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발언대]

▲ 조승진 기자

“문재인과 더불어민주당 정부에서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약 2년 전 취임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한 말이다. 선거 과정에서 그가 거듭 강조했던 이 말은 전 정권에서 부정의한 일을 겪어온 촛불 시민에게 한 약속이었다. 박근혜 정부는 ‘정유라 이화여대 부정입학’과 ‘최순실 국정농단’ 등에서 보듯, ‘기회’도 ‘과정’도 ‘결과’도 전혀 정의롭지 않은 사회를 만들었다. 특히 취업난 한 복판에 있는 청년들은 ‘헬조선’이라는 신조어에 공감할 만큼 고통을 겪었고 ‘수저계급론’을 만들어 낼 만큼 자조적인 심정이 됐다. 청년들은 그래서 문재인 대통령의 약속에 더욱 기대를 걸었다.

‘기회의 평등’과 ‘과정의 공정’은 어디에

검찰이 김성태 자유한국당 의원 딸의 케이티(KT) 특혜채용 의혹을 수사 중이다. 김 의원은 부인하고 있지만 ‘김 의원에게서 이력서를 직접 받았다’는 당시 사장의 증언 등은 근거 없는 의혹이 아님을 보여준다. 채용비리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해 온 KT 새노조는 ‘300명 공채에 35명이 청탁’이라는 구체적 증언까지 나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이 의혹을 제기한 목록에는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아들도 들어있다.

▲ KT 채용비리 사건에 대한 의혹을 JTBC가 지난 4일 보도하고 있다.  © JTBC 뉴스룸

이에 앞서 여러 대형은행과 공기업 등이 ‘권력층의 청탁으로’, 또는 ‘명문대 출신을 골라 뽑기 위해’, 또는 ‘남성 지원자를 많이 뽑기 위해’ 공채 기준과 절차를 왜곡한 사건이 줄줄이 폭로됐다. 이런 사건들은 대부분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에 일어난 비리이긴 하지만 현 시점에서 상황이 근본적으로 달라졌다고 볼 근거도 없다. 평범한 청년들은 이런 뉴스를 볼 때마다 말 할 수 없는 박탈감을 느낀다.

취업준비 중인 한 친구는 면접관들이 부모 직업과 가족관계를 집요하게 물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분통을 터트렸다. 그 회사는 노조가 채용비리 의혹을 제기한 곳 중 하나다. 그는 “압박 면접이라는 구실로 자행된 질문이 사실상 이런 비리에 이용된 것 아니냐는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고용 한파’라고 할 만큼 얼어붙은 취업 시장에서, 안간힘을 써도 탈락을 거듭하는 상당수 취업준비생들은 ‘더 노력하는 게 과연 의미 있는 일인가’ 하는 혼란마저 느낀다.

어떤 이들은 기업이 채용을 어떤 방식으로 하든, 그것은 기업의 자유가 아니냐고 말한다. ‘회사가 자기네 쓸 사람을 어떻게 뽑든 뭐가 문제냐’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법은 공공기관은 물론 일정 규모 이상 사기업에 대해서도 청탁 행위를 금지하고 채용 절차의 공정성을 요구하고 있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과 ‘채용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이 그것이다.

채용비리 만연한 사회, 성장잠재력도 하락 

법을 만들어 ‘공정 채용’을 의무화한 것은 취업 과정에서 정당한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경제사회적으로 엄청난 비용을 치르게 된다는 공감대가 있기 때문이다. 실력을 갖춘 인재가 가야 할 자리를 권력층이 ‘꽂아 준’ 부적격자가 차지한다면 그 조직의 효율성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 사회 전반의 인적자원 활용도와 성장잠재력도 하락할 것이다. 많은 구성원이 ‘정당한 실력과 노력이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연줄’을 찾아 ‘각자도생’하는 풍토가 심해질 것이다. 사회 정의에 대한 믿음은 사라지고, 공적 제도와 정보 등을 믿지 못해 검증해야 하는 ‘불신 비용’이 커질 수밖에 없다.

낮은 사회적 신뢰는 구성원의 행복을 해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올해 발표한 ‘세계행복보고서’에 따르면 부정부패 정도, 사회적 자유 등이 사회구성원의 행복감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채용비리가 계속된다면 우리나라 청년들은 집단 우울증 상담을 받아야 할지도 모른다.

최근 문제가 된 채용비리는 과거 정부에서 일어난 것이지만 수술 책임은 문재인 정부에 있다. 지금부터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운 사회’가 구현될 수도 있고 구호로 끝날 수도 있다. KT 등 모든 채용비리 의혹에 대해 검·경이 철저히 진상을 밝혀내고 사법부가 엄벌해야 한다. 또 청와대부터 ‘낙하산 인사’를 뿌리 뽑는 등 제도와 관행을 과감하게 개혁해야 한다. 청년들에게 취업은 인생이 걸린 문제다. 부정의한 사회가 계속될 때 청년들이 얌전히 촛불만 들지 의문이다.


 편집 : 신수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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