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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 있는 가난뱅이’와 ‘소득 없는 부자’
[이재형의 통계이야기] ⑬
2019년 03월 04일 (월) 21:28:14 이재형 박사 jhlee01@kdi.re.kr
   
▲ 이재형 박사

지난번에는 가계동향조사 통계를 중심으로 소득불평등 문제를 다뤄보았다. 내친김에 불평등과 통계문제에 관해 좀 더 알아보자. 소득불균형 문제는 내 전문분야가 아니어서 논의를 이어나가기가 부담스럽지만, 아는 범위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자 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경제적 불평등을 이야기할 때 금방 연결되는 것이 소득불평등이다. 그러면 소득불평등이 반드시 경제적 불평등으로 연결되는가? 경제적 불평등은 소득불평등 외에도 부의 불평등, 기회의 불평등 같은 다양한 측면의 불평등 문제와 연결되어있다. 이런 요소들은 계량화가 쉽지 않아 자연스레 소득불평등에 초점이 맞춰진다.

맞벌이로 열심히 버는데도 생활비 걱정

우리나라에서는 지금 노인 빈곤 문제가 큰 사회‧경제적 문제로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노인 빈곤 문제의 반대편에는 세대간 부의 불균형, 즉 우리나라의 부는 대부분 노인들이 소유하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강남의 고가 아파트나 업무용 빌딩의 소유주는 노인들이 많다. 이웃 일본에서도 젊은이들은 가난하고 돈은 모두 노인들이 가지고 있는데, 노인들이 돈을 잘 쓰지 않다보니 경제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나온다. ‘가난한 젊은이와 부자 노인’은 선진국들의 공통 현상이다.

우리가 주위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사례를 가상해보자. 서울에 사는 김영식 씨는 집안 형편이 어려워 대학 진학 후 4년 내내 알바를 하면서 학비와 용돈을 스스로 해결했다. 열심히 취직 준비를 한 덕택에 졸업 후 A은행에 취업할 수 있었다. 지방 도시에 사는 이은경 씨는 서울로 유학하고 싶었지만, 가정 형편상 지방대학을 나와 역시 A은행에 취업했다. 두 사람은 직장에서 만나 서로 호감을 가졌고, 3년 정도 사귄 뒤 결혼했다. 두 사람 모두 무일푼으로 시작하였기에 집을 구하기도 쉽지 않았다. 그동안 저축한 돈과 은행에서 대출받은 돈으로 서울 변두리의 작은 아파트를 반전세로 얻어 신혼 살림을 시작하였다. 곧 아기가 태어날 예정인데, 달리 아기를 봐줄 사람도 없어 아이를 돌볼 사람을 구해야 할지, 그러면 돈은 얼마나 들지 걱정이 태산이다.

은퇴했지만 자금 사정은 ‘넉넉’

서울 강남에 사는 박병호 씨는 젊을 때 고생했지만, 중년 이후 운영하던 식당 사업이 잘되었고, 그다지 부동산 투기를 한 것도 아닌데 살던 아파트 값이 급등하는 바람에 적지 않은 돈을 모았다. 강남에 몇 십억대 아파트도 두 채 가지고 있으며, 수십억원 상당의 주식과 예금을 갖고 있다. 지금은 사업에서 은퇴해 여유 있는 노년생활을 보내고 있다. 자식들이 결혼할 때도 아파트를 한 채씩 사주었으며, 자식들도 모두 잘되어 좋은 직장에 다니고 있다. 은퇴한 지금 따로 수입은 없지만, 가진 돈으로 생활하기에는 여유가 있다. 국민연금에는 가입하지 않았고, 자식들이 생활비와 용돈을 보내주겠다는 것도 거절했다. 주위 친구들 가운데는 편법으로 기초연금이나 노령연금을 받는 사람들도 있지만, 평생 곧게 살아온 박병호 씨는 그런 짓도 하지 않았다.

그러면 김영식 씨 가족과 박병호 씨 가족은 우리나라의 어느 정도의 소득계층에 속할까? 아마 김영식 씨는 상위 10%, 박병호 씨는 하위 10%에 속할 것이다. 2018년 4/4분기 가계동향조사 통계에 따르면 상위 10% 계층의 경계선은 월 820만원, 상위 20% 계층의 경계선은 월 650만원으로 나온다. 김영식 씨 부부가 이 말을 들으면 펄쩍 뛸 것이다. “아니 변변한 집 한 채 없이 이렇게 살기 어려운데 우리가 무슨 소득 상위 10%인가? 우리는 정말 가난하다.” 이렇게 항변할 것이다. 반대로 박병호 씨는 “내 주위에서 나보다 여유있게 사는 사람을 찾기 어려운데 내가 하위 10%라고?” 이렇게 반문할 것이다. 김영식 씨는 소득은 높지만 재산이 없는 경우이고, 박병호 씨는 소득은 없지만 재산이 많은 경우다.

