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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는 왜 민주주의 필수요건인가
[이재형의 통계 이야기] ⑰
2019년 05월 01일 (수) 16:10:26 이재형 박사 jhlee01@kdi.re.kr
   
▲ 이재형 박사

2001년 서울에서 국제통계협회(International Statistical Institute)가 주관하는 제53회 세계통계대회(Session of the International Statistics)가 열렸다. 국제통계협회는 세계 각국의 통계작성기관과 통계학자들을 회원으로 하는 통계 분야의 가장 큰 국제기구이며, 세계통계대회는 국제통계협회가 주관하는 학술대회로서 2년 주기로 대륙을 돌아가며 각국 정부가 주최한다. 이 대회는 통계 분야에서 가장 큰 국제행사로서 ‘통계올림픽’이라고도 불린다.

대통령과 총리의 연설문이 겹친 사연

개막식이 코엑스(KOEX)에서 열렸다. 김대중 대통령이 화상 연설로 축사를 했고 이어서 이한동 총리가 연단에 올라 환영사를 시작했다. 총리가 환영사를 읽어나가자 환영사를 듣고 있던 나는 갑자기 등골이 서늘해졌다. 총리 연설문이 대통령 연설문의 표절이라 할 정도로 내용이 상당부분 유사했기 때문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두 연설문을 내가 작성했기 때문이다.

   
▲ 국제통계협회는 통계 분야의 가장 큰 국제기구이며, 세계통계대회는 국제통계협회가 주관하는 학술대회로서 2년 주기로 대륙을 돌아가며 각국 정부가 주최한다. ⓒ pixabay

세계통계대회가 열리기 며칠 전 청와대에서 연설문 작성 요청이 와서 평소 생각을 담아 작성해 보냈는데, 대회 임박해서 총리실에서도 똑같은 요청이 왔기에 별 생각 없이 다시 연설문을 만들어 보낸 것이다. 사람의 생각이나 문투는 변하는 것도 아닌데다 두 연설문이 연이어 발표되리라는 생각을 못한 내 불찰도 있었다. 청중들이야 인사말이나 환영사를 주의 깊게 듣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 두 연설문이 상당히 중복된다는 것을 모르고 지나쳤을 것이다. 하지만 두 연설문을 직접 작성한 나로서는 총리 연설시간 10분 정도를 가시방석에 앉은 듯 안절부절 못했다. 얼마나 긴장했는지 연설이 끝나자 온몸이 식은땀으로 축축했다.

그때 두 연설문에서 가장 강조했던 것이 통계는 민주주의를 위해 중요하며, 통계는 민주주의의 기초가 된다는 내용이었다. 민주주의는 국가구성원 간의 건전한 토론 위에서 성립하며, 이러한 토론이 이루어지려면 사실(fact)에 관한 공통 인식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에 관한 공통 인식이 없다면 토론은 서로 겉돌게 되어 의미 있는 결론을 도출하기 어렵다. 한강 물이 깨끗하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오염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 둘이서 아무리 한강물 오염대책을 토론한들 적절한 대책이 나올 수 없다. 통계는 숫자라는 계량화한 객관적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사회 구성원들이 적어도 사실(fact)에 관해서는 합의하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에 민주주의 사회로 나아가는 출발점이 된다.

“통계가 믿을만해야 건강한 사회”

통계가 민주주의의 기초가 된다는 인식은 서구 선진국들이 공유해왔고 이들 국가의 통계기관들이 주요 임무로 규정하고 있다.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에 걸쳐 영국 정부는 각계 전문가로 구성된 위원회를 만들어 통계개혁방안에 관한 보고서를 작성하도록 했다. 이 위원회는 컨설팅 보고서로 <통계: 신뢰의 문제>(Statistics: A Matter of Trust)를 제출했고, 영국 정부는 이 보고서를 토대로 <통계의 신뢰 구축>(Building Trust in Statistics)이라는 청서(green paper)를 발간했다. 이 보고서에서 당시 토니‧블레어 총리는 “우리 모두가 신뢰할 수 있는 공식통계에 접근하는 것은 모든 건강한 사회의 기본 조건이다. 통계는 토론을 진작하고, 정부 내외의 의사결정에 기여하며, 국민에게 정부가 그 약속을 지키고 있는가를 판단할 수 있게 해주며, 이러한 점에서 공식통계는 믿음을 기저로 하는 민주주의 제도에서 핵심적 역할을 수행한다”고 역설한 바 있다.

   
▲ 통계는 계량화한 객관적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사회 구성원들이 적어도 사실에 관해서는 합의하는 데 도움을 주기에 민주주의 사회로 나아가는 출발점이 된다. ⓒ pixabay

그러면 통계란 무엇인가? 간단히 말하면 사물의 수를 세는 것(counting number)이다. 우리나라에 사는 사람 수를 세는 것, 기업 수를 세는 것, 사람들 소득금액을 세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동네 슈퍼에서 파는 상품의 수, 아파트에 사는 사람 수 등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과 사물을 세는 것 전부가 통계이다. 좀 더 현학적으로 표현하면 ‘통계란 사회현상이나 자연현상을 숫자로 계량화한 정보를 의미하는 것으로, 일반적으로 ‘시간적 및 공간적, 그리고 양적·질적으로 속성이 규정된 집단에 관한 정보를 수량적으로 표시한 것’을 말한다.

