전 요리는 가드닝의 일부로 자연스레 받아들여지기보다는 시간 때우기에 그친다.

2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캠핑장 정원에서 바위 차력 쇼로 시선을 끌고 난 이후는 1회의 반복이었다. 왜 꽃을 심는지,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언급도 없이 다짜고짜 꽃과 나무를 심기만 하니 삽질이 ‘삽질’로만 느껴질 뿐이다. 그마저도 제대로 마무리하지 않은 채 구산동도서관 정원 가드닝으로 넘어갔다. 해가 져도 끝나지 않는 작업량에 스텝들까지 나서서 조경을 마쳐야 했다. 땀으로 범벅이 된 출연자들 얼굴에는 가드닝의 즐거움보다는 ‘끝냈다’는 안도감과 피로감이 묻어났다.

시청자들이 완성된 정원 모습을 즐길 새도 없었다. 제작진도 이를 알았는지 출연자 정혁과 이승윤이 일주일 뒤 정원 모습을 살펴보러 간다. 문제는 벤치, 인증샷, 빠진 팀원 얘기로만 채워진 방문기에서 그들의 노력과 결실에 관한 애정을 찾아보기 어려웠다는 거다. 당연히 시청자도 느끼기 어렵다.

‘꽃꽂이’ 수준에 멈춘 가드닝

“한마디만 할게요. 저희가 오늘 가장 많이 했던 말, 그게 오늘의 후기인 거 같아요. ‘너~무 좋다.’”

첫 번째로 도서관 정원을 마무리하며 정혁이 남긴 한마디다. 무엇이 어떻게 왜 좋았는지 구체적인 내용 없이 반복하는 ‘좋다’에는 진심이 드러나지 않는다. 시청자들은 그 ‘좋다’에 공감하기 어렵다. 출연자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파악하기 어려운 빠른 호흡 때문이다. 삽질 영상이 반복해서 나오는 문제를 해결해 지루함을 덜려는 의도였을 수 있다. 그 고민은 이해한다.

사람들이 가드닝을 왜 좋아하는지부터 생각해봐야 한다. 가드닝은 원래 지루한 반복 작업이다. 가드닝을 사랑하는 이들은 그 반복 작업 속에서 발견하는 소소한 기쁨, 정서적 교감을 사랑한다. 가드닝은 꽃을 꺾어 심는 꽃꽂이와 다르다. 꽃과 나무를 심는 과정은 기승전결의 기에 불과하다. 이 프로그램에서 출연자들이 하는 행위는 가드닝보다 규모가 큰 꽃꽂이에 가깝다.

가드닝 소재 프로그램을 제작하지 않는 이유

<꽃밭에서>가 제대로 된 가드닝 프로그램이 된다면 성공할 수 있을까? 이에 앞서 선결해야 할 질문이 있다. JTBC는 왜 최초로 가드닝 예능을 만들었을까?

JTBC는 라이프 스타일과 예능의 접목에 관심이 많다. 서핑과 조기축구를 소재로 삼은 <서핑하우스>, <뭉쳐야 찬다>가 대표적이다. <꽃밭에서> 또한 반려식물, 꽃꽂이 등 요즘 주목받는 라이프 트렌드를 반영해 제작된 프로그램이다. 그러나 소위 ‘핫’한 취미를 바로 방송의 소재로 만드는 방식은 발 빠른 선점이 될 수 있지만, 무모한 시도에 그칠 수도 있다. 라이프 스타일은 한때의 흥미나 호기심이 아니라 사회 구조 또는 사회 구성원의 인식 틀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가드닝도 같은 맥락에서 살펴봐야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동안 가드닝 방송이 없었던 이유는 한국이 가드닝 불모지였기 때문이다. 한국인이 가드닝을 하지 않은 이유는 한국의 자연관과 가드닝이라는 개념이 섞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동양의 폭포, 한국의 차경(借景)

   
▲ 동산 하나를 정원으로 삼은 창덕궁 후원. ⓒ 국립문화재연구소

한국에서 가드닝 방송이 먹히지 않는 데는 철학적, 역사적, 사회적 배경이 깔려 있다. 한국에서 가드닝이 라이프 스타일로 자리 잡기 어려운 건 한국인은 자연을 ‘꾸며야 할’ 대상으로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수필 ‘폭포와 분수’에서 이어령 교수는 동∙서양 자연관의 차이를 폭포와 분수에 비유한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하나가 되기를 바라는 동양의 자연관은 자연의 고유 형상을 되도록 수용해 집터나 정원에 끌어들이는 조경 방식을 취했다. 창틀을 액자 삼아 자연의 경관을 즐기는 ‘차경’(借景)이다.

십 년을 계획하여 초가삼간 지어내니
나 한 간, 달 한 간, 청풍 한 간 맡겨 두고
강산은 들여놓을 곳 없으니 둘러놓고 보리라

조선 중기 문신, 송순이 읊은 시조에서도 자연 자체와 하나 되겠다는 물아일체의 정신이 드러난다. 동산 자체를 가꾸며 자연을 그대로 즐길 수 있도록 다듬는 것이 ‘우리식 가드닝’이다. 우리에게 정원사는 가드너가 아니라 ‘동산바치’다. 반면 서양의 정원은 인간의 예술성과 창의성에 중점을 둔다. 인위적이고 인공적이다. 베르사유 궁원으로 대표되는 서양식 정원, 가든(Garden)이 한국 사람들의 라이프 스타일과 거리감이 있는 이유다.

취미를 방송하면 라이프스타일 프로그램일까

   
▲ <삼시세끼>는 현실에는 없지만, 누구나 꿈꿀 법한 우리 고유 귀농의 정취를 담아낸다. ⓒ tvN <삼시세끼> ‘산촌편'

성공한 자연·힐링 프로그램을 되돌아보자. 벌써 4번을 변주해온 <삼시세끼>는 한가로운 시골마을에서 자급자족하는 출연자들을 통해 귀농생활의 판타지를 보여준다. 귀농 판타지의 저변에는 칠팝십년대 이촌향도에 따른 도시 과밀화로 도시 생활에 질린 사람들의 귀향 욕구가 깔려있다. 개입을 최소화한 촬영, 과제도 목표도 없는 출연자들의 자연스럽고도 여유로운 모습은 나영석 PD의 개인적 스타일일 수도 있다. 중요한 건 그 스타일이 시청자들이 원하던 시골 판타지를 충족시켰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취미, 취향을 다루는 프로그램은 만들기 쉬워 보인다. 인스타그램과 유튜브 등 SNS의 소위 ‘핫’한 아이템을 가져다 만들면 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라이프스타일 프로그램이야말로 삶의 양식 저변에 깔린 사회문화적, 철학적 고민을 철저히 분석해야 한다. 라이프스타일은 ‘핫’한 한두 가지 취미만으로는 변하지 않는다. 라이프스타일 프로그램을 성공시키려면 ‘최초의 트렌디한 소재’라는 강박에서 벗어나, 시대를 변화시키는 에너지, 인간 욕망에 관한 통찰이 필요하다.


편집 : 권영지 기자

[김지연 PD]
단비뉴스 미디어콘텐츠부, 시사현안팀 김지연입니다.
연은 순풍이 아니라 역풍에서 가장 높이 날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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