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형의 통계 이야기] ⑳

▲ 이재형 박사

1997년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김대중 당선자 앞에는 수많은 과제가 산적해 있었다. 그해 가을부터 시작된 외환위기로 IMF의 구제금융을 받는 대신 우리 경제는 IMF의 관리를 받게 되었다. IMF는 우리나라에 강력한 개혁을 요구했다. 우리는 IMF 요구뿐 아니라 내부적으로도 구조개혁의 필요성에 광범위한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공공부문, 금융, 재벌 등 사회 전반에 걸친 개혁 작업에 착수했다. 개혁이란 말은 쉽지만, 기존의 이해관계나 기득권 관계를 크게 바꾸기 때문에 격렬한 사회적 저항이 따른다. 그렇지만 국가 부도라는 미증유 사태를 맞아 어쨌든 개혁 작업이 추진됐다.

통계청도 1,700명에 불과한데...

정부는 공공부문 개혁을 위한 기초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중앙행정기관 경영진단사업에 착수했다. 공공부문 개혁을 위해 지금까지 해온 정부 중앙행정기관의 역할과 기능을 재평가하고, 이를 토대로 정부 효율성 제고를 위한 방안을 마련한다는 취지였다. 경영진단 대상기관은 총리실, 재경부, 산자부, 법무부를 비롯하여 검찰청, 경찰청, 국세청 등 모든 중앙기관을 망라했다. 이 경영진단사업에는 국책연구기관을 포함한 우리나라 주요 공공·민간 연구기관, 국내외 대형 컨설팅 회사들이 대거 참여해 각 기관의 기능과 조직의 개선 방향을 제시하였다. 그동안 기회 있을 때마다 우리나라 통계 제도와 조직의 개혁 필요성을 주장해온 필자로서는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스스로 통계청 경영진단사업의 책임을 맡겠다고 나섰다.

그 당시 통계 제도와 조직에 관해 잠깐 설명하자면, 우리나라는 분산형 통계 제도를 택하고 있었다. 분산형 통계 제도라고는 하지만 대부분 공공부문 통계인력이 통계청, 농림부, 한국은행의 세 기관에 포진해 있었다. 당시 전체 통계작성기관의 통계담당 인력은 약 4천 명에 조금 못 미치는 정도였는데, 통계청에 1,700명, 농림부에 1,300명, 한국은행에 150명 정도 배치돼 있었다. 이 외에 노동부와 복지부, 건설교통부가 30~40명 정도 통계인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여타 대부분의 정부 기관은 통계조직이라고 부르기에는 민망할 정도의 작은 통계담당 부서를 두었으며, 담당 인력도 1-2명에 불과하였다.

통계담당 인력을 업무별로 구분해보면 통계청은 전체 1,700명 중 본부 인력이 26%, 현장 조사를 담당하는 지방사무소 인력이 74% 정도, 농림부는 본부 인력이 3%, 지방사무소 인력이 97% 정도를 차지했다. 통계인력 가운데 절대다수가 현장 조사 업무를 담당하였고, 통계 기획·관리·분석 업무를 수행하는 본부 인력은 소수에 불과했다.

당시 외국 중앙정부의 통계인력은 미국 9,400명, 일본 9,600명, 영국 5,600명, 캐나다 5,000명, 프랑스 7,000명 정도로 조사됐다. 국가 규모를 고려하면 이들 나라보다 우리나라 통계인력이 그렇게 적은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전혀 다르다. 예를 든 나라의 통계인력이란 대부분 본부 인력, 즉 통계의 기획·관리·분석 등을 담당하는 인력을 말하며, 통계작성 기관 내에 정규직으로서 대규모 조사인력을 보유한 사례는 찾아보기 쉽지 않다. 이들 나라 기준으로 우리나라 통계인력은 400~500명 수준에 머물렀다.