우리 모두가 통계인이다

개인이든 기업이든 누구나 자기에게 필요하다면 무엇인가 숫자를 셀 수 있다. 누구나 통계를 만들 수 있다는 말이다. 실제로 많은 개인이나 민간기업이 일상적으로 직접 통계를 만들어 이를 활용한다. 가정주부들이 가계부를 작성하거나 학생들이 시험성적을 정리해두는 것도 통계를 만드는 일이다. 기업들은 좀 더 많은 통계활동을 한다. 매월 영업실적을 정리하는 것, 회계장부를 작성하는 것, 직원들 근무상황을 정리하는 것, 이 모두가 통계활동이다. 개인의 일상생활이나 기업의 업무활동에서 특별히 의도하지 않더라도 수많은 통계가 생산되고 활용된다.

이렇게 많은 통계 가운데 특히 국가적으로 중요하거나, 사회 전반적으로 많은 수요가 있어 국가(정부)가 인증하는 통계를 공식통계(official statistics)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국가 운영에서 통계가 갖는 중요성을 더욱 강조해 공식통계란 말 대신 국가통계(national statistics)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특정통계가 국가통계로 인정받으려면 통계법에 의해 통계청장의 승인을 받도록 돼있어 승인통계란 말을 사용하기도 한다. 우리나라 국가통계 가운데 특히 중요한 통계는 지정통계라 하고, 그 외 통계는 일반통계라 한다.

UN에서는 공식통계(official statistics)를 ‘국가통계기관에 의해 생산된 통계’라고 정의하고, "‘정부기관이 스스로의 사용만을 위해 작성하는 통계나 다른 통계이용자들에게 제공되지 않는 통계는 공식통계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명시했다. 영국에서는 공식통계(official statistics)와 국가통계(national statistics)를 구분해 사용한다. 공식통계란 영국 통계청을 비롯한 주요 국가기관에서 생산하는 통계를 의미하며, 이 가운데서 중요한 통계로서 특별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통계를 국가통계라 한다. 영국의 국가통계는 통계청 인증을 받아 ’통계활동강령‘(Code of Practice for Statistics)을 엄격히 준수해서 작성된다.

통계를 민간에 위임할 수 없는 속사정

통계는 경제‧사회 전반에 걸친 객관적인 정보로서 국가운영은 물론, 기업의 전략 선택, 개인의 일상생활에서도 기초정보로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정부의 정책개발은 현실에 관한 객관적이고도 정확한 정보를 토대로 이루어질 때 적절한 방향성과 효과를 기대할 수 있으며, 정책의 적절성에 관한 평가도 그와 관련된 충분한 정보가 확보될 때 비로소 가능해질 것이다. 통계는 국가체제의 유지와 효율 향상을 위해 중요한 기능을 수행한다. 통계는 그 자체가 갖는 가치중립성‧객관성‧계량성이라는 기본적 속성에 의해 사회현상에 관한 인식기능(fact finding), 계획수립기능, 사후평가기능을 두루 갖추고 있다. 따라서 통계는 합리성효율성을 추구하는 국가조직이나 개인, 기업에 있어서 불가결한 정보로서 역할을 수행한다.

이런 통계의 중요성 때문에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통계는 충분히 그리고 적절하게 공급돼야 한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소비하는 상품이나 서비스와 마찬가지로 통계에 관한 수요가 있으면 통계의 공급은 여러 방법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 크게 통계를 공급하는 기능을 정부가 담당하는 경우, 그리고 민간이 담당하는 경우 두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통계 작성을 반드시 정부가 담당해야 할 필요는 없다. 사회가 필요로 하는 통계가 충분히 공급될 수만 있다면, 공급자가 정부든 민간기업이든 상관이 없다. 영국에서는 1970년대 이후 통계작성 기능을 민간에 많이 위임했고, 정부 통계작성 기관에도 민간기능을 많이 도입한 바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통계의 작성과 공급에 있어서는 국가의 기능이 절대적으로 강조된다. 대부분 국가에서 중요한 통계는 국가(정부)가 작성하고 있으며, 통계를 공급하고 유통하는 기능도 국가가 담당한다. 대부분 선진국들이 시장경제체제를 채택하고 있는데, 왜 유독 통계라는 재화의 생산과 공급에서는 국가가 절대적인 역할을 담당하는가? 통계 작성과 공급도 시장에 위임하여 민간기업으로 하여금 이를 생산하게 하면 안 될까? 통계 작성에서 국가기능이 중요한 것은 ‘통계’라는 재화가 갖는 고유의 특성 때문에 국가가 이를 담당하는 것이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통계는 공공재이기 때문에 국가가 작성

