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상처’

▲ 박경난 PD

그냥 작은 상처인 줄 알았다, 일곱 살짜리 강아지 상추가 한쪽 발을 제대로 못 디딜 때만 하더라도. 미용할 때 털을 너무 바짝 깎아 상처가 났나? 연고를 발라 주었으니 며칠 지나면 되겠지. 매일 상처를 씻어주고 약을 발라줬지만 몇 주가 지나도록 상추는 절뚝거렸다, 더 이상 상처가 보이지 않는데도.

결국 동물병원을 찾았다. 무료한 표정으로 TV를 보던 수의사는 상추의 증상을 묻더니 말도 없이 처치를 하기 시작했다. 엑스레이를 찍고 피를 뽑았다. 혹시나 큰 병일까? 몇 분 뒤 수의사가 불렀다. “다리에 염증이 약간 있네요. 주사 맞히고 약 챙겨드릴 테니먹이세요. 다음 주에 다시 방문하시구요.” 의사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안심이 됐다. 낑 소리 없이 주사를 맞은 상추가 대견했다.

“23만3천원입니다.” 헉 소리가 나왔다. 동물병원이 비싼 건 알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훨씬 큰 지출이었다. 다음 주에도 주사 맞히고 약 받고 하면 10만원을 훌쩍 넘을 터였다. 그렇다고 병을 방치할 수도 없었다. 한 달 동안 상추 치료비로 50만원을 썼다. 영수증을 보니 속은 좀 쓰렸지만 그래도 다시 상추가 제대로 걷는 모습을 보니 기뻤다. 이제 다 괜찮아진 거겠지?

두 달 뒤, 상추는 다시 절뚝거리기 시작했다. 다시 동물병원을 찾았다. “염증이 재발했네요.” “두 달 만에 재발하기도 하나요?” 뭔가 미덥지 못했다. “원래 그런 유전자를 갖고 있으면 그래요. 다시 주사 맞으면 괜찮아져요.” “그럼 또 매주 10만원씩 내야 하나요?” “그렇죠.” 나는 직감적으로 그 수의사가 상추의 병을 제대로 처치하지 않았음을 알았다. 주변 지인에게 물어 좋다는 동물병원을 추천받았다.

“이미 진행이 너무 많이 돼서…. 지금은 수술해도 완치된다는 보장을 할 수가 없어요.” 청천벽력 같은 말이었다. 상추의 병은 염증이 아니라 암이었다. “저희 같은 작은 병원에서는 치료할 수 없어요. 큰 병원으로 가보세요.” 여러 병원을 전전한 끝에 도에서 가장 크다는 동물병원으로 갔다. 대기실에는 엄청난 수의 동물과 보호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두 시간을 기다려 드디어 상추 차례가 왔다.

“수술할 수 있습니다. 아직 강아지도 7살밖에 안 됐고 저희 첨단 의료기기를 활용하면 살 수 있습니다. 하시겠습니까?” 간절한 마음에 하겠다고 했다, 하루라도 더 살 수 있다면, 덜 아플 수 있다면. 상추는 며칠을 기다렸다가 수술대에 올랐고, 다행히 성공적이었다. “이제 안심하셔도 됩니다. 며칠 입원하면서 경과를 살펴볼게요.” 나는 안심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다음날 동물병원을 들렀을 때….

▲ 힘없이 축 늘어진 강아지를 입원시키고 나는 홀로 씁쓸하게 집으로 돌아간다. ⓒ pixabay

“갑자기 밤중에 증세가 나빠져서 수술을 했는데, 그만….” “아니, 제 동의도 없이 또 수술을 했다고요?” “급해서 연락할 수가 없었습니다.” “대체 어떤 수술이길래 수술한 지 몇 시간 만에 또 수술을 했단 말이에요?” 믿을 수가 없었다. 상추가 갑자기 하늘나라로 간 것도, 저 수의사의 말도. 상추를 부여잡고 우는데 간호사들이 쑥덕거린다. ‘대체 몇 번째 의료사고….’ ‘마취….’ ‘돈 때문에….’ 아, 이건 의료사고구나. 데스크에 앉아 있는 수의사에게 뛰어갔다. “이거 의료사고죠? 그래서 어떤 수술인지 말도 안 해주는 거죠?” “네, 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아무것도 모르시면 가만히 계세요! 밀린 병원비나 내시고요! 제가 당신 강아지 치료하느라 새벽에 잠도 못 자고 수술했는데!” 한참을 수의사와 싸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돈을 내지 않고 상추와 집으로 돌아오는 것뿐이었다.

상추를 잃은 슬픔을 달래고 있을 때, 집으로 고소장이 날아왔다. 동물병원에 돈을 지불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총합 250만원. 나도 맞고소를 했다. 의료사고 명목이었다. 하지만 동물 의료사고가 의료사고로 인정된 적은 없다. 재물손괴로 처리될 뿐이다. 수의사가 6년 동안 배우는 것은 의료 행위가 아니고 무엇이며, 그들의 직업상 과실은 단지 재물손괴로만 이어진다고 말할 수 있는 걸까? 내가 잃은 건 가족이다. 힘들겠지만 나는 끝까지 싸울 것이다. 광화문 광장을 지나는 수많은 반려견이 보인다. 이들이 작은 상처도, 큰 상처도 마음 놓고 치료받을 수 있는 세상이 올 때까지 나는 싸울 것이다.

근데 이 뉴스는 또 무슨 참사인가? 동물권단체가 구조된 개 가운데 아프지도 않은 개를 포함해 200여 마리를 안락사시켰다니!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오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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