‘통계청으로 인력 집중’ 개혁안에 농림부·한은 반발

이러한 현실을 고려하여 필자는 이전부터 계속 우리나라 통계 제도의 개혁을 주장해왔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분산형 통계 제도에서 집중형 통계 제도로 전환해 정부의 통계인력을 통계청으로 통합해야 한다. 둘째, 통계청으로 통합된 통계인력 중 본부 인력을 늘리고, 조사인력을 축소하여야 하며, 이로부터 우려되는 조사기능의 위축을 보완하기 위해 임시조사원 등 외부자원의 활용을 확대해야 한다.

필자가 이런 주장을 하게 된 것은 우리나라가 제대로 된 통계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정부 기관 통계업무 담당 인력의 획기적 확대가 필요한데, 이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래서 현재 주어진 전체 통계인력 범위 내에서 이를 가장 잘 활용하기 위한 방안을 찾을 필요가 있다. 지난번 칼럼에서 소개한 바와 같이 통계생산에서는 ‘규모의 경제’와 ‘범위의 경제’ 원칙이 작용하기 때문에 우리나라처럼 통계자원이 절대로 부족한 환경에서는 집중형 통계 제도가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통계업무에서 본부 기능은 두뇌 역할을, 조사기능은 손발 역할을 하는데, 선진국의 통계기관은 모두 두뇌 기능 중심으로 이루어진 데 비해 우리 통계기관은 두뇌는 작고 손발은 비대하다는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첫째 우리나라 통계제도를 집중형으로 개편해 공공부문의 통계인력을 모두 통계청으로 흡수하면 통계청은 현재 1,700명 정도에서 4,000명 정도 조직으로 커진다. 모든 조사통계를 통계청이 작성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둘째, 현장 조사 인력을 대폭 축소하는 대신 본부인력을 지금 5배 정도로 늘릴 것을 주된 내용으로 하는 보고서를 작성하였다. 이런 통계청 경영진단 컨설팅 보고서의 잠정안을 기획예산처에 제출하자 관련 기관이 발칵 뒤집혔다. 우선 중앙정부 경영진단사업을 주도한 기획예산처부터 이번 경영진단사업의 목표 가운데 하나가 비대해진 중앙부처 조직을 축소하고 인력감축을 도모하는 데 있는데, 이렇게 통계청의 조직과 인력을 2배 이상으로 확대한 안을 가져오면 어쩌자는 거냐는 반론이었다. 그리고 이 컨설팅 안에 주요 이해관계자인 농림부와 한국은행이 동의할 것인지 합의해 오라는 것이었다.

농림부는 농업통계 작성은 농림부 업무의 주요 기능으로서, 1,300명에 이르는 직원을 통계청으로 이관하라는 것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발했다. 농림부 경영진단을 담당하는 연구팀도 필자가 제안한 계획에 완강히 반대했다. 한국은행은 국민계정통계를 담당하는데, 과거부터 통계업무의 자부심이 대단했다. 그런 상황에서 통계기능을 통계청으로 넘기라고 하니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는 태도였다. 당시 한국은행 통계국의 주요 과장들은 이전부터 개인적으로 잘 아는 사이였는데, 필자가 작성한 보고서를 두고 여러 차례 필자와 격렬한 토론을 벌였다. 이 일이 계기가 되어 이들과는 더욱더 가까운 사이가 되긴 했다. 그러나 컨설팅 보고서와 관련해 농림부나 한국은행과 합의가 이루어질 수는 없었다.

통계청 인력 집중에 무슨 힘이 작용했나?

기획예산처 담당자는 이해관계자인 농림부와 한국은행과 합의하지 못한 보고서는 받을 수 없다며 보고서를 수정해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필자는 컨설팅 팀 연구자의 임무는 가장 바람직한 개혁안을 작성하여 제출하는 것이며, 관계기관이나 이해관계자와 합의하는 일은 정부가 할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내가 작성한 보고서에 어떤 잘못된 점이 있는지 지적하고, 그 지적이 합리적이라면 보고서를 수정하겠다고 버텼다. 결국, 어떤 기관과도 합의를 이루지 못했고, 잠정 보고서도 수정하지 않은 채 최종보고서로 제출했다.

