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연결’

▲ 이신의 PD

‘문풍지 우는 겨울밤이면 할머니는 이불 속에서 혼자말로 중얼거리시네 / 오늘 밤 장터의 거지들은 괜찮을랑가 뒷산에 노루토끼들은 굶어죽지 않을랑가 / 아 나는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낭송을 들으며 잠이 들곤 했었네.’

문재인 대통령이 페이스북에 올린 박노해 시인의 시다. 아들을 잃은 어머니가 국회를 찾았다. “저는 다 잃었습니다. 하지만 남은 자식들은 살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목소리는 아들의 남은 동료들에게 향했다. 그 걸음은 무거웠을 것이다. 아들과 남겨진 이들을 대변하는 위치가 두려웠을 것이다. 그럼에도 담담하게 국회로 향한 것은 그 걸음이 아들에게 전할 수 있는 최소한의 목소리였기 때문이리라.

한 사람의 죽음은 끝이 아니다. 남겨진 이들은 떠난 자와 다른 방식으로 대화를 이어간다. 윤창호법과 세월호특별법 역시 떠난 이들과 끊어지지 않았던 대화의 결과다. 떠난 이와 연결의 끈을 놓지 않는 것. 그리고 그들과 (그들이 될 수 있었던) 다른 이들을 위해 기한 없는 두려움에 뛰어드는 것은 떠난 이에게 바치는 남겨진 이들의 마지막 헌화일 것이다.

▲ 그들을 그곳으로 내몬 것은 다른 노동자들과의 연결망이었다. ⓒ pixabay

반대로 연결을 끊는 이들도 있었다. 426일간 ‘굴뚝 농성’을 벌였던 파인텍의 두 노동자. 투옥을 부끄럽게 여기는 사회에서 감옥보다 더욱 열악한 곳으로 들어갔던 이들이다. 역설적이게도 숨은 그들의 자취는 공장의 연기와 함께 더욱 진하게 퍼졌다. 어떤 이는 말했다. “그 시간 다른 곳에서 일한다면 모두에게 편한 일 아닌가?” ‘굴뚝 감옥’에 갇힌 이들은 말했다. “내가 이 상황을 이해하고 다른 일을 구하는 것은 부당을 정당화하고 똑같은 피해자들을 만드는 것”이라고. 그들은 세상과 연결을 끊은 채 45m 위 60cm 좁은 폭 감옥에서 버텼지만 그들을 그곳으로 내몬 것은 다른 노동자들과의 연결망이었다.

누군가를 위해 나아가고 누군가를 위해 떠나는 행위는 다르지만 닮았다. 목적은 사람이며 다른 사람을 나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다. 박노해의 그 겨울 할머니가 그러했듯 추운 크리스마스, 추위에 떠는 자들을 걱정하는 사람들. 그들은 가장 낮은 자리에서 가장 높은 곳에 나아가 그 누구도 돌보지 않은 이들을 기억해달라고 외쳤다.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통과되자 김용균 씨 어머니는 말했다. “너로 인해 동료들이 살 수 있었다고… 용균이한테 가서 말해줄래요.” 그 작은 목소리가 나에게까지 울리는 것은 이들 목소리에 우리가 연결돼 있기 때문이 아닐까?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 제13회 ‘봉샘의 피투성이 백일장’에서 우수작으로 뽑힌 이 글을 쓴 이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재학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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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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