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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클로저’와 방직기, 그리고 공유경제
[단비발언대]
2019년 03월 03일 (일) 22:39:11 조현아 PD joninja@naver.com
   
▲ 조현아 PD

15세기 중반 이후 양모 산업이 돈벌이가 되자 영국 지주들은 농민들이 함께 농사 짓던 공유지와 숲 등에 울타리를 치고 양을 방목했다. ‘인클로저(울타리치기)’로 불린 이 폭력적, 강압적 토지사유화로 수많은 농민들이 삶의 터전을 뺏기고 임금노동자가 됐다. 이런 과정에서 자본주의의 토대라 할 수 있는 사유재산권이 확립되고 새로운 산업에 투입될 노동자층이 형성됐다.

18세기에 본격 등장한 방적기(실 잣는 기계)와 방직기(천 짜는 기계)는 면직물의 대량생산을 가능하게 하면서 수많은 수공업 종사자들을 도탄에 빠트렸다. 그러나 이 기계들과 함께 증기기관, 교통, 통신의 혁신이 촉발되면서 영국은 산업혁명을 이끄는 경제대국이 됐다.

혁신과 성장에 수반되는 누군가의 희생

   
▲ 18C 생계를 잃은 농민들은 ‘양이 사람 죽인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러나 일자리를 잃은 농민들은 도시로 올라가 산업 혁명을 일구는 동력이 되었고, 방직기는 그 자체로 ‘대량생산 대량소비’ 패러다임을 가능케 함으로서 혁신의 바탕이 되었다. ⓒ 다음 백과사전

경제사를 돌아보면 산업의 혁신과 전환이 일어나는 과정에는 언제나 희생이 수반됐다. 자본주의 발전과 함께 물질문명이 고도화하고 삶의 질도 나아졌지만, 바로 그 혁신 때문에 일자리를 잃고 삶이 파괴되는 사람이 나왔고 빈부격차도 심해졌다.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공유경제도 마찬가지다.

승차공유기업 우버와 숙박공유기업 에어비앤비가 각각 해당 분야 전통적 1위 기업의 시가총액을 훨씬 능가할 만큼 세계적으로 파란을 일으키고 있지만, 이들 서비스 때문에 ‘밥 그릇’을 위협받는 택시, 숙박업계 등의 비명도 요란하다. 그러나 영국의 산업혁명을 모든 나라가 따라가지 않을 수 없었듯, 혁신과 성장의 길을 포기할 수 없는 게 현실이기도 하다. 문제는 ‘어떻게 기존 산업 종사자의 희생을 최소화하면서 상생의 길을 찾을 것인가’이다.

공유경제란 자주 사용하지 않는 재화를 다른 사람과 함께 쓰는 협력적 소비(collaborative consumption)를 말한다. 소비자는 싼값에 편리한 대안을 선택할 수 있고 소유주(공급자)는 ‘놀리던 자원’을 활용해서 이익을 낼 기회를 얻는다. 이런 협력적 소비는 자원 절약과 환경보호, 교통 및 주차난 완화 등 사회문제 해결에도 도움이 된다. 국가적으로 보면 새로운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혁신을 촉발해 경제성장을 이끌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순기능이 있다. 기존 산업 종사자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포기하기 어려운, 시대적 흐름이기도 하다.

이런 서비스의 도전 앞에서 택시 업계는 ‘생존권’을 말하지만 공유경제를 막는 것으로 생존권을 해결할 수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 카풀이 본격화하지 않은 지금도 택시는 불합리한 사납금 제도 등으로 기사들이 과중한 노동 속에 기초 생계도 꾸리기 힘든 저소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조금이라도 더 벌기 위해 특정 시간대에 손님을 골라 태우면서 승차거부와 과속, 곡예운전 등으로 고객의 불만을 산다. 이런 본질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카풀 서비스를 막으면 택시 문제는 그대로 남고 산업 혁신의 발목만 잡을 뿐이다.

네거티브 규제 도입하고 상생 방안 찾아야

우리나라는 그동안 까다로운 규제 때문에 ‘공유경제의 무덤’으로 불렸다. 현행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때문에 우버는 제한적인 서비스만 남기고 2015년 사실상 철수했고, ‘럭시’ 등 자생적으로 출발한 승차공유 기업도 불법으로 묻혔다. 국내 여건이 좋지 않으니 현대기아차가 동남아 차량공유 업체 ‘그랩’에 3000여억원을 투자하는 등 기업들은 밖으로 나간다. 지금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법으로 명확히 금지된 항목 외에는 기본적으로 허용하는 ‘네거티브 규제’를 정착시켜 혁신이 일어날 수 있는 길을 터주는 것이다. 그러면서 기존 산업 종사자도 살아갈 수 있는 방안을 세심하게 마련해야 한다.

예를 들어 택시업계의 사납금 제도를 폐지하고 완전 월급제로 전환하는 것, 고령 개인택시 기사의 면허를 돌려받고 연금 형식으로 대금을 지급해 택시 수를 자연스럽게 줄이는 방안 등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최근 서울택시 기본요금이 인상되긴 했지만, 앞으로도 물가수준에 맞게 적절한 요금인상을 허용함으로써 일정한 서비스 품질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카풀 등 공유경제 기업이 큰 이윤을 창출할 경우 ‘이익공유제’를 통해 생태계 전반에 기여하도록 유도하는 전략도 필요하다. 이를테면 플랫폼 사용료 일부를 택시 업계에 주고 시설 개선, 기사 교육, 서비스 품질 개선 등으로 고급화를 추진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재일동포가 설립한 일본 MK 택시는 장애인 우선 승차, 심야출산·응급환자를 위한 구급 택시 등 소비자에게 도움이 되는 서비스를 개발함으로써 확실한 입지를 다졌다. 택시업계와 정보기술(IT)업계가 협업해서 시간대별 고객 수요를 분석하고 차량을 효율적으로 배치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좀 더 넓게는 실업보험, 직업훈련, 직장알선 등의 국가적 고용안전망을 대폭 확충해 노동시장 전체의 ‘유연안정성’이 커지도록 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택시, 카풀 업계가 참여한 사회적 대타협 기구가 ‘택시에 4차 산업 기술을 적용한다’는 첫 번째 합의를 도출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그러나 자가용 공유를 금지하고 택시만을 대상으로 하겠다는 구상이어서 당장의 갈등을 무마하기 위한 임시방편으로 보인다. ‘사회적 대타협’은 무엇보다 ‘이용자 편익’ 즉 사회 전체가 누릴 수 있는 효용을 중심에 두고 이뤄져야 한다. 한국에서도 우버, 에어비앤비 같은 세계적 혁신의 아이콘이 나오려면 ‘공유경제 허용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공유경제로 어떻게 상생할 것인가’가 핵심 질문이 되어야 한다.


편집 : 김태형 기자

[조현아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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