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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서울의 봄’을 기대하며
[단비발언대]
2019년 03월 27일 (수) 19:04:35 남지현 기자 njihyun0116@gmail.com
   
▲ 남지현 기자

‘우리는 꽃이 아니라 불꽃이다.’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페미니즘에 눈뜬 여성들이 집회와 SNS를 통해 외치던 구호는 2018년 상반기 최고 흥행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의병 여주인공 고애신의 명대사로 되살아났다. “나도 꽃으로 살고 있소. 다만 나는 불꽃이요!” 여성도 남성과 다를 바 없는 사람이라는 페미니즘의 핵심을 함축한 대사가 대중문화에 녹아들 만큼 지난해 우리 사회에서 페미니즘은 급속도로 확산됐다.

성평등한 일상의 민주주의를 만들기 위한 여성들의 투쟁이 들불처럼 번진 덕분이다. 미투 운동은 일상에 만연하던 성폭력을 폭로했고, 불법 촬영, 카톡방 성희롱, 탈코르셋 운동처럼 잘못된 일상을 깨뜨리기 위한 여성들의 투쟁은 우리 사회에 크고 작은 변화를 불러왔다. 별것 아니던 말이 ‘별것’이 되고, 당연하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게 됐다. 군부독재에 저항하던 민주화 운동이 ‘서울의 봄’을 이끌었다면, 일상 속 성차별과 폭력에 저항하는 여성들의 투쟁은 ‘두 번째 서울의 봄’을 만들고 있다.

일상에서 체감하는 변화가 반감되는 건 이런 변화가 불편한 이들의 반발이 거세진 탓이다. 수전 팔루디는 1980년대 미국 사회에서 일어난 페미니즘에 대한 사회적 반발을 분석하며 여성의 독립성에 적개심을 갖는 여러 급성 증상들을 ‘백래시’(backlash)라고 개념화했다. 서지현 검사와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성폭력을 폭로한 김지은 씨에 대한 2차가해를 비롯해 페미니즘에 대한 원색적 비방이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퍼지고 있다. 변화가 주는 설렘과 감동은 수시로 분노와 절망 사이를 오간다.

그래도 우리 사회는 분명 변하고 있다. 미세먼지가 봄을 멈칫거리게 하는 잠깐 동안의 저항이듯, 백래시도 성평등한 사회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시적 역행일 뿐이다. 역사는 일직선이 아니라 나선형으로 발전한다고 했다. 진보는 퇴행과 맞물려 멈칫거리는 듯하지만 한 바퀴, 두 바퀴를 돌아 위로 올라간다. 변화와 저항이 되풀이되면서 역사는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 지난해 혜화역에서 열린 불법촬영 규탄 시위에서 한 참여자가 피켓을 들고있는 모습. © 전보라

1979년 10.26사태로 박정희가 죽고 대학가를 중심으로 일어난 민주화운동도 곧장 직선제를 쟁취하지 못했다. 전두환이 집권하며 신군부가 진압에 나서는 반동으로 민주화는 일시 후퇴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을 계기로 민주 항쟁은 한 단계 위로 올라서면서 군사독재체제를 무너뜨리고 우리 사회를 민주 체제로 바꿔놓았다. 프랑스혁명의 결과로 수립된 공화정도 나폴레옹에 의해 제정으로 퇴행하지 않았던가. 역사는 반드시 진보한다.

진보에 관한 ‘기억’은 퇴행을 짓누를 수 있는 힘을 갖는다. 계절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듯이 역사의 흐름도 막을 수 없다. 팔루디는 백래시를 ‘기반암처럼 단단하게 자리잡은 가부장제 사회의 여성혐오’를 지켜주는 울타리가 아니라 공고한 울타리를 허물어 버릴 쐐기가 될 거라고 보았다. 단단해 보이는 여성혐오에 균열을 내기 위한 여성들의 노력이 백래시를 불러일으키는데, 이는 백래시가 페미니즘이 극복할 수 없는 장벽이 아니라 페미니즘의 힘을 증명하는 것이란 뜻이다. 1980년대 미국 사회를 관찰해 팔루디가 끄집어낸 통찰은 지금 우리 사회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해방감과 연대가 주는 용기를 경험한 여성들은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이제 일상의 변화를 만들어가는 여성의 투쟁에 사회가 응답할 때다. 오는 4월로 예정된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심판이 첫 응답이 되기를 기대한다.


편집 : 박지영 기자

[남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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