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광장’

▲ 최준혁 기자

‘광장은 대중의 밀실이며 밀실은 개인의 광장이다.’ 최인훈의 <광장> 서문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밀실과 광장은 같은 점이 있다. 우리는 밀실에 있을 때 자기 내면의 목소리를 듣게 되고 광장에 나왔을 때 내면에 갇혀있던 목소리를 쏟아낸다. 많은 사람들이 양심의 명령에 따라 광장으로 나와서 민주주의를 되찾았지만 도시의 광장은 금방 일상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내 마음 속에는 작은 광장이 늘 자리잡고 있다. 따스하게 남아있는 기억의 마당이다.

한낮의 더위도 한풀 가시고 주위가 어둑해질 무렵 여섯 살인 나도 시끌벅적한 소리에 끌려 마을회관 앞 마당으로 향했다.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 들자 나도 그들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 한 자리를 차지했다. 이윽고 기타 소리가 들리고 노래가 시작됐다. 그땐 몰랐지만 ‘개똥벌레’란 노래였다. ‘아무리 우겨 봐도 어쩔 수 없네~.’

그때는 어떻게 표현할지 몰라 그저 마음이 따뜻해지던 그런 기억으로 남아있는 장면. 꼬마의 눈에 들어온 것은 자유로워 보이는 대학생 형과 누나들, 동네 사람들과 술 그리고 사람들 웃음 소리였다. 조용하던 시골에 한번씩 찾아와 농사일을 거들고, 동네 아이들과 놀아주던 그들. 나중에 농촌봉사활동이란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기회가 되면 나도 저런 대학생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기쁨. 욕구가 충족되었을 때 흐뭇하고 흡족한 마음이나 느낌. 그때 나는 어렸지만 같이 함께 간다는 느낌을 처음 받아봤던 것 같다. 함께 노래하고 웃으면서 같은 마음을 갖고 있을 거라는 느낌. 나에게는 그런 욕구가 있었던 것 같다. 커가면서 같은 마음으로 함께한다는 것이 좀처럼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지만, 그래서 ‘같이’의 가치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가고 있는 요즘이다.

▲ 농기계와 외국인 노동자가 '농민'이 됐다. 양극화는 농촌의 모습을 바꿨다. ⓒ pixabay

그 대학생들은 무엇을 배우려고, 또는 베풀려고 먼 서울에서 내려왔을까? 농촌 일손 부족이라는 현실이 없었다면 내가 기억하고 있는 장면들은 다른 모습으로 남았을지 모른다. 통계청에 따르면 1993년에 농촌지역의 65살 이상 노인 인구비중이 15%였는데, 2015년에는 38.4%로 증가했다. 우리 농촌 사회는 급격히 노인 사회로 바뀌고 있다. 청년 대신 농기계가 보급됐고, 외국인 노동자가 주요 ‘농민’이 됐다. 농가소득은 도시근로자 가구소득의 64.4% 수준이다.

양극화는 농촌의 고령화를 더욱 부추긴다. 농촌에서는 부채를 갚기 급급하고, 도시에서는 부동산에 투기하며 풍족하게 살고 있다. 사람의 먹는 욕구를 가장 아래서 책임지는 농업이 부실하다면, 농촌마저 본래 역할보다 투기 활동의 터전이 된다면 누가 있어 시민의 건강을 챙길까?

<식량의 종말>을 쓴 폴 로버츠는 농업의 산업화로 곡물 생산량은 크게 증가했지만 질병 위험이 커지고 저임금 노동 시비가 일어나는 등 엄청난 '외부비용'을 치러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는 '저비용 대량생산'이란 산업경제의 바탕 이념에서 비롯되었다고 지적한다. 효율과 수익을 높이기 위해 품종을 단일화하고, 첨가물을 넣고, 대량으로 키우며, 세계 어디서든 비용이 낮은 곳에서 생산하다 보니 빚어진 결과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농가소득 양극화에 따른 문제들은 사회계층간 대립으로 이어질 수 있다. 무한한 욕구를 충족하려다 일상이 무너질 수 있다. 내 생에 기쁜 날로 기억된 마을회관 앞 작은 마당의 웃음소리는 다시는 듣지 못할 추억이 되고만 걸까? 밀실과 광장의 장점을 두루 갖춘 마당이 사라지고 있는 현실이 슬프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윤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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