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발언대]

▲ 임지윤 기자

먼 나라, 이웃나라. 물리적 거리는 가깝지만 심리적 거리는 너무나도 먼 일본과 우리나라를 적절히 표현하는 말이다. 제국주의 강점기에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를 전쟁터 총알받이와 강제징용자, 군 위안부 피해자로 만들고도 제대로 사죄하지 않는 일본을 우리는 용서할 수 없다. 군국주의를 상징하는 욱일승천기를 시도 때도 없이 내걸고, 전쟁범죄자를 기리는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며 ‘독도는 일본 땅’이라 우기는 정치인들이 있기에 더더욱 용서가 안 된다.

위안부 등 부인한 한일협정 ‘퉁치기’ 안 돼 

아베 정부는 말한다. 일본은 이미 사과와 배상을 했다고. 그들이 말하는 사과와 배상은 1965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국민 다수의 반대를 무릅쓰고 일본과 국교를 회복하면서 체결한 ‘한일협정’이다. 당시 우리나라는 일본으로부터 무상 3억 달러, 유상 2억 달러, 민간 상업차관 3억 달러 등 총 8억 달러를 받았다. 하지만 이는 36년간 불법 침탈을 인정한 ‘배상금’이 아닌 ‘경제협력자금’ 명목이었다. 당시 일본은 강제징용과 위안부 강제동원 등을 인정하지도 않았는데, ‘그 때 돈 준 것으로 다 퉁치자’니 말이 되지 않는다. 

일본은 정권의 성격이 비교적 민주적이었던 1993년과 1995년 ‘고노 담화’와 ‘무라야마 담화’를 통해 위안부 강제동원과 식민 지배에 대해 반성과 사죄의 뜻을 잠깐 표한 일이 있다. 그러나 아베 총리는 “정부의 통일된 견해가 아니다”며 2014년 고노 담화를 무력화하는 검증보고서를 냈고, 무라야마 담화도 수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얼마 전 우리 대법원이 일본 신일철주금(구 신일본제철)의 조선인 노동자 강제징용에 배상 판결을 내리자 일본 정부는 ‘자발적으로 모집에 응한 노동자’라 강변하며 기업 측의 배상을 막고 있다. 일본은 위안부 피해자인 고 김복동 할머니 영결식이 서울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렸을 때도 애도 표명조차 없이 대사관의 안전 문제만 거론했다.

▲ 일본은 위안부 피해자인 고 김복동 할머니 영결식이 서울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렸을 때도 애도 표명조차 없이 대사관의 안전 문제만 거론했다. ⓒ KBS

제대로 된 ‘투 트랙’으로 새로운 시대 열어야 

문재인 정부는 한일관계의 새 시대를 열기위해 ‘투 트랙(two track)’ 전략을 제시했다. 강제징용과 위안부 등 과거사에 대해서는 끈질기게 사과와 반성을 요구하되, 경제‧문화‧스포츠 등 국제 교류는 별도로 적극 추진해 ‘이웃사촌’ 관계를 회복하겠다는 것이다. 과거 이명박, 박근혜 정부도 명목상 투 트랙을 추구했지만 실제론 우왕좌왕하다 끝났다.

과거사를 반성하지 않는 일본 기득권층을 생각하면 못마땅하지만, 경제와 문화 등에서 일본이 우리와 뗄 수 없을 만큼 깊은 협력관계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투 트랙은 현실적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부자 나라’ 일본은 우리 상품과 서비스의 큰 시장이기도 하다. 남북 관계 개선에 일본의 새로운 역할을 주문하면서 과거사 해결도, 미래지향의 관계 개선도 더 적극적으로 하겠다는 정부의 약속을 믿어보고 싶다. 일본에서도 양심적 학자와 시민단체들이 과거사 반성을 촉구하고 있으니 우리 정부와 학계, 시민단체가 손바닥을 마주치면 더 좋을 것이다.

개인의 친구 관계에서도 한쪽이 잘못했다고 바로 절교하지는 않는다. 일 있으면 만나면서 교류의 끈을 놓지 않아야 언젠가 사과도 받는다. 우리가 인내심을 갖고 투 트랙을 가다보면 2차 세계대전까지 ‘앙숙’과 ‘철천지원수’를 오갔던 독일과 프랑스가 유럽연합(EU) 안에서 하나가 된 것처럼 우리와 일본도 건설적 동반자가 될 날이 오지 않을까. 그 과정에서 꼭 보고 싶은 장면이 하나 있다. 폴란드 유대인 희생자 추도비 앞에 무릎을 꿇었던 빌리 브란트 서독 수상처럼, 일본 총리가 강제징용과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진심으로 사죄하는 모습이다.


편집 : 윤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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