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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미’는 어쩌다 ‘나쁜 쌀’ 대명사가 됐나
[이재형의 통계 이야기] ⑯
2019년 04월 03일 (수) 17:15:19 이재형 박사 jhlee01@kdi.re.kr

코미디언 예명도 ‘정부미’

   
▲ 이재형 박사

이삼십년쯤 전인가? ‘정부미’란 이름의 코미디언(본명 양용남)이 있었다. 진짜 정부미(政府米) 포대로 만든 옷을 입고 나와 사람들을 웃기곤 했다. 당시 우리가 먹던 쌀은 정부미와 일반미로 구분됐는데, 정부미는 일반미보다 값은 싼 대신 품질이 매우 낮았다. 양용남 씨는 스스로를 못난 사람이라는 뜻으로 그런 예명을 사용한 것 같다. 우리가 상대방을 존중하는 뜻을 표시하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상대방을 높여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기 자신을 낮추는 건데, 양용남 씨는 후자를 택한 것이다.

지금도 정부미가 있다. 정부가 농민들로부터 수매해 관리하는 쌀이다. 지금이야 일반미든 정부미든 품질이 같고, 유통을 누가 담당하느냐에 따라 정부미와 일반미로 구분할 뿐이다. 품질 차이가 없어 소비자들은 둘을 구분할 필요가 없어졌고, ‘정부미’란 이름도 사람들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 정부는 쌀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1970년대 초중반부터 통일벼와 유신벼를 개발했다. ⓒ tbs TV

쌀이 부족하던 시대에서 남아도는 시대로 바뀌었다. 지금은 풍년이 들면 정부가 과잉생산된 쌀의 처리에 머리를 싸매지만,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쌀 생산은 정부 업적의 척도로 여겨질 만큼 중요했다. 그때까지 농업국가의 모습을 완전히 벗지 못하였는데도 우리나라는 매년 식량이 부족해 해외에서 막대한 양의 곡물을 수입했다. 그러나 쌀은 국내 농업 보호를 위해 수입이 엄격히 금지되어 있어서, 쌀만은 국내에서 자급자족할 수밖에 없었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란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예로부터 농사를 중요시해 풍년을 선정(善政)의 상징으로 여겼고 정부는 쌀 생산 증대에 온 힘을 기울였다. 추수철이 가까워지는 8월말 경부터 언론은 그해 쌀 생산량이 얼마나 될지 큰 관심을 기울였다.  

흉년 드는데도 계속 권장한 ‘유신벼’

정부는 쌀 증산을 위해 다수확품종 개발에 많은 힘을 기울였다. 1970년대 초중반부터 개발된 신품종이 통일벼와 유신벼이다. 통일벼는 대표적 다수확품종으로서 기존 품종에 견주어 수확량이 거의 2배에 이르렀다. 그 대신 품질이 낮아 밥맛이 없다하여 소비자들이 기피하였다. 유신벼도 통일벼 계통의 다수확품종으로서 1976년 정부의 강권으로 전국적으로 재배하게 됐는데, 자주 흉년이 들어 농민들 원성이 높았다. 유신정권이라는 암흑시절, “유신이 실패했다”라는 말이 나오지 않게 하려고 언론을 통제하는 바람에 언론은 이 사실을 제대로 보도하지 못했다.

통일벼와 유신벼는 값은 싸지만 밥맛이 없어 살림에 여유 있는 소비자들은 잘 찾지 않았다. 대신, 이들은 속칭 ‘아끼바리’라 불리는, 밥을 하면 그야말로 기름이 자르르 흐르는 일반미를 찾았다. ‘아키바리’는 일본에서 개발한 쌀 ‘아키바레’(秋晴れ)가 와전된 것으로, 한자 그대로 ‘맑은 가을 하늘’이란 뜻이다. 농민들은 정부 수매에 통일벼나 유신벼 등 다수확 품종 쌀을 내고, 소비자들이 좋아하는 ‘아끼바리’는 직접 판매하였다. 이리하여 정부미는 저품질의 맛없는 쌀, 일반미는 고품질의 맛있는 쌀이라는 인식이 국민들 머릿속에 자리 잡게 됐다.

