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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 광란의 시대, 통계에 끼어든 정치
[이재형의 통계 이야기] ⑮
2019년 03월 28일 (목) 20:27:47 이재형 박사 jhlee01@kdi.re.kr
   
▲ 이재형 박사

오래 전부터 잘 알고 지내던 장경세 전 경인지방통계청장이 오랜만에 연락을 해왔다. 그는 몇 년 전 지방통계청장을 끝으로 공직에서 은퇴하고 제2인생을 보람있게 살고 계신다. 경인지방통계청은 서울과 인천, 경기도를 담당하는 지방통계청이다. 그는 이 ‘통계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고 있다면서, 혹시 도움이 된다면 칼럼 소재로 활용하라고 통계청 공무원으로서 30여년 재직하면서 경험한 일들을 정리해서 보내주었다. 참 고마운 일이며, 이 지면을 빌려서 다시 한 번 감사 말씀을 드린다.

통계 공무원 제일 괴롭힌 건 물가통계

1970년대 경제, 사회, 정치적으로 가장 큰 관심을 끈 통계로는 물가통계와 쌀생산통계를 꼽을 수 있다. 그때도 지금과 다름없이 국민소득통계, 무역통계, 고용통계 등이 중요했지만, 당시는 고도성장기여서 GNP나 수출도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고용사정도 아주 좋았으므로 이들 통계에 관한 사회적 관심은 상대적으로 낮았다. 그 대신 고도성장기인데다 두 차례에 걸친 석유파동으로 물가가 급등하였고, 만성적인 식량부족 사태에 허덕이고 있었기에 물가통계와 쌀생산통계가 늘 초미의 관심사로 등장했다. 언론은 예나 지금이나 좋은 경제지표보다는 나쁜 지표에 더 관심을 두기 마련이다.

지금은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만 되면 ‘물가폭등’이라고 난리가 나지만, 1980년대 초까지는 지금 시각에서 본다면 그야말로 ‘물가광란’의 시기였다. 1973년에 3.2% 물가상승률을 기록한 것을 뺀다면, 매년 10% 이상 물가가 올랐다. 1970년 16.0%, 1971년 13.5%, 1972년 11.7%, 1974년과 1975년은 무려 24.3%와 25.2%에 이르렀다. 이후에도 1980년대 초반까지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0%대와 20%대를 넘나들었다. 그러다보니 정부에서는 물가를 잡으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그것이 안 되면 통계상으로나마 물가상승률을 낮춰 국민들 불만을 진정시키고자 했다.

   
1980년대 초까지는 지금 시각에서 본다면 그야말로 ‘물가광란’의 시기였다. ⓒ 통계청

경기 과열시켜놓고 통계 트집 잡은 성장지상주의

물가를 잡는 데 가장 효과적인 정책은 긴축을 통해 과열경기를 진정시키는 것인데, 성장지상주의 경제정책 아래 이것은 애초부터 검토대상이 아니었고, 그러다보니 행정력을 동원해 강제로 물가통제에 나섰다. 1970년대에 있었던 공공요금 규제, 생활필수품 가격규제, 독과점품목 가격규제 등이 인위적으로 가격을 낮추기 위해 정부가 동원한 가격통제정책이었다. 가격규제가 거의 없어진 지금은 잘 이해가 안 되지만, 그 시대에는 연탄이나 밀가루 같은 생필품은 물론 다방 커피값, 목욕탕 요금, 이발소나 미장원 요금, 설렁탕이나 짜장면 요금은 모두 가격규제 대상이었다. 전반적인 가격통제 정책이 일상화했지만 가격은 여전히 폭등했고, 국민들 불만을 잠재우고자 정부는 통계지표 상 물가상승률을 낮추려고 여러 시도를 한 것이다.

