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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팅게일, ‘통계의 선구자’가 되다
[이재형의 통계 이야기] ⑭
2019년 03월 23일 (토) 23:53:45 이재형 박사 jhlee01@kdi.re.kr
   
▲ 이재형 박사

지난해 라오스 통계청장을 비롯한 통계청 간부들에게 국가통계에 관해 강의한 적이 있다. 통계의 중요성을 설명할 때는 통계의 부실이나 이해 부족으로 정책 실패를 가져온 국내외 사례를 소개했다. 이때 한 사람이 “부실통계에 따른 실패 사례는 많이 소개하면서, 왜 성공사례는 소개하지 않느냐”고 질문했다.

통계는 왜 늘 지탄의 대상이 되나

내 대답은 “통계는 국가의 기본정보여서 나쁜 결과가 초래되면 비난받지만, 좋은 결과가 나오더라도 누구나 정책이 잘된 덕분이라고 하지 통계가 좋았기 때문이라고 평가하지는 않는다”는 거였다. 예를 들어 “교통신호등이 고장 나서 교통사고가 나면 사람들은 모두 교통신호 탓을 하지만, 사고가 나지 않는다고 해서 교통신호등을 칭찬하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통계에 따른 실패담은 많지만, 성공담은 찾기 어렵다.

나이팅게일(Florence Nightingale, 1820-1910)은 영국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부모 반대 속에서도 간호사가 되었다. 문학, 예술 등 다방면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지만, 자원봉사 활동을 하면서 빈민들의 비참한 생활상을 알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사회봉사에 헌신하기로 했고 곧 간호사의 길을 택했다. 유럽 여러 국가에서 간호학을 체계적으로 배워 거의 무보수로 헌신적인 봉사활동을 했고, 간호사 교육기관과 여성전문병원을 운영하기도 했다. 이런 사회활동으로 나이팅게일은 30대 초반 젊은 나이에 이미 영국에서 사회봉사활동의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명성을 쌓았다.

전투보다 병원에서 죽은 군인이 많은 크림전쟁

1854년 크림전쟁(Crimean War)이 발발하였다. 이 전쟁은 나폴레옹 이후 유럽국가 간에 벌어진 최초 전쟁이다. 프랑스‧영국‧오스만터키‧사르데냐 네 동맹국과 러시아 사이에 일어난 전쟁으로 도나우강과 크림반도, 캄차카 반도에까지 이른 대규모 전쟁이었다. 이 전쟁은 러시아의 패배로 끝났는데 대량살상형 근대전쟁의 시작으로 일컬어진다.

   
▲ 1854년 발발한 크림전쟁(Crimean War)은 전장에서 죽는 사람보다 병원에서 죽는 사람이 몇 배나 더 많은 참극이었다. ⓒ 위키백과

전쟁이 시작되면서 <더 타임스> 기자가 야전병원에 입원해있는 부상병들의 참혹한 실태를 취재해 보도했다. 영국의 여론이 들끓기 시작했고, 나이팅게일도 이 기사를 보고 종군을 생각하던 참에 시드니 하버드 전쟁장관이 나이팅게일에게 간호부대를 이끌고 종군해줄 것을 정식으로 요청했다. 나이팅게일은 24명 수녀와 14명 직업간호사 등 38명을 이끌고 후방기지에 있는 야전병원에 도착했다.

병원의 상태는 그야말로 참혹하였다. 위생이 엉망이었고 병상이 변소나 시궁창 옆에 놓여있기도 했으며, 청소는 전혀 안 돼 있었다. 전장에서 죽는 사람보다 병원에서 죽는 사람이 몇 배나 더 많은 실정이었다. 입원은 곧 죽음이라는 공포가 병사들 사이에 퍼졌다. 그런데도 이때는 세균에 관한 지식이 없어 부상병들이 병원에서 세균에 감염돼 죽는다는 사실을 몰랐다. 원인 모르는 죽음은 더 공포스러운 법이다.

사망자 병상 환경을 통계로 정리해 원인 규명

나이팅게일은 사망자에 관한 기록을 상세히 수집해 정리했다. 사망자의 병상이 있던 위치, 병상의 주위 환경, 사망자에게 제공되는 음료수의 수원 등을 꼼꼼히 정리해 이를 매우 정교한 통계표로 정리했다. 이를 통해 나이팅게일은 화장실, 시궁창 근처 등 위생 상태가 불량한 곳에 병상이 있거나 오염된 물을 마신 부상병들의 사망률이 훨씬 높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사망 원인이 뭔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위생 상태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확신을 가졌다.