쌀 남아돌자 허용된 쌀막걸리의 추억 

1976년 유신벼 사태를 제외하고는 1970-80년대 내내 쌀은 항상 대풍을 기록했다. 해마다 전년도 생산량을 상회하는 풍년이 계속된 것이다. 이때까지 쌀은 오직 식량으로만 소비하고 공업용 원료로 사용하는 것은 엄격히 금지됐다. 쌀의 생산, 유통, 소비는 양곡관리법에 의해 규제됐는데, 당시 양곡관리법은 위반자를 최고 사형까지 처할 정도로 무시무시한 법률이었다. 식당에서 판매하는 음식에도 정부가 쌀의 사용량이나 비율을 규제할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당시 술꾼들의 소망은 ‘쌀막걸리’를 한번 마셔보는 것이었다.

   
▲ 1977년 크게 풍년이 들어 쌀 수확량이 사상 처음으로 400만석을 돌파하자 정부는 쌀 막걸리를 만들 수 있도록 허용했다. ⓒ <경향신문>

쌀 사용이 엄격히 통제되던 시절, 쌀로 술을 만드는 것은 허용될 수 없었기에 막걸리는 거의 밀가루로 만들었다. 농주(農酒) 등과 같은 밀주(蜜酒)는 쌀로 만들긴 했으나, 이는 모두 불법이고 위반행위 벌칙도 매우 강해서 대부분 사람은 이를 맛볼 기회가 없었다. 이러던 차에 매년 풍년이 들어 드디어 쌀 생산량이 소비량을 크게 넘어섰다는 통계가 발표되자, 정부가 쌀막걸리 제조를 허용했고 전국의 술꾼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1977년인가 이듬해로 기억하는데, 그때 쌀 막걸리가 시판되던 날 필자도 친구들과 함께 쌀 막걸리 잔을 기울이며 대취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쌀이 남아돈다는 통계와 달리 쌀 부족 현상이 나타났다.

일선행정기관 업적용으로 부풀려진 쌀 생산 통계

통계를 작성하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는 조사통계로서 이는 통계작성기관이 조사대상자를 직접 조사하여 이를 바탕으로 통계를 작성하는 방법이다. 조사대상자 전체를 조사하는 전수조사와 조사대상의 일부만을 조사하는 표본조사가 있다. 통계청에서 작성하는 대부분 통계가 여기에 해당한다. 두 번째는 보고통계로서 행정통계라고도 하는데, 통계조사를 직접 하지 않고 행정기관이 파악한 자료를 토대로 작성하는 통계다. 여기에는 통계 작성을 위해 행정기관이 현장을 파악하는 경우도 있지만, 다른 행정업무를 하는 과정에서 파악하게 된 정보를 활용하여 통계를 작성하기도 한다. 세 번째는 가공통계 또는 분석통계라고도 하는데, 기존 여러 통계를 이용하여 새로운 통계를 작성하는 방법으로서 GDP 통계가 대표적이다.

197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쌀 생산 통계는 보고통계였다. 쌀이 매년 대풍을 기록해 한숨을 돌린 정부는 쌀 소비 통제를 좀 느슨히 했다. 그런데 어느 해인가 정확히 기억은 못 하는데, 풍작이라서 쌀이 남아돌 것이라던 통계와 달리 쌀 공급 부족 현상이 나타났다. 보고통계에 의해 작성되던 쌀 생산 통계에 부실이 드러난 것이다. 당시 쌀 생산 통계는 행정 일선의 읍면동에서 해당 지역 쌀 생산량을 조사해 상부 기관으로 보고하면, 농수산부에서 이를 취합하여 통계를 작성하는 방식이었다. 쌀 생산이 그만큼 중요한 시기인 만큼 쌀 생산량은 일선 행정기관의 업적으로 평가되었기 때문에 각 단계 행정기관은 경쟁적으로 쌀 생산량을 ‘뻥튀기’하여 상부로 보고한 것이다. 이러다 보니 쌀 생산통계가 현실과 달리 과대평가되는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중국 고도성장, 어디까지 믿어야 하나

이런 사례는 국내외에서 적지 않게 발견된다. 특정 통계와 이해관계가 있는 기관이 통계작성을 하는 경우 이러한 사례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지금 중국이 고도경제성장을 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이에 의문을 갖는 경제학자들이 적지 않다. 중국의 GDP 통계는 각 성에서 보고한 통계를 토대로 중앙정부가 이를 취합하여 작성한다는데, 각 성의 경제발전은 각 성 지사의 업무성과로 연결되기 때문에 과대보고가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중국 정부가 발표하는 성장률 통계는 어느 정도 디스카운트하여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 주장의 진위는 알 수 없으나 보고통계가 ‘뻥튀기’ 통계로 전락할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 일부 경제학자들은 중국의 GDP 통계는 각 성에서 보고한 통계를 토대로 중앙정부가 이를 취합하여 작성하는데, 각 성의 경제발전은 각 성 지사의 업무성과로 연결되기 때문에 과대보고가 많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 봉황망(凤凰网)