1970년대 후반 경제기획원 조사통계국(현 통계청)은 매월 3회 물가를 조사했다. 3회에 걸친 물가조사 결과의 평균치로 월별 물가통계를 작성했다. 매월 3회 물가조사담당과에서 조사 결과를 조사통계국장에게 보고하면, 국장은 경제기획원 장관에게 보고했다. 소비자물가지수는 월 1회 작성돼 언론을 통해 국민에게 공표됐다. 좋지 않은 통계결과가 발표되면 정책당국은 통계에 시비를 걸거나 압력을 가해 통계를 왜곡시키려고 시도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정책당국도 조사된 자료의 숫자를 바꾸라고 할 수는 없었기에, 조사대상자가 적절한가, 조사방법이 적절한가, 조사대상 품목이나 규격이 적절한가 등을 가지고 트집을 잡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대선 때 외압 들어오자 사표 내고 버틴 통계 공무원

1987년 대통령선거 때, 물가상승이 주요 이슈로 등장했다. 당시 물가는 전반적으로 상당히 안정된 편이었는데, 김장 시기에 무, 배추 등 채소 값이 급등했다. 산지에서는 무, 배추가 풍년이었는데, 당시 선거운동원 일당이 농작물 수확 임금보다 높아 농산물을 출하할 사람을 구하기 어려워 출하에 문제가 생겼고, 그 결과 수도권에 김장용 채소가격이 비정상적으로 폭등한 것이다. 당시만 하더라도 공무원의 선거개입은 일상적이어서, 여당후보 지원을 위해 청와대와 경제기획원에서는 조사통계국에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낮추라는 외압을 가했다. 정부는 농협으로 하여금 산지에서 무와 배추를 사서 동대문시장 등에서 이를 산지 구입가격으로 판매하고, 이 가격을 물가지수에 반영하라고 강요하기도 했다. 조사통계국 간부 중에서도 일부는 정책당국에 협조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지만, 물가조사 담당과장은 이를 완강히 거부했고, 몇몇 실무자는 사표를 내고 업무를 거부했다.

   
▲ 정권이 바뀌어도 통계를 자신들의 입맛에 맞추려는 시도는 여전했다. ⓒ pixabay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새로운 권력이 등장했지만, 물가통계 문제는 여전히 가라앉지 않았다. 물가정책당국은 정부에 의해 조정된 가격을 물가지수에 반영하도록 강요했고, 결국 타협책이 나왔다. 1987년 12월 소비자물가지수는 정책당국이 원하는 방법으로 작성해 정책당국에 제공하되, 언론보도는 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그 대신 이듬해에 정상적인 방법으로 작성된 통계를 공표하기로 했다. 즉, 정책당국에는 그들이 원하는 잘못된 방법에 의한 통계를 제공하되 대국민 공표는 하지 않고, 올바른 방법으로 작성된 통계는 그 다음 달 통계를 공표할 때 소급해 발표하기로 한 것이다. 이런 연유로 60년이 넘는 소비자물가통계 역사에서 유일하게 1987년 12월의 물가통계가 제때 공표되지 못했다.

얼마 전 이 칼럼에서 물가통계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품질변화에 따른 가격변화를 어떻게 물가지수에 반영할 것인지 다룬 바 있다. 이것은 간단해 보이면서도 판단이 쉽지 않은 문제다. 지금 PC 성능은 20년 전 것보다 아마 1,000배 이상 좋아졌겠지만 가격은 그때나 지금이나 비슷하다. 그러면 가격이 1/1,000로 낮아진 것으로 볼 수 있을까? 현실적으로 소비자들이 지금 1/1,000 가격으로 20년 전에 나온 PC를 살 수 없는 것은 자명하다. 그렇다면 소비자들이 현실적인 선택권이 없는데도 품질향상을 감안한다면 가격이 낮아진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신문 지면 늘리고 구독료 올리면 가격인상

1980년대 중반 언론통제가 완화됐다. 그때까지 신문사들은 8면짜리 신문을 발행했는데, 이를 두 배로 늘려 16면짜리 신문을 발행하기 시작했다. 신문사들은 발행 면수를 2배로 늘리면서 구독료도 2배로 인상했다. 물가정책당국과 언론사들은 지면이 두 배 늘고 구독료로 두 배 올랐으니 1면당 구독료는 종전과 동일하기 때문에 가격 인상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조사통계국은 신문은 사과와 같은 상품과 달리 소비자가 선택해 개당으로 구입할 수 없는 품목이므로 신문 1부 전체를 조사 단위로 가격을 측정하는 것이 옳다고 결정했다. 서울대학병원이 새 병동을 건축하고, 시설과 서비스가 좋은 신병동의 입원료를 구병동보다 높게 책정했다. 보건복지부와 병원 측은 시설과 서비스가 좋아졌으므로 입원료가 오른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으나, 조사통계국은 자체 회의와 외부전문가들 의견을 들어 입원료가 오른 것으로 판단했다.