청소년은 소득보다 소비, 중장년은 소비보다 소득 많아

이런 점을 고려한다면 경제적 불평등을 평가할 때는 소득과 함께 재산, 즉 부(富)도 감안해야 한다. 경제학자들은 물론 정책당국자들도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러면서도 왜 소득불평등만을 문제 삼는가? 앞서도 말했지만 부의 불평등은 소득불평등보다 조사가 매우 어렵다는 현실적 문제가 있다. 그리고 반드시 그런 건 아니지만 소득불평등과 부의 불평등 간에는 어느 정도 비례관계가 성립한다. 대개 소득이 높을수록 재산도 많은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 장년기와 노년기에 걸쳐 소득과 부의 변화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에 따라 경제적 불평등 문제가 다르게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 pixabay

여기에 세대간 격차, 즉 연령이라는 요인이 더해지면 문제가 달라질 수 있다. 사람의 일생에서 유년기, 청소년기에는 소득보다 소비가 크고, 중·장년기에 들어서면서 소비보다 소득이 커진다. 노년기가 되면 다시 소비보다 소득이 줄어든다. 그러나 노년기에는 소득이 줄어든 대신 장년기와 중년기에 축적해놓은 재산, 즉 부를 보유하고 있다. 장년기와 노년기에 걸쳐 소득과 부의 변화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에 따라 경제적 불평등 문제가 다르게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노인은 다시 소득 적어져

다시 가계동향조사 통계로 돌아가 보자. 2018년 4/4분기에서 제1분위 소득계층(소득최하층)의 가구주 평균연령은 63.4세, 가구원수는 2.4명 정도로 나온다. 이어 2분위는 53.8세에 2.87명, 3분위는 49.6세에 3.26명, 4분위는 48.8세에 3.42명, 최상위 소득계층인 5분위는 50.3세에 3.46명으로 나타난다. 즉 제1분위 소득계층의 평균연령이 다른 계층보다 압도적으로 높게 나타난다. 이는 지금 우리나라의 소득불평등은 나이라는 요소에 결정적 영향을 받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럼 이 통계 결과는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노인 빈곤 문제와 바로 연결될 수 있는가? 그렇다고 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다고 할 수도 있다. 앞에서 말했듯이 노인 빈곤을 말하기 위해서는 소득과 함께 재산, 즉 부의 분포 문제를 동시에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노인 빈곤이라고 하면 독거노인이나 쪽방촌 노인들을 떠올린다. 그러나 이것은 선입관이다. 나이가 들면 자연히 경제활동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고, 그러면 소득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즉 나이가 들면 소득이 줄어드는 것은 당연하며, 잘살고 못 살고에 관계없이 대부분 노인은 소득이 적다. 다만 줄어든 소득을 대체할 재산이 어느 정도인가에 따라 노인 빈곤 문제가 다른 양상으로 나타날 것이다.

개인적인 경험이긴 하지만, 주위 친구들은 대개 은퇴하여 경제 일선에서 물러났다. 그러다보니 대부분 근로소득이나 사업소득은 거의 0에 가까울 것이다. 재산소득이나 이전소득(연금, 자식들이 주는 생활비 등) 등이 소득의 대부분을 차지할 텐데, 실제로 통계를 보면 이 부분은 크지 않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친구들 소득은 매우 낮을 수밖에 없는데, 그럼에도 생활고로 어려움을 겪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재산이 소득을 대체하기 때문이다.

소득불평등 문제는 입체적으로 접근해야

소득불평등이나 부의 불평등, 나아가서는 경제적 불평등은 여러 가지 사회‧경제적 요인이 겹쳐서 나타나는 문제이며, 통계의 이면에는 반드시 고려해야 할 숨어있는 요소가 많다. 이를 지나치게 단순화해 문제에 접근하거나 선입관에 사로잡히면 현실과 동떨어진 진단과 처방을 내놓을 수도 있다. 소득불평등 문제는 좀 더 입체적이고 다양한 측면에서 접근할 필요성이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민주주의는 건전한 공론장 없이는 성립되지 않는다. 공론장이 건전해지려면 객관적 현실 인식을 공유해야 하며 그 바탕이 되는 게 통계다. 통계가 흔들리면 정책도 여론도 왜곡될 수밖에 없다. 가짜뉴스도 통계 왜곡에서 출발한다. 언론인은 통계 해석을 잘못하면 ‘사회의 공적’이 될 수 있지만 잘하면 ‘해석특종’을 할 수 있다. 통계전문가인 이재형 박사가 통계에 얽힌 재미있는 얘기들을 풀어낸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일하는 그는 <국가통계시스템발전방안> <한국의 산업조직과 시장구조> 등 많은 연구와 저술을 해왔고 통계청 통계개발원장을 역임했다. [편집자]

편집 : 박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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