나이팅게일은 군 지휘부의 반대와 무관심 속에서도 변소나 시궁창 청소, 오염원과 병상의 격리 등에 힘을 기울였고, 부상병에게 제공되는 음료수와 음식물도 위생에 신경을 썼다. 그 결과 부상병 사망률은 현저히 낮아졌다. 한때 45%에 이르던 부상자 사망률이 5%로 낮아졌다. 이 때 나이팅게일이 작성한 통계표는 아직도 남아있는데, 지금 시각으로도 매우 훌륭한 통계표로 평가되고 있다. 유럽에서도 아직 통계학의 틀이 잡히기 전이었는데, 나이팅게일은 독창적인 아이디어로 통계표를 만들고 그것을 분석해 문제의 해답을 찾아낸 것이다.

크림전쟁에서 쌓은 나이팅게일의 활약을 보고 사람들은 그녀를 ‘크림의 천사’라고 불렀다. 어떤 이들은 ‘등불을 든 귀부인’, ‘빛의 귀부인’이라 부르기도 했다. 간호사를 ‘백의의 천사’라고 부르게 된 것은 나이팅게일이 야전병원의 위생을 위해 간호사들에게 흰 옷을 입도록 한 데서 비롯됐다. 그렇지만 정작 나이팅게일 본인은 “천사란 아름다운 꽃을 뿌리고 다니는 사람이 아니라, 고뇌하는 사람을 위해 싸우는 사람”이라며 자신을 천사라고 찬양하는 여론을 그다지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고 한다. 이 ‘밤꾀꼬리’(나이팅게일)은 노래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마음도 아름다웠다.

증거를 토대로 하는 정책 수립

전쟁이 끝난 뒤 나이팅게일은 국민 영웅이 됐지만, 사람들이 자신을 치켜세우는 것을 그다지 반기지 않았고, 스미스(Smith)란 가명을 사용해 사람들 모르게 조용히 귀국했다. 이후 나이팅게일은 전쟁 중 야전병원에서 수집한 여러 자료를 활용해 수많은 통계를 작성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보건제도 개혁을 강력히 주장했다.

   
▲ 나이팅게일(Florence Nightingale, 1820-1910)은 전쟁 중 야전병원에서 수집한 여러 자료를 활용해 수많은 통계를 작성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보건제도 개혁을 강력히 주장했다. ⓒ 위키백과

이 때문에 나이팅게일은 영국에서 간호사보다 통계학 선구자로서 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나이팅게일 보고서는 영국의 보건제도뿐 아니라 전체 육군의 조직 개혁으로 연결됐다. 21세기 들어 OECD 국가 등 선진국들은 국가정책 수립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국가정책 수립에서 증거를 토대로 할 것, 즉 ‘증거 기반 정책 수립’(evidence based policy making)을 제시하고 이를 실천하고 있다. 나이팅게일은 실로 ‘증거 기반 정책 수립’의 선구자라 할 수 있다. 이런 공로로 나이팅게일은 영국왕립통계학회의 최초 여성회원으로 선출됐다. 이후 미국 통계학회 명예회원으로도 선출됐다.

나이팅게일의 업적은 높이 평가받아야 하지만, 영국 정부가 정치적 목적을 위해 나이팅게일을 영웅으로 치켜세웠기에 그의 명성은 국제적으로도 높아졌다. 어떤 이들은 나이팅게일을 영국의 ‘광고탑’이라고 했다. 나이팅게일 본인은 이를 그다지 반기지 않았으며, 유명인으로서 떠받들어 지는 것을 싫어했다. 자원봉사자들이 봉사단체를 만들어 봉사활동을 하는 것에도 반대했다. 그녀는 오직 희생과 헌신에 의한 봉사가 진정된 봉사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전통은 테레사 수녀와도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영국이 ‘불모의 땅’ 캐나다를 선택한 이유

나이팅게일이 스스로 통계를 만들어 이를 토대로 합리적인 결정을 이끌어 냈다면 미국 정치가 벤자민 프랭클린은 기존 통계와 경제적 식견을 통해 문제를 종합적으로 분석해 적절한 해답을 제시했다. 프랭클린은 미국 독립영웅의 한 사람이면서 과학자, 저술가로서 많은 활약을 했다. 프랭클린은 펜실베니아 주의원으로 활동하다가 식민지 대표의 한 사람으로 영국 의회에 파견돼 15년 동안 신대륙의 이익을 위해 활약했다.

