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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비싼 '싼 집의 비극'
[상상사전] ‘값’
2019년 01월 12일 (토) 21:03:15 조현아 PD joninja@naver.com
   
▲ 조현아 PD

월세 50만원. 내 첫 자취집은 신촌 인근이었다. 대학가라서 빈 방이 많지 않았고, 겨우 구한 집은 쾌적하지 못했다. 집 앞과 옆에 모텔이 있었고 밤에는 어둑한 가로등 하나가 전부였다. 문을 열면 모든 게 한눈에 들어오는 좁은 방에 세간살이가 다 들어가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특히 답답한 건 창문이었다. 좁은 창문에 달린 쇠창살, 햇볕은 창문 크기만큼 잠시 들었다가 지나갔다. 집은 회색 골목 속 좁은 감옥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몇 개월이 지났을까, 나는 점점 집에 들어가기가 싫어졌다. 숨 막히는 공간은 내 삶 자체를 답답하게 만들었다. 1년 뒤 이사를 했다.

생계를 유지하려면 수많은 값을 쳐주고 물건과 서비스를 구해야 하지만, 그중에서도 한국인에게 가장 높은 값을 치러야 하는 건 ‘주거비’다. 집은 단순히 육체가 생존하는 공간이 아니다. 집은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한 ‘영혼의 서식지’다. 매슬로우가 말한 인간의 원초적 욕구인 생리와 안전을 위해 집은 필수다. 자녀와 배우자, ‘가정’이라는 관계 맺기를 통한 애정과 소속감 충족을 위해서도 집은 꼭 필요하다. 나아가 ‘집’이 누군가의 사회적 위치를 나타내는 지표가 되는 현실에서는, 상위 욕구인 인정과 자아성취 욕구와도 직결된다. 영혼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마음의 작용을 뜻한다면, 집은 한 개인의 총체적인 ‘인간다움’을 구성하는, 영혼의 서식지다.

서울에는 최저 수준의 ‘값’을 치르고 거주할 수 있는 곳이 있다. 42평 면적에 방이 29개나 들어차 있고, 두 층 합쳐 50명이 나무 내벽을 끼고 다닥다닥 붙어 살던 곳이다. 종로 국일고시원이다. 두 달 전 그곳에서 불이 났다. 순식간에 7명이 죽고 11명이 다쳤다. 노후한 건물에는 스프링클러는커녕 변변한 소화기도 없었다. 한 생존자는 말했다. “창문 없는 방에 살았으면 지금 여기 없을 수도 있지.” 그는 7만원을 더 내고 창문 있는 방으로 옮겼다. 그 창문으로 기적처럼 탈출했다. 7만원이 ‘목숨 값’이 된 것이다. 월세 25~35만원. 가장 싼 값에 거주할 수 있는 곳이라 생각했지만, 사실 그건 언제라도 벌어질 각종 사고와 재해, 온갖 열악함을 감수한 값이었다. 생명을 담보한 그 값은 결코 싸지 않았다.

   
▲ 집은 단순히 일정 기간 육체가 머무는 곳이 아니라, '마음'이 서식하는 곳이다. 햇볕은 인간다운 마음의 작용에 꼭 필요하다. ⓒ pixabay

노르웨이 사회학자 요한 갈퉁은 ‘구조적 폭력’이란 개념을 말했다. 신체적 폭력뿐 아니라 사회 구조 자체가 개인에게 고통을 가할 때 ‘구조적 폭력’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근본적으로는 자원과 권력의 차별적 배분, ‘사회 불평등’ 때문에 폭력이 발생한다. 기후변화가 취약층에게 가장 혹독한 고통을 가하듯이, ‘주거’ 역시 최빈층에게 가장 혹독한 구조적 폭력이 된다. 사회 가장 낮은 계층, 가장 빈곤한 계층이 사는 곳에는 모든 사고와 재해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국일고시원 거주자도 대개 일용직 노동자, 비정규직, 기초생활수급자 등 노숙자 직전 단계에 있는 이들이었다. 그들은 주거 사각지대에서 최저 값으로 위험을 다 감내해야 했다. 그들도 위험할 줄 모르고 간 것은 아니었다. ‘값’을 치를 여력이 없어 간 것뿐이다.

“참사 원인은 화재가 아니라 열악한 곳에 사람이 살도록 용인한 우리의 주거 현실이다.” 희생자 49재 추모제에서 시민단체 ‘주거권 네트워크’는 말했다. 쪽방, 판자촌, 고시원 등 ‘집’이 아닌 곳에 사는 비주택 가구수는 해마다 증가한다. 지금도 15만 명 넘는 인구가 고시원에 거주한다. 고시원에서 한 해 발생하는 화재는 평균 약 80건에 이른다. 이들 대부분은 주거기본법과 공중위생관리법에서 벗어나 있고 최저 주거기준을 적용받지 않는다. 집은 관계를 맺고 영혼이 서식하는 공간이 되기는커녕 최소한의 생존과 안전을 보장하지 못하는 곳이 되어 버렸다. 누군가가 다주택에 투기한 금액을 보전받지 못할까 염려하는 동안, 누군가는 당장 살고 있는 건물이 오늘 무너지지 않고 버틸 수 있을지 염려한다. 주거와 맺는 상반된 관계는, 전혀 다른 ‘인간다움’을 만든다.

집은 영혼의 ‘서식지(habitat)’다. 한 생물이 일정한 곳에 자리를 잡고 서식하려면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UN은 ‘비적정주거’ 개념을 제시했다. UN이 제시하는 적절한 주거 기준에는 깨끗한 물, 전기, 채광 접근부터 면적, 경제적 부담 가능성, 추위나 더위로부터 보호 등이 포함된다. 실제 영국에서는 창문 없는 다중이용시설은 아예 허용하지 않는다. 아무리 빈곤할지라도, 한 줌 자연 채광이 인간답게 사는 데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알기 때문이다. 사회 곳곳 불안한 서식지가 삶과 마음이 위로를 얻는 ‘영혼의 서식지’가 되려면 우리는 앞으로 얼마만큼 값을 치러야 할까?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박선영 기자

[조현아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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