몇 년 뒤 농림부 통계조직이 1998년 여름과 2008년 2차에 걸쳐 모두 통계청으로 이관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잘된 일이라 생각했지만 어떤 계기로 통계청이 농림부 통계조직을 흡수했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필자가 제출한 보고서가 여기에 영향을 미쳤는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확인할 방도가 없어 그냥 지나쳐버렸다. 2017년 필자가 통계청 의뢰로 우리나라 통계발전 계획수립을 위한 기초연구의 책임을 맡게 되었다. 통계 제도와 조직의 개편과 관련해, 과거 농림부 통계조직 흡수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알고 싶었다. 당시 조직 이관과 관련한 행정업무를 담당한 직원들을 만나 인터뷰를 했다.

이들도 조직 이관과 관련한 실무업무를 담당했지만, 그것이 어떤 이유로 이뤄졌는지 지금도 모르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어느 날 갑자기 행정자치부(현 행정안전부)에서 연락이 와서 이유도 설명해주지 않은 채 농림부 통계조직을 통계청으로 이관해가라는 지시가 내려왔고, 이들은 단지 이관과 관련한 행정업무를 기계적으로 수행했을 뿐이었다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농림부 통계조직이 왜 갑자기 통계청으로 이관됐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필자도 그제야 바로 내가 제출한 보고서에 따라 농림부 통계조직의 통계청 이관이 이루어졌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이들에게 중앙행정기관 경영진단사업에 얽힌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그들도 그 보고서가 이관의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을 것으로 동의하고 자기네들도 궁금증이 풀렸다고 했다.

통계청, 3,000명 통계인력 보유기관이 되다

옛날이야기를 길게 하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나라 통계개혁은 농업통계의 개혁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필자가 당시 집중형 통계 제도로 전환할 것을 강력히 주장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국가의 통계인력이 절대로 부족한 상황에서 국가 전체 통계인력의 1/3 이상이 농업통계 작성에 매달린다는 것은 너무나 비효율적인 인력 활용이었다. 농업이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 아니다. 현재 우리나라 GDP에서 농림어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2%를 조금 넘는 수준이며, 농림어업에 종사하는 취업자 수는 전체 취업자의 5% 정도다. 이렇듯 농업의 경제적 비중은 현저히 낮았지만, 농업은 여전히 ‘특별한’ 산업이며, 그럴만한 이유도 있다. 미국이나 일본, EU 국가 등 선진국들도 농업에는 모두 정책적으로 특별한 배려를 하고 있다.

그러나 농업통계는 경제통계 가운데 극히 일부분이다. 경제통계는 우리가 필요로 하는 전체 통계 가운데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경제통계 외에도 인구, 복지, 건강, 환경, 교육, 건설, 주택, 교통 등 수많은 분야에서 다양한 통계를 요구하고 있다. 농업통계 담당 인력이 농림부에 소속되어 있는 한 이들은 농업통계를 전담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들 인력이 통계청으로 이관되면 국가 전체 차원에서 통계 수요에 따라 좀 더 적절하게 통계자원을 배분할 수 있게 된다.

농림부에서 통계청으로 옮긴 공무원들은 지금까지 해오던 농업통계와 함께 다른 통계작성 업무에도 투입되고 있다. 이들에게는 과거보다 업무량이 늘어났다는 불만도 있다. 하지만 과거 농림부 시절에는 중요한 농업행정 본류의 업무에서 벗어나 다소 주변적 업무라 할 수 있는 통계업무를 수행하는 데 따른 소외감을 가질 수도 있었다는 점에서 통계청 근무는 기관 본연의 업무를 수행한다는 만족감을 높이는 효과가 있었다. 갑자기 조직과 인력을 빼앗겼다고 생각한 농림부로서는 조직 차원에서 불만이 있었을 것이다. 농림부는 통계작성 업무와 관련해 과거 농림부 통계조직에서 작성하던 통계는 이관 후에도 모두 작성해준다는 전제 아래 이관에 동의했다.