첫째, 통계는 대부분 독점적 상품의 특성을 갖고 있으며, 그 품질이 시장에서 제대로 평가되기 어렵다. TV나 자동차와 같은 상품은 소비자들이 이를 사용해봄으로써 상품의 품질을 파악할 수 있지만, 통계는 잘못이 있더라도 통계수요자는 그것을 파악하기 어렵다. 한강다리가 새로 건설됐을 때 이용자들이 그 다리가 튼튼하게 잘 만들어졌는지 아니면 부실공사로 만들어졌는지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와 마찬가지다. 한강다리나 통계와 같은 재화는 소비자에 의해 품질판단이 어려우므로 좋은 품질의 재화를 생산하려면 그 과정에서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 민간기업은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하기에 품질이 시장에서 정확히 평가되지 못하면 생산관리상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이에 비해 정부는 이윤동기가 없어 정해진 절차의 타당성에 관계없이 절차의 준수와 철저한 관리가 효과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 한강다리나 통계와 같은 재화는 소비자에 의해 품질 판단이 어려우므로 좋은 품질의 재화를 생산하려면 그 과정에서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 ⓒ pixabay

둘째, 통계는 공공재적 성격을 갖기 때문에 민간에 위임할 경우 사회적으로 필요한 양의 통계가 충분히 생산되기 어렵다.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누구나 사용하는 재화나 시설을 ‘공공재’라 생각하는데, 경제학에서 말하는 공공재란 사회 전체로는 비용보다 이익이 크지만, 이를 생산하는 개인에게 그 이익이 모두 귀속되지 않는 재화나 서비스를 말한다. 이러한 공공재는 민간, 즉 시장에 위임하면 과소 생산될 수밖에 없다. 안전한 사회를 위해서는 ‘경찰’이라는 치안을 담당하는 기관이 필요하다. 모든 사람들이 경찰을 필요로 하지만, 사회에 경찰이 없다고 해서 어떤 개인이 자기 돈을 들여 경찰을 만들 수는 없는 것이다. 즉, 경찰 서비스도 공공재이니 국가가 담당하는 것이다. 통계도 공공재적 속성을 갖기에 많은 부분 국가가 담당할 수밖에 없다.

통계조사 응답거부에 벌칙조항을 둔 이유

셋째, 좋은 통계를 생산하려면 어느 정도 공권력이 필요하다. 필요한 경우 조사의 강제성이 수반돼야 할 때가 있는데, 이것이 가능한 것은 정부밖에 없다. 얼마 전 통계청이 조사 불응 가구에 과태료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여론의 반발이 거세지자 대통령이 나서서 그 방침을 철회한바 있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필요한 정확한 통계를 작성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강제력은 불가피하다. 통계에 응답하기 싫다고 해서 조사를 포기한다면 제대로 된 통계를 작성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실제 집행 여부는 나라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많은 국가들이 중요 국가 통계기관의 통계조사 응답 거부에는 벌칙조항을 두고 있다.

넷째, 통계는 그 결과와 이해관계가 없는 기관에서 작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게 될 때 통계의 중립성 보장, 나아가서는 정확성과 신뢰성이 보장될 수 있다. 정부의 기본 기능은 국가사회를 구성하는 집단들의 이해를 조정하는 것이다. 정부는 국가를 구성하는 모든 주체 가운데 가장 중립적인 주체이기 때문이다.

이상과 같은 통계의 특성 때문에 통계의 작성과 보급에는 불가피하게 국가가 중요한 기능을 수행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통계 작성에서 국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해서 모든 통계작성 업무를 국가가 방만하게 수행하여서는 안 될 것이다. 국가(정부)는 수많은 기능을 담당하고 있고, 통계 작성 기능은 그 가운데 극히 일부이다. 통계 분야에 배분될 자원은 한정될 수밖에 없고, 그 한정된 자원을 국가사회가 필요로 하는 통계를 효율적으로 작성하고 공급하는 데 사용하는 것이 통계작성기관, 나아가서는 정부의 역할이다.


민주주의는 건전한 공론장 없이는 성립되지 않는다. 공론장이 건전해지려면 객관적 현실 인식을 공유해야 하며 그 바탕이 되는 게 통계다. 통계가 흔들리면 정책도 여론도 왜곡될 수밖에 없다. 가짜뉴스도 통계 왜곡에서 출발한다. 언론인은 통계 해석을 잘못하면 ‘사회의 공적’이 될 수 있지만 잘하면 ‘해석특종’을 할 수 있다. 통계전문가인 이재형 박사가 통계에 얽힌 재미있는 얘기들을 풀어낸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일하는 그는 <국가통계시스템발전방안> <한국의 산업조직과 시장구조> 등 많은 연구와 저술을 해왔고 통계청 통계개발원장을 역임했다. [편집자]

편집 : 박지영 기자

[박지영 기자]
단비뉴스 환경부장 박지영입니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진실만을 쫓는 우직한 기자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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