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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 > 칼럼 > <제13회> 봉샘의 피투성이 백일장
     
일제 강점기와 우리의 강점기
[상상사전] ‘연결’
2019년 03월 27일 (수) 12:38:42 백지호 kkin4u0@pusan.ac.kr
   
▲ 백지호

일제강점기. 나에게는 아득한 시기다. 1910년 8월, 우리나라가 겪은 치욕부터 1945년 8월 광복까지. 누군가는 70여 년 전에 일어난 일이며 그동안 우리나라가 많이 발전했다고 한다. 국민이 ‘새벽종이 울렸네’로 시작하는 새마을 노래를 들으며 하루를 시작한 시절이 있었고, ‘한강의 기적’도 이뤄냈다.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이 됐으며, 이제는 세계 IT시장을 주도하는 선진국이다. 3·1운동이 100주년을 맞이한 오늘날, 일제강점기는 참 먼 과거로 생각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따금 내 주변에서 일제강점기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과거와 연결된 하나의 선처럼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 요즘 세상은 이를 ‘갑질’이라고 부른다. 직원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출발하는 비행기를 멈추고 무릎 꿇린 조현아, 프레젠테이션이 엉망이라며 사람에게 컵을 던진 조현민, 인간을 개조하겠다며 직원 얼굴을 가격한 양진호… 여론의 뭇매를 맞은 이들뿐만이 아니다. 알바를 하는 친구들과 대학원에 다니는 선배들의 경험담을 들으면, 우리는 ‘제국주의 강점기’보다 나은 게 없는 사회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갑질의 주체가 주로 돈 많은 사람으로 바뀌었을 뿐.

   
▲ 일제는 조선인을 미개하게 생각하고 계몽하려 했다. 그들이 택한 방법은 무자비한 폭력과 억압이었다. ⓒ google

제국주의는 다윈의 진화론과 스펜서의 사회진화론에 뿌리를 두고 있다. 다윈은 <종의 기원>에서 자연선택설을 주장했다. 환경에 잘 적응한 생명체가 마지막까지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이는 잘못 해석하면 약육강식의 논리가 될 수 있다. 일제는 조선인을 미개하게 생각하고 계몽하려 했다. 그들이 택한 방법은 무자비한 폭력과 억압이었다. 친일세력은 이에 동조하고 부역했다. 약자를 향한 폭력은 정당하고 은혜로운 것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정당한 폭력’은 오늘날까지 연결된다. 남보다 지위가 높거나 부유하기 때문에 폭력을 정당화한다. 억눌린 이들은 당연히 수긍해야 하며, 폭력에 감사함을 느껴야 한다. 이에 따라 수많은 ‘을’이 다치고 죽었다. 강자들은 더욱 강해졌으며 우리 사회는 약자가 강자에게 먹히는 게 당연한 사회가 됐다.

일제강점기 청산은 새롭게 정의돼야 한다. 이는 일본의 잔재를 없애는 데 그칠 일이 아니다. 우리 사회에 깊숙이 자리한 제국주의적 가치관을 허무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갑질’이라는 폭력에서 벗어나 자기 주체성을 존중받을 수 있어야 한다. 강한 자가 약자를 함부로 할 수 있다는 사고가 팽배해서는 안 된다. 알베르 카뮈는 ‘어제의 범죄를 벌하지 않는 것은 내일의 범죄에 희망을 주는 것과 똑같다’고 말했다. 우리는 어제의 폭력을 따지지 않고 넘겨온 게 많다.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갑질’은 일제강점기에서 기인한 것 같다. 멀게만 느껴지는 옛날이 오늘에 맞닿아 있음을 절감한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 제13회 ‘봉샘의 피투성이 백일장’에서 우수작으로 뽑힌 이 글을 쓴 이는 부산대학교 컴퓨터공학 재학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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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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