중부 유럽의 패권 장악을 둘러싸고 벌어진 7년전쟁(1756~1763)은 해외 식민지 쟁탈전과 겹치면서 주무대인 프로이센 지방뿐 아니라 유럽은 물론 인도, 아프리카, 카리브제도, 남아메리카까지 확대된 대규모 전쟁이었다. 여러 국가의 이해가 복잡하게 얽혀 이합집산했지만, 주인공은 영국과 프랑스였다. 영국이 7년전쟁에 승리하면서 영국과 프랑스는 식민지 재편 교섭에 들어갔는데 칼자루는 승전국인 영국이 쥐고 있었다. 영국과 프랑스의 식민지 재배분 도마에 오른 지역은 캐나다와 과들루프(Guadeloupe)였다. 과들루프는 카리브해의 서인도 제도에 속한 섬으로 면적은 1,600㎢로 한반도의 1/100에도 못 미치는 작은 섬이다. 영국은 캐나다와 과들루프, 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권리를 갖게 됐다.

지금 사람들에게 “캐나다를 가질래, 과들루프를 가질래”라고 묻는다면 아마 정신 나간 사람 취급을 받을 것이다. 한반도 땅의 50배가 넘는 캐나다와 1/100도 안 되는 과들루프의 가치를 비교한다는 자체가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당시는 달랐다. 과들루프는 온갖 산물이 수확되는 풍요로운 땅이었고, 캐나다는 눈과 얼음으로 덮인 불모의 땅이었기 때문이다. 압도적으로 많은 영국인들이 과들루프 차지를 지지했고, 정치가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벤자민 프랭클린의 선견지명

   
▲ 미국 정치가 벤저민 프랭클린은 통계에 근거해 앞으로 영국인의 압도적 다수가 대서양의 이쪽(아메리카 대륙)에서 살게 되는 시기가 반드시 온다고 예견했다. ⓒ 위키백과

프랭클린은 달랐다. 그는 뒤에 ‘캐나다 팸플릿’으로 알려진 <식민지에 관한 영국의 이익과 캐나다 및 과들루프>라는 보고서를 출판했는데, 그는 이 보고서에서 영국은 캐나다를 선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근거를 프랭클린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아메리카와 같이 경제성장이 방해받지 않는 상태에서는 인구는 20~25년마다 2배로 늘어난다. 이러한 현상은 세계의 인구, 출생, 사망, 결혼 등에 관한 종합적인 통계에 의해 충분히 뒷받침된다. 인구가 이렇게 늘어난다면 더 많은 땅이 필요하다. 그는 앞으로 영국인의 압도적 다수가 대서양의 이쪽(아메리카 대륙)에서 살게 되는 시기가 반드시 온다고 예견했다.

사람이 살 수 있는 땅이 제한되어 있는 상태에서 인구의 자연증가가 이루어지면 인구밀도는 급격히 늘어난다. 이는 토지가격 상승과 임금하락으로 연결된다. 이러한 상태에서 아메리카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1차산업, 즉 농업이나 목축업보다는 생산성이 높은 제조업으로 방향을 돌리지 않을 수 없고, 그럴 경우 아메리카인들은 소비자가 되기보다는 오히려 생산자가 되어 영국으로부터 떨어져 나갈 것이다. 즉 아메리카 대륙은 영국의 시장이 아니라 영국의 경쟁자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캐나다를 병합하는 것이 영국에게 명백히 유리하다고 주장했다.

영국이 과들루프 대신 캐나다를 선택한 것이 전적으로 프랭클린의 주장에 따른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영국이 그런 선택을 한 데는 프랭클린의 과학적 분석이 큰 영향을 끼친 것은 틀림없는 사실로 역사가들은 받아들인다.

* 나이팅게일의 일화는 Bernard Cohen의 <The Triumph of Numbers: How Counting Shaped Modern Life>(2005)과 일본 총무성 통계국 홈페이지, Wikipedia를 참고했으며, 프랭클린의 일화 역시 Bernard Cohen의 저서를 참고했다.


민주주의는 건전한 공론장 없이는 성립되지 않는다. 공론장이 건전해지려면 객관적 현실 인식을 공유해야 하며 그 바탕이 되는 게 통계다. 통계가 흔들리면 정책도 여론도 왜곡될 수밖에 없다. 가짜뉴스도 통계 왜곡에서 출발한다. 언론인은 통계 해석을 잘못하면 ‘사회의 공적’이 될 수 있지만 잘하면 ‘해석특종’을 할 수 있다. 통계전문가인 이재형 박사가 통계에 얽힌 재미있는 얘기들을 풀어낸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일하는 그는 <국가통계시스템발전방안> <한국의 산업조직과 시장구조> 등 많은 연구와 저술을 해왔고 통계청 통계개발원장을 역임했다. [편집자]

편집 : 임지윤 기자

[임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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