이러한 사례들은 지금도 논쟁의 대상이 될 수 있으며, 어느 쪽이 맞는지 단정하기 어렵다. 통계작성이란 것이 단순해 보이지만 현실에서는 어떤 방법이 옳은지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가 적지 않다.

가격 단속에 표시가격과 실거래가격 달라져

전에도 설명한 바 있지만 소비자물가 조사에서는 조사대상 품목의 품질과 규격이 정해져 있다. 하나의 상품에도 수많은 규격과 품질의 제품이 있으므로 이 모든 것을 조사하기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해당 품목을 가장 잘 대표할 수 있는 품질과 규격의 제품 가격을 조사해 이를 해당 품목 전체의 가격변동이라 간주한다. 1970년대 후반까지는 조사통계국이 소비자물가로 조사하는 공산품의 품질규격을 상세히 발표했다. 그런데 물가정책당국이 이를 악용해 조사 대상인 품질규격의 상품은 가격을 동결하고 나머지 제품만 가격을 인상하도록 지시했다. 이에 따라 물가지수 통계의 정확성과 신뢰성의 문제가 야기됐고, 그 결과 조사통계국은 소비자물가 조사 품목의 상세 규격 발표를 중단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한동안 물가정책당국은 계속 조사 대상 품목의 상세한 품질규격을 알려주도록 지속적으로 요구했다고 한다.

198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물가조사 대상 업소는 비밀에 부쳤지만 대상 지역은 비밀이 아니었다. 어느 동네나 어느 시장이 물가조사 대상인지 알려졌던 것이다. 이때 특정 지역, 특정 품목의 가격이 오르면 구청에서 나와 가격을 내리라고 강요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편법으로 조사 대상 업소에서는 표시가격과 실거래가격을 달리 표시하기도 했다. 통계조사에서는 표시가격이 아니라 실거래가격을 조사하는데, 구청에서 표시가격과 실거래가격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면 여러 행정 권한을 악용해 사업자들에게 실거래가격을 낮추도록 강요하는 경우도 있었다.

“가격규제 풀면 물가폭등”은 기우

물가조사에서 이러한 부작용이 커지자 조사대상 사업자들이 조사통계국에 항의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조사통계국은 조사대상 지역, 사업자, 품목, 규격 등 모든 것을 비밀에 붙이기로 했다. 이렇게 되자 일부 지역에서는 물가조사원을 미행해 조사대상을 파악하려는 시도도 했다고 한다.

1990년대 중반 대대적인 가격자율화 조처가 이루어졌다. 그동안 직‧간접적으로 정부의 통제를 받아오던 가격들이 일시에 자유화해 사업자들이 스스로 자신들 판매가격을 결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공공요금 등 일부를 빼고는 가격결정이 자율에 맡겨졌다. 가격규제를 해제하면 물가가 폭등할 것이라는 우려가 각계에서 제기됐지만 기우였다. 수요·공급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는 시장원리가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나 지자체가 개별업소 판매가격에 개입할 수 있는 권한은 사라지고, 그 결과로 물가통계에 대한 정책당국의 압박도 더 이상 가능하지 않게 됐다.

* 이 글은 장경세 전 경인지방통계청장이 들려준 경험담에 필자의 생각을 더해 쓴 것이다.


민주주의는 건전한 공론장 없이는 성립되지 않는다. 공론장이 건전해지려면 객관적 현실 인식을 공유해야 하며 그 바탕이 되는 게 통계다. 통계가 흔들리면 정책도 여론도 왜곡될 수밖에 없다. 가짜뉴스도 통계 왜곡에서 출발한다. 언론인은 통계 해석을 잘못하면 ‘사회의 공적’이 될 수 있지만 잘하면 ‘해석특종’을 할 수 있다. 통계전문가인 이재형 박사가 통계에 얽힌 재미있는 얘기들을 풀어낸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일하는 그는 <국가통계시스템발전방안> <한국의 산업조직과 시장구조> 등 많은 연구와 저술을 해왔고 통계청 통계개발원장을 역임했다. [편집자]

편집 : 박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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