통계청은 농림부 통계조직을 흡수하면서 2017년 현재 3,016명의 인력을 보유한 기관이 됐다. 이 가운데 공무원이 71%, 무기계약직이 29% 정도다. 소속으로 구분하면 통계청 본청에 23%, 소속기관(지방통계청, 통계교육원, 통계개발원)에 77% 인력이 배치돼있다. 가장 많은 인력은 지방통계청 소속인데 이들의 주 업무는 통계조사다. 지방통계청 인력 약 2,200명 중 1/3 정도는 농업통계 조사를 담당한다. 지금도 농업통계 작성이 통계청 업무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 농업통계 역시 중요하지만 농축산물 생산비 조사 통계 하나에 500~1,000개 국가 중요통계에 맞먹는 자원을 들일 만큼은 아니다. 우리나라 통계작성의 내막을 알게 된다면, 이에 공감하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 통계업무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거시적인 안목을 발휘해 통계인력을 효율적으로 배치해야 한다. ⓒ pixabay

농업통계 개혁 없이는 통계개혁 없다

우리나라 농업통계 가운데 ‘농축산물 생산비 조사’라는 통계가 있다. 이 통계는 논벼, 고추, 콩, 마늘, 양파 등 5개 농산물과 한우, 육우, 젖소, 돼지, 닭 등 7개 축산물의 생산비를 조사하는 1년 주기 통계다. 조사대상자는 3,268가구인데, 이 조사를 위해 910명 정도의 인력이 투입된다. 조사원 1명이 4가구를 담당하고 있는 셈이다. 이 업무가 농업통계조사원 업무의 50% 정도를 차지한다. 굳이 환산하자면 조사공무원 1인이 1년간 7~8개 농축산물 생산 농가에 대한 면접 조사를 하고는 몇 천만원에 이르는 연봉과 퇴직 후에는 높은 연금까지 받는다는 것이다. 아마 취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젊은이들이 이런 사실을 안다면 허탈감에 빠질 것이다.

그러면 ‘농축산물 생산비 조사’를 하는 조사원들은 모두 놀면서 지내는가? 그건 아니다. 이 조사는 통계청이 조사하는 통계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통계에 속한다. 농산물 생산비를 자세히 파악하기 위해 조사원들이 조사대상 가구를 거의 맨투맨으로 마크한다. 일 년 내내 조사대상 가구들이 농축산물 생산을 위해 어떤 용도로 어느 정도 비용을 지출하는지 밀착 조사하지 않으면 안 된다. 현재와 같은 방식으로 통계를 작성하는 한, 현재와 같은 인력이 투입될 수밖에 없다.

이때 필요한 것이 국가통계 전체 관점에서 통계업무를 조정하는 거시적 안목이다. ‘농축산물 생산비 조사’ 통계 작성에 거의 1,000명에 가까운 인력이 투입되지만, 담당부처에서 작성하고 있는 과학기술, R&D, 환경, 보건, 복지, 안전 등 수많은 중요 통계 작성에는 기껏해야 한두 명 인력이 투입될 뿐이다. 국가 전체 관점에서 보면 농축산물 생산비 조사 통계 하나에 500~1,000개 국가 중요 통계에 맞먹는 자원이 투입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통계작성의 내막을 알게 된다면, 이에 공감하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 이런 통계가 그렇게 중요한 것인가? 또 중요하다고 해서 꼭 이런 방법으로 조사해야 하는가? 이것이 바로 필자가 우리나라 통계개혁은 농업통계의 개혁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근거다.


민주주의는 건전한 공론장 없이는 성립되지 않는다. 공론장이 건전해지려면 객관적 현실 인식을 공유해야 하며 그 바탕이 되는 게 통계다. 통계가 흔들리면 정책도 여론도 왜곡될 수밖에 없다. 가짜뉴스도 통계 왜곡에서 출발한다. 언론인은 통계 해석을 잘못하면 ‘사회의 공적’이 될 수 있지만 잘하면 ‘해석특종’을 할 수 있다. 통계전문가인 이재형 박사가 통계에 얽힌 재미있는 얘기들을 풀어낸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일하는 그는 <국가통계시스템발전방안> <한국의 산업조직과 시장구조> 등 많은 연구와 저술을 해왔고 통계청 통계개발원장을 역임했다. [편집자]

편집 : 김현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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