우리나라 대부분 지자체는 모두 자체 지역발전계획을 갖고 있다. 인구 감소가 우려되는 지금 각 지자체는 지역의 인구증가에 비상한 관심을 쏟는다. 인구가 많아야 경제발전이 순조롭게 이루어지고 또 정부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현재 인구는 이미 통계에 나와 있으니까 어쩔 수 없지만, 장래인구 추계에는 ‘뻥튀기’하는 사례가 적지 않게 발견된다. 지자체마다 의욕적인 개발계획을 세워놓고, 그 계획이 성공하면 인구가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한다. 각 지자체가 예측한 해당지역의 장래인구를 모두 합한다면, 한 이삼십년 뒤 우리 인구는 1억을 넘어설지도 모른다. 이와 같이 통계 뻥튀기의 유인은 많은 곳에서 존재한다.

때로는 ‘전수조사’보다 정확한 표본조사

쌀 생산 통계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정부는 좀 더 정확한 통계 작성을 위해 쌀 생산을 조사통계로 전환하려고 했다. 그러자 내외부에서 강한 반발이 일어났다. 그때까지 보고통계는 적절한 통계적 방법론을 채택한 건 아니지만 일종의 전수조사라 할 수 있는데, 조사통계는 전국의 넓은 쌀 경작지를 고려할 때 전수조사는 불가능하여 표본조사로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전체 경작지의 수천, 수만분의 1에 불과한 면적을 조사하여 작성하는 통계가 어떻게 전수조사보다 정확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반대론자들의 주된 논리였다.

그럼 조사통계방식으로 쌀 생산통계를 어떻게 작성하는가? 먼저 전국의 쌀 생산량을 대표할 수 있도록 조사대상이 되는 전국 각지 논 가운데 일부를 표본으로 선정한다. 그럼 표본으로 선정된 논에서 생산된 쌀의 양이 얼마나 될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표본으로 선정된 논 전체의 쌀을 모두 셀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그 논 전체의 극히 일부 면적에 정사각형 줄을 치고, 통계조사원들이 줄 안에서 자라고 있는 벼의 낱알 수를 일일이 센다. 이것을 토대로 조사대상 논 전체에서 생산될 벼 낱알 수를 추정하고, 이것을 지역별로 합하여 전국 단위 쌀 생산 통계를 작성하는 것이다. 자연히 실제 조사대상이 되는 지역은 면적 기준으로 본다면 전국 벼 경작지의 수만분의 1에도 못 미칠 것이다.

일부 우려와 달리 표본조사 방식으로 작성한 쌀 생산 통계는 상당히 정확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동안 쌀 생산 통계에서 상당한 정도의 뻥튀기가 있었던 사실도 드러났다. 보고통계 방식으로 쌀 생산 통계를 작성하던 때는 쌀 생산량과 소비량 사이에 항상 상당한 정도 차이가 발생하곤 했는데, 조사통계방식으로 전환하면서 이러한 생산과 소비 사이의 불일치가 매우 축소되었다. 적절한 통계조사방법론에 의한 표본조사방식이 보고통계방식에 의한 전수조사보다 훨씬 정확한 통계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 현실로 증명된 것이다. 표본조사로 전환하는 데 반대하던 주장도 사라졌다. 통계수치와 직접 이해관계를 가진 기관이 통계를 작성할 경우, 이해충돌로 부정확한 통계가 생산될 수 있다는 교훈도 아울러 얻었다.


민주주의는 건전한 공론장 없이는 성립되지 않는다. 공론장이 건전해지려면 객관적 현실 인식을 공유해야 하며 그 바탕이 되는 게 통계다. 통계가 흔들리면 정책도 여론도 왜곡될 수밖에 없다. 가짜뉴스도 통계 왜곡에서 출발한다. 언론인은 통계 해석을 잘못하면 ‘사회의 공적’이 될 수 있지만 잘하면 ‘해석특종’을 할 수 있다. 통계전문가인 이재형 박사가 통계에 얽힌 재미있는 얘기들을 풀어낸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일하는 그는 <국가통계시스템발전방안> <한국의 산업조직과 시장구조> 등 많은 연구와 저술을 해왔고 통계청 통계개발원장을 역임했다. [편집자]

편집 : 김